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 (Consciousness Explained)』의 대니얼 클레멘트 데닛(Daniel Clement Dennet, 1942년~)과 몇몇 철학자는 의식이라는 난제는 없다고 주장한다. 머리뼈 안 극장에 호문쿨루스(homuncuhus, 플라스크 속 작은인간)가 앉아 있다고 상상하는 나쁜 습관 때문에 그런 혼동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내 육신에서 분리될 수 있는 이 작은 인간은 내 극장에서 잠시 까치발로 걸어 나와서는 당신의 극장에 들러서 당신의 빨간색이 내빨간색과 같은지 다른지 확인하거나, 박쥐의 극장에 들러서 거기서 상연되는 영화를 관람한다. 혹은 좀비에게서는 사라졌지만 로봇에게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스타 트렉」의 한 행성 자크돈(Zakdorn)으로 전송되는 빔을 타면 살아서 갈 수도 있고 일단 죽어서 갈 수도 있다. 나는 이따금 이 난제로 빚어진 해악(보수적인 지식인 디네시 조지프 디수자(Dinesh Joseph D‘Souza 1961년~)가 신의 존재에 관한 토론에서 나의 책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How the Mind Works)』 한 권을 높이 들고 야단스레 흔들어댄 것을 포함해)을 볼때마다 그 용어가 없으면 우리 상황이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데닛의 말에 동의하고 싶어진다. 다양한 오해들이 있지만 이 난제는 천리안, 텔레파시, 시간 여행, 점, 원격 작용 같은 기이한 물리적 혹은 초과학적 현상이 아니고, 불가사의한 양자물리학, 사이비 에너지 진동, 그밖의 황당한 뉴에이지 이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금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난제가 비물질적인 영혼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의식에 대해 우리가아는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의식은 오로지 신경 활동에만 의존한다. - P644

우리의 가장 멋진 과학이 일러 주는 바에 따르면, 의식은 현재의 목표, 기억, 주변 환경이 표시된 일종의 총괄적 작업 공간이며, 앞앞이마엽ㅡ마루엽 신경 회로에서 점멸하는 동조 발화의 형태로 뇌에 장착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이 이론에서 마지막 조각ㅡ 그런 회로이지만 주관적으로는 어떤 것처럼느껴진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을 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놀랍지는 않다. 앰브로즈귀넷 비어스(Ambrose Gwinnett Bierce, 1842~1914년)가 악마의 사전(The Devil‘sDictionary)」에서 지적했듯이, 마음이 그 자신을 알기 위해 쓸 수 있는 도구는 그 자신뿐이며, 따라서 자기존재의 가장 깊은 측면, 즉 본래적 주관성을 이해한다는 만족감을 결코 맛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 P6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공공 담론을 더 이성적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슈들을 가능한 한 탈정치화해야 한다. 실험들로 입증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가령 복지 개혁 같은 새로운 정책에 대해 들을 때 자기가 지지하는 당이 제안하면 그정책을 좋아하고 반대하는 당이 제안하면 싫어하면서도, 내내 자기는정책의 객관적인 장단점에 반응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몇몇 기후 운동가는 앨 고어가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을 쓰고 영화에 출연한것이 환경 운동에 득보다 독이 되었을 수 있다고 한탄했다. 민주당 출신의 전 부통령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고어 때문에 기후 변화에 좌파 낙인이 찍혔다는 이유에서이다. (오늘날에는 믿기 힘들지만, 한때 환경 운동은 우파의 대의명분일 때가 있었다. 상류 계급이 인종차별, 빈곤, 베트남 같은 심각한 이슈보다는 시골 사유지에서 사냥할 오리의 서식지와 풍광을 걱정한 것이다.) 더 많은 과학자를 고용해서 더 큰 목소리로 더 느리게 이야기하게 하는 것보다는 기후 변화의 증거를 확신하고 있는 보수적인 논평가와 리버럴한 논평가를 함께 동원한다면 더 큰 효과를 볼지도 모른다.  - P577

