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얻은 정보나 최근 정보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이 현상은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이라고 부른다. 개념을 평가하거나의견을 형성할 때 머릿속에 즉각 떠오르는 사례에 의존하는 경향으로 사실상 사고의 지름길 역할을 한다. 이 사고는 기억해내기 쉽다면 중요한 정보라는, 아니면 최소한 다른 대안 설명보다는 중요하다는 추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기억해내기 쉬울수록 - P138

우리는 그 정보에 더 집착한다. 그리고 실제로 최근 정보나 기억하기 쉬운 사례 쪽으로 우리의 의견을 편향시킨다. 그러나 최근정보라거나 떠올리기 쉽다는 사실만으로 그 정보가 사실인 것은아니며, 빠른 사고에서 나온 결론이 완벽할 수도 없다. 존재하지도 않는 자폐 위험보다 홍역 위험이 훨씬 더 크지만 걱정이 많은부모는 홍역으로 인한 사망보다 무서운 자폐 이야기를 더 많이접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용성 편향은 수많은 휴리스틱 중에서 사고 지름길의 하나일 뿐이다. 때로는 질보다 속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존이 걸린 문제라면 빠른 판단이 유리할 수 있다. 야생의 세계에있는데 갑자기 덤불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해보자. 대부분은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였거나새나 여우일 수도 있다. 우리가 있는 장소와 지식을 고려하면 가장 그럴듯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대개 우리는 그렇게 하는 대신 위험을 감지하는 즉시 반응한다. 바스락거린 것이 해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덤불 아래 숨은 뱀이었다면 즉각적인 반응이 우리의 목숨을 구했을 것이다.
하고 자체가 - P139

가나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성의 합계출생률은 2~3명이지만, 교육받지 않은 여성의 합계출생률은 6명이다. 그러면 교육 수준이 낮은 외국인의유입이 현지민을 압도하리라는 수많은 이민 반대자의 우려는 무엇을 나타낼까?
이민자들이 현지민을 압도하리라는 공포는 새로운 현상이아니다. 이민자들의 출생률이 더 높았던(이들 대부분은 아일랜드인이었다) 1860년대 미국에서도 비슷한 공포가 퍼졌고, 이민자와현지민의 결혼이 빠르게 늘어나리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미국이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지 역사를 생각해보면, 영리한 독자들은 아마 1800년대 (어쩌면 지금도) 백인 미국인들의 이민자에 대한 우려에서 명백한 역설을 발견할 것이다. 어쨌든 이 경고는 근거가 부실했다. 이민 2세대의 출생률은 이미 상당히 감소하면서평균으로 수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출생률은 정력이라는본질보다 사회·경제적 및 교육 요인과의 연관성이 훨씬 더 크므로 당연한 결과다. - P148

인종이란 정확하게 무엇이며, 이를 통해 무엇을 예측할 수 있을까? 수백 년 동안 인류는 인종이라는 개념 때문에 믿기 어려울 만큼 많은 피를 흘렸으니, 인종을 측정할 객관적인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인종은 아마도, 과학적 관점에서는 의미가 없다. 지구에 존재하는 인간 전체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단일종이다. 유전학적으로 인간은 아주 조금 다를 뿐, DNA 서열을 보면 평균99.9퍼센트 이상 똑같다. 과학자 마이클 유델 Michael Yudell의 말을 빌리면 "유전학적 방법으로는 인종을 구별해 분류할 수 없다"." 민족 집단을 정의하는 ‘핵심‘ 유전자나 고유 특성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실제로 과학적 근거가 없다. 오히려 민족 집단 속의 변이가 집단 간 변이를 능가한다는 증거는 풍부하다. 유전적 특징은 특정 집단과 연관될 수 있지만, 특정 집단에만 배타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경계선은 완전히 임의적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종‘은 모호해서 쓸모없는 용어다. - P149

