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헬이 해안이라면, 사하라는 바다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안에서 모래바다를 건너 또 다른 해안, 즉 유럽으로 가려고 한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을 떠나고싶어 한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약 380만 명이나 되는 이곳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곳을 향해 삶의 터전을 뜨고 있다.
이 지역의 무력 분쟁과 급속한 기후변화가 초래한 이 같은 상황은한층 더 악화되고 있다. 알카에다와 ISIS라는 맹금들이 자신들의 보다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다른 집단의 고통과 희생을 먹잇감으로 삼고 있다면, 이 지역을 근거지로 한 집단들은 세력을 더 키우기 위해 그들의 브랜드를 빌려오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이 지역 여러 나라에서 맹위를 떨쳐온 갈등의 불꽃은 지금도 타오르고 있다. 이제 그 갈등은 해안가를 넘어 훨씬 멀리 퍼져나갈 기세다. 유엔 사무총장인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이런 경고를 한 바 있다. "우리는 폭력 앞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2020년에 사헬 지역은 세계에서가장 빠른 속도로 폭력이 증가하는 곳이었다. 유엔은 그 테러 공격의수위가 "유례없이 파괴적"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사헬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헬에 머물지 않는다. 대다수 유럽인은 이 지역과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이 문제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고 있는지잘 모르고 있다. 유럽은 이미 이주민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 유럽의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이주민과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이른바 <유럽 요새>를 구축하자는 호소도 나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의 물결이 밀려들어 오고있다. 하지만 양쪽 지역을 모두 안정화시키려면 북쪽이 아니라 지중해 남쪽을 봐야 한다. - P294

사막이 되돌아오자이 어마어마한 공간을 건너는 것은 어려워졌다. 오아시스의 위치에 따라 그저 짧은 길들이 개척될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지평선 앞에 낙타가나타났다. 이것은 가히 혁명적인 순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2천년 전에 출현한 규모는 작지만 선구적인 낙타 행렬은 보다 긴 교역로를 열게 해주었다. 낙타에 물품을 싣고 먼 곳을 다니는 대상 무역은 점점 몸집을 키우게 되는데 그 규모가 1만 2천마리까지 헤아린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오늘날로 치면 해양을 떠다니는 초대형 유조선에 비할 만하겠다. "낙타는 한 집단에 의해 고안된 말"이라는 이야기는 온당치 않다. 사실 낙타는 볼품없이 생긴 짐승일지 모르지만 그 어떤 짐승도 하지 못하는 짐을 운반하는 일을 할수 있었고 그 일을 해냄으로써 역사를 바꾸었다. 이 <사막의 배들>이야말로 수세기 동안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을 건너면서 대량 운반을 가능케 한 유일한 운송 수단이었다. - P298

수십 년 동안 지도에 표시돼 오던 서구 열강의 세력권은 주로 행정구역처럼 관리되다가 나중에는 사실상의 국경선이 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탈식민지화를 거친 지역들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국가가 되었다. 1964년에 아프리카연합의 전신인 아프리카통일기구의회원국 수장들은 지역의 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서구 열강이 임의대로 지도에 표시한 기존의 국경선을 고수하는 게 낫다는 데 마지못해 합의했다. 만약 식민지 이전의 종족 간 유대 관계를 기반으로 영토를 교환하는 협상을 하다가는 자칫 대륙 전체에 분쟁을 일으킬 수있기 때문이다.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하고, 남수단이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뒤에 수정된 사항을 제외하면 이 합의는 대부분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 분쟁이후에 이루어졌지만, 후자의 경우는 새로 탄생한 국가 내에서 끔찍한 내전을 불러왔고 그 불안은 지금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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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사헬에서도 이런 사례가 존재한다. 국경을 지도 위에 표시할 때는 잘 지켜지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기후변화, 지하디스트, 지역 내 식민지 이전의 분열주의 등이 결합하여 <갈등의 시대>를 만들면서 이 지역은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 P303

