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물으시는 대로 조심스럽게 대답을 하면서 나는 뜻밖에도 후련한 감정을 느꼈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물어본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다들 착하고 똑똑한 영주, 미련 맞고 덜렁대는 동구라고만 생각했다. 커튼을 젖히고 무대 뒤편으로 가보면 그곳에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영주, 생각 깊고 마음 넓은 동구가 있었다. 선생님이 지금 처음으로, 어두운 무대 뒤편에 쪼그리고 있는착하고 멋진 나를 무대 위로 불러내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갑자기 조바심이 나고 숨이 가빠지면서 시키지도 않은 이야기를 시작해버렸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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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허리 아래

동생은 성질이 급한 아기였다. 아버지는 늦은 나이에 출산하는 엄마를 염려해 시내의 큰 병원에 분만 예약을 해놓았지만 엄마는 그곳까지 갈 겨를이 없어서 사과상자처럼 답답한 동네 조산소서 몸을 풀고 말았다. 할머니와 나는 하릴없이 옷 보퉁이와 더운보리차를 담은 보온병을 들고 조산소의 손바닥만 한 툇마루에 앉아서 아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 P9

오래된 수채화처럼 어렴풋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입으로는 앙앙 울고 귀로는 엄마가 내 엉덩이를 치는 철썩철썩 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는 미풍에실려 긴 대각선으로 내 눈앞을 지나가던 벚꽃잎 하나를 가만히 좇고 있었다. 꽃잎은 매끄럽지 않은 사선을 그리며 한들한들 바닥까지 내려와 마당 모퉁이를 두르고 있던 버드나무의 흰 솜털과 노란송홧가루의 품속으로 파고들더니 오랜 동무라도 만난 듯 함께 구르고, 튀어오르고, 아장거리다가 마침내내 시야를 벗어났다. 모처럼 유람을 떠나는 아씨마님들처럼 유유하고 평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엉덩이에 감겨드는 맵짠 매질의 아픔은 기억나지 않는데 투명한 햇살 눈앞이 허물어질 듯 아물거리는 아지랑이 속에서 초라하지 않게 추락하던 그 꽃잎의 기억만은 어찌 그리 선명한 것일까.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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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성과 동정심을 사용해서 인류의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의 원리는 너무 뻔하고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지게 들린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이성, 과학, 휴머니즘, 진보라는 이상을더욱 성심성의껏 지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너무 당연히 여긴다. 80년 이상 살아갈 신생아, 식량이 넘쳐흐르는 시장, 손가락을 까닥거리면 나오는 정수와 또 한 번 까닥거리면 사라지는 오수, 고통스러운 감염병을 없애 주는 알약,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는 아들, 안전하게 거리를활보하는 딸, 권력자를 비판하고도 감방에 가거나 총에 맞지 않는 평론가, 휴대하면서 쓸 수 있는 세계의 지식과 문화를 말이다. 하지만 이모든 것은 우주적 생득권(cosmic birthright) 이 아니라 인간이 이룬 업적이다. - P21

1장 감히 알려고 하라!

계몽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제목으로 한 1784년의 에세이에서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년)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계몽은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 상태나 종교적 권위나 정치적 권위의 "도그마와 인습"에 "나태하고 소심하게 복종하는 상태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계몽주의의 모토는 "감히 알려고 하라! (Sapere Aude!)"이며, 여기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이다. "후세가 그들의 통찰을 확대해서 자신의 지식을 늘리고 자신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을 앞선 시대가 미리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다면 인간 본성에 대한 범죄가 될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운명은 바로 그런 진보에 있기 때문이다." - P25