수 세기 동안 흰 피부는 유럽 대륙의 최북단 지역에만 나타났다. 중동 지역에서 최초의 농부가 밝은색과 어두운색 피부 유전자를 모두 가지고 등장할 때까지 이 상태는 유지되었다. 농부들은 이 지역에 살던 수렵채집인과 성공적으로 교배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밝은색 피부는 유럽에 점점 퍼져나갔다. 한때 희귀했던 유전자 돌연변이 SLC24A5는 대략 5800년 전쯤에는 유럽대륙에서 출현 빈도가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본질주의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흰 피부 유전자는 보편적인 표현형이 되기까지 수많은 집단과 지속적인 교배를 거쳤다. 이 사실은 백인 우월주의자가 백인종의 순수성을 자랑하는 풍경을 역겹게 보이게 한다.
결국 인종 간 차이점이 거의 없다는 게 진실이다. 백인종이사라진다는 공포는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이 서로 밀접한 관계이며 인간종 전체에서 볼 때 유전적 변이는 티끌 정도밖에 안 - P150

유된다는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어쨌든 인간의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지는 현상은 유익하며, 해로운 열성 형질이 전파되는 상황을 막는다. 낭성섬유증은 양쪽 부모가 모두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후손에게 전해진다. 아일랜드 인구는 19명 중1명이 유전적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아일랜드는 낭성섬유증 유병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배타적인 집단 내 교배는 생존에 해로우며 인구 다양성을 통해서만 피할 수 있다. 인간은 언제나 호기심 많고 제멋대로인 종이었으며, 이 특성은 항상인간의 장점이었다. ‘백인종‘은 사실상 허구이며, 백인 우월주의는 그저 과거의 의문스러운 영광에 미약하게나마 의지해서 한심한 개인을 가리려는 껍데기일 뿐이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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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도 좋으니까 제발 사고다운 사고가 발생해서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위태위태한 유리그릇 같은 내 평범한 일상이 와장창 깨져주기를나는 바라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불상사들이 정작 상상 아닌 눈앞의 현실로 어느 날 불쑥 찾아들면 어쩌나 하고 혼자서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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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를 조성하는 흑백논리는 본질적으로 합리적인 담론과 정반대다. 흑백논리에 내재한 극단론은 실용적인 결론을 짓밟고 건설적인 대화를 무너트린다. 흑백논리 특유의 호소력은모든 것을 서로 반대되는 극단으로 단순하게 압축하는 능력에있으며, 독재자와 선동가는 오랫동안 이런 점에 매력을 느꼈다.흑백논리의 부식력은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았으며 여전히광범위한 분야에서 예상한 그대로 뻔하게 활용된다. 소셜미디어는 바로 이런 현상으로 가득하며, 미묘한 관점의 차이에 따라 광범위한 영역이 펼쳐지는 복잡한 주제가 갑자기 두 개의 극단적인 해석을 두고 격렬한 말다툼을 벌이는 수준으로 전락한다. 이런 토론에서는 항상 이상하게 의견이 두 개로 나뉜다.
환원 오류에의 호소는 상대적으로 파악하기 쉬우며, 복잡한현상을 단순하고 매끄럽게 설명한다. 이해한다는 착각은 안도감과 확신을 주며, 혼란한 세상에서 심리적인 애착 이불과 보호 토템 노릇을 한다. 인과관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근본적이고 고유한 특성이며, 꺼지지 않는 이 욕망은 수천 년 동안 인류의 발전과 지적 욕망을 부추기는 엔진이었다. 불을 사용하고 양자역학을 체계화하는 일까지 모든 것을 이끌었다. 지식을 향한억누를 수 없는 열망이 없었다면 인류에게는 방대한 예술과 과학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식을 향한 욕구를 가진 한 인간은인과적 오류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인간의 미신, 의례, 심지어 종교 용어에도 새겨져 있다.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인류의 집단적 결함 덕분에 원인과 결과를 분리하기는 놀라울 정도로 어려우며, 반대로 실수를 저지르기는 너무나 쉽다. - P120