기후변화, 사막화, 폭력의 악순환
최근 들어 갈등 양상은 풀라니족 거주 국경지대를 넘어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나이지리아 일부 등 사헬의 다른 지역에까지 퍼져나가는 추세다. 폭력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따라다니는 주제들이 있다. 일단 가뭄으로 땅이 말라서 소나 양을 치기 어려워지면 유목민들은 새로운 도시나 시골을 찾아 들어온다. 여기서 그들은 <외부인>으로 취급받고 그 지역 농민들과 이해가 충돌하면서 여기저기서 폭력사태가 발생한다. 이러한 사태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가 기후변화다. 테러와 마찬가지로 기후변화 또한 국경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천 년에 걸친 기후변화로 어떻게 한 지역이 형성됐는지, 때로는 얼마나 극적으로 변했는지를 보아왔다. 그런데 대략 1950년대부터 여기에 인간이라는 요소가 끼어든다. 인구 증가에 발맞춰 땔감수요도 증가해서 이 땅의 초목이 사라져 갔다. 게다가 동시에 증가한 가축들이 그만큼 많은 풀을 먹어 치운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상황은 토양 침식과 사막화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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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벌어진 열강들의 패권 경쟁에서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지중해 유역에서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1870년대에 주요 강대국들 간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 중 영국과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을 두고 옥신각신했다. 영국은 대영제국이라는 왕관에박힌 보석과도 같은 존재인 인도로 들어가는 뒷문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이용하려는 러시아에 대해 우려했다. 또 러시아가 지중해를 봉쇄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수에즈 운하로 통하는 입구뿐 아니라 인도로 접근하는 것도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거쳐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영국은 아예 그리스라는 나라의 <보호자>로 자처했다. 그 바탕에 깔린 것은 그리스가아니라 자신들의 제국을 보호하겠다는 저의였겠지만. - P225

그리스는 경제가 붕괴되는 와중에도 난민들의 유입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밀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키 어려운 데다 다른 위기를 살펴볼 경황이 없는 국가에 외부세계마저 도움의 손길을 내주지 않았다. 2016년에 상황은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이주민들이 바다를 건너는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막고 그리스에서 되돌아온 이들을 받아주도록 EU 측에서 터키를 회유한것이다. 그 대가는 수십억 유로에 달하는 난민 지원 기금과 터키 시민들의 EU 국가 무비자 여행이었다. 그러자 바다를 건너는 이들의 수는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만 명이 여러 섬의 열악한 난민촌에 수용된 상태이며 사람들 또한 거의 매일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보다 북쪽에 있는 나라들의 더욱 엄격해진 태도를 보건대 대다수 EU 국가들이 더 많은 이주민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설령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갈등, 빈곤, 기후변화 등을 촉진시키는 요인들로 인해 문제 해결에는 보다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그리스 섬들의 일부는 난민 수용소로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 같다. - P233

그리스는 자국에 있는 마케도니아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할까봐 이웃에 있는 동명의 마케도니아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뒤 독립하여 탄생한 이 신생 국가에 경제 제재를 가했다. 이 문제는 2018년에 이르러서야 해결이 났다. 양측이 마케도니아라는 국명 대신 북마케도니아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합의를 보았는데 그리스 내에서는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도용했다는 이유로 민족주의자들이 격렬하게 들고 일어났다. 어쨌거나 이 조치는 그대로 이행되었고 결국 북마케도니아가 나토에 가입하는 길을 터주었다. - P238

 그런데 현대 터키는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역할을 결정하면서 동과 서를 잇는 교차로에 또다시 서 있는 입장이다. 터키는 유럽으로 들어가려는 이주민과 난민 행렬이 통과하는 관문 중 하나로 그 문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 문지기가 된다는 것은 권력을 쥔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시리아와 리비아가 포함된 아랍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는 분쟁에도 점점 더 자주 개입하면서 다른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부딪히기도 한다. 자신들의 지배력과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터키의 야심은 <신오스만주의 neo-Ottomanism>의 분명한 신호다. 이는 유럽, 중동, 중앙아시아까지 전 방위를 아우르면서 중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다시 한번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 P253

이러한 터키화 과정에는 1915년부터 1923년 사이에 행해진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집단 대학살을 부인하는 것도 포함되어있었다. 많은 터키인들은 오스만제국내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고수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 그들을 내부의적으로 간주했다. 주로 터키 내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에서 자행된 대학살에서 전투 가능 연령대의 아르메니아계 남성들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비슷한 수의 여성과 아이들이 강제로 추방당했고 노인들은 물과 식량도 없이 시리아 사막으로 쫓겨났다. 제1차 세계대전동안 벌어진 가장 잔혹한 행위인 이 대학살은 역사에서 지워지면서 터키공화국의 새로운 건국 신화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대다수 역사학자는 그 사건이 치밀하게 계획된 대량 학살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터키 당국은 그러한 잔혹 행위들이 저질러진 것은 인정하면서도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을 말살시킬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계획적인 대량 학살이었다는 것만은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 P263

