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음모 따위는 실체가 없었기에, 내무인민위원회 장교들은폴란드계 및 폴란드와 관련된 다른 소련인들, 폴란드 문화나 로마 가톨릭교를 박해해야 했다. 폴란드라는 민족적 특성을 억압하는 작전은 빠르게 확대되었는데, 아마도 처음부터 그럴 목적이었기 때문일것이다. 예조프의 편지는 민족주의 분자와 아직 정체가 확실하지 않은 ‘폴란드 군사 조직‘ 회원의 체포를 승인해주었다. 이러한 범주는 너무나 모호해서, 내무인민위원회 장교들은 폴란드계라면 누구에게나 이를 적용하거나 폴란드와 유착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 P173

폴란드 박멸 작전은 연이어 벌어진 다른 소수 민족 박해 작전의 모델이 되었다. 이러한 작전들의 대상은 스탈린주의가 만든 신조어로는 적국인 고국을 떠난 민족으로 그 고국과 실제 또는 허구의 관계를맺고 있는 집단이었다. - P187

이러한 살육 가운데 어떤 것도 전략적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 일본 지도부는 남부 진공 전략을 채택, 중국을 거쳐 태평양까지진출하기로 했다. 일본은 대공포 시대가 시작된 1937년 7월 중국을침략했고, 이후에는 계속 남쪽으로 이동했다. 따라서 부농 박멸 작전과 이러한 동아시아 민족 박해 작전의 근거는 모두 잘못된 셈이었다. 스탈린은 일본을 두려워했던 것 같고,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1930년대 일본의 국가 목표는 대단히 공격적이었으며, 문제가 되는 것은 남쪽과 북쪽 중 어디로 밀고 들어갈 것인가뿐이었다. 일본정부는 불안정한 데다 정책을 너무 빨리 바꾸곤 했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대량학살은 아직 시작되지 않고 있던 공격에서 소련을 전혀 보호하지 못했다.
스탈린은 폴란드계 자국민 대량학살에 아무런 비용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듯하다. 만약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려 한다면, 이로써 소련 내부의 내응을 받기 어려워질 것이다. 공격 의도가 없어도, 대량 살인과 추방이 소련에 해될 일은 없다. 이러한 추론에도 역시 소련국가는 자국민의 생명과 행복이 알 바 아니라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또한 내무인민위원회를 이용해 내부의 적을 (그리고 내무인민위원회 자체를) 처리한 덕분에, 소련은 이번에도 자신에게 닥친 실제위협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독일은 일본이나 폴란드의 지원 없이, 그리고 소비에트 압제에 저항하는 내부 세력의 도움을 받지 않고 공격을 감행했다. - P190

이 3차 혁명은 사실상 반혁명이었으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실패를 내포하고 있었다. 15년 남짓 동안 소련은 살아남은 시민들에게 많은 일을 해냈다. 예를 들어 대공포 시대가 정점에 달했을 때 국가 연금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혁명 원칙의 근간을 이루던 일부 본질적 가정은 폐기되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마르크스주의자의 주장은이제 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계급이 아닌 명목상의 개인적 정체성이나 문화적 연관성 때문에 유죄가 되었다. 정치는 더 이상 계급투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 재판에서 내려진 혐의처럼 소련으로 이주한 민족이 소련의 배신자가 되었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과거의 경제 체제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출신 민족에 따라 외국과 결탁했기 때문이다. - P195

바르샤바와 베를린이 유대인은 ‘문제‘라는 생각 그리고 이를 먼 외국 영토로의 이주로 해결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며, 독일이 폴란드인의 동부 연합 가입을 계속 권유하는 상황에서, 독일인들은 폴란드의 지원과 인프라를 이용해 동유럽 유대인을 이송한다는 합의를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폴란드와의 동맹도 없었고, 유대인에 대한 독일과 폴란드의 공통 계획도 성사되지 않았다. 이 점에 있어 피우수트스키의 후계자들은 피우수트스키의 노선을 따랐다. 나치 독일 및소련 모두와 불가침 조약을 맺되 동맹은 맺지 않음으로써 베를린과 모스크바에 동일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1939년 1월 26일, 바르샤바에서 폴란드인들은 독일 외무 장관인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의 제안을 마지막으로 거부했다. 5년 동안 시도했지만, 독일인들은 독일에 영토를 제공하고 독일의 위성 국가가 되어 소련 영토에 대한 침략전쟁을 벌이는 것이 폴란드에도 이익이 된다고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이것은 독일이 폴란드와 함께 전쟁을 벌이는 대신 폴란드를 상대로, 그리고 폴란드의 유대인을 상대로 전쟁을 해야 함을 의미했다. - P201

독일이 일본 대신 소련을 동맹으로 선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일본 정부는 예상치 못한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게 되었다. 일본 지도부는 이미 북쪽 대신 남쪽으로, 소비에트 시베리아 대신 중국과 태평양 쪽으로 확장한다는 데 동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모스크바와 베를린 간의 연합이 결성되면, 붉은 군대는 병력을 유럽이 아닌 아시아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일본은 최정예 부대를 단순한 자체 방어를 위해 북쪽 만주국에 배치해야 하고, 남쪽으로의 진격은 훨씬 더 어려워진다. 히틀러는 스탈린에게 동아시아에 대한 재량권을 주었고, 일본은 히틀러가 새 친구를 빨리 배신하기만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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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폴란드 연합의 소련 공격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독일-일본 연합의 소련 공격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스탈린은 독일-폴란드-일본의 소련포위라는 공상을 독일-소련 연합의 폴란드 포위와 그에 따른 일본 고립이라는 현실로 바꿔버렸다.  - P207

유대인은 고대에 세계 각지로 흩어진 뒤 현지 주민과 통혼을 반복하며 인종적 동일성은 거의 없어졌고, 유대교의 계율과 관습을 따르느냐가 정체성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나치독일은 부계와 모계 어느 한쪽에서라도 유대인 혈통이 발견되면 유대인이라 정의했고, 이에따라 자신을 한 번도 유대인이라 생각하지 않은 독일 국민 다수가 박해를 당했다. - P217

타넨베르크 작전 당시 하이드리히는 "적국 사회의 상층부"가 독일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하게 만들길 원했고, 이에 6만1000여 명의 폴란드인이 아인자츠그루펜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이는 히틀러의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조치였다. "그사회의 상층부가 사라진 국가만이 비로소 진짜 노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숨통 끊기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 사회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폴란드를 완벽하게 파괴하는 것"이었다. 아인자츠그루펜은 능력 있는 대다수의 폴란드인을 없앰으로써, 폴란드를 독일인종주의의 환상에 알맞은, 그리고 독일의 지배에 저항할 수 없는 기형으로 만들고 있었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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