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말라에 왔다. 이곳은 내 어머니의 남편 뻬드로 빠라모라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마을이다. 내가 반드시 그 사람을 찾아가겠다는 뜻으로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아드리자,
당신은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이렇게 말했다. "꼭 찾아가야 한다. 그 양반도 너를 보면 좋아할 게다." 나는 이미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당신의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두손을 빼낸 후에도 한참 동안 약속을 지키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생전에 귀가 닳도록 되뇌던 말은 그게 아니었다.
- 구걸하지 말고 당당히 요구해라. 그 인간은 나에게 당연히 갚아야 할 것을 하나도 갚지 않았어. 얘야, 그런 인간은 우리를 버렸던 죗값을 톡톡히 치러야 돼. - P7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로 모래 마당에 물구멍이 나게 만들고, 돌담 사이에 낀 월계수 이파리를 부르르 떨게만들던 사나운 비바람이 물러간 뒤끝이다. 간간이 이는 바람에 석류나무 가지에 달려 있던 물방울이 허공에 빛을 발하며 흩어지는데, 마당에는 여태껏 구석에 틀어박혀 졸고있던 암탉들이 몰려나와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쪼아대느라 정신이 없다. 그사이 비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오색찬란한 햇살은 소담스러운 돌멩이 위에 내려앉아 물기를 빨아올리는가 하면, 산들바람에 나풀대는 나무 이파리에 가만히 다가가 살랑인다. - P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내 안에, 내 일거수일투족에 엄마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언젠가 후대에 잘 전할 수 있도록.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내가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한다면 내가 엄마가 되면 될 터였다. - P372

"할머니랑 은미 이모랑 네 엄마 되게 행복할 것 같아." 나미이모가 말했다. 이모는 내가 준 목걸이의 하트 펜던트를 똑바로 뒤집었다. "다들 하늘나라에서 같이 소주도 마시고 화투도치면서 우리가 여기 함께 있는 걸 보고 기뻐할 거야." - P395

이모가 터치스크린 위로 차트를 죽 훑어내리더니 <커피 한잔>을 찾았다. 심벌즈를 천천히 두드리는 소리로 노래가 시작되자 기타가 바통을 이어받아 즉흥연주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침내 멜로디 라인이 나왔을 때 나는 틀림없이 전에 들어본 적 있는 노래임을 확신했다. 어렸을 때 다 같이 간 노래방에서 엄마와 이모가 듀엣으로 불렀던 것 같다. 긴 전주가 끝날 무렵 화면 위로 천천히 가사가 올라왔다. 이모는 하나 더준비돼 있던 무선마이크를 내게 건넸다. 이모는 내 손을 잡아나를 화면 앞으로 끌고 가서 내 얼굴을 보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모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며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모음 소리라도 따라 내면서 멜로디를 좇아가려 애썼다. 저 깊은 곳에 존재했을 수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기억을, 혹은 어떻게든 내가 접했을 엄마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이모가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게 느껴졌다. 지난 한주 동안 내가 이모에게서 찾으려 하던 것이었다. 이모가 나의 엄마도, 내가 이모의 동생도 아니었지만, 그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그다음으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동안 피터와 이모부는 알록달록한 LED 불이 켜지는 탬버린을 흔들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따라 불렀다. 이모가 기억을 되살리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고 싶었다. 그래서 빛의 속도로 바뀌는 글자를 열심히 따라 읽었다. 자꾸만 입에서 가사가 한 박자 늦게 튀어나왔지만 모어가 나를 인도해주기를 바라며 계속 노래했다. - P3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 알고 보면 천연자원 측면에서는 엄청난 부자다. 니제르에는 우라늄과 원유와 인산염이, 모리타니에는 철광석과 구리가, 차드에는 석유와 우라늄이,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에는 금광이 있다. 하지만 그 나라 모두에는 통치 구조와 부정부패, 불투명한 자금 운용, 산업의 경제적 모델에 대한 우려 또한 있다. 대다수 사헬 국가들은 원자재를 스스로 가공하지 않기 때문에 나라의 수입은 주로 자국에 들어와 있는 다국적 광산 기업들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충당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흔히 다국적 기업들을 유치하는 것은 세금 우대조치 때문일 텐데 결과적으로 이 조치는 정부 곳간에 큰 수입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다. - P325

