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들은 덴버에게 미안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세서에게. 어쩌면 누군가를 경멸했던 자신들의 지난날이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로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나쁜 감정을 품고 있었으면서도, 그 사람에게 역경이 안장도 없는 말을 타고 찾아오면 재빨리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에 발을 걸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저 착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 P406

"세서." 그가 말한다. "당신과 나, 우리에겐 어느 누구보다 많은 어제가 있어. 이젠 무엇이 됐든 내일이 필요해."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손을 잡는다.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얼굴을어루만진다. "당신이 당신의 보배야, 세서 바로 당신이." 그의 믿음직한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을 꼭 잡는다.
"나? 내가?" - P445

흔들어서 달랠 수 있는 외로움이 있다. 팔짱을 끼고 무릎을 끌어당겨 세운 채 몸을 흔들고, 계속 흔든다. 이런 동작은 배의 흔들림과는달리, 몸을 흔드는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가라앉혀준다. 그것은 내면의 문제다. 피부처럼 팽팽하게 감싸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배회하는 외로움도 있다. 몸을 흔들어도 진정시킬 수 없다. 그것은 살아 있어서,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메마르고 확산되는 그것은 자기 자신의 발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 P446

이것은 전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124번지 뒤로 흐르는 시내 근처에는 그녀의 발자국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 발자국은 아주 친숙하다. 아이든 어른이든 발을 대어보면, 꼭 맞을 것이다. 발을 빼면, 마치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것처럼 발자국은 다시 사라진다.
곧 모든 흔적이 사라지고, 발자국뿐 아니라 물과 그 물 아래 있는것 전부가 잊힌다. 남는 건 날씨뿐이다. 기억에서 지워지고 행방이 묘연한 이들의 숨결이 아니라 처마를 스치는 바람, 혹은 너무 빨리 녹는봄의 얼음이다. 그저 날씨뿐. 물론 키스를 바라는 아우성도 없다.

빌러비드 -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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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본성과 양육(nature and nurture)에 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오지 않았는가! 마음이 백지라고 믿는 사람이 아직도 존재한단 말인가? 아이를 한두 명 키워본 사람, 이성애적 관계를 경험해 본 사람, 아이들은 언어를 학습하는 반면에 애완 동물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에 주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간의 재능과 기질은 어느 정도 타고난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유전과 환경으로 단순화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모든 행동은 그 둘의 상호 작용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지 않았는가?" - P7

그럼에도 모든 사회는 그 나름의 인간 본성이론과 함께 유지되며,
우리의 주류 지식인 사회에도 하나의 명확한 이론이 존재한다. 그 이론은 공공연히 표명되거나 채택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거의 모든 신념과 정책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썼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편안하게 해 주는 확신의 구름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그 구름은 여름날의 파리 떼처럼 그를 따라 이동한다." 오늘날 지식인들의 경우 그 확신의 많은 부분이 심리학 그리고 사회적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나는 그 확신들을 ‘빈 서판‘이라 지칭하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은 어떤 고유한 구조와도 무관하며, 사회나 그 자신이 그 위에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새겨 넣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 P27