진화로 되돌아가 보자. 유전체 속 정보에 따라 배선되어 감각 기관을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의거해서 계산을 수행할 수 있게 된 뇌는 에너지를 포획하고 엔트로피에 저항하기 위해 동물의 행동을 체계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찍찍거리면 추적하고, 짖으면 피하라."라는 규칙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 추적과 도피는 단순한 근육의 수축 운동이 아니라 목표 지향적 행동이다. 추적 행동은 상황에 따라 달리기나 기어오르기, 뛰어오르기나 매복하기처럼 먹이를 잡을 가능성을 높여 주는 행동들이 될 수 있다. 도피 행동은 숨기나 꼼짝하지 않기나 지그재그 달리기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되먹임(feedback), 혹은 제어(control)라고 불리는 20세기가 낳은 중요한 개념들을 만나게 된다. 이 개념들은 물질계가 어떻게 목적론적으로 보일 수 있는지, 다시 말해 목적이나 목표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설명해 준다. 필요한 것은 네 가지뿐이다. 자기 자신과 환경의 상태를 감지하는 방법, 목표 상태 (원하는 것, ‘이루기 위해 애쓰는 것)의 표명, 현재 상태와 목표 상태의 차이를 계산하는 능력, 그 결과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전형적인 행동레퍼토리. 만일 그계가 현재 상태와 목표 상태의 차이를 잘 줄여 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있다면, 그 계는 목표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가 충분히 예측가능하다면, 목표를 달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 선택은 이 원리를 항상성의 형태로 생명체에 장착했다. 우리 몸이 몸을 떨고 땀을 흘림으로써 체온을조절하는 방식이 좋은 예이다. 인류도 이 원리를 발견해서 처음에는 온도 조절 장치와 크루즈 컨트롤(cruise control, 선박이나 항공기, 미사일 등에 쓰이는순항 제어 장치) 같은 아날로그 체계에, 나중에는 체스플레이 프로그램과 자율 로봇 같은 디지털 체계에 응용했다. - P46

지상에 드리운 영적 기운처럼 시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현실적인 것, 즉 에너지 획득 방식의 변화를 발견한 것이다. 축의 시대는 농업과 경제의 발전으로 에너지가 급격히 늘어나서 음식, 사료, 연료, 원자재 형태로 한사람이 하루에 획득하는 에너지가 2만 킬로칼로리를 넘어선 시대였다. 이 획득 에너지 급증 덕분에 문명들은 더 큰 도시를 세우고, 학자와 종교 계급을 만들고, 단기적인 생존에서 장기적인 조화로 우선 순위를 재설정할 수 있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년)는 몇 천년 후에 이렇게 표현했다. "먹는 것이 우선, 도덕은 그다음.."
산업 혁명이 일어나 석탄, 석유, 낙하하는 물에서 가용 에너지가 터져나오자 가난, 질병, 기아, 문맹, 조기 사망으로부터 탈출하는 행렬이 먼저서양에서, 다음으로 점차 전 세계에서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것에 대해서는5~8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인간 안녕과 복리의 다음 도약 - 극빈의 박멸과풍요. 그리고 그에 수반하는 무수한 도덕적 이익의 전파 - 도전 세계가받아들일 수 있는 경제적, 환경적 비용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술의진보에 의존한다.  - P50

엔트로피, 진화, 정보. 이 세 개념은 인간의 진보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이다. 우리가 어떤 비극 속에서 태어났고, 조금 더 나은 생존을 위해어떤 수단을 동원해 왔는지를 알려준다.
세 개념이 일러 주는 첫 번째 지혜는 불행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 혁명이 이룬 약진 가운데 하나 - 어쩌면 가장 큰 약진일지도 모른다. - 는 우주는 목적으로 충만하다는 직관을 논박한 것이다.
원시적이지만 도처에 널려 있는 이 관점에 따르면 모든 것은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고, 따라서 나쁜 일-사고, 질병, 기근, 가난이 일어나면분명 어느 행위자가 그렇게 되기를 원해서 그렇게 된것이다. 이 생각 때문에 한 개인을 불행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그를 처벌하거나 재산을 쥐어짜서 피해를 보상하려고 한다. 만일 누구도 지목할 수가 없으면, 근처에 있는 종족적, 종교적 소수자 탓으로 돌려서 린치를 가하거나 학살을 자행한다. 만일 어떤 인간에게 그럴듯하게 책임을 돌릴 수 없으면, 마녀를 찾아내 화형에 처하거나 익사시킨다. 그마저도 실패하면 가학적인 신들을 탓하게 되지만, 신을 처벌할 수는 없는지라 기도를 올리거나 제물을 바쳐서 달래 보려고 한다. 게다가 업보, 숙명, 신탁, 우주적 정의 같은 실체 없는 힘들이 "모든 일은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라는 직관을 보증한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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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 동안 대중 앞에서 언어, 마음, 인간 본성에 대해 강연을 하는 도중에 나는 굉장히 이상한 질문들을 받고는 했다. 어떤 것이 가장좋은 언어인가? 대합조개와 굴에도 의식이 있을까? 언제쯤이면 나의 마음을 인터넷에 업로드할 수 있을까? 비만도 일종의 폭력일까?
하지만 가장 솔깃한 질문을 받은 자리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진부해진 개념, 즉 마음 활동(mental life)은 뇌 조직들의 활성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설명하는 강연회였다. 청중 가운데에서 한 여학생이 손을 들고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죠?"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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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불완전한 2류 신들을 숭배할 수 있죠? 나는 애당초 하느님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옛날부터 생각했다. 우리보다 더 나은 존재로서 우리가 닮고 싶어 하는 모델을 제공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런 이유가 없다면, 작은 냉장고만큼 배가나오고 곧잘 엉덩이를 긁어대는 저 아랫집 남자를 숭배해도 달라질것이 없을 것이다.
제이미는 이 점에 대해서도 답을 내놓는다. "우리는 불완전하기때문에 완전하고, 그건 신들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어, 제우스는아동성애와 간통을 저질렀고, 폭군이었죠. 하지만 우리가 제우스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어요." 이교의 신들은 완벽한 존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교훈으로서 존재한다. 너희는 우리처럼 일을 엉망으로 만들지 말지어다. - P371