물론 이런 가능성이 현재 아프리카에서 중국이 주요 선수가 된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중국이 추구해온 이른바 힘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는 정책은 이곳에서는 견고한 대국을 건설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사헬 지역에 자신들의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도 이 과정의 일환이다. 2015년에 중국은 인민해방군과 기타 보안군의 해외파병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중국 특수부대가 말리에서 유엔의 평화유지 작전에 참여했다. 한편 베이징 정부는 부르키나파소를 회유해서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중단하게 했다. 그리고 이제는 부르키나파소의 수도인 와가두구와 군사 관계를 확대하고있다. 또 2017년에는 지부티에 최초로 해외 해군기지를 개항했다.
이러한 행보는 일대일로를 표방한 중국의 경제 정책과 딱 들어맞는다. 이는 전 세계 무역망을 연계하거나 업데이트해서 상품들이 원활하게 중국으로 드나들게 보장하는 것이다. - P330

효율적인 통치 구조와 안보, 외부 세계의 도움이 없다면 사헬은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식민주의에 이은 탈식민지 경제와 정부 기관의 부패는 국내외 극단주의자들로 하여금 이 지역에 만연한 실정, 빈곤, 사회적 균열의 틈을 파고들게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은 자신들과 대결하는 외국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시계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들은 외국인들이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기다렸고 결국 대다수 외국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외부 세력은 사헬에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피를, 재원을 쏟아부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 P332

만약 미국이 병력을 줄인다면 프랑스와 다른 유럽 국가들은 어려운선택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병력을 증강하든가. 현 수준을 고수하든가 아니면 아예 본국으로 돌아가든가. 문제는 이것들이 하나같이 빈약한 선택지라는 것이다. 떠나자니 이곳에서 혼란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지역 정부들이 반란 세력들을 산산조각내고 나라를 하나로 뭉치게 할 수단을 가졌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또 만약 정부가 붕괴된다면 통제되지 않는 곳들은 지방 또는 국제 테러 조직의 지배를 받는 일종의 영지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폭력사태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그 충격파는 남쪽의 중앙아프리카와 북쪽의 북아프리카는 물론 유럽으로까지 번져 적어도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 다른 선택은 현 수준의 지원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도 미국의 지원이 없다면 싸움터를 내주고 물러서야할 위험이 높다. 그리고 마지막 옵션, 즉 병력을 강화하는 것은 금전적인 측면과 사상자 측면에서 비용의 증가를 의미한다. - P333

폭력상황이 해안 국가들까지 번지는 것에 프랑스는 물론 다른 유럽 국가들의 대응도 필요하다. 만약 이들이 손을 뗀다면 사헬 국가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쪽으로부터 도움을 얻고픈 유혹을 받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일찌감치 그 기회가 오기만을 엿보고 있다. 말리와차드 같은 나라들은 이념적으로 유럽이나 미국과 결혼한 사이는 아니다. 냉전시대에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애를 쓰느라 도움만 된다면 어느 편과도 손을 잡으려 했다. 만약 이들이 이제 서방 국가들의 군사적 및 경제적 지원이 고갈됐다고 믿는다면 그 진공상태가 발생할 때까지 손놓고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점은 경제, 외교, 군사적인 측면에서 할 수 있는 한 서구의 힘에 도전할 기회만을 노리는 베이징이나 모스크바도 마찬가지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러시아가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시리아의 혼란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보아왔다. 요컨대 푸틴 대통령이 <유럽의 소심함>과 <미국의 무관심>을 이용하는 것을 말이다. 사헬 같은 유동적인 지역이야말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P334

에티오피아의 지정학적 위치와 그 중요도를 규정하는 것은 바로 물이다. 이 나라의 강점이 담수(염분이 없는 보통의 물)라면, 해수는 이 나라의 약점이다. 에티오피아에는 12개의 커다란 호수가 있고 9개의 큰강이 있다. 덕분에 이웃 나라들 대부분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보니 에티오피아는 그들에 대해 큰 정치적 영향력을 쥐고 있는 셈이다. 반면이 나라에 부족한 것은 해안과, 직접적으로 해상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지만 담수 덕분에 중동에 대한 영향력과 홍해에 대한 접근성을 키워가면서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핵심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 P341

하지만 사정은 변하고 있다. 우선 청나일강, 아와시강, 오모강, 셰벨리강을 비롯한 여러 강에 댐과 발전소를 건설해서 수력 발전에 사용하는 유량을 점점 늘려가고 있다. 청나일강에 건설한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 (이 댐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설명하기로 한다.)까지 가세하면 이 나라 에너지 수요를 거의 충족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웃나라들에도 전력을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되면 시골 주민들이 나무와 숯을 땔감으로 써서 삼림을 황폐화시키고 토양의 침식을 유발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이 기술은 에티오피아의 부를 좀 더 평등하게 분배하고 역사를 얼룩지게 한 지역 갈등도 극복하게 해줄 거라는 기대감을 낳고 있다.  - P347