다른 무엇보다 먼저, 과학적 사고를 승인한다고 해서 이것을 ‘과학‘이라는 직업 조합의 구성원들이 특별히 현명하거나 고상하다는 어떤 믿음과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과학 문화는 오히려 정반대 믿음에 기초해있다. 열린 토론, 동료 평가, 이중 맹검 등 과학 문화를 상징하는 관행들이 만들어진 까닭은 과학자들도 인간이기에 저지를 수 있는 과실을 피하기 위함이다.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 1918~1988년)은 과학의 첫 번째 원리를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을 속이지 마라. 가장속이기 쉬운 사람은 나 자신이다." - P589

과학주의를 악마화하는 사람들은 이해 가능성을 환원주의라는 죄악과 혼동할 때가 많다. 환원주의란 복잡한 체계를 더 단순한 요소로분해하거나 비난하는 이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더 단순한 요소들로만 분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깊은 원리에 의거해서 복잡한 현상을 설명할때는 그 풍부함이 폐기되지 않는다. 구성요소들을 더 낮은 수준으로환원할 수 없는 패턴들이 어느 한 분석의 차원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운동하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만, 누구라도 그것을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언어로 설명하기보다는, 1914년 유럽 지도자들의 지각과 목표를 갖고 더 명쾌한 언어로 설명할 것이다. 동시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은 왜 인간의 마음이 그 역사적인 순간에 치명적으로 조합된 지각과 목표 - 부족주의, 지나친 자신감, 상호 두려움, 명예의 문화 -에 빠졌는지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 P592

우생학 운동은 나치즘과의 연관성 때문에 영구적인 의혹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그 용어가 살아남은 것은 부모가 치명적인 퇴행성 질환이 없는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유전 의학을 적용하는 등의 수많은 과학적 노력, 그리고 개인차의 유전적, 환경적 원인을 분석하는 행동 유전학의 전 분야에 낙인을 찍는 수단으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의 기록과 무관하게 우생학은 우파 과학자들의 운동으로 자주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로 우생학을 옹호한 진영은 진보주의자, 리버럴, 사회주의자 들이었고, 여기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년),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년), 엠마 골드만(EmmaGoldman, 1869~1940년), 조지 버나드 쇼, 해럴드 조지프 라스키(Harold JosephLaski, 1893~1950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 시드니 웹(Sydney Webb, 1859~1947년)과 마사 비어트리스 웹 (Martha Beatrice Webb. 1858~1943년) 부부, 우드로 원슨, 마거릿 히긴스 생어(Margaret Higgins Sanger, 1879~1966년) 등이 포함되어있다. 어쨌든 우생학은 현 상태보다는 개혁에, 이기심보다는 사회적 책임에, 자유 방임주의보다는 중앙 집중적 계획에 호의적이었다. 우생학을 가장 단호하게 거부하기 위해서는 고전적인 자유주의나 자유 지상주의의 원리에 호소해야 한다. 즉 정부는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전능한 통치자가 아니라 제한된 권력을 가진 제도일 뿐이며, 인류의 유전적 구성을 개량할 권력은 거기에 없다는 것이다. - P602

