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도 박씨는 나를 생각하고 그 화집을 가지고 나온 거였다. 한산한 오전 시간에 겸연쩍은 미소를 띠고 나한테로 화집을 들고 왔다. 일제 때 선전에 입선한 작품을 모은 화집이었다. 그는 미리 특정의 페이지를 펴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 주면서 자기 그림이라고 했다. 농가 여자들이 마주 보고 절구질을 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특선이나 무감사 같은 특별한 그림은 아닌 듯했다. 꽤 크게나온 그림도 있었는데, 그의 것은 명함만한 크기로 흑백으로 나와 있었다. 그 밑에 들어 있는 작가 이름을 보고 처음으로 나는그가 박수근이라는 걸 알았다. 박씨라는 성 외에 이름을 더 알았다 뿐, 그전부터 박수근이라는 화가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진짜 화가가 우리 초상화에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는 사건이요 충격이었다. 우선 그동안 내가 너무 버르장머리없이 군 게 무안했다. 그는 그 화집을 내 책상 위에 놓고 갔다가 저녁에 퇴근할 때서나 가져간 것 외에 아무런 의사 표시도 하지않았다. 나 역시 왜 그걸 나에게 보여 줬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막연히 나의 신경질과 오만불손에 대한 그 나름의 항거. 최소한의 꿈틀거림이 아닐까, 정도로 추측했다.
너만 잘난 게 아냐, 여기 잘난 사람 또 있어. 라고 말해 주고싶은 게 아니었을까. 그 후 나는 다시는 지진아 지도하는 국민학교 여선생 같은 짓거리를 안 하게 됐다. 안 했다기보다는 못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 P304

그러나 사람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순하고 덤덤한 데 있었고, 그런 것은 나타나기보다는 숨어 있는 특색이었다. 초상화부 화가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가난했고 하고 다니는 꼴도 한물감으로 칠해 놓은 것처럼 궁상맞아 보였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의젓함이있었다. 다들 늘 돈, 돈, 돈, 했고 한 푼에 치를 떨었고, 자기 그림이 빠꾸당하면 불같이 화를 내느라 딴 그림까지 망쳐 놓기 일쑤였다. 박수근의 가난엔 그런 조바심이 없었다. 그의 그림이 빠꾸당하지 않게 하려고 온갖 아양을 다 떨고 있는 내 등 뒤로 와서 슬그머니 그림을 빼앗으면서, 또 그려 주면 될 걸 뭘 그렇게 애를 쓰느냐고 위로한 것도 그밖에 없었다. 그는 내가 몽상한 천재적인 예술가는 아니었다. 그가 만약 천재였다면 사는 일을 위해 예술을 희생하려 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예술보다 사는 일을 우선했다. 그가 가장 사랑한 것도 아마 예술이 아니라 사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는 일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재주로 열심히 작업을 했다. 그뿐이었다. - P307

막내를 생각해서 홀로 남은 어머니는 막내를 만나기는 했지만 늘 구박만 받았다. 구박이 아니라 애정 표현인지도 모르지만, 왜 아버지하고 형 따라가지 않고 나 같은 자식한테 뭘 바라고 남았냐고 모진 소리를 해도 노인은 노염도 안 타고 오히려 구수하게 받았다.
"바라긴, 우리 지섭이 대문 열어 주려고 남아 있었다. 어쩔래? 넌 어려서부터 딴 사람이 대문 열어 주면 재수 없다고 심통부리곤 했잖여."
"엄마, 난 엄마를 부양하고 책임질 능력이 없단 말야. 엄마가나한테 붙는 건 약속이 틀려. 난 막내잖아. 효도할 자신 없단 말야."
이렇듯 버릇없는 소리를 거침없이 지껄여도 노인은 탄하지않고, 재롱 보듯이 즐거운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신기했다.
"인석아, 살아 돌아와 대문 흔든 게 효도지 더 어떻게 효도를 하냐." - P322

해가 뉘엿뉘엿해질 무렵 실컷 방망이질하고 삶아 빨아 백설처럼 희게 된 홑이불 빨래를 이고 식구들이 돌아왔을 때는 나는 멀쩡해져 있었다. 빨래를 너는 엄마의 표정도 흰빛을 받아 개운하고 무심해 보였다.
엄마에게나 나에게나 온몸을 내던진 울음은 앞으로 부드럽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통과의례, 자신에게 가하는 무두질 같은 게아니었을까. 그러나 엄마하고 나하고 만날 수만 있었다면 둘 다 울지 않았을 것이다. 따로따로니까 서로 안 보니까 울 수 있는 울음이었다.
그날 엄마가 정릉으로 빨래를 간 건 참 잘한 일이었다. - P3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