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사람은 기린과 다릅니다. 문명화에 성공한 사람은 당신네 사자의 위협에서 벗어난 대신, 만성적인 미지의 압박을 받게 됐습니다. 그게 바로 상사의 잔소리, 선생님의 지도, 시험 준비입니다. 사람들은 사자를 못반다는 대신,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억압 때문에 만성적인스드레스 반응을 경험하며 괴로워합니다. 기린으로 비유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사자가 매 순간을 관찰하고 있다는느낌일까요. 최근에는 스트레스가 한층 진화해서,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지시나 규들, 시험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스스로를 옥죄고 질타하면서 억압을 사조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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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옥죄던 ‘보이지 않는 사자‘는, 한때는 타자에 의한 억압이었다가 이제는 자기 자신의 조바심에 의한 자멸적 소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소진뒤에 남는 것은 뭘까요. 고작해야 경쟁에서 이긴 자의 피투성이 승리감과, 거기에서 이탈한 낙오자 내지 소외자의 비감뿐이 아닐까요.
- P257

사실 진짜 시커먼 피부는 뜨거운 태양이 지배하던 동아프리카에서 처음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이었거든. 햇빛 뜨거운 아프리카에서 피부에 해로운 자외선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겠어요? 피부에 멜라닌을 가득 만들어야지요. 몸에 있는 ‘멜라노코르틴리셉터‘ 유전자가 그 역할을 하지요. 호모 사피엔스 중 일부가 피부가 희게 된 것은 훨씬 나중에, 이들이 아프리카를 벗어나 중위도나 고위도 각지에 퍼지면서 일어난 적응 중 하나였습니다. 검은 피부는 자외선을 막는데, 중위도와 고위도 지역 일부는 자외선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막을 경우 오히려 자외선 부족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었거든요. 잘 알려져 있듯, 우리 몸에서는 비타민 D가 그냥 합성되지 않고 자외선을 피부에 쬐어 줘야만 만들어지거든요. 비타민 D 부족은 뼈를 무르게 하고, 여성의 경우 골반을 약하게 해 임신과 출산을 위험하게 만듭니다. 그냥 팔다리 뼈가 약해지는 것도 위험하겠지만, 임신과출산은 종의 미래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가 되죠. 이를 막기 위해 탄생한 흰 피부는, 생존과 종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적응이었습니다.
검은 피부에서 시작해 다양한 피부색으로 적응한 호모사피엔스와 달리, 당신네 네안데르탈인은 처음부터 중-고위도에 해당하는 유럽에서 진화한 종입니다. 피부를 검게 만드는 MCIR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었지요. 덕분에 적어도 당신들 중 상당수는 피부가 하얬습니다. 더구나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머리카락까지도 빨갛거나 금발로 만듭니다. 당신은 흰 피부에 금발을 지닌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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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콤 군 생활에서 고모가 참석하는 모든 파티에서 알렉산드라 고모는 고모 부류의 맨 마지막 인물이었다. 고모는 강에 띄우는 배를 갖고 있었고, 기숙사 학교의 예의 범절을 지녔다. 어떤 도덕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지지했다. 문법 용어를 빌려 말한다면, 고모는 목적격으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못말리는 수다쟁이였고, 알렉산드라 고모가 학교에 다닐 때 자기회의란 단어는 어떤 교과서에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래서 그런지 그 뜻도 모르고 있었다. 고모는 지치는 법이 없었으며, 아무리 작은 기회라도 주어지면 왕비다운 특권을 행사하려고 들었다. 한마디로 계획을 짜고, 충고를 하고, 주의를 주고, 경고를 했다.
- P244

딜은 다시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그의 머릿속에 아름다운 꿈들이 떠돌아다녔다. 내가 책을 한 권 읽을 때 딜은 두 권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는 자기가 만들어낸 마술을 더 좋아했다. 딜은 번개보다도빨리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었지만 자신만의 환상의 세계, 아가들이 백합처럼 누군가가 따가기를 기다리며 잠을 자고 있는 그런 세계를 더 좋아했다. 딜은 천천히 혼자 중얼거리다가 마침내 잠이 들었다. 그 자신과 함께 나를 데리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안개 낀 섬의 정적 속에 슬퍼 보이는 갈색 문을 단 회색 집의 희미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 P272