그러나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백신은 자신이 이룩한 성공의 희생자가 될 운명이었다. 한때는 피할 수 없었던 끔찍한 질병의 위력이 문화 의식에서 잊히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천연두환자의 곰보투성이 얼굴도, 폴리오에서 살아남은 환자의 심각하게 손상된 몸도 볼 수 없었다. 공동체가 공유한 경험에서 홍역으로 죽거나 청력을 잃거나 뇌가 손상된 어린이들의 유령은 더는출몰하지 않았다. 위험이 추상적이고 모호해지면서 안주하려는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백신이 우리 세상을 근본적으로바꾸었다는 사실을 잊기 시작했다. 20세기에는 대부분 예방 접종률이 높았고, 끈질기게 백신을 거부하는 비주류를 막아냈다.
백신 거부감은 부글거리며 그림자 속에 숨었고, 상상할 수 있는모든 질병을 백신 탓으로 돌렸다. 대부분 이런 공격은 너무나 괴상해서 무시당했다." 20세기가 저물 때쯤 젊은 부모들은 부모 세 - P128

대처럼 자녀가 유아기에 사망할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 이제 생존이 당연해지자, 새롭게 소비할 공포를 누군가가 발견했다.
이 중에서도 늘어나는 발달장애를 향한 우려가 가장 컸다.20세기 후반에 어린이 자폐 비율이 눈에 띄게 치솟기 시작하면서 부모들을 놀라게 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의 전형적인 특징은 보통 걸음마를 시작하고 예방 접종을 받을 때쯤 나타난다. 이런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거북한 암시가 되었다. 어쩌면 백신 자체가 자폐를 일으키는 건 아닐까? 그러나 음침하게 이어지는 장면을 뒷받침하는 의학적 증거는 없었고 오히려 반박하는 증거가많았다. 겉으로만 그럴싸한 이 연결 고리는 악명 높은 영국 위장병전문의 앤드루 웨이크필드 Andrew Wakefield만 아니었더라면 서서히대중 의식의 변두리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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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선생! 권선생! 집에 기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소리였다. 그는 마누라를 시켜 벌써 출근했다고 거짓말을 하게 했다. 누군지 모를 사내를 따돌리고 나서 그제야 생각해보니 화요일이 아닌가. 일요일도 아닌데 여태껏 출근하지 않고 빈둥거린 그 이유는 또 뭔가. 별안간 그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의타심이었다. 자기도 깊이 관련된 일에 정작자기는 뛰어들 의사가 없으면서도 남들의 힘으로 그 일이 성취되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기회주의의 자세였다. 그것은 역지없이 하나의 자각이면서 동시에 부끄러움의 확인이었다. 그는 후닥닥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는 길을 가득 메운 채 손에몽둥이와 각종 연장 따위를 들고 출장소 쪽으로 구호를 외치며달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과 마주쳤을 때 그는 낮도둑처럼 얼른 샛길로 몸을 피했다. 부끄럽게 자신을 깨달은 뒤끝이니까 한 번쯤 발길이 그들 쪽으로 향할 법도 하건만 그의 눈은 완강하게 서울로 가는 버스만 찾고 있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 P152

데 잠시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 장면이 휘까닥 바꿔져버립니다.삼륜차 한 대가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가지고는 그만 소용돌이속에 파묻힌 거예요. 데몰 피해서 빠져나갈 방도를 찾느라고 요리조리 함부로 대가리를 디밀다가 그만 뒤집혀서 벌렁 나자빠져버렸어요. 누렇게 익은 참외가 와그르르 쏟아지더니 길바닥으로 구릅니다. 경찰을 상대하던 군중이 돌멩이질을 딱 멈추더니 참외 쪽으로 벌 떼처럼 달라붙습니다. 한 차분이나 되는 참외가 눈 깜짝할 새 동이 나버립니다. 진흙탕에 떨어진 것까지주워서는 어적어적 깨물어 먹는 거예요. 먹는 그 자체는 결코아름다운 장면이 못 되었어요. 다만 그런 속에서도 그걸 다투어주워 먹도록 밑에서 떠받치는 그 무엇이 그저 무시무시하게 절실할 뿐이었죠. 이건 정말 나체화구나 하는 느낌이 처음으로 가슴에 꽉 부딪쳐옵니다. 나체를 확인한 이상 그 사람들하곤 종류가 다르다고 주장해 나온 근거가 별안간 흐려지는 기분이 듭디다. 내가 맑은 정신으로 나를 의식할 수 있었던 것은 거기까지가 전부였습니다." - P156

