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번째 생일날, 루크레시아 부인은 어린아이가 손으로 쓴 편지 한 장이 베개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조심스럽게 쓰인 글자 하나하나에서 사랑이 듬뿍 느껴졌다.

생일 축하해요. 새엄마!
돈이 없어서 선물은 준비 못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꼭 일등할게요. 그게 내 선물이 될 거예요. 새엄마는 이 세상에서 최고예요. 가장 예쁜 사람이고요. 나는 매일 밤 새엄마 꿈을 꿔요..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요!
알폰소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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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삶의 마지막 여정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담담히받아들여야만 현재 우리의 삶을 더 온전하게 살 수 있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들려주었던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 앞서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 !
죽음을 기억하라!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깊은 의미를 품는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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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궁금했다. 아버지는 누구를 위해 마음에 꽃을 심었을까..
어머니일까? 우리 집에도 봄이 다시 올까. 어머니의 우울한 얼굴에도 꽃이 필까.
점심때가 되자 아버지는 어느 휴게소에 픽업트럭을 댔다. 먹고싶은 게 없느냐고 물었다.
"아빠가 얼른 가서 사 올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먹고 싶지 않았다. 아니, 먹을 수가 없었다. 고개 숙이고, 거절당하고, 하하 웃고, 도로 위를 끝없이 달리면서 마음에 꽃을 심는 아버지의 돈으로는 아무것도.
"그럼 우리 도시락 나눠 먹을까?"
그녀는 "네" 했다. 아버지는 운전석 등받이 뒤에서 보온병과 도시락을 꺼냈다. 한눈에 봐도 아침에 먹고 남은 밥과 반찬이었다. 아버지는 보온병 뚜껑에 뜨거운 물을 따라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밥이 차니까. 이거 마시면서 먹어."
봄방학 내내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픽업트럭에서 아버지와 함께 먹던 도시락은 그녀 안에서 꽃이 되었다. 그땐 그걸 몰랐다. 기나긴 삶의 겨울이 지나고 눈보라가 멈춘 후에야 그것이 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미치거나 죽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고 있없다는 것도. - P189

뜻밖에도 아내의 태도는 미적지근했다. 연애는 좋지만 결혼은 물음표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걸 상대도 원해야만 결혼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물었다.
"그게 뭔데?"
너무나 당연해서 어처구니가 없는 답변이 나왔다.
"행복하게 사는 거."
행복을 원치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는 자신도같은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행복하려고 결혼하자는 거라 덧붙였다. 그녀는 물었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불시에 일격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해올줄은 몰랐다. 사실을 말하자면 행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한 적이 없었다. 고민한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까. 그는 머뭇대다 대답했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그녀는 베란다 유리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먼 지평선을 넘어다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실제로 보이는 건 유리문에 반사된실내풍경뿐일 텐데,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 P112

"자기, 나랑 왜 결혼했어?"
왜 했을까. 그때의 그는 신유나의 행성이었다. 매일 매 순간 그녀를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출근길 교차로 신호에 걸렸을 때, 수업을 하다 잠시 숨을 고를 때, 퇴근 후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고를 때, 그녀를 생각했다. 거실에 앉아 혼자 맥주를 마시며 깔깔 웃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생각했다. 자신의 집 현관문을 열고들어서던 그녀가 얼마나 눈부셨는지 생각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잠이 들 때까지 온전히 그녀를 생각했다. 그런 여자와 결혼 말고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선택의 대가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 아직도 자신이 아들을 죽였을지 모른다는 의심에 시달린다. 의심으로 잠 못 드는 밤마다 아내가 가르쳐준 죽음의 묘약 ‘쉐바‘를 먹는다. 약에 취해 잠들면 그날 밤으로 돌아가고, 아내는 그를 죽이러 온다. 아내가 오면 그는 묻는다.
이제 행복해?
아내는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아니, 나는 참 운이 없어.
- P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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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몸 역시, 기억의 의견에 동의해왔다. 뚱뚱하고 크고 부드러운 펭수와는 감촉이 완전히 달랐다. 어린 나무의 가지처럼, 작고 가느다란 것이었다. 그가 숨만 크게 쉬어도 갈비뼈에 눌려 톡 부러질 것처럼 연약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무서운 직감이 그를 찍어 눌렀다. 귓가에선 본능의 목소리가 속살거렸다. 그냥 있어, 움직이지 마. 보지 마.
시간이 갔다. 하염없이 느리게 째깍 째각, 그의 턱 밑에선 피가 요동치고 있었다. 심장이 고약하고 섬뜩한 소리를 내며 질주했다.
머릿속에선 까마귀 떼가 뱅글빙글 돌았다. 그는 더 버틸 수가 없었다. 해치워버리는 심정으로, 한 동작에 몸을 뒤집고 일어나 앉았다. 눈을 내리떠서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노아였다. 펭수 배에 얼굴을 묻고 엎드린 노아, 사지를 늘어뜨린 채 움직이지 않는 노아.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노아, 숨 쉬지않는 노아, 맥이 뛰지 않는 노아, 몸을 흔들자 머리를 옆으로 툭 떨어뜨리는 노아.
세상이 훅, 사라졌다. 그의 머릿속은 까맣게 암전됐다. 어둠 속에서 그는 폭음처럼 터져나오는 자신의 비명을 들었다.
아냐. 아니야. 아니라고…..….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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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연명의료에 따르는 비용 또한 문제다. 아툴 가완디는 책에서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할 사람들에게서 삶을 정리할 기회를 박탈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 치료에만 신경을 쓰는 미국 의료 시스템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런데우리나라는 이 점에서 미국보다 더욱 심각한 편이다.
우리나라는 항암제를 임종 1개월 전에 30.9퍼센트의 환자가 사용한다. 사실상 임종 1개월 전이면 이제 삶이 얼마안 남았을 때다. 이때는 삶의 마지막 정리를 위한 통증 조절이 가장 중요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통증 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모르핀 사용은 23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래도 미국은 50퍼센트가 넘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는 2.3퍼센트에 불과한 것일까? 이것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 시스템의 문제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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