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 벌어진 열강들의 패권 경쟁에서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지중해 유역에서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1870년대에 주요 강대국들 간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 중 영국과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을 두고 옥신각신했다. 영국은 대영제국이라는 왕관에박힌 보석과도 같은 존재인 인도로 들어가는 뒷문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이용하려는 러시아에 대해 우려했다. 또 러시아가 지중해를 봉쇄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수에즈 운하로 통하는 입구뿐 아니라 인도로 접근하는 것도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거쳐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영국은 아예 그리스라는 나라의 <보호자>로 자처했다. 그 바탕에 깔린 것은 그리스가아니라 자신들의 제국을 보호하겠다는 저의였겠지만. - P225
그리스는 경제가 붕괴되는 와중에도 난민들의 유입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밀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키 어려운 데다 다른 위기를 살펴볼 경황이 없는 국가에 외부세계마저 도움의 손길을 내주지 않았다. 2016년에 상황은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이주민들이 바다를 건너는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막고 그리스에서 되돌아온 이들을 받아주도록 EU 측에서 터키를 회유한것이다. 그 대가는 수십억 유로에 달하는 난민 지원 기금과 터키 시민들의 EU 국가 무비자 여행이었다. 그러자 바다를 건너는 이들의 수는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만 명이 여러 섬의 열악한 난민촌에 수용된 상태이며 사람들 또한 거의 매일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보다 북쪽에 있는 나라들의 더욱 엄격해진 태도를 보건대 대다수 EU 국가들이 더 많은 이주민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설령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갈등, 빈곤, 기후변화 등을 촉진시키는 요인들로 인해 문제 해결에는 보다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그리스 섬들의 일부는 난민 수용소로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 같다. - P233
그리스는 자국에 있는 마케도니아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할까봐 이웃에 있는 동명의 마케도니아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뒤 독립하여 탄생한 이 신생 국가에 경제 제재를 가했다. 이 문제는 2018년에 이르러서야 해결이 났다. 양측이 마케도니아라는 국명 대신 북마케도니아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합의를 보았는데 그리스 내에서는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도용했다는 이유로 민족주의자들이 격렬하게 들고 일어났다. 어쨌거나 이 조치는 그대로 이행되었고 결국 북마케도니아가 나토에 가입하는 길을 터주었다. - P238
그런데 현대 터키는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역할을 결정하면서 동과 서를 잇는 교차로에 또다시 서 있는 입장이다. 터키는 유럽으로 들어가려는 이주민과 난민 행렬이 통과하는 관문 중 하나로 그 문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 문지기가 된다는 것은 권력을 쥔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시리아와 리비아가 포함된 아랍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는 분쟁에도 점점 더 자주 개입하면서 다른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부딪히기도 한다. 자신들의 지배력과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터키의 야심은 <신오스만주의 neo-Ottomanism>의 분명한 신호다. 이는 유럽, 중동, 중앙아시아까지 전 방위를 아우르면서 중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다시 한번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 P253
이러한 터키화 과정에는 1915년부터 1923년 사이에 행해진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집단 대학살을 부인하는 것도 포함되어있었다. 많은 터키인들은 오스만제국내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고수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 그들을 내부의적으로 간주했다. 주로 터키 내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에서 자행된 대학살에서 전투 가능 연령대의 아르메니아계 남성들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비슷한 수의 여성과 아이들이 강제로 추방당했고 노인들은 물과 식량도 없이 시리아 사막으로 쫓겨났다. 제1차 세계대전동안 벌어진 가장 잔혹한 행위인 이 대학살은 역사에서 지워지면서 터키공화국의 새로운 건국 신화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대다수 역사학자는 그 사건이 치밀하게 계획된 대량 학살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터키 당국은 그러한 잔혹 행위들이 저질러진 것은 인정하면서도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을 말살시킬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계획적인 대량 학살이었다는 것만은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 P263
