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루소,
<뱀을 부리는 주술사>
화가 루소는 늘 일요일에 그림을 그렸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일찍 취업했고 군대 복무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안을 책임지기 위해 말단 세관원으로 일한 그는 화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쉬는날이면 루브르 박물관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그림 실력을쌓았다. 그래서 그는 일하지 않는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린다고 ‘일요화가‘ 또는 ‘세관원 화가‘라고 불렸다. 실제로 더 많은 이가 ‘화가 루소‘보다 ‘세관원 화가 루소‘라고 불렀다. - P15
세상이 바뀌자 종교 미술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기존 가톨릭교회의 화려한 종교 미술은 사치와 부패의 온상으로 여겨지며 자리를 잃는다. 교회라는 큰 구매자를 잃고 어려움에 처한 화가들은 고심 끝에 일반 시민의 집 안을 꾸밀 수 있는 벽걸이형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잇는다. 다행히도 바뀐 세상은 화가들에게도 기회를 마련해주었고 벽걸이형 그림은 다른 유럽에서 볼 수 없던 네덜란드만의 빛나는 회화사를 만들어낸다.
부를 쌓은 네덜란드인들은 투자할 곳을 찾기 시작했고 미술 시장이 그들의 눈에 들었다. 부자들은 과거의 귀족이나 왕족처럼 그림으로 집 안을 꾸미고 싶어 했고 그로 인해 벽걸이형 그림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가의 그림을 중계하는 화상이 등장하고 미술시장에 투자하는 이들도 생겨난다. 과거 미술 시장의 가장 큰 소비자가 교회였다면 네덜란드에서는 부르주아와 전 유럽인으로 확대된것이다. 또 종교와 역사같이 어려운 주제를 담은 그림에서 쉽고 아담하고 예쁜 정물화, 초상화, 풍속화로 경향이 바뀐다. 17세기 네덜란드의 경제 발전이 없었다면 정물화는 여전히 종교화나 역사화의 배경으로 머물며 더 오래 자신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 P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