비폭력 저항 운동은 효과가 있을까? 많은 사람이 간디와 마틴 루서킹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 믿는다. 그들의 운동은 적절한 때에 개화된 민주주의 국가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다른 모든 곳에서 억압된 민중은 폭력이 아니고서는 독재자의 군화 밑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2명의정치 과학자 에리카 체노웨스(Erica Chenoweth, 1980년~)와 마리아 스테판(Maria Stephan)은 1900년부터 2006년까지 전 세계에서 정치적 저항 운동의 데이터 집합을 모았고, 비폭력 저항 운동은 4분의 3이 성공한 데 반해 폭력적인 저항 운동은 고작 3분의 1만이 성공했음을 발견했다." 간디와 킹은 옳았지만, 데이터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폭력적인 반정부 집단이나 테러 집단에 가담해야겠다는 충동은 정의로운 전쟁이 있을 수 있다는 정의 전쟁론(just war theory)보다는 남자들사이의 유대감에 더 크게 기인하지만, 전투원들은 대부분 더 좋은 세계를 만들고자 한다면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 듯하다. 폭력적인 전략이 부도덕할 뿐 아니라 효과마저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체노웨스와 스테판의 책을 나무 상자에 담아 분쟁 지역에 투하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급진적인 집단의 지도자 중에는 많이 배운 사람이 많으며 몇 해 전에 접한 학자들의 책을 읽고 그렇게 격앙해 있다.), 말단 병사들 가운데서도 대학에 다니면서 폭력 혁명의 필요성에 관한 통념을 흡수한 사람이 드물지 않다." 표준적인 대학 커리큘럼에서 카를 마르크스나 프란츠 파농의 책을 줄이고 정치 폭력에 대한 정량 분석을 더 많이 넣는다면 장기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 P610

지금 휴머니즘이라고 불리는 운동이 성장하면서 의미와 윤리를 떠받치는 초자연적이지 않은 기초를 다지고 있다. 그 기초는 바로, 신 없는 선(good without God)이다. 휴머니즘 운동의 목표는 1933년부터 세 번에걸쳐 선언되었다. 2003년에 나온 ‘제3차 휴머니즘 선언(Humanist ManifesteII)‘은 아래와 같이 단언한다.

세계의 지식은 관찰, 실험, 이성적 분석을 통해 획득한 성과물이다. 휴머니스트는 과학이야말로 이 지식을 결정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자 문제를 해결하고 유익한 기술을 개발하는 최고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또한사상, 예술, 내적 경험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고, 각각의 주제를 비판적 지성으로 분석하는 것이 가치 있음을 인정한다.
인간은 본래 자연의 일부분이며 어떤 안내도 없이 진화적 변화를 거친 존재이다. 우리는 이 삶이 전부이자 끝이라고 인정하며 있는 그대로의 것과우리가 바라거나 상상하는 것을 구분한다. 우리는 미래의 도전을 환영하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에 이끌리고 겁내지 않는다.
윤리적 가치는 경험으로 검증되었듯이 인간의 필요와 이익에서 유래했다. 휴머니스트는 인간의 환경, 이익, 관심사에 의해 빚어지고 지구 생태계와 그녀머에 펼쳐져 있는 인간의 행복 위에 가치를 세운다.
삶의 실현은 인간적인 이상에 봉사하는 개인적 참여에서 나온다. 우리는••• 강한 목적 의식으로 우리의 삶을 고취하고, 인간 존재의 기쁨과 아름다움,그 도전과 비극, 더 나아가 죽음의 필연성과 궁극성에서에서 감탄과 경외를 찾는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이며 관계에서 의미를 찾는다. 휴머니스트는 ••• 서로 돌보고 배려하는 세계, 잔인함과 그 결과가 없는 세계, 다름이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 협력으로 해결되는 세계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에 이로운 일은 개인의 행복을 극대화한다. 진보적인 문화는 생존만을 위한 잔인한 상황에서 인류를 해방하고자 힘써 왔고, 고통을 줄이고, 사회를 개선하고, 지구 공동체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 P620

스피노자의 금언은 분류 원리상 도덕성의 세속적 기초를 공평성(Impartiality)에서 찾자는 생각이 담겨 있다. 즉 대명사 나(Iand me)에는내 이익이 당신이나 그 누구의 이익보다 우선이라는 것을 정당화할 수있는 마술적인 힘이 전혀 없다는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일 내가 강간, 폭행, 굶김, 살해를 당하는 것에 반대한다면, 나 또한 당신에게강간, 폭행, 김, 살해를 가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공평성은 도덕성을 ‘이성적 근거‘ 위에 놓고자 하는 많은 시도를 떠받쳐 준다. 스피노자의 영원의 관점, 홉스의 사회 계약, 칸트의 정언명령, 롤스의 무지의 베일, 네이글의 아무 데도 아닌 곳에서의 관점(veiw from nowhere), 로크와 제퍼슨이 제시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자명한 진리, 그리고물론 황금률과 수많은 도덕 전통에서 재발견되는 귀중하고도 엄정한그 이형들이 그런 시도였다. 은률은 "너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마라"이고, 백금률은 "남들이 너에게 바랄 만한 일을 남들에게 하라."이다. 은률과 백금률은 마조히스트, 자살 폭탄 테러범, 취향의 차이 등 황금률의 난제를 예상하고 만들어졌다.) - P622

