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옳은 것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압도적으로 성공하는 법

나는 거의 60년 동안 사업가로 살아왔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누군가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라거나 변호사라고(나는 이 직업을 존경해 본 적이없다) 인정하는 것만큼이나 내게 어려운 일이다. 기업은 자연의 적이되어, 토착 문화를 파괴하고,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착취한 것을 부유한사람들에게 쥐여 주고, 공장폐수로 지구를 오염시킨 일들을 책임져야 할 주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기업은 식량을 생산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인구를 제한하고, 사람들을 고용하고, 우리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킬수 있다. 이성과 영혼을 저버리지 않고도 수익을 내면서 이런 좋은 일들을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 P25

 우리 마음속의 최우선은 항상 품질이었다. 적절치 못한 도구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고 우리 자신이 우리 제품의 최대 고객이었으므로 죽음에 이르는 그사람이 우리가 될 수 있었다. 디자인에 있어서 우리의 지침은 프랑스의 비행사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사상에 바탕을 두었다.

항공기뿐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모든 것이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하는 모든산업 활동, 모든 계산과 추정, 사람들이 초안을 만들고 청사진을 그리는 데 보낸 모든 밤들은 하나의 원리로 수렴된다. ‘단순성‘이라는 궁극의 원칙으로 가구의 곡선이나 배의 용골이나 비행기의 동체를 다듬는다고 생각해 보자 장인정신을 담은 수 세대에 걸친 실험을 통해, 인간의 가슴이나 어깨의 곡선과 같은 궁극의 자연스러움을 드러내야 한다는 법칙이 존재하기라도하는 것처럼 그 일에 임해야 한다. 어떤 것이든 완벽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무엇 하나 걸치지 않은 적나라한 상태에 이를 때에 달성된다. - P53

선(禪)을 통해 나는 단순해지는 법을 배웠다. 단순해지는 것이 가장 풍성한 결과를 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암벽을 오르는 사람은 커다란 등반 장비들을 베이스에 남겨 두고, 오로지 자신의 기술과 바위의 특성에만 의존해서 암벽을 맨손으로 오를 수 있도록 기술을 완벽하게 연마했을 때에야 대가의 반열에 오른다.
나는 하루에 8시간에서 10시간 동안 강철 피톤을 벼리는 대장장이로서 선을 배웠다. 나는 과도한 움직임으로 에너지를 낭비하거나 손을 바꾸지 않고 움직였다. 피톤을 잡고, 두드리고, 다시 노에 넣어 온도를높이고, 또 다른 피톤을 집어 드는 과정이 궁도나 다도가 보여 주는 유려함이나 우아함을 가지도록 말이다. 긴 하루 일과가 끝나면 낡고 녹슨 기름통이 수십억 개의 작은 루비처럼 반짝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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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밖에도 박씨는 나를 생각하고 그 화집을 가지고 나온 거였다. 한산한 오전 시간에 겸연쩍은 미소를 띠고 나한테로 화집을 들고 왔다. 일제 때 선전에 입선한 작품을 모은 화집이었다. 그는 미리 특정의 페이지를 펴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 주면서 자기 그림이라고 했다. 농가 여자들이 마주 보고 절구질을 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특선이나 무감사 같은 특별한 그림은 아닌 듯했다. 꽤 크게나온 그림도 있었는데, 그의 것은 명함만한 크기로 흑백으로 나와 있었다. 그 밑에 들어 있는 작가 이름을 보고 처음으로 나는그가 박수근이라는 걸 알았다. 박씨라는 성 외에 이름을 더 알았다 뿐, 그전부터 박수근이라는 화가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진짜 화가가 우리 초상화에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는 사건이요 충격이었다. 우선 그동안 내가 너무 버르장머리없이 군 게 무안했다. 그는 그 화집을 내 책상 위에 놓고 갔다가 저녁에 퇴근할 때서나 가져간 것 외에 아무런 의사 표시도 하지않았다. 나 역시 왜 그걸 나에게 보여 줬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막연히 나의 신경질과 오만불손에 대한 그 나름의 항거. 최소한의 꿈틀거림이 아닐까, 정도로 추측했다.
너만 잘난 게 아냐, 여기 잘난 사람 또 있어. 라고 말해 주고싶은 게 아니었을까. 그 후 나는 다시는 지진아 지도하는 국민학교 여선생 같은 짓거리를 안 하게 됐다. 안 했다기보다는 못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 P304