그런데 샤먼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샤먼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평소에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사실 잘 모르는 단어
‘중 하나다. ‘샤먼‘은 시베리아어로 ‘흥분한 사람, 마음이 움직인 사람‘을 뜻하는 사만(sanman)에서 유래했다. 마음에 든다. 샤먼은 동적이다. 샤먼은 인정을 베푼다. 그들은 환자가 어찌 되든 관심도 없는 차갑고 냉담한 치유사가 아니다. 샤먼은 환자에게 인정을 베풀 뿐만아니라 그들 자신이 바로 환자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치유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치유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돈을 돌려준다. 환자가 죽으면 샤먼이 받은 돈을 돌려주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우리 보건의료 시스템도 이런 환불 보장 제도를 도입하면 크게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샤먼의 또 다른 정의는 ‘아는 자‘다. 믿는 자가 아니라 아는 자. 이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샤먼의 세계에서 믿음은 설 자리가 없다. 오로지 지식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샤먼은 무엇을 아는 걸까?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아는 걸까?
샤먼의 힘은 마음대로 황홀경에 빠져들어 다른 의식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경우에 따라 향정신성약품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그러지 않기도 한다. 샤먼은 신도 정령도 아니지만 신과 정령을 알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샤먼은 중재자이자 여행자이며, 윌리엄 제임스가 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탐험한 뒤 평범한의식 세계로 돌아온다.  - P402

 황홀경에 빠졌을 때 샤먼의 의식 상태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는 샤먼들에게 자연스럽게 ‘미쳤다‘는 꼬리표를 붙인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판단인가?
정신이 멀쩡한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였던 카를 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물리적 존재만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거의 웃음이 나올 만큼 우스꽝스러운 편견이다. 사실 우리가 가장 가깝게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 양식은 정신적인 것이다. 반면 물리적존재는 추론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감각이 전달해주는정신적인 이미지들을 통해서만 물질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403

샤먼은 자연을 사랑한다. 성 프란체스코의 전통을 따르는 셈이다.
그들은 자연계를 자신과 동등한 존재, 가족으로 본다. 샤먼은 동물들을 가엾게 여기지 않고, 그들의 우월한 지혜를 끌어다 쓰는 것을목표로 삼는다. 샤먼의 또 다른 특징은 작업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샤머니즘은 사람들(나도?)이 침묵의 명상으로는 몇 년이나 걸릴수도 있는 경험을 몇 시간 만에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영적인 지름길을 약속해준다. 인류학자였다가 샤먼으로 변신한 마이클 하너의 말이다. 내게는 이 말이 한없이 매력적이다. 솔직히 지름길을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 P403

내가 지금까지 탐색했던 모든 종교 중에서 유대교의 역사가 가장길다. 유대교도들은 수피교도들이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 때, 불교도들이 명상을 시작한 때, 라엘교도들이 이성의 옷을 입기 시작한 때로부터 수천 년 전에 이미 유일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이것은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기술은 번쩍거리는 새것이 좋지만, 종교는 오래돼서 곰팡내를 풍기는 것이 환영받는다. 멋지게 낡은 것. 물론 오랜 역사가 반드시 진리와 동격은 아니다. 사람들은 아주 오랫동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믿음이 진리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종교적 진리는, 예를 들어 산술적 진리와는 다른 것 같다. 종교적 진리는 훌륭한 시나 소설의 진리와 같다. 우리가 지금도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은 그의 글이 좋을 뿐만 아니라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믿음의 문제에서는 오랜 생명력이 확실히 중요하다. 나는 유대교의 점수판에 조용히 몇 점을 더한다. - P442

