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와 죽음의 상징

16~17세기 네덜란드와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사냥, 도축당한 동물, 두개골, 썩은 과일, 거품, 꽃, 모래시계 등을 정물화로 많이 그렸다. 이런 정물화를 바니타스 정물화라 부르는데, 바니타스는 라틴어로 허무, 덧없음을 뜻한다. 성경 <전도서> 1장 2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구절에서 기원했으며, 전통적인 기독교사상에서 세상의 부와 명예가 허무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정물화로 표현한 것이다.
유럽의 역사에는 흑사병, 기근, 전쟁 등으로 죽음이 늘 도처에있었다. 이 시기 사람들은 인간이 욕망하는 현실적 가치는 부질없으며, 인생에서 죽음은 언제나 멀지 않은 곳에 있고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를 그림으로 그려 언제나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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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 직관의 비극적 단점을 치료할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교육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교육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동시에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직관적 도구와는 거리가 가장 먼 인지적 도구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이 장에서 목격했던 그 위험한 오류들은 고등학교나 대학교 교과과정에서 예를 들어 경제학, 진화생물학, 확률과 통계학의 중요성을 부각시킬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교과과정은 중세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았고 변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누구도 외국어나 영문학이나 삼각 함수나 고전을 공부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단자로 비치기를 원치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과목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하루는 24시간뿐이어서, 한 과목을 가르치겠다는 결정은 다른 과목을 가르치지 않겠다는 결정이 된다. 문제는 삼각 함수가 중요한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것이 과연 통계학보다 중요한가 아닌가이고, 교양인이 고전을 알아야하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교양인이 기초적인 경제학을 아는 것보다 고전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한가 아닌가이다. 복잡한 상황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직권에 도전하는 세계에서 이러한 비교는 피치 못할 현실이다. - P414

개념이란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비경합재 (nonrival goods)"라는 것이다. 가령 음식, 연료, 도구 같은 경합재는 물질과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사용하면 다른 사람은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개념은 정보로 구성되어 있어서 저렴한 비용으로 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빵 만드는 조리법, 건물의 청사진, 쌀 재배 기술, 의약 제조법, 유용한 과학 법칙, 컴퓨터 프로그램 등은 주는 사람이 어떤 손해도 보지 않고 줄 수 있다. 마술처럼 증식하는 비경합재 덕분에 최근에 우리는 지적 소유권과 관련된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고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물적 소유권과 관련된 법률 체제를 인터넷을 통해 쉽게 유통될 수 있는 정보의 소유권 문제가령 음반 레코딩에 적용하려 하고 있다. - P418

비경합재의 힘은 인간의 진화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인류학자존 투비와 어빈 드보어는 수백만 년 전 우리의 조상들이 이 세계의 생태계에서 "인지적 적소(適所)"를 점유했다고 주장한다. 사람과(科)의 동물인 호미니드는 환경의 인과적 관계를 모형화할 수 있는 정신적 연산 방법을 진화시킴으로써 마음의 눈으로 사건의 전개 과정을 그려 보고, 자기 주변의 돌, 식물, 동물을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낼 수 있었다. 인간의 실제적 지능은 언어 (기술 정보를 낮은 비용으로 공유할 수 있게한다.)와 사회적 인식 (사람들로 하여금 속지 않게 함으로써 협동하게 한다.)과 함께 진화했을 것이고, 그래서 말 그대로 개념의 힘으로 살아가는 종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 P419

유전자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DNA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수행하는 뻐꾸기 시계이거나 자동 피아노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제의 유전자는 우리에게 양심, 신중함, 의지를 위한 신경계를 부여하는 유전자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유전자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러한 기능들이 진화할 수 있었던 다양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해는 빈 서판과 기계 속의 유령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의 고귀한 정신적 기능들이 사회에 의해 조각되거나 태어나는 순간 영혼 속에 부여된다는 생각으로 출발한다면, 생물학자들이 유전적 영향을 언급할 때 마음에 떠오르는 첫 번째 대안은 꼭두각시나 전차 궤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학습, 이성, 선택과 같은 고도의 기능들이 뇌가 계획적으로 조직해 낸 산물이라면 그 조직화를 돕는 유전자가 있어야하고, 그래서 어떻게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그 유전자들이 선택되었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 P427

 영화 「개미」에서 우디 앨런 목소리의 개미는 자신의 정신을 분석하는 의사에게 다음과같이 불평한다.