 현대 에티오피아는 악숨 제국 시대로돌아가겠다는 계획은 없다 해도 살아남고 번영을 이루려면 확실하고 믿을 만한 교역로를 확보해야 한다. 왜냐하면 에티오피아 수출입 상품의 대부분이 이웃 나라의 영토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교역로는 비좁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포함하고 10개국의 해안을 따라 흐르는 연안 무역 병목지대인 홍해를 경유하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수출과 수입의 대략 90퍼센트가 바다를 통해 이뤄지는데 화물 대부분이 지부티의 심해항을 통과한다. 그런데 2019년에 벌어진 한 사건은 단일 교역 노선에 의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상기시켰다. 당시 시위대가 지부티와 에티오피아 간 고속도로를 봉쇄해 버리자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사용할 연료가 아예 바닥날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취약성을 보강하기 위해 에티오피아는 지부티 항구의 지분을 매입했으며 소말리아 베르베라항의 지분 19퍼센트도 획득했고, 수단의 포트수단과 케냐의 라무 지분도 확보하는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해 오고 있다. 또 에리트레아의 항구로 가는도로들도 다시 개통시키고 있다. - P364

에티오피아에게는 권력을, 이집트에게는 불안을

청나일강은 수단의 수도인 카르툼에 도달해서 백나일강과 합쳐져 비로소 나일강이 되어 이집트로 흘러간다.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과 저수지는 수단과의 국경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시작된다. 2020년대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이 저수지는 가득 찰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에티오피아 고원지대까지 250킬로미터를 되돌아가서 그 지역의 수원이 될 것이다. 그런데 2020년 여름. 그러니까 댐 건설이 시작되고 9년이 지난 시점에서 동아프리카 지구대 위에서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에티오피아와 이집트 정부 사이에 협의가 없었음에도 댐 뒤편의 저수지 수위가 조금씩 상승하고 있는 것을알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나라 전체에 전기를 공급할 목적으로 발전기를 테스트할 수 있는 지점까지 수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우기를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집트에게 그 댐의 건설은 사실상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는 곧 한 나라가 지리의 감옥에 갇히는 극명한 사례이기도 하다. 나일강은 이집트와 그 국민들에게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나일강이 없으면 이집트도 없다. 청나일강에서 시작된 나일강의 85퍼센트가 이집트로 흘러들어 오는데 에티오피아가 여기에 손을 대려는 것이다.
물론 그 흐름을 완전히 끊어 버리겠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그렇게 할수 있는 힘을 갖겠다는 것이지만. - P367

그런데도 이집트의 군사 행동을 제약하는 것들이 많다. 여기서 또다시 지리가 에티오피아에게 미소를 짓는다. 에티오피아는 내륙국이기 때문에 이집트 지상군은 수단을 통하거나, 아니면 홍해로 내려가서 에리트레아를 통해 들어와야 한다. 최근에 전투 경험이 없는 것은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어떤 군대라 해도 구미가 당길 만한 선택지가 없다. 게다가 이집트 군대의 역사는 썩 긍정적으로 봐주기가 어렵다. 1874년부터 2년 동안 이집트가 에티오피아를 상대로 벌인 처참한 침공 시도는 식민주의를 몰아낼 만큼 강한 힘을 가진 나라를 상대할 때 따르는 위험을 새삼 상기시켜 주었다. 1960년대에는 이집트군7만 명이 예멘 내전에 참전하기 위해 홍해를 건넜지만 6만 명만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P3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엄마의 죽음이라는 벌에 쏘이는 그 순간부터, 나란 존재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남은 평생을 벌침이 박힌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내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도 울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서로의 티셔츠에 얼굴을 파묻고 한바탕 서럽게 흐느꼈다. - P2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엄마가 그쯤에서 치료를 포기하는 것에 아빠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아빠는 내가 뭐라고 하며대들어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우리 두 사람이 힘을 합쳐엄마가 치료를 계속 받도록 설득하자고 말이다. 하지만 항암치료는 이미 엄마에게 남은 존엄을 마지막 조각까지 앗아가버렸고,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더 앗아갈 존엄이 남았다면 그것마저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 것 같았다. 엄마는 암 진단을 받고 나서 많은 결정을 우리에게 맡겨왔다. 우리가 자신의 변호인이 되도록, 자신을 대신해 간호사와 의사에게 간청하고 투약에 관해서 질문하도록. 하지만 나는 은미 이모 덕분에 알게되었다. 만약 두 차례의 항암치료가 별 효과가 없다면 그쯤에서 치료를 중단하는 게 엄마의 바람이라는 것을. 그것은 내가반드시 존중해야 할 결정 같았다 - P200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모성이, 엄마가 느꼈을 테지만 능숙하게 숨겼을 무진장한 공포를 제압해버린 것이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 어찌어찌 잘 풀릴 거라고 내게 말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난파선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담담히 지켜보고있는 태풍의 눈과도 같았다.  - P2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