모든 종교에는 창조설화가 있다. 카발라도 예외가 아니다. 카발라의 창조설화는 지금까지 내가 접해본 어느 창조설화 못지않게 화려하고 환상적이다. 기본적인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신이 우주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신이 우주를 창조하던 중에, 어이쿠! 이런, 우주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지금 우리는 그 파편들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이 깨진 조각들을 다시 하나로 붙여서 이 세상을 수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따라서 티쿤, 즉 ‘수리(修理)‘는 카발라의 핵심 개념 중 하나다(유대교도 마찬가지다). 카발라 추종자들은 우리 각자가 세상의 수리를 돕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의식을 수리해야 하는 독특한 과제를 안고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상승효과를 낸다는 것이 카발라의 가르침이다. 물질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미츠바, 즉 선행이 신적인 영역에서 반향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 P464

"유대교는 운전과 같아요." 대니얼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운전을 배우려면 규칙을 알아야 하죠. 빨간 신호등의 뜻은 무엇이고, 양보 표지의 뜻은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 제한속도도 지켜야하고요. 하지만 운전을 순전히 규칙의 집합체로만 보는 건 멍청한짓입니다. 우리가 차를 운전하는 건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예요. 어쩌면 아주 특별한 장소가 목적지일 수도 있겠죠. 때로는 순전히 운전하는 것이 즐거워서 차를 몰기도 합니다. 규칙은 운전이라는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에요."
이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았지만 나는 아직 항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럼 누가 봐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유대교의 규칙들은 뭐죠? 그러니까 항상 오른쪽 신발을 먼저 신어야 한다는 규칙 같은 것 말이에요. 그런 규칙에 무슨 목적이 있겠어요?
"오른쪽은 상냥함을 상징하고 왼쪽은 엄격함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하루를 먼저 상냥함으로 시작한 뒤에야 엄격함을 덧붙입니다. 신발을 신는 규칙은 그것을 일깨워주는 장치일 뿐이에요." - P495

웨이트리스가 우리에게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모세가 봤으면 자랑스러워했을 법한, 단단한 판으로 되어 있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신과 종교의 관계는 음식과 메뉴판의 관계와같구나. 메뉴판과 종교는 모두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해준다. 웨이터가 우리에게 메뉴를 추천해줄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우리다.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자신이 신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메뉴판을 읽었으므로 식사를 잘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전자의 행동이 후자로 이어질 수는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메뉴판과 종교는 모두 우리를 유혹하며 여러 약속들을 내놓지만 그 약속들을 항상 지키지는 않는다. 메뉴판과 종교는 또한 우리 앞에 즐거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지나치게 공들인 설명을 내놓지만 우리는 그 설명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건 독립 농장에서 키운 쇠고기로 만든 카르파초를 주문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다. 훌륭한 종교는 훌륭한 메뉴판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가격을 솔직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그가격은 비록 조금 비싸기는 할망정 항상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 P499

우리는 결코 자신의 과거에서 완전히 도망칠 수 없으며,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가 과거의 지혜를 한 모금씩 마시면서 그들의진리를 빨아들이더라도 그들은 언제나 ‘타자(他者)‘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최대한 바랄 수 있는 것은 이 지혜의 조각들이 우리의골수로 스며드는 것이다. 이런 일은 내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것보다 더 흔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가 기본적으로 엉망진창인데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엉망진창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해진다.
사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목표다. 좋은 종교의 목표. 우리 자신 속에 있는 가장 불쾌한 부분들을 단순히 수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랑해도 될만한 것으로 바꿔놓는 것. 융은 "우리의 어둠이 의식을갖게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기도와 명상 같은 영적인 체조가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이런 변화의 연금술은 궁극적으로 신비로운 과정으로 남아 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것을 은총이라고 부르고, 불교도들은 실제(實際)라고 부르고, 도교 추종자들은 아예 이름조차 지으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항상선물일 뿐, 우리에게 마땅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일부러 찾기를 멈춘 뒤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 P507

한편 나의 도쿄 경험에는 아직 속편이 없다. 나는 이미 속편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기대야말로 경험의 커다란 적이니까. 그래도 나는 계속 기다린다. 가끔 이쪽저쪽으로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 P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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