이 거대한 초유기체의 봉사정신을 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노력은 하지만 아무리 해도 이해가 안 돼요. 그러니까 말이죠...... 저는 집단을 위해 모든 일을 해야 하는데 ...... 저를 위해서는 무엇을 하지요?

대사의 유머는 자신의 후손보다는 일개미 서로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 유전적 체계의 산물인 개미의 심리와, "나를 위해 무엇을 하는가?"를 묻게 만드는 인간 심리의 불일치에서 발생한다.  - P428

혈연이 아닌 사람들이 가족처럼 공유하기를 원할 때에는 공통의 살과 피, 공통의 조상, 영토와의 신비한 결속(모국, 선조의 땅, 조국 등이 효과적이다.)을 암시하거나 주장하는 신화를 창조한다. 그들은 성찬, 산 제물, 반복적인 의식을 통해 신화를 보강함으로써, 자아를 집단 속으로 흡수하고 그들이 개인들의 연합체가 아니라 단일한 유기체라는 인상을 창조한다. 그들의 종교에서는 소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영혼을 비롯한 정신적 결합재를 이용함으로써, 피스크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과 맺을 수 있는 것보다 더 강렬하거나 순수한 공동 소유 관계를 형성할 수있다고 암시한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결합의 어두운 측면에는 집단사고, 종파주의, 민족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신화, 즉 외부인은 집단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오염 물질이라는 사고 방식이 놓여 있다. - 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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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
<뱀을 부리는 주술사>

화가 루소는 늘 일요일에 그림을 그렸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일찍 취업했고 군대 복무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안을 책임지기 위해 말단 세관원으로 일한 그는 화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쉬는날이면 루브르 박물관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그림 실력을쌓았다. 그래서 그는 일하지 않는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린다고 ‘일요화가‘ 또는 ‘세관원 화가‘라고 불렸다. 실제로 더 많은 이가 ‘화가 루소‘보다 ‘세관원 화가 루소‘라고 불렀다. - P15

세상이 바뀌자 종교 미술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기존 가톨릭교회의 화려한 종교 미술은 사치와 부패의 온상으로 여겨지며 자리를 잃는다. 교회라는 큰 구매자를 잃고 어려움에 처한 화가들은 고심 끝에 일반 시민의 집 안을 꾸밀 수 있는 벽걸이형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잇는다. 다행히도 바뀐 세상은 화가들에게도 기회를 마련해주었고 벽걸이형 그림은 다른 유럽에서 볼 수 없던 네덜란드만의 빛나는 회화사를 만들어낸다.
부를 쌓은 네덜란드인들은 투자할 곳을 찾기 시작했고 미술 시장이 그들의 눈에 들었다. 부자들은 과거의 귀족이나 왕족처럼 그림으로 집 안을 꾸미고 싶어 했고 그로 인해 벽걸이형 그림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가의 그림을 중계하는 화상이 등장하고 미술시장에 투자하는 이들도 생겨난다. 과거 미술 시장의 가장 큰 소비자가 교회였다면 네덜란드에서는 부르주아와 전 유럽인으로 확대된것이다. 또 종교와 역사같이 어려운 주제를 담은 그림에서 쉽고 아담하고 예쁜 정물화, 초상화, 풍속화로 경향이 바뀐다. 17세기 네덜란드의 경제 발전이 없었다면 정물화는 여전히 종교화나 역사화의 배경으로 머물며 더 오래 자신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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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교육은 주로 빈 서판을 기초로 한다. 아이들이 텅 빈 채학교에 오면 그들의 마음에 지식이 침전되고 그 지식은 후에 다양한 시험을 통해 재생산된다. (전통적인 교육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예금과대출 모델이라 부른다.) 빈 서판은 또한 초기의 몇 학년도가 평생의 사회적 가치가 형성되는 기회 지대라는 이론을 강조한다. 오늘날 수많은 학교들이 그 초기 학년도를 이용해 환경, 성, 성적 관심, 인종적 다양성에대해 취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주입시킨다.
진보적인 교육은 대부분 고상한 야만인에 기초한다. A. S. 닐은 유명한 저서 『서머힐』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선천적으로 현명하고 현실적이다. 어른의 가르침 없이 혼자 내버려두면 발달할 수 있는 데까지 발달한다." 닐을 비롯해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진보적 이론가들은 학교 교육에서 시험, 학년, 교과과정은 물론이고 심지어 책까지 제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학교도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그 운동은 교육 현실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완전 언어 (Whole Language)라는 이름의 독서 교육 방법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떤 철자가 어떤 소리와 어울리는가를 가르치는 대신 풍부한 책으로 둘러싸인 환경을 제공해 독서기술이 자발적으로 발달하기를 기대한다." 구성주의라고 알려진 수학교육 철학에서는 아이들에게 구구단을 외우게 하는 대신 집단적으로 문제를 풀게 함으로써 수학적 진리를 스스로 재발견하게 한다. 두 방법 모두 학생들의 지식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에는 실패를 면치 못하지만, 그 옹호자들은 표준화된 시험 방법을 경멸하는 경향을 보인다. - P392