그것은 일종의 정략결혼이었다. 나토의 입장에서는 냉전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터키를 가입시키면 가까운 미래에 터키가 도박을 걸거나모스크바에 의지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동맹의 남쪽 측면을 든든하게 지킬 수 있을 터였다. 1952년에 그리스도 같은 이유로 나토 회원국이 되었다. 비록 서로 으르렁대는 사이지만 두 나라 모두 나토의 선택지와 화력을 증강시켰다. 터키의 해군에게는 흑해에서 소련을 묶어두는 역할이, 육군에게는 불가리아 국경지대에서 소련 지상군을 묶어두는 역할이 주어졌다. 1960년, 1971년, 그리고 1980년에 터키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발했을 때도 나토 동맹국들이 애써 못 본 체했던 것도 터키가 가진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265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의 정신적 지도자로 자처하고 있다. 또한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이 지역에 힘을 보여줄 만큼 막대한 부도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중동에서 핵심 주전 선수가 되고자 결심한 터키 정부는 그들과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아랍의 맹주임을 자처하는 이집트도 신오스만주의자들이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마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늘 무슬림형제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었다. 무슬림형제단이라면 세계적으로 이슬람법이 지배하는 칼리프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세포와도 같은 조직들을 통해 가동하는 다국적 수니파 이슬람주의 단체다. 그들이 볼 때 거의 모든 아랍 국가들은 배격해야 할 군주제 국가이거나 종교적으로 지나치게 관대하다. 아랍의 국가들은 이를 알고 있는 만큼 그래서 무슬림형제단을 꺼린다. 1920년대에 이집트에서 창설된 무슬림형제단은 수년 동안 심한 탄압을 받은 끝에 아랍의 봄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축출되고 치러진 2012년 이집트 선거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에르도안은 희희낙락했다. 그는 이집트는 물론 리비아, 튀니지에서도 새로 들어선 이슬람 정부와 전략적 관계를 수립하기를 희망했다. 물론 터키가 상급 파트너가 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이듬해수개월에 걸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면서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정부가 군사 쿠데타로 전복되고 만다. 에르도안이 이 사태를 맹비난하자 결과적으로 이집트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시시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되고 만다. 시시 대통령은 다른 지역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터키를 무슬림형제단뿐 아니라 다른 이슬람 단체들과도 수상쩍은 관계를 맺고 이슬람 테러를 지원하는 위협 세력이라고 여겼다.  - P272

유프라테스강의 약 90퍼센트, 티그리스강의 45퍼센트가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에서 발원한다. 유프라테스강은 시리아와 이라크로 흘러들어가서 티그리스강과 거의 나란히 흐르다가 이라크 남부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이 두 강 사이에 펼쳐진 비옥한 땅이 <두 강 사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메소포타미아다. 두 강들, 특히 그 중 유프라테스강은 무려 6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물, 식량, 에너지를 공급하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원이다. 그리고 이 수도꼭지를 틀어쥔 쪽이 터키다.
1960년대 후반에 터키는 두 강을 따라 댐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하류 지역 나라들로 흘러 들어가는 수량이 줄어들게 되면서 으레 그렇듯 그 지역에서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이 상황은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댐 가운데 하나라는 아타튀르크 댐을 포함해 족히 수백 개의 댐이 건설돼 있는 상태다. - P280

물 협정은 터키의 주요한 국내 문제 두 가지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댐 건설은 일자리 창출과 전기 생산, 그리고 용수를 개선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남동아나톨리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그런데 문제는 강들의 수원이 쿠르드족의 주 본거지인 아나톨리아 일부 지역에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터키 정부에 저항하는 봉기를 일으키고, 최근까지도 쿠르드족의 민족성을 부인하면서그들을 인종적으로 <산악지대 터키인>이라고 규정하려는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에 반발하고 있다. 따라서 터키 정부는 수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협상을 하면서도 터키 국경 내에 쿠르드족 무장단체들이 발을 들이는 것을 엄중히 단속하는 데에 시리아가 찬성해야한다는 조항을 자주 고집한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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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주저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손을 머리에 대고 죽 훑어내리더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온 머리카락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전신거울 앞에서,
나는 내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가 포즈 취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똑같은 거울 앞에서 엄마가 흠잡을 데 없는 팽팽한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크림을 바르고 또 바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똑같은 거울 앞에서 엄마는 이 옷 저 옷을 입어보고, 모델처럼 완벽한 자세로 패션쇼를 하고, 자부심에 가득차서 자기 모습을 점검하고, 새 핸드백을 들거나 가죽 재킷을 걸친채 포즈를 취했다. 그 거울앞에서 엄마는 한껏 허영에 들떠 한참을 머물렀다. 그런 거울 속에, 이제는 알아볼 수도 마음대로 통제할 수도 없는 사람이 있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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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부 비타민제는 너무 많이 먹으면 심각한 부작용을 겪을 수있다. 일반적으로 물에 녹는 수용성 비타민은 몸에 잘 쌓이지 않고 쉽게 배설되기 때문에 많이 먹어도 부작용이 적다. 하지만 기름에 녹는 지용성 비타민은 필요 이상의 양을 먹으면 몸 안에 쌓이기 때문에 부작용으로 비타민 과다증을 유발할 수 있다. 지용성 비타민 A를 필요량 이상으로 먹으면 간이 손상되거나 근육 통증 같은 부작용이 생기는데, 특히 임산부인경우에는 기형아를 출산할 위험성이 매우 높아진다. 지용성 비타민D 역시 몸 안에 많이 쌓이면 세포 및 조직 괴사가 일어나며, 몸속에 칼슘이 많아져 골격 근육과 심장근육의 비정상적인 수축을 일으킨다. 이처럼 비타민 A, D는 결핍과 부작용 사이에 존재하는 복용해도 괜찮은 영역인 안전역 safety margin이 좁아 조금만 많이 먹어도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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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에서 관리하는 한국인 영양 섭취 기준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양 섭취 기준과 먹는 식품의 양에 따른 비타민함량을 알면 하루에 비타민을 얼마 정도 섭취하는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비타민 A는 고구마에 가장 많은데, 찐 고구마 3개를 먹으면 하루 비타민 필요량의 5배를 섭취하는 셈이다. 또한 우유 250밀리리터에는 비타민 A 하루 권장섭취량의 6분의 1이 들어 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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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으로 스코틀랜드는 제국주의를 도모하다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1698년 다섯 척으로 구성된 함대가 파나마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스코틀랜드를 출발했다. 당시 열렬한 국민적 호응에 힘입어 국민 모금으로 마련한 원정길이었다. 하지만 파나마에 정착한 수백 명 중에 살아남은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많은이들이 질병으로 사망했고 결국 스코틀랜드는 식민지 사업을 접어야했다. 나중에 스페인 해군이 이곳을 점령하게 된다. 애초에는 파나마식민지가 스코틀랜드를 부자로 만들어 줘서 스페인, 포르투갈, 잉글랜드에 견줄 수 있는 국력을 키울 수 있게끔 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독립의 불씨마저 꺼버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 안타까운 사연의 흔적은 현재 파나마의 지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도에서 푼타 에스코세스(Punta Escocés, 스코티시 포인트)를 찾아보라. - P180