그러나 사람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순하고 덤덤한 데 있었고, 그런 것은 나타나기보다는 숨어 있는 특색이었다. 초상화부 화가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가난했고 하고 다니는 꼴도 한물감으로 칠해 놓은 것처럼 궁상맞아 보였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의젓함이있었다. 다들 늘 돈, 돈, 돈, 했고 한 푼에 치를 떨었고, 자기 그림이 빠꾸당하면 불같이 화를 내느라 딴 그림까지 망쳐 놓기 일쑤였다. 박수근의 가난엔 그런 조바심이 없었다. 그의 그림이 빠꾸당하지 않게 하려고 온갖 아양을 다 떨고 있는 내 등 뒤로 와서 슬그머니 그림을 빼앗으면서, 또 그려 주면 될 걸 뭘 그렇게 애를 쓰느냐고 위로한 것도 그밖에 없었다. 그는 내가 몽상한 천재적인 예술가는 아니었다. 그가 만약 천재였다면 사는 일을 위해 예술을 희생하려 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예술보다 사는 일을 우선했다. 그가 가장 사랑한 것도 아마 예술이 아니라 사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는 일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재주로 열심히 작업을 했다. 그뿐이었다. - P307

막내를 생각해서 홀로 남은 어머니는 막내를 만나기는 했지만 늘 구박만 받았다. 구박이 아니라 애정 표현인지도 모르지만, 왜 아버지하고 형 따라가지 않고 나 같은 자식한테 뭘 바라고 남았냐고 모진 소리를 해도 노인은 노염도 안 타고 오히려 구수하게 받았다.
"바라긴, 우리 지섭이 대문 열어 주려고 남아 있었다. 어쩔래? 넌 어려서부터 딴 사람이 대문 열어 주면 재수 없다고 심통부리곤 했잖여."
"엄마, 난 엄마를 부양하고 책임질 능력이 없단 말야. 엄마가나한테 붙는 건 약속이 틀려. 난 막내잖아. 효도할 자신 없단 말야."
이렇듯 버릇없는 소리를 거침없이 지껄여도 노인은 탄하지않고, 재롱 보듯이 즐거운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신기했다.
"인석아, 살아 돌아와 대문 흔든 게 효도지 더 어떻게 효도를 하냐." - P322