"보고도 몰라? 소라 산림감시소 산감님이다."
"없네, 집에다 두고 왔네."
요놈 자식 좋게 말혀서 안 듣누만, 감시소로 가자!"
"너 이노옴!"
이번에는 아버지가 호통을 쳤다. 그 소리가 또 메아리쳐서 되돌아왔다. 너 이노옴옴옴.
"어려려, 도적놈이 감히 누구더러 됩데 큰소리여!"
"자식놈 듣는 자리서 얻다 대고 함부로 놈짜를 팡팡 놓느냐!"
"허허허허......"
하도 어이가 없었던지 산감이 한참이나 너털웃음을 쏟아놓았다.
"그렇게 자식 어려운 줄 아는 놈이 자식까장 앞세우고 도적질댕기느냐?"
"어허, 그 도적 소리 고만두지 못허까. 우리 이럴 게 아니라애나 먼저 보내놓고 단둘이서 죄용히 얘기허세."
"무신 소리! 애도 같이 끌고 가야지."
"자네는 자식도 없능가? 애비가 못 당헐 꼴을 당하는 걸 아무죄도 없는 자식이 꼭 봐야만 자네 직성이 풀리겄능가?"
"아까부터 이놈이 누구보고 건방지게 자네, 자네여!"
산감이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나를 보내고 안 보내는 문제에대해서는 더 이상 시비를 삼지 않으려는 기색이었다. 아버지가 나 있는 쪽을 어림으로 지목하면서 눈짓을 했다. 빨리 돌아가라는 신호였다. 걸음아 날 살려라고 숲 사이를 빠져 나는 골짜기 아래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 P184

그러는 아버지를 두고 나는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다른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파는 분량의 겨우 3분의 1에나 미칠까말까 하는 수확이었다. 아버지의 머리가 아버지의 장대가 바로아버지 자신을 배반하고 능멸한 결과였다.
"너도 그렇다고 믿냐?"
한참 만에 아버지가 하늘을 상대로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이 애비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믿고있냐?"
아버지는 다름 아닌 나를 상대로 묻고 있었다. 엉겁결에 나는전에 자주 들은 풍월을 고대로 옮겨버렸다.
"안 그래요! 시국을 잘못 만나서 운수가 불길혀서 그래요!"
"허허, 고녀 자석!"
웃었다.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내가 아버지를 웃겼다. 장남인내가 마침내 내 힘으로 아버지를 웃게 만든 것이다.
"너 욜로 좀 들어오니라. 부자지간에 어디 한번 짱짜란히 둔눠서 하늘이나 구경허자. 요렇게 네모 틀 너머로 보니께 하늘이여간만 곱들 않구나."
나는 아버지의 분부를 감히 거역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눈은 조금도 틀린 데가 없었다. 정말로 하늘은 고왔다. 드높이 매달린 파란 하늘을 소담한 구름 덩이 하나가 한가하게 질러가고있었다. 아버지 말마따나 네모 틀 안에 가두고 바라보기 때문에더욱더 곱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 P199

"달기님, 달기님."
타원형의 둥우리 앞에 나를 세워놓고 외할머니는 닭들을 향해 연신 머리를 조아려가며 두 손바닥을 싹싹 비비기 시작했다.
"달기님들이나 밤똥 누지 어디 사람이 밤똥 눈답디어?"
무슨 소린지 알아들었다는 듯이 닭들이 꼬꼬거렸다.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어둠 속으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외할머니가 열심히 치성을 드리는 동안 나는 마개를 막듯이 손바닥으로 똥구멍을 틀어막고는 다리를 쉴 새 없이 비비 꼬면서 겅중거렸다.
"가온뎃말 사는 쇤네 외손자 우리 김동만이가 요렇게 비나이다. 오늘 한 번만 더 누고 차후로 다시는 밤똥 누는 일이 없게 달기님이 살펴주사이다. 가온뎃말 김동만이 똥까장 달기님이 맡어서 다 싸주사이다."
이어서 외할머니는 외손자를 통하여 치성의 효험을 보여준닭들에게 깊이 감사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번에 치성 드린이후로 나는 사흘 동안 내리 밤똥을 눈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효험이란 게 언제나 사나흘 정도를 넘기는 법이 드물었다. 며칠만 지나고 나면 도로 마찬가지가 되곤 했던 것이다 - P220