교육은 빈 서판에 무언가를 쓰는 것도, 아이들의 고상함이 활짝 피어나게 하는 것도아니다. 교육은 인간의 마음에 선천적으로 부족한 능력들을 보충하려는 과학 기술에 가깝다. 아이들은 걷기, 말하기, 사물 인식, 친구들의 개성을 기억하기 등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가지 않는다. 물론 그런 과제들은 읽기, 더하기, 연도 외우기 등보다 훨씬 어렵다. 그리고 글자 익히기, 셈, 과학 등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간다. 종 보편적으로 진화할 수 없을만큼의 최근 시기에 발명된 지식과 기술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결코 빈 수용체나 보편적 학습자가 아니라 특정한 사고와 학습의 도구 상자를 갖추고 태어난 존재이며, 설계 능력에서 벗어난 문제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그 도구들을 영리하게 보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들의 마음에 새로운 사실과 기술을 주입해야 할 뿐 아니라, 낡은 것들을 수정하고 억제해야 한다.  - P393

사실 복제 인간은 다른 시대에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일 뿐이다. 아인슈타인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강시나 좀비가 아니었을 것이고, 아인슈타인과 똑같은 의식의 흐름을 보여 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자신의 장기를 포기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아인슈타인과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지능은 부분적으로만 유전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세포로 복제 인간을 만들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복제에대한 기괴한 오해는 사람의 몸이 영혼으로 채워져 있다는 완고한 믿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강시 군대, 블랭크, 장기 농장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복제가 영혼 없는 몸을 찍어내는 것이라 상상한다. 히틀러가 부활하거나 사람들이 파우스트처럼 영원한 생명에 집착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복제가 영혼이 딸린 몸을 찍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식을 잃은 부모들 중에는 마치 죽은 자식을 되살릴 수 있을 것처럼 복제를 갈망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 또한 그런 생각이 기초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사실 죽은 자식을 복제한다고 해도 복제된 동생은 죽은형과는 다른 세계에서 성장할 뿐 아니라 다른 뇌 세포를 가지고 다른 감각 경험의 선로를 밟을 것이다. - P399

이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그것은 근본적인 모순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모순은 개인이나 영혼에 대한 모 아니면 도 식의 개념이 수반된 우리의 직관 심리와 인간의 뇌는 서서히 진화했고 서서히 발달하며 서서히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잔인한 생물학적 사실 사이에서 빚어진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낙태, 안락사, 동물의 권리 같은 도덕적 난제들이 명확한 그리고 직관적으로 만족스러운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정책도 만족스럽지 못하다거나 그 문제가 전적으로 개인적 취향, 정치 권력, 또는 종교적 교의에 맡겨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생명윤리학자 로널드 그린이 지적했듯이 그것은 다만 우리가 그 문제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연적인 경계를 발견하는 문제에서, 각 정책의 딜레마를 고려해 선과 악을 가장 훌륭하게 절충하는 경계를 선택하는 문제로 이동해야한다. 각각의 경우에 현실적으로 실행할 수 있고, 행복을 극대화할 수있고, 현재와 미래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현재의 많은 정책들이 이미 이런 식의 화해와 타협을 거친 것들이다. 동물에 대한 연구에는 허용과 규제가 교차하고, 말기 태아는 개인으로서 완전한 법적 권리를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이 위협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낙태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린은 경계를 발견하는 문제에서 경계를 선택하는 문제로의 이동에야말로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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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면 많은 축제가, 나아가 인구 유출을 겪고 있는 지자체들의 모든 사업이 결국 이런 패턴 아닌가 싶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와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대개는 하는 쪽을 택하는.  - P173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과 ‘동물을 오락거리로 다루며 갖고 놀면서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은 다른문제라는 데에 많은 사람들이 합의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돼지 번지점프 행사에서는. - P223

