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모호한 ‘감‘으로 익힌 한국어에서
단단한 ‘앎‘에 기반한 한국어로

우리는 누구나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능력 속에는 비슷한 두세 단어를 구별해 쓰는능력도 포함되지요. 가령 ‘간섭‘과 ‘참견‘이 어떻게 다른지는 설명하지 못해도 내정 뒤에는 ‘간섭‘이 와야 하고 지나친‘ 뒤에는 ‘간섭‘과 ‘참견‘ 모두 올 수 있다는 것을 감으로압니다. 강연‘과 ‘강의‘는 얼핏 같거나 비슷한 말 같지만 강연 장소는 자연스럽게 강연장‘, 강의 장소는 당연히 강의실‘이라 부르지요. 한국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이런 비슷한 단어들을 문맥에 따라 적절히 선택해 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 P9

가) 값어치가 가치가 꽤 나가는 귀금속.
나) 사람 목숨의 값어치는 가치는 얼마인가?
값어치는 ‘값+어치‘의 조어 구성에서 보듯, ‘값‘의 의미가 두드러진다. 그런 점에서 ‘천만 원의 값어치가 나가는 귀금속‘은 자연스럽지만 ‘천만 원의 가치가 나가는 귀금속‘은 부자연스럽다. 마찬가지로 ‘사람 목숨의 값어치‘를 ‘사람 목숨의 가치‘로 바꾸어 말하기 어렵다. - P27

아이가 어른들 대화에 불쑥 끼어들 경우, 대화를 나누던 어른이 발끈해서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웬 간섭이야."라기보다 "원 참견이야."다. 그런가 하면 부모의 훈육을 두고 간섭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참견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차이는 행위의 영향력 유무에서 온다. 간섭은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상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을 뜻하고, 참견은 별다른 영향력 없이 공연히 상대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뜻한다. 전자는 제 주장을 관철하려는 의지가 강한 반면, 후자는 그런 의지가 약하다. 그래서 참견을 물리치는 것이 더 어렵고 부담스럽다. - P30

 ‘감정이 풍부하다‘는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으며 감정을 숨김없이 잘 드러낸다는 뜻이고, ‘감성이 풍부하다‘는 주위 사물을 섬세하게 느끼고잘 표현할 줄 안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감정이 풍부할 수도 있고, 감성이 풍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적 감성‘은 성립할 수 있어도 예술적 감정은 성립될 수 없다. 어떤 자극에 대한 반응이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감정이라면, 창조적으로 발휘되거나 섬세한 정신으로 발현되는 것은 감성이다. ‘시인의 감성‘ 으로 한 송이 꽃에서 우주의 비밀을 읽을 수 있지만, ‘시인의 감정‘으로는 그 같은 창조적 상상력을 실현할 수 없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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