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궁금했다. 아버지는 누구를 위해 마음에 꽃을 심었을까.. 어머니일까? 우리 집에도 봄이 다시 올까. 어머니의 우울한 얼굴에도 꽃이 필까. 점심때가 되자 아버지는 어느 휴게소에 픽업트럭을 댔다. 먹고싶은 게 없느냐고 물었다. "아빠가 얼른 가서 사 올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먹고 싶지 않았다. 아니, 먹을 수가 없었다. 고개 숙이고, 거절당하고, 하하 웃고, 도로 위를 끝없이 달리면서 마음에 꽃을 심는 아버지의 돈으로는 아무것도. "그럼 우리 도시락 나눠 먹을까?" 그녀는 "네" 했다. 아버지는 운전석 등받이 뒤에서 보온병과 도시락을 꺼냈다. 한눈에 봐도 아침에 먹고 남은 밥과 반찬이었다. 아버지는 보온병 뚜껑에 뜨거운 물을 따라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밥이 차니까. 이거 마시면서 먹어." 봄방학 내내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픽업트럭에서 아버지와 함께 먹던 도시락은 그녀 안에서 꽃이 되었다. 그땐 그걸 몰랐다. 기나긴 삶의 겨울이 지나고 눈보라가 멈춘 후에야 그것이 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미치거나 죽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고 있없다는 것도. - P189
뜻밖에도 아내의 태도는 미적지근했다. 연애는 좋지만 결혼은 물음표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걸 상대도 원해야만 결혼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물었다. "그게 뭔데?" 너무나 당연해서 어처구니가 없는 답변이 나왔다. "행복하게 사는 거." 행복을 원치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는 자신도같은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행복하려고 결혼하자는 거라 덧붙였다. 그녀는 물었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불시에 일격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해올줄은 몰랐다. 사실을 말하자면 행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한 적이 없었다. 고민한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까. 그는 머뭇대다 대답했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그녀는 베란다 유리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먼 지평선을 넘어다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실제로 보이는 건 유리문에 반사된실내풍경뿐일 텐데,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 P112
"자기, 나랑 왜 결혼했어?" 왜 했을까. 그때의 그는 신유나의 행성이었다. 매일 매 순간 그녀를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출근길 교차로 신호에 걸렸을 때, 수업을 하다 잠시 숨을 고를 때, 퇴근 후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고를 때, 그녀를 생각했다. 거실에 앉아 혼자 맥주를 마시며 깔깔 웃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생각했다. 자신의 집 현관문을 열고들어서던 그녀가 얼마나 눈부셨는지 생각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잠이 들 때까지 온전히 그녀를 생각했다. 그런 여자와 결혼 말고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선택의 대가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 아직도 자신이 아들을 죽였을지 모른다는 의심에 시달린다. 의심으로 잠 못 드는 밤마다 아내가 가르쳐준 죽음의 묘약 ‘쉐바‘를 먹는다. 약에 취해 잠들면 그날 밤으로 돌아가고, 아내는 그를 죽이러 온다. 아내가 오면 그는 묻는다. 이제 행복해? 아내는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아니, 나는 참 운이 없어. - P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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