해가 뉘엿뉘엿해질 무렵 실컷 방망이질하고 삶아 빨아 백설처럼 희게 된 홑이불 빨래를 이고 식구들이 돌아왔을 때는 나는 멀쩡해져 있었다. 빨래를 너는 엄마의 표정도 흰빛을 받아 개운하고 무심해 보였다.
엄마에게나 나에게나 온몸을 내던진 울음은 앞으로 부드럽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통과의례, 자신에게 가하는 무두질 같은 게아니었을까. 그러나 엄마하고 나하고 만날 수만 있었다면 둘 다 울지 않았을 것이다. 따로따로니까 서로 안 보니까 울 수 있는 울음이었다.
그날 엄마가 정릉으로 빨래를 간 건 참 잘한 일이었다. - P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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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죽어 있었다. 복중의 주검도 차가웠다.
그때가 몇 시인지 우리는 아무도 시계를 보지 않았고 왜 엄마 혼자서 임종을 지켰는지도 묻지 않았다. 엄마도 자다가 옆에서 끼쳐 오는 싸늘한 냉기 때문에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체온 외엔 오빠가 살아 있을 때하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눈 똑바로뜨고 지키고 앉았었다고 해도 아무도 그가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을 포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총 맞은 지 팔 개월 만이었고, ‘거기‘ 다녀온 지 닷새 만이었다. 그는 죽은 게 아니라 팔 개월 동안 서서히 사라져 간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그의 임종을 못 본 걸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의 너무도 긴 사라짐의 과정을 회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새삼스럽게 슬퍼할 것도 곡을 할 것도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우린 미리 상갓집에 잘 어울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의 시간관념도 없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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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음모 따위는 실체가 없었기에, 내무인민위원회 장교들은폴란드계 및 폴란드와 관련된 다른 소련인들, 폴란드 문화나 로마 가톨릭교를 박해해야 했다. 폴란드라는 민족적 특성을 억압하는 작전은 빠르게 확대되었는데, 아마도 처음부터 그럴 목적이었기 때문일것이다. 예조프의 편지는 민족주의 분자와 아직 정체가 확실하지 않은 ‘폴란드 군사 조직‘ 회원의 체포를 승인해주었다. 이러한 범주는 너무나 모호해서, 내무인민위원회 장교들은 폴란드계라면 누구에게나 이를 적용하거나 폴란드와 유착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 P173

폴란드 박멸 작전은 연이어 벌어진 다른 소수 민족 박해 작전의 모델이 되었다. 이러한 작전들의 대상은 스탈린주의가 만든 신조어로는 적국인 고국을 떠난 민족으로 그 고국과 실제 또는 허구의 관계를맺고 있는 집단이었다. - P187

이러한 살육 가운데 어떤 것도 전략적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 일본 지도부는 남부 진공 전략을 채택, 중국을 거쳐 태평양까지진출하기로 했다. 일본은 대공포 시대가 시작된 1937년 7월 중국을침략했고, 이후에는 계속 남쪽으로 이동했다. 따라서 부농 박멸 작전과 이러한 동아시아 민족 박해 작전의 근거는 모두 잘못된 셈이었다. 스탈린은 일본을 두려워했던 것 같고,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1930년대 일본의 국가 목표는 대단히 공격적이었으며, 문제가 되는 것은 남쪽과 북쪽 중 어디로 밀고 들어갈 것인가뿐이었다. 일본정부는 불안정한 데다 정책을 너무 빨리 바꾸곤 했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대량학살은 아직 시작되지 않고 있던 공격에서 소련을 전혀 보호하지 못했다.
스탈린은 폴란드계 자국민 대량학살에 아무런 비용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듯하다. 만약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려 한다면, 이로써 소련 내부의 내응을 받기 어려워질 것이다. 공격 의도가 없어도, 대량 살인과 추방이 소련에 해될 일은 없다. 이러한 추론에도 역시 소련국가는 자국민의 생명과 행복이 알 바 아니라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또한 내무인민위원회를 이용해 내부의 적을 (그리고 내무인민위원회 자체를) 처리한 덕분에, 소련은 이번에도 자신에게 닥친 실제위협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독일은 일본이나 폴란드의 지원 없이, 그리고 소비에트 압제에 저항하는 내부 세력의 도움을 받지 않고 공격을 감행했다. - P190

이 3차 혁명은 사실상 반혁명이었으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실패를 내포하고 있었다. 15년 남짓 동안 소련은 살아남은 시민들에게 많은 일을 해냈다. 예를 들어 대공포 시대가 정점에 달했을 때 국가 연금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혁명 원칙의 근간을 이루던 일부 본질적 가정은 폐기되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마르크스주의자의 주장은이제 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계급이 아닌 명목상의 개인적 정체성이나 문화적 연관성 때문에 유죄가 되었다. 정치는 더 이상 계급투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 재판에서 내려진 혐의처럼 소련으로 이주한 민족이 소련의 배신자가 되었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과거의 경제 체제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출신 민족에 따라 외국과 결탁했기 때문이다. - P195

