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이 겉으로 드러난 행동에 강조점이 있다면 ‘오만‘은 행동할 때의 심리적 태도에 초점이 있다. 곧 아집과 독선 등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상태나 그런 심리가 행동으로 표출된 것을 가리킨다. 오만한 사람은 남의 말을 잘듣지 않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며 지나친 자기 확신에 빠지곤 한다. 좀처럼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생각이 경직되어 외골수로 치닫기 일쑤다. 오만함에 대한 판단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일정 시간 관찰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교만‘은 오만보다도 더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거만하거나 오만하지 않아도 교만할 수 있고, 겉으로는 겸손해도 속으로는 교만할 수 있다. 거만이나 오만은 외부로 드러난 행동으로 판단이 가능하지만, 교만은 내면을 들여다보아야만 판단이 가능하다. 사람은 자기의 부족함을 미처깨닫지 못할 때 교만해지기 쉽다. 절대자의 시선으로 보면 나약하고 결함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인간은 자신의 부족함을 겸허하게 인정할 줄 알아야 교만을 벗을 수 있다.  - P49

‘겸손‘은 남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낮추거나 다른 사람을 높이는 태도, 자기를 내세우기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 자세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사업에큰 성공을 거둔 기업인이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직원들이 합심해서 노력을 다한 결과예요."라고 말한다면 그는 겸손한 태도나 자세를 가진 사람이다.
‘겸허‘는 자신이 늘 옳을 수는 없음을, 또는 자신에게도 잘못이나 부족함이 있음을 성찰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향해 뼈아픈 비판을 했을 때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줄 안다면 그는 겸허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겸손과 겸허는 자기 낮춤의 태도가 있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나 의미 초점이 다르다. 겸손이 대인 관계에서의 태도에 초점이 있는 반면, 겸허는 내면적 자기 성찰의 태도에 초점이 있다.
한편 ‘겸양‘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낮추거나, 자기뜻을 굽히고 남에게 어떤 일을 양보하는 것을 가리킨다. 겸양에는 겸손과 의미가 겹치는 부분도 있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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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자동차에 사용되는 기술에 대해서 알려면 우선 감지 기술 부터 알아야 한다. 이 감지 기술은 그 자체에 이미 여러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적용되어 있다. ‘라이더 (lidar)‘는 레이저 광선을 주변 사물에 발사한 뒤 반사되는 것을 받아 정보로 처리하는 기술인데 그 과정은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이루어진다. 라이더의 부족한 면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파를 사용하는 레이더로 보완할 수 있는데, 성능이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이 레이더는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에 더 믿을 수 있는 장치다. 사방 360도를 비춰주는 영상 촬영 장치는 계속해서 주변을 디지털 영상으로 저장하며 고속 주행 시 그것을 컴퓨터로 분석한다. 또한 초음파와 함께 열화상을 확인하는 적외선 기술, 그리고 위치 확인과 항법 장치에 사용되는 GPS 기술도 있다. 여기에 차에 미리 설치된, 센티미터 단위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3차원 지도까지 더해지면 각 기술들을 더욱 잘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기술들을 어떻게 하나로 합쳐 최적화할 것인지, 혹은 그에 따른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일된 의견은 아직까지 없으며 누가 책임지고 표준화된 모든 요소들을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 또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 P495

혹시 수만 대에 달하는 자동차의 소고트웨어에 불법으로 접속해 대혼란을 일으키려는 집단은 없을까??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이버 보안(cybersecurity)‘에 대한 확실한 강조와 더불어 이런 불법적인 접속이 일어날 때 작동할 이른바 ‘단계적 저하(graceful degradation)‘의 개념도 조용히 실험되고 있다. 단계적 저하란 차가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만 남겨 운전자가 차를 운전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다. 물론 이는 자율주행 시대가 되더라도 사람들은 운전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고 당연히 운전면허도 취득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차 안에 운전대도 없고 가속이나 제동을 위한 페달도 없으며 그저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컴퓨터만 있다면 위급한 순간에 어떻게 차를 다시 운전할 수 있을까?
또 보험 문제는 어떨까? 지금은 운전자들이 각자 알아서 보험에 들고 있지만 운전자 없는 차가 사고를 낸다면 이건 생산 쪽의 책임이며 자동차 제조 업체나 소프트웨어 공급업체가 책임을 질 뿐 차의 소유주와는 아무 상관없는 문제일까? 그런데 자동차가 주행 중 승객에 대해 수집하는 모든 자료들, 즉 취미나 성향, 그리고 자주 가는 목적지 같은 자료들은 누가 보관하게 되는 걸까? 아니, 소유 문제를 떠나 그런 자료를 마음대로 열람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 목적은?
- P498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을 위한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그렇지만 운전자 없는 자동차와 함께 짝을 이루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이동 수단의 세상을 열어줄 또 한 가지의 핵심 요소가 있다. 바로 우리가 지금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어디에서든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서 차를 불러들일 수 있는, 다시 말해 자동자를 호출하고 공유하는 기술이다.
- P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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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프랭크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남편은 마치 내가 그를 잘 알고 있다는 듯 틈만 나면 프랭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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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모호한 ‘감‘으로 익힌 한국어에서
단단한 ‘앎‘에 기반한 한국어로