"저 동근입니다. 형님!"
아내를 한 걸음 앞질러 낯선 청년이 마당으로 쑥 들어서면서이렇게 외쳤다. 나는 그 순간 말문이 꽉 막혀 자기가 김동근임을 자처하는 그 낯선 청년을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 그사이에 나는 그가 전혀 낯선 얼굴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전에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얼굴임을, 다시말해서 절반은 우리 당숙을 닮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 당숙모를닮은 듯한 생김생김임을 차차로 깨닫게 되었다.
"이게 얼마만이냐......"나는 뒤늦게 입을 열어 내 재종동생을 맞으면서 그 녀석이 무슨 일로 그처럼 서둘러 나를 찾아왔는지를 얼핏 깨달았다. 녀석은 이제 틀림없이 나한테 이렇게 물을 것이었다.
형님, 비가 그치고 나면 하늘은 어떤 빛깔이 되는지 아십니까? 그리고 그 하늘에 뭐가 뜨는지 아십니까?
(1978)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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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경험담도 공포를 일으키고 전염병을 부채질하는데,이는 사람들의 상상이 단순한 통계보다 파급력이 훨씬 더 크기때문이다. 인간에게는 특정 사례가 얼마나 예시적이거나 특별한지를 더 상세하게 알려줄 기본 정보는 무시하면서도 생생하고 특별한 사례에는 집중하는, 어쩌면 당연한 성향이 있다. 이를기저율 오류 base-rate fallacy라고 하며 숨겨진 진실을 평가하지 않고 하나의 사례에서 곧바로 결론으로 도약하려는 인간의 성향을 가리킨다. 경험담은 일방적으로 우리의 관심을 잡아끌면서 이 문제를 악화할 수 있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관찰은 불합리한 추론의 도약을 미묘하게 부추기기도 한다. 20~21세기에 걸쳐 암 발생률이 심각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며, 20세기 동안 대략 셋 중 하나는 어 - P90

떤 종류든 암이 발생했다. 더 최근 결과를 보면 이 비율은 심각하게 높아졌으며, 인구의 절반이 평생 한 번은 암에 걸린다. 이는매우 놀라운 결과로, 많은 사람이 희생양을 찾아 헤매며 유전자변형 식품부터 백신까지 온갖 것을 탓하기 쉽다. 과학 정보를 더많이 아는 사람조차 범인을 찾으려 들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은 더 나빠지지 않았다. 그저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을 뿐이다. 사실 지금보다 암 생존율이 높은 적이 없었고 진단법과 치료법이 향상되면서 생존율은 계속 높아지는 중이다.
암은 기본적으로 노화가 원인인 질병이며 암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단 하나, ‘나이‘다. 선조들을 괴롭힌 불결한 위생과 절망적인역병, 전염병이라는 장황한 위험을 대부분 회피한 인간은 이제장수한다. 암 발생률의 명백한 상승은 역설적이게도 사회 보건건강이 향상된 결과다. 그러나 암 발생률만 홀로 상승했다는 사실은 현실 상황과 대립하는 논리적 비약을 유도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주의점이 하나 있다. 만약 경험담을 믿을 수없다면 어떻게 자료를 모아야 할까? 수많은 일화는 자료가 아니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일화, 즉 경험담은 정확하게만 보고한다면 시스템을 통해 나올 만한 결과에 대한 통찰을 줄 수는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복권에 당첨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다만 일화가 우리에게 알려줄 수 없는것은 그 결과가 대표성이 있는지 혹은 보편성이 있는지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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