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쇼카 왕이 개인적인 신앙심만으로 불교 교리를 나라의 법으로 삼은 건 아닐 겁니다. ‘지금껏 단 한순간도 하나로 묶인 적 없던 사람들을 어떻게 마찰과 분쟁 없이 통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불교를답으로 내세웠던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꽤 유용했습니다.
혹시 불교를 믿는 척만 했던 건 아닐까요? 회개도 거짓말이고요.
순수한 신앙심과 정치적 목적 둘 다 있었을 거예요. 통일된 지 얼마안 된 나라를 하나로 묶을 정신적인 토대를 마침 자기가 믿던 종교에서 찾았다고 봐야겠지요. 아대륙이 작은 나라로 조각조각 나뉘어있었을 때와 같은 구시대의 종교로는 더 이상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려웠을 테고요. 아쇼카 왕처럼 강력한 왕이 나섰으니 인도 전역에 불교가 퍼지는건 시간문제였습니다. - P226
그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던지 인도 사람들은 조각을 하면 마연을 해서 내구성을 높였어요. 일찍부터 마연한 조각과 토기를 만들다가 마우리아 제국 때 와선 돌이 들어가는 데는 모조리 마연하죠. 궁전 기둥도 그랬고요. 이 역시 페르시아의 영향이라 보기도 합니다. 간혹 강의 중에 학생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요.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섬세한 동물 조각이 없는 건가요? 아쉬워 죽겠어요"라고요. 찾아보면 십이지신상 같은 게 있긴 한데 뭔가 어설퍼요. 무슨 동물인지구분하기도 어렵고 신이라기엔 묘하게 귀여운 구석이 있습니다. 어설퍼 보이는 까닭은 조각 실력보다 재료 탓이 커요. 우리나라 돌은 대부분 입자가 굉장히 거칠고 단단한 화강암이거든요. - P254
사원이 스투파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사원이라면 반드시 스투파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절에는 탑이 꼭 있어야한다는 거지요. 절이 처음 생겨나던 순간부터 탑은 절이라는 공간의핵심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탑을 절의 뜰을 장식하는 기념물쯤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요. 인도 산치에는 절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사원이 있어요. 아쇼카 왕이 세운 스투파 중 하나가 있던 지역인데 그 주변으로 스투파가 여러 기 지어지면서 사원이 형성된 곳이죠.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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