우리는 누구나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능력 속에는 비슷한 두세 단어를 구별해 쓰는능력도 포함되지요. 가령 ‘간섭‘과 ‘참견‘이 어떻게 다른지는 설명하지 못해도 내정 뒤에는 ‘간섭‘이 와야 하고 지나친‘ 뒤에는 ‘간섭‘과 ‘참견‘ 모두 올 수 있다는 것을 감으로압니다. 강연‘과 ‘강의‘는 얼핏 같거나 비슷한 말 같지만 강연 장소는 자연스럽게 강연장‘, 강의 장소는 당연히 강의실‘이라 부르지요. 한국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이런 비슷한 단어들을 문맥에 따라 적절히 선택해 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 P9

가) 값어치가 가치가 꽤 나가는 귀금속.
나) 사람 목숨의 값어치는 가치는 얼마인가?
값어치는 ‘값+어치‘의 조어 구성에서 보듯, ‘값‘의 의미가 두드러진다. 그런 점에서 ‘천만 원의 값어치가 나가는 귀금속‘은 자연스럽지만 ‘천만 원의 가치가 나가는 귀금속‘은 부자연스럽다. 마찬가지로 ‘사람 목숨의 값어치‘를 ‘사람 목숨의 가치‘로 바꾸어 말하기 어렵다. - P27

아이가 어른들 대화에 불쑥 끼어들 경우, 대화를 나누던 어른이 발끈해서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웬 간섭이야."라기보다 "원 참견이야."다. 그런가 하면 부모의 훈육을 두고 간섭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참견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차이는 행위의 영향력 유무에서 온다. 간섭은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상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을 뜻하고, 참견은 별다른 영향력 없이 공연히 상대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뜻한다. 전자는 제 주장을 관철하려는 의지가 강한 반면, 후자는 그런 의지가 약하다. 그래서 참견을 물리치는 것이 더 어렵고 부담스럽다. - P30

 ‘감정이 풍부하다‘는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으며 감정을 숨김없이 잘 드러낸다는 뜻이고, ‘감성이 풍부하다‘는 주위 사물을 섬세하게 느끼고잘 표현할 줄 안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감정이 풍부할 수도 있고, 감성이 풍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적 감성‘은 성립할 수 있어도 예술적 감정은 성립될 수 없다. 어떤 자극에 대한 반응이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감정이라면, 창조적으로 발휘되거나 섬세한 정신으로 발현되는 것은 감성이다. ‘시인의 감성‘ 으로 한 송이 꽃에서 우주의 비밀을 읽을 수 있지만, ‘시인의 감정‘으로는 그 같은 창조적 상상력을 실현할 수 없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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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인간을 초월해, 자기로서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그 어떤 것을 지향하고 있던 사람들은 결국엔 어떤 대답도 얻지 못했다. 타루는 그가 말하던 소위 마음의 평화라는 어려운것에 도달한 듯싶었지만, 그러나 그는 그것을 죽음 속에서, 이미 그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지고 말았을 때에 가서야 겨우 발견했던 것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 즉 집집의 문턱에서 기울어 가는 햇볕을 받으며, 서로를 힘껏 껴안은 채 정신없이 마주 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바라던 바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기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리유는 그랑과 코타르가 사는 거리로 접어들면서, 적어도 가끔씩은 기쁨이라는 게 찾아와서 인간만으로, 인간의 가난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사랑만으로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보람을 주는 것은 정당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 P391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회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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