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볼까요? 어느 순간 스투파가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경배의 대상이 되면서 조각이 덧붙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조각을 보며 석가모니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게 됐죠. 그러는 동안 스투파는 불교의 핵심 내용을 전달하는 공간으로 발돋움합니다. 석가모니의 무덤을 순례하는 사람부터 후원으로 채워진 조각까지 스투파에는 경배의 마음이 모여 마침내 본격 예배공간, 즉 사원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스투파가 있었고요. 앞서 산치 유적은 그 대표적인 예시였습니 - P300

지금껏 본 두 조각에서 알 수 있듯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고 난 뒤 사람들 사이에서는 점차 석가모니를 향한 숭배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불상처럼 석가모니를 사람 조각으로 만들어 모시지는 못했어요. 대신 그자리에 석가모니의 상징인 스투파, 대좌,
보리수나무 등을 놓아서 마치 석가모니가 있는 양 예배하며 기도했지요.
- P317

한불교의 어떤 면이 사람들을 혹하게 했을지 감이 오죠? 이 시기 인도에는 비천한 신분이란 이유로 자신이 엘라파트라와 닮았다 여기는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오늘날에도 ‘왜 누구는 재벌 3세로 태어나고 누구는 이렇게 태어났지. 이번 생은 틀렸고 다시 태어나야 하나‘ 같은 한탄을 하는 것처럼요. 그 질문에 누구도 진지하게 응답하는 이가 없었던 사회에서 석가모니가 손을 내민 거예요. 이제부터라도 선업을 쌓으면 된다고, 그럼 언젠가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요. 이때 사람들도 엘라파트라가 느꼈을 감격을 경험했겠지요. - P352

현생
1. 흰 코끼리의 꿈에서 태어난 아이 마야부인이 꾸었던 석가모니태몽.
2. 한밤중의 왕궁탈출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한 석가모니.
3. 인도에서 제일가는 효자 돌아가신 어머니가 계신 도리천에 올라가 설법을 하고 돌아온 석가모니.
4. 인간보다 고된 뱀의 삶 자신의 삶을 저주하는 나가 왕 엘라파트라 이야기.
전생
5. 대원왕 본생 원숭이 왕의 헌신.
6. 보시태자 본생 모든 걸 내어준 베산타라 왕자,
7. 사신사호 본생 굶주린 호랑이를 위한 희생.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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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서에게 미래는 과거의 접근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그녀와 덴버가 살고 있다고 믿는 ‘더 나은 삶‘이란 단순히 과거의 삶이 아닌 삶이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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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계획이 무엇이었든, 또 어떻게 될 예정이었든, 하여간 폴 디가영영 망쳐놓았다. 식탁과 우렁찬 남자 목소리로 그 지역의 명물인 유령을 124번지에서 내쫓아버렸다. 덴버는 검둥이들이 자기들에게 보내는 경멸의 시선을 되레 자랑스럽게 여기는 법을 터득했다. 귀신의 출몰은 사악한 악마가 뭔가를 바라고 저지르는 짓이라는 그들의 억측을 비웃었다. 마법의 짜릿한 즐거움이나, 눈에 보이는 사물의 배후에있는 것들을 단지 짐작이 아니라 똑똑히 안다는 그 순수한 기쁨을 검둥이들은 아무도 몰랐다. 오빠들은 알았지만 두려워했고, 베이비 할머니는 알았지만 슬퍼했다. 아무도 유령 친구가 옆에 있다는 든든한 기분을 만끽하지 못했다. 세서조차 그걸 사랑하지 않았다.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마치 갑자기 변덕을 부리는 날씨를 받아들이듯.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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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쇼카 왕이 개인적인 신앙심만으로 불교 교리를 나라의 법으로 삼은 건 아닐 겁니다. ‘지금껏 단 한순간도 하나로 묶인 적 없던 사람들을 어떻게 마찰과 분쟁 없이 통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불교를답으로 내세웠던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꽤 유용했습니다.

혹시 불교를 믿는 척만 했던 건 아닐까요? 회개도 거짓말이고요.

순수한 신앙심과 정치적 목적 둘 다 있었을 거예요. 통일된 지 얼마안 된 나라를 하나로 묶을 정신적인 토대를 마침 자기가 믿던 종교에서 찾았다고 봐야겠지요. 아대륙이 작은 나라로 조각조각 나뉘어있었을 때와 같은 구시대의 종교로는 더 이상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려웠을 테고요.
아쇼카 왕처럼 강력한 왕이 나섰으니 인도 전역에 불교가 퍼지는건 시간문제였습니다. - P226

그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던지 인도 사람들은 조각을 하면 마연을 해서 내구성을 높였어요. 일찍부터 마연한 조각과 토기를 만들다가 마우리아 제국 때 와선 돌이 들어가는 데는 모조리 마연하죠. 궁전 기둥도 그랬고요. 이 역시 페르시아의 영향이라 보기도 합니다.
간혹 강의 중에 학생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요.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섬세한 동물 조각이 없는 건가요? 아쉬워 죽겠어요"라고요. 찾아보면 십이지신상 같은 게 있긴 한데 뭔가 어설퍼요. 무슨 동물인지구분하기도 어렵고 신이라기엔 묘하게 귀여운 구석이 있습니다. 어설퍼 보이는 까닭은 조각 실력보다 재료 탓이 커요. 우리나라 돌은 대부분 입자가 굉장히 거칠고 단단한 화강암이거든요. - P254

사원이 스투파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사원이라면 반드시 스투파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절에는 탑이 꼭 있어야한다는 거지요. 절이 처음 생겨나던 순간부터 탑은 절이라는 공간의핵심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탑을 절의 뜰을 장식하는 기념물쯤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요.
인도 산치에는 절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사원이 있어요. 아쇼카 왕이 세운 스투파 중 하나가 있던 지역인데 그 주변으로 스투파가 여러 기 지어지면서 사원이 형성된 곳이죠.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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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아파르트헤이트, 사실상의 노예제의 체계적 확산은 참사가 아닌 글로벌 자본주의의 구조적 필연성의 결과다.
그래서 어쩌면 난민은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것이 아닐까? 그러나 난민은 유럽에서도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지 않는가? 현지 노동자들은 난민의 값싼 노동력에 압박과 위협을 느낀 나머지 반이민적-대중영합적 극우파에게그들의 표를 몰아주지 않을까? 대다수 난민들에게 다가올 꿈은 정확히 이런 현실일 것이다.  - P64

요컨대 난민은 케이크를 얻고자 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서구 복지국가의 최상의 혜택을 누리기 원하지만 복지국가의근간을 이루는 이데올로기와 부분적으로 전혀 합치하지 않는 자신의 생활방식을 고집하고, 이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독일은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난민을 통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먼저 부숴야 할 금기가 있다-그들 중 과연 몇이나 실제로 통합되기를 원할까? 통합을 가로막는 장애가 서구의 인종차별주의만이 아니라면 어찌할것인가? 이제 우리는 난민을 부르주아 유럽을 침범한, ‘잃어버릴 것이라고는 족쇄밖에 없는‘ 프롤레타리아로 보는 진부한 태도를 떨쳐버려야 한다. 유럽이든 중동이든 계급분열은 존재한다. 핵심은 서로 다른 계급의 동력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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