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내 안에, 내 일거수일투족에 엄마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언젠가 후대에 잘 전할 수 있도록.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내가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한다면 내가 엄마가 되면 될 터였다. - P372

"할머니랑 은미 이모랑 네 엄마 되게 행복할 것 같아." 나미이모가 말했다. 이모는 내가 준 목걸이의 하트 펜던트를 똑바로 뒤집었다. "다들 하늘나라에서 같이 소주도 마시고 화투도치면서 우리가 여기 함께 있는 걸 보고 기뻐할 거야." - P395

이모가 터치스크린 위로 차트를 죽 훑어내리더니 <커피 한잔>을 찾았다. 심벌즈를 천천히 두드리는 소리로 노래가 시작되자 기타가 바통을 이어받아 즉흥연주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침내 멜로디 라인이 나왔을 때 나는 틀림없이 전에 들어본 적 있는 노래임을 확신했다. 어렸을 때 다 같이 간 노래방에서 엄마와 이모가 듀엣으로 불렀던 것 같다. 긴 전주가 끝날 무렵 화면 위로 천천히 가사가 올라왔다. 이모는 하나 더준비돼 있던 무선마이크를 내게 건넸다. 이모는 내 손을 잡아나를 화면 앞으로 끌고 가서 내 얼굴을 보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모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며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모음 소리라도 따라 내면서 멜로디를 좇아가려 애썼다. 저 깊은 곳에 존재했을 수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기억을, 혹은 어떻게든 내가 접했을 엄마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이모가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게 느껴졌다. 지난 한주 동안 내가 이모에게서 찾으려 하던 것이었다. 이모가 나의 엄마도, 내가 이모의 동생도 아니었지만, 그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그다음으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동안 피터와 이모부는 알록달록한 LED 불이 켜지는 탬버린을 흔들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따라 불렀다. 이모가 기억을 되살리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고 싶었다. 그래서 빛의 속도로 바뀌는 글자를 열심히 따라 읽었다. 자꾸만 입에서 가사가 한 박자 늦게 튀어나왔지만 모어가 나를 인도해주기를 바라며 계속 노래했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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