"동물을 아끼는 사람이 인간도 아낀다."라는 말은 믿지않지만(히틀러만 봐도 그렇다.)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인간에게도 잔인하다."라는 칸트의 말은 믿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요!"라는 말로 맨손 잡기 같은 체험을 요약하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인간의 생명 vs. 동물의 생명‘이라는 화두까지는 어림도 없고, ‘인간의 재미 vs 동물의 생명‘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인간의 재미‘를 선택하는 그 해맑은 가학성이 별생각 없이 돼지를 번지점프대에 세우기도 하는 것이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번지점프당하는 돼지를 보는 것도 특별한 ‘체험‘이고 즐거운 유희였을 것이다. - P225

닭, 소, 말, 양, 돼지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행복하게 사육되지 못하는 것은 개선해야 할 문제이지 다른 생물을 똑같이 학대할 수 있는 근거가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세상의 모든 동물 학대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비겁한 논리다. 르포 작가한승태가 쓴 『고기로 태어나서』의 한 대목을 빌리자면 "우리가 이런저런 윤리나 논리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모두에게공평하게 잔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야기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니까. 먹거리로서의 살생을 포기할 수 없다면 적어도 오락거리로서의 살생과 학대부터 없애 나가야 한다.  - P231

벌교읍 전체가 ‘태백산맥 민속촌‘ 같기도 하다. 읍민들이 조정래 작가를 마주치면 "선생님 덕에 저희가 먹고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한다는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든다. 한 소설가가 소설의 배경으로 벌교를 선택하는 순간 문학의 운명, 벌교의 운명, 꼬막의 운명,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바뀌었다. 물론 벌교가 가진 역사적 자원, 즉 동학농민운동부터 항일운동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저항의 역사(정확히는 벌교가 속했던 낙안군의 역사다. 낙안군은 1908년 일제의 입김에 의해 찢겨 서쪽은 보성에, 동쪽은 순천에 편입되었다.)가 작가로 하여금 그러한 선택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태백산맥』이 가진 문학적 자원이 거꾸로 벌교의 경제를 받쳐주고 자존심을 지켜 주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당대와 후대 사람들의 의식과 삶에 큰 영향을 끼쳤던 문학이 하나의 ‘작은 취향‘이 된 이 시대에 평범한 일상의 공간 속에서 문학이 힘을 발휘해 사람들을 돕고 또 사람들은 그에 감사해하는 이 그림은 우리에게 조금은 뭉클한 기분을 들게 했다. - P258

이전의 여행들이 주로 그 지역의 명소나 음식, 풍광으로 기억에 남았다면 축제를 통해 방문했던 지역들은 유독 사람들로 기억에 남았다. 지역의 이름이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떠오르는 건 축제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가까이에서 한꺼번에 만나지 못했을 주민들의 얼굴이었고, 원고를 쓰고 술을 마실때마다 우리의 화제에 오르는 건 글에 미처 담지 못한 그들과의 이야기였으니까. 이 책에 등장하는 곳들을 모두 다시 가 보고 싶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축제장 안팎에서 마주치고 스쳐 갔던 모든 이들의 안녕이 궁금하고, 그들의 삶의 공간으로서 도시의 안부가 궁금하다. 앞으로 어떻게 변해 갈지도.
한편으로는 아직 가보지 못한 지역이 많다는 사실에도 무척 설렌다. 독특한 자연으로, 장소에 서린 역사로, 역사에서흘러나온 문화로, 주변 지역과 얽힌 이야기로, 무엇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만들어진 지역 저마다의 색깔과 무늬를 따라가는 일을 어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 축제여도,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자, 또 어디까지 가 볼 수 있을까.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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