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쯤에서 치료를 포기하는 것에 아빠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아빠는 내가 뭐라고 하며대들어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우리 두 사람이 힘을 합쳐엄마가 치료를 계속 받도록 설득하자고 말이다. 하지만 항암치료는 이미 엄마에게 남은 존엄을 마지막 조각까지 앗아가버렸고,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더 앗아갈 존엄이 남았다면 그것마저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 것 같았다. 엄마는 암 진단을 받고 나서 많은 결정을 우리에게 맡겨왔다. 우리가 자신의 변호인이 되도록, 자신을 대신해 간호사와 의사에게 간청하고 투약에 관해서 질문하도록. 하지만 나는 은미 이모 덕분에 알게되었다. 만약 두 차례의 항암치료가 별 효과가 없다면 그쯤에서 치료를 중단하는 게 엄마의 바람이라는 것을. 그것은 내가반드시 존중해야 할 결정 같았다 - P200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모성이, 엄마가 느꼈을 테지만 능숙하게 숨겼을 무진장한 공포를 제압해버린 것이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 어찌어찌 잘 풀릴 거라고 내게 말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난파선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담담히 지켜보고있는 태풍의 눈과도 같았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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