강력한 두 후보인 프랑스와 스페인은 재정이 바닥나고 있는 데다끊임없이 유럽 대륙을 흔드는 전쟁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산업화는 영국보다 훨씬 더디게 진행됐다. 일찍이 1780년경에 영국에는 2만 대의 면사 방적기가 있었다면 프랑스에는 단 9백 대뿐이었다. 국토의 면적만 봐도 프랑스와 스페인 모두 영국의 두 배나 되다보니 수송 비용 또한 그만큼 많이 든다. 반면 영국은 크지 않은 국토와 강과 수로를 십분 활용해서 원자재를 도시까지 손쉽게 운송하고 완제품을 국내외 시장으로 훨씬 쉽게 내보낼 수 있었다. 또 공업도시들 가까운 곳에는 풍부한 석탄 광산이 있었고 1830년대에는 철도망이 발달하면서 이동 속도도 한층 가속화되었다. - P182

런던은 여전히 소프트파워의 리더로 남아 있는 이 나라의 수도로 대단히 역동적인 문화를 생산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5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국어로, 10억 명의 사람들이 제2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영어에서 기인한 바도 있다. 영어는 여전히 통상과 국제 계약에서 주요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또 영국의 고등교육 시스템은 가장 총명하고 훌륭한(게다가 돈도 많은 학생들을 전 세계에서 끌어들이고 있다. 영국은 전 세계에서 10위권 이내에드는 명문대학인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점은 이 나라 국부에 보탬이 되는 것은 물론 자국으로 귀국한 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고위직으로 진출하면서 미래의 소프트파워에도 기여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 P200

투키디데스(기원전 460-400년)는 서구 정치철학의 규범을 세운 인물이다. 그가 쓴 『펠로폰네소스전쟁사」는 오랜 세월에 걸쳐 국제 관계학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영감의 원천이나 다름없었다.
이 책은 오늘날에도 시사적인 현안을 논의할 때 자주 인용되곤 한다. 일례로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견제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뜻)이라는 용어는 어떤가. 신흥 강국 아테네의 부상이 패권국 스파르타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현재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 터져나오는 감정에도 적용된다.
- P212

침략자들이야 예나 지금이나 많지만 이와 같은 지형을 가진 그리스를 공략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스야말로 <전략적 깊이〉라는 전통적개념을 응용하기에 딱 좋은 경우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이 말은 침략군과 이 나라의 산업 중심지대 같은 일종의 핵심 지역 간의 거리를 일걷는다. 이 거리가 멀면 멀수록 방어할 기회는 더 많아진다. 이와 관련해 가장 좋은 사례가 러시아일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침략군이 중심부까지 도달하려면 기나긴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데, 방어하는 측은 극한 상황에서도 후퇴할 수 있는 상당히 방대한 전략적 깊이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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