"커닝햄 아저씨는 바탕은 좋으신 분이야. 다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저씨에게도 약점이 있으신 것뿐이지."
아빠가 말씀하셨다.
"그걸 약점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그 자는 어젯밤 처음 그곳에 도착하자 아빠를 죽이려고 했어요."
오빠가 말했다.
"나를 약간 다치게는 했을지도 모르지."
아빠가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젬, 너도 나이를 먹으면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야.
폭도란 그것이 무엇이든 언제나 인간이거든. 커닝햄 아저씨는 어젯밤 폭도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여전히 인간이셔. 남부의 작은 읍내마다 모든 폭도들은 늘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지 —— 별 게 아니란 말이다. 안 그래?"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오빠가 대꾸했다.
"그래서 여덟 살짜리 애가 그들에게 판단이 서게 만들어줄 수 있었던 거야. 안 그래?"
아빠가 말씀하셨다.
"그걸 보면 뭔가 알 수 있어 ㅡㅡ 들짐승 같은 패거리들도 인간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멈추게 할 수 있다는걸, 흠, 어쩌면 우리에겐 어린이 경찰대가 필요한지도 몰라.….… 어젯밤 너희들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월터 커닝햄 아저씨를 아빠의 입장에 서게 만들었던거야. 그걸로 충분해."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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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무르호랑이는, 백호 즉 흰 털을 지닌 호랑이보다도 유전자다양성이 낮았어, 이게 왜 문제인 줄 이니 ? 백호는 자연적으로 태어난 게 아니야. 흰 털을 지니도록 사람들이 세심하게 인공 교배를 한 결과로 태어난 호랑이거든. 이 말은, 극히 일부 호랑이를 이용해 교배를 시켰기 때문에 유전자 다양성이 몹시 낮다는 뜻이야. 그런데 이런 백호보다 너 아무르호랑이의 유전자 다양성이 더 낮았다니, 네가 현재 개체수가 급감해 위기에 처했음을 알려주는 거야. 하긴 이건 너 혼자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전체 대형 고양이과 동물은 극히 최근인 약 7000년 ~ 7만 년 전부터 개체수가 크게 줄어들었던 흔적이 유전체에 남아 있다. 혹시, 이 무렵 지구를 뒤덮기 시작한 호모 사피엔스(인류) 때문은 아닐까. 그들이 네게 직접 해를 끼친 것은 아니더라도, 네가 살 곳을 차지하고 그곳을 개간하며 점차 너를 살기 척박한 곳으로 내몬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 P109

 호랑이가 돌아와야 할 당위성은 커요. 호랑이 같은 생태계의 최상위에 있는 육식 포유류를, 환경학에서는 ‘우산종‘ 이라고 불러요.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종으로,
그 종이 존재한다면 다른 종 역시 그 그늘에서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마치 비를 피하는 우산처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거예요. 복원 역시 마찬가지예요. 우산종을 복원하면, 생태계 복원 효과를 그 우산 아래에있는 동물이 두루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호랑이의 귀환은, 동물의 다양성이 낮은 한반도의 전체 생태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거예요. 저 역시 그런 한반도를 고대합니다.
- P125

일단 형태를 갖추자, 당신은 급속히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그 결과 이빨고래와 수염고래라는 크게 두 가지 고래로 나뉘었습니다. 수염고래는 이빨 대신 ‘벌린 baleen‘이라는 일종의 수염을 지닌 고래입니다. 입을 크게 벌려 크릴등 작은 먹이를 바닷물과 함께 입 안에 가득 머금은 뒤, 수염을 마치 체처럼 써서 물을 걸러 내보내면 먹이만 먹을 수 있지요. 덩치에 걸맞지 않게 작은 바다 생물을 즐기는 고래에게 적합한 섭식 도구입니다. 이빨고래는 뾰족한 이빨이 있는 고래로, 사냥을 통해 어류나 다른 포유류, 심지어 다른 고래를 잡아먹고 사는 고래입니다. 

- P146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비둘기는 대부분 ‘바위비둘기‘ 예요, 바로 아저씨가 속한 종이지요. 색이나 무늬에 변이가 많긴 하지만, 대개 회색 몸에 난개 부분에 두 줄의 검은 무늬가 있는 게 특징이지요. 목 주위에는 녹색과 보라색을 띠는 오묘한 금속 느낌의 색(이렇게 미세한 분자구조에 빛이 비치면 생기는 금속성 색을 구조색이라고합니다. 풍뎅이나 나비의 오묘한 색이 대표적인 예예요)이 비치는데, 꽤 우아하고 상서로운 색임에도 사람은 아무도 그렇게생각해 주지 않는 것 같군요. 이 비둘기는 정확히는 유럽 남부와 아프리카 북부 등 지중해 연안에 살던 ‘야생, 바위비둘기‘가 사람에 의해 사육돼 ‘집비둘기‘가 됐다가, 다시 우여곡절 끝에 도시에 재정착해 세계 전체로 퍼진 새입니다. 정리하면 야생 바위비둘기가 사육돼 집비둘기가 됐고, 그 집비둘기가 다시 야생 상태(주로 도시)로 빠져 나가 적응한 게 바로우리가 도시에서 보는 바위비둘기예요.  - P174