바르샤바와 베를린이 유대인은 ‘문제‘라는 생각 그리고 이를 먼 외국 영토로의 이주로 해결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며, 독일이 폴란드인의 동부 연합 가입을 계속 권유하는 상황에서, 독일인들은 폴란드의 지원과 인프라를 이용해 동유럽 유대인을 이송한다는 합의를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폴란드와의 동맹도 없었고, 유대인에 대한 독일과 폴란드의 공통 계획도 성사되지 않았다. 이 점에 있어 피우수트스키의 후계자들은 피우수트스키의 노선을 따랐다. 나치 독일 및소련 모두와 불가침 조약을 맺되 동맹은 맺지 않음으로써 베를린과 모스크바에 동일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1939년 1월 26일, 바르샤바에서 폴란드인들은 독일 외무 장관인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의 제안을 마지막으로 거부했다. 5년 동안 시도했지만, 독일인들은 독일에 영토를 제공하고 독일의 위성 국가가 되어 소련 영토에 대한 침략전쟁을 벌이는 것이 폴란드에도 이익이 된다고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이것은 독일이 폴란드와 함께 전쟁을 벌이는 대신 폴란드를 상대로, 그리고 폴란드의 유대인을 상대로 전쟁을 해야 함을 의미했다. - P201

독일이 일본 대신 소련을 동맹으로 선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일본 정부는 예상치 못한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게 되었다. 일본 지도부는 이미 북쪽 대신 남쪽으로, 소비에트 시베리아 대신 중국과 태평양 쪽으로 확장한다는 데 동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모스크바와 베를린 간의 연합이 결성되면, 붉은 군대는 병력을 유럽이 아닌 아시아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일본은 최정예 부대를 단순한 자체 방어를 위해 북쪽 만주국에 배치해야 하고, 남쪽으로의 진격은 훨씬 더 어려워진다. 히틀러는 스탈린에게 동아시아에 대한 재량권을 주었고, 일본은 히틀러가 새 친구를 빨리 배신하기만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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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폴란드 연합의 소련 공격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독일-일본 연합의 소련 공격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스탈린은 독일-폴란드-일본의 소련포위라는 공상을 독일-소련 연합의 폴란드 포위와 그에 따른 일본 고립이라는 현실로 바꿔버렸다.  - P207

유대인은 고대에 세계 각지로 흩어진 뒤 현지 주민과 통혼을 반복하며 인종적 동일성은 거의 없어졌고, 유대교의 계율과 관습을 따르느냐가 정체성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나치독일은 부계와 모계 어느 한쪽에서라도 유대인 혈통이 발견되면 유대인이라 정의했고, 이에따라 자신을 한 번도 유대인이라 생각하지 않은 독일 국민 다수가 박해를 당했다. - P217

타넨베르크 작전 당시 하이드리히는 "적국 사회의 상층부"가 독일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하게 만들길 원했고, 이에 6만1000여 명의 폴란드인이 아인자츠그루펜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이는 히틀러의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조치였다. "그사회의 상층부가 사라진 국가만이 비로소 진짜 노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숨통 끊기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 사회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폴란드를 완벽하게 파괴하는 것"이었다. 아인자츠그루펜은 능력 있는 대다수의 폴란드인을 없앰으로써, 폴란드를 독일인종주의의 환상에 알맞은, 그리고 독일의 지배에 저항할 수 없는 기형으로 만들고 있었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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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대학에 들어간 지 일 년도 채 안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일년도 안 되는 동안에 그런 일들이 다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또 아무리 한동안 소식이 끊겼었다 해도 여고동창생에 대해 궁금한 게 얼마나 예뻐졌을까, 연애는 해 봤을까 따위가 아니라 죽었을까, 살았을까라는것은 환갑이나 지나고 나서야 할 짓이 아닌가. 나는 나를 스쳐간 세월의 부피와 경험의 부피가 맞지않아 용궁에서 대접받고 나온 어부와는 완전히 역으로 혼란스러워졌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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