인간 본성에 대한 이 이론, 즉 인간 본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 모든 종교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이 포함되어 있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들이 각각의 종교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현대 지식 세계에서는 빈 서판이 세속 종교가되었다. 그것은 가치의 원천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그 이론이 무에서 생겨나는 복잡한 마음이라는 믿기 힘든 기적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회의론자들과 과학자들이 그 학설에 도전하면 어떤 신자들은 신앙의 위기에 빠지고 또 어떤 신자들은 이교도와 불신자들을 향해 격렬한 공격을 퍼붓는다. 그러나 많은 종교적 전통들이 결국에는 과학의 명백한 위협들(가령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의 혁명적 이론)을 참고 받아들였듯이, 우리의 가치관도 빈 서판의 종말을 이기고 꿋꿋이 살아남을 것이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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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태양 및 풍력 에너지 분야가 부쩍 발전했다. 신형 풍력발전기와 태양광 발전 시설은 낡은 석탄 화력 발전소에 맞설 경쟁력을 갖췄으며 전지 기술이 급속히 개량되면서 들쭉날쭉한 발전량을 상쇄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전기 수요를 태양 에너지로 충당하려면 바트나예퀴들 빙하와 맞먹는 약 1만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이 필요한데, 미국의 지붕 면적은 약 5000제곱킬로미터이고 주차장 면적은 약 6만 제곱킬로미터다.
이 경주에서는 승리해도 모두가 승리하고 패배해도 모두가 패배한다. 호주, 아랍 지역, 애리조나가 태양 에너지 도입을 앞당길수록 이 기술이 널리 쓰이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날가능성이 커진다. 아프리카 오지에서는 사람들이 100년에 걸친 통신 기술 발전을 생략한 채 곧장 스마트폰을 쓴다. 같은 일이 에너지 혁신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석탄과 석유를 생략하고 태양·풍력·지열 에너지로 직행해야 한다. 부자 나라가 기술을 확대하고 스스로 활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발전 방안이다. - P346

지금의 중대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삶의 토대가 2050년, 2060년, 2080년에도 무사하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처럼 긴급한 조치를 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코로나19위기에서 전 세계적 무대응이 엄청난 고통을 일으킨 것에서 교훈을 얻어 이를 지구 전체의 미래에 적용할 수 있을까? 99퍼센트의과학자들이 지금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의사와 간호사를 신뢰하듯 기후학자들을신뢰할 수 있을까? 전 세계가 멈춰버린 이번 사태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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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죽음이 없다. 동물원에서는 모든 동물이 살아 있다.
뱀이 토끼나 쥐를 삼킬 때 말고는 죽음이 보이지 않는다. 공원에서는 모든 것이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으며 농장에서도 사체나 해골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동물은 울타리나 우리 안에 가지런히 분류되고 심지어 깔끔하게 씻긴 채 들어있다. 상점은 고기로 가득하지만 죽음을 연상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동물의 고기인지 알기 힘든 경우도 많다. - P284

빙하가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자리는 아직도 아름다움이 지배한다. 세상이 변한다고 해서, 우리가 많아지거나 적어진다고 해서 세상이 반드시 추해질 이유는 없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
지금부터 상황이 나빠지더라도 결국은 만사가 잘 풀릴 것만 같다.
머뭇거리며 이 방향으로 마음을 돌려 허무주의와, 무심함과 잠깐 희롱한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생각으로 최면을 걸어본다. 세이렌의 노래처럼 나를 유혹하는 생각들. 내려놓는 것은 솔깃한 일이다. 우주의 크기는 수십억 광년이며, 우리는 그 수십억에 비하면 작은 불똥 하나에 불과하다. 사실 우리는 지구의 역사에 덮인 한 꺼풀 재의 층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구원받지 않는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지나간다.
자신 위로 무너져내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의 삶은 작디작은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하찮은 유익이다.
그러고는 마침내 끝이 찾아온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던것처럼.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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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의 ‘신자 공동체‘인 움마Umma의 중심에도 가부장적 계보가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런 특징을 보면 두 가지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이슬람교에서 종교와 정치는 중첩된다.(공동체는 곧바로 신의 말씀에 근거해서 설립되어야한다. 다른 매개체는 없다.) 둘째, 가부장적 계보가 없기 때문에 이슬람교는 계보가 없는 "진공상태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며, 이 공동체의 기초는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혁명적 우애다. 이것이 이슬람교의 "가장 좋은 장점"이다. 그래서 젊은이가 가족이 제공하는 사회 안전망에서 쫓겨났다고 느낄 때그에게 이슬람교가 통한다. 이슬람교에는 "고아 같은 특성이있기 때문에 종교 자체가 제도로 변하는 경향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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