이제 다원이 <종의 기원>을 내놓은 지도 155년이 지났어요. 다윈은 당신을 자연선택의 원리를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도입으로 소개했어요. 하나의 바위비둘기에서 다양한 외모의 집비둘기가 나오는 과정을 통해 변이와 선택의 원리를 제시했지요. 하지만 바위비둘기에게서 자연선택 이야기를 직접 꺼낸 것은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사람의 사육과 교배에 의한 ‘인위적인‘ 선택의 사례였지요. 그 후 155년 지난 지금의 아저씨 모습은, 오히려 ‘자연‘선택의 사례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도시라는 새로운 생태계가 펼쳐졌고, 이 환경은 다른 모든 새에게와는 달리 아저씨에게만은 번식과 생존에 유리한 환경이 됐습니다. 아저씨는 살아남았고 개체수를 늘려가며 번성했으며, 전세계로 퍼졌습니다. 그 영리하다는 까치도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도시 생활을, 아저씨는 능숙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그지역의 환경에 적합한 특성을 지닌 종이 선택된다는 자연선택의 원리가, 도시라는 인위적 환경에서도 제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아저씨만큼 적합한 동물이 또 있을까요.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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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걸 이해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려, 하지만 때로는 어떤 사람 손에 쥐어져 있는 성경책은 누군가가 그렇지, 네 아빠가 손에 쥐고 있는 위스키보다도 더 나쁘단다."
••••••
" 세상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죽은 뒤의 세계를 지나치게 걱정하느라고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 말이야. 길거리를 쳐다보려무나, 그 결과를 보게 될 테니까."
- P88

집에 도착했을 때 난 오빠에게 월요일 날 학교 가서 애들에게 말해줄게 생겼다고 했다. 오빠가 나에게 몸을 돌리더니 "스카웃, 그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마" 하고 말했다.
"뭐라고? 난 꼭 말할 거야. 다른 애들 아빠는 우리 아빠 같은 메이 군의 명사수가 아니잖아."
"우리가 알고 있기를 바라셨다면 아빠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을 거야. 아빠가 그 솜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면, 우리에게 말씀하셨을 거라고."
"어쩌면 아빠가 깜박 잊어버렸을 수도 있잖아."
"아냐, 스카웃. 그건 네가 이해할 수 없는 거야. 아빠는 정말 나이가 많으셔. 하지만 아무 일 못 하셔도 난 상관하지 않을 거야 - 아빠가 그야말로 아무 일도 못 하신다 해도 난 상관 않을 거란 말이야."
오빠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기분 좋게 차고를 향해 던졌다. 그러고는 그것을 잡으러 달려가면서 뒤에 대고 이렇게 소리쳤다.
"아빠는 신사셔. 꼭 나처럼 말씀이야!"
- P189

"나이가 많고 몸이 성치 않은 할머니잖니.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신사처럼 행동해, 할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것 때문에 화를내서는 안 돼."
오빠는 듀보스 할머니가 아플 리 없다고, 아픈 척 소리를 지를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우리 셋이서 할머니 집을 방문했을 때 아빠는 모자를 휙 벗어 정중하게 흔들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스 할머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밤은 그림처럼 아름다우시군요."
나는 아빠가 무슨 그림처럼이니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이제껏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빠는 법원에서 일어난 소식을 전하는가하면, 내일도 건강하시기를 충심으로 바란다고 인사를 드리는 거다.
모자를 다시 쓰고는 아빠는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나를 아빠의 어깨에 태우고는 황혼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총을 싫어하고 전쟁에 한 번도 참전해본 적이 없는 아빠가 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이런 때였다.
- P192

"그렇단다. 바로 그거였어. 네가 책을 읽어드리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모르긴 몰라도 할머닌 네 말을 한 마디도 듣지 않으셨을 거야..
할머니의 온 정신과 육체는 그 자명종 시계에 집중되어 있었거든.
 네가 할머니한테 걸려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난 할머니께책을 읽어드리도록 만들었을 거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관심을 딴 데로 돌리실 수 있었을 테니까. 또 다른 이유는 --"
"할머니는 모르핀에서 해방된 채 돌아가셨나요?" 오빠가 물었다.
"마치 산 속의 공기처럼 편안히 돌아가셨어. 할머닌 최후의 순간까지 거의 의식을 지니고 계셨어."
아빠가 미소를 지으셨다.
"의식을 지니고 계셨단다. 또 심술을 부리며 말이다. 할머닌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을 강하게 비난하셨어. 너를 감옥에서 보석으로 풀려나게 하는 데 내 여생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도 하셨지. 할머닌 제시를 시켜 이 상자를 만들도록.. "
아빠는 팔을 뻗쳐 캔디 상자를 집어 올렸다. 그러고는 그 상자를 오빠에게 넘겨주었다.
오빠는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축축한 솜뭉치에 싸인, 창백하고 하얀 동백꽃 한 송이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눈꽃 동백이었다.
오빠의 두 눈이 거의 튀어나오는 듯했다.
"늙은 악마 할머니 같으니, 늙은 악마 할머니 같으니라고!"
오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거야?"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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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째, 스카웃, 네가 간단한 요령 한 가지만 배운다면 모든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하는 거야"
"아빠?"
"- 말하자면 그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다니는 거야."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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