그것은 일종의 정략결혼이었다. 나토의 입장에서는 냉전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터키를 가입시키면 가까운 미래에 터키가 도박을 걸거나모스크바에 의지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동맹의 남쪽 측면을 든든하게 지킬 수 있을 터였다. 1952년에 그리스도 같은 이유로 나토 회원국이 되었다. 비록 서로 으르렁대는 사이지만 두 나라 모두 나토의 선택지와 화력을 증강시켰다. 터키의 해군에게는 흑해에서 소련을 묶어두는 역할이, 육군에게는 불가리아 국경지대에서 소련 지상군을 묶어두는 역할이 주어졌다. 1960년, 1971년, 그리고 1980년에 터키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발했을 때도 나토 동맹국들이 애써 못 본 체했던 것도 터키가 가진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265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의 정신적 지도자로 자처하고 있다. 또한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이 지역에 힘을 보여줄 만큼 막대한 부도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중동에서 핵심 주전 선수가 되고자 결심한 터키 정부는 그들과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아랍의 맹주임을 자처하는 이집트도 신오스만주의자들이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마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늘 무슬림형제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었다. 무슬림형제단이라면 세계적으로 이슬람법이 지배하는 칼리프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세포와도 같은 조직들을 통해 가동하는 다국적 수니파 이슬람주의 단체다. 그들이 볼 때 거의 모든 아랍 국가들은 배격해야 할 군주제 국가이거나 종교적으로 지나치게 관대하다. 아랍의 국가들은 이를 알고 있는 만큼 그래서 무슬림형제단을 꺼린다. 1920년대에 이집트에서 창설된 무슬림형제단은 수년 동안 심한 탄압을 받은 끝에 아랍의 봄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축출되고 치러진 2012년 이집트 선거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에르도안은 희희낙락했다. 그는 이집트는 물론 리비아, 튀니지에서도 새로 들어선 이슬람 정부와 전략적 관계를 수립하기를 희망했다. 물론 터키가 상급 파트너가 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이듬해수개월에 걸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면서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정부가 군사 쿠데타로 전복되고 만다. 에르도안이 이 사태를 맹비난하자 결과적으로 이집트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시시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되고 만다. 시시 대통령은 다른 지역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터키를 무슬림형제단뿐 아니라 다른 이슬람 단체들과도 수상쩍은 관계를 맺고 이슬람 테러를 지원하는 위협 세력이라고 여겼다. - P272
유프라테스강의 약 90퍼센트, 티그리스강의 45퍼센트가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에서 발원한다. 유프라테스강은 시리아와 이라크로 흘러들어가서 티그리스강과 거의 나란히 흐르다가 이라크 남부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이 두 강 사이에 펼쳐진 비옥한 땅이 <두 강 사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메소포타미아다. 두 강들, 특히 그 중 유프라테스강은 무려 6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물, 식량, 에너지를 공급하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원이다. 그리고 이 수도꼭지를 틀어쥔 쪽이 터키다. 1960년대 후반에 터키는 두 강을 따라 댐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하류 지역 나라들로 흘러 들어가는 수량이 줄어들게 되면서 으레 그렇듯 그 지역에서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이 상황은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댐 가운데 하나라는 아타튀르크 댐을 포함해 족히 수백 개의 댐이 건설돼 있는 상태다. - P280
물 협정은 터키의 주요한 국내 문제 두 가지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댐 건설은 일자리 창출과 전기 생산, 그리고 용수를 개선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남동아나톨리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그런데 문제는 강들의 수원이 쿠르드족의 주 본거지인 아나톨리아 일부 지역에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터키 정부에 저항하는 봉기를 일으키고, 최근까지도 쿠르드족의 민족성을 부인하면서그들을 인종적으로 <산악지대 터키인>이라고 규정하려는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에 반발하고 있다. 따라서 터키 정부는 수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협상을 하면서도 터키 국경 내에 쿠르드족 무장단체들이 발을 들이는 것을 엄중히 단속하는 데에 시리아가 찬성해야한다는 조항을 자주 고집한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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