휴머니즘은 다양한 문화를 가진 합리적인 사람들이 모여 잘 지낼 필요가 있을 때 도달하게 되는 도덕률이지만 그럼에도 절대 무미건조하거나 달콤하기만 한 최소 공통 분모가 아니다. 도덕성은 인간 번영의 극대화에 있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두 가지 대안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첫째는 유신론적 도덕관이다. 도덕성의 핵심은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고, 신의 명령은 초자연적인 보상과 처벌을 통해 이 세계나 사후 세계에서 집행된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낭만적 영웅주의, 즉도덕성은 한 개인이나 민족의 순수성, 진정성, 위대함에 있다는 생각이다. 낭만적 영웅주의는 19세기에 처음 명확히 표명되었지만,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네오파시즘, 신반동주의 (neo-reaction, 반자유, 반계몽, 애국주의,
백인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극우 운동으로, 검은 계몽주의(Dark Enlightenment)라고도 한다. 옮긴이), 알트라이트(AltRight, 극단적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온라인 기반 보수주의 운동 옮긴이)처럼 새로 출현하는 운동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지식인이 휴머니즘의 이 대안들을 드러내놓고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거기에는 인간 심리의 생생한 진리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인간에게는 유신론적, 종교적, 영웅적, 혹은 종족적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휴머니즘은 틀리지는 않지만 인간 본성을 거스른다고 그들은 말한다.
휴머니즘 원리에 기초하면 어떤 사회도 오래가지 않는다고. 세계 질서는말할 것도 없고. - P6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자신이 믿는 정치 성향에 가장 크게 휘둘린 응답자는 지성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잡지들은 이 실험 결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과학적 발견: 정치 성향이 우리의 수학능력을 망가뜨린다", "정치는어떻게 우리를 멍청하게 만드는가"
연구자라고 면죄부를 가진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도 자신이 정적의편향을 입증하고자 할 때 자기 편향에 걸려 넘어지고는 한다. 이 오류를 편향 편향(bias bias)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마태복음 7장 3절은 이렇게 꾸짖는다.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수주의자들이 더 적대적이고 공격적이라는 점을 입증하겠노라면서 얼마 전에 사회 과학자 3명(대단히 리버럴한 분야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연구를 했는데, 결국 양쪽의 이름이 바뀐 것을 깨닫고 연구를 철회할수밖에 없었다. 더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쪽은 사실 리버럴이었다. 보수가 진보보다 기질적으로 더 편향되어 있고 더 완고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연구가 많이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테스트 항목을 입맛에맞게 고른 편향된 것들이었다." 보수주의자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더 많은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리버럴들은 독실한 기독교인에게 더욱더 많은 편견을 갖고 있다. 또한 보수주의자들은 학교에서기독교 기도를 허용하는 것에 호의적이지만, 리버럴들은 학교에서 이슬람 기도를 허용하는 것에 호의적이다. - P547

세계를 이해할 때 확률을 꼼꼼하게수정하는 것이 박식한 현자들의 선언이나 사상 체계에 고취된 이야기보다 더 믿을 만한 길잡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 등에 죽비를내리쳐서 더 겸손하고 열린 마음을 갖게 하는 것 외에도 1년, 5년, 10년단위로 돌아가는 역사의 작용을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건들을 결정하는 것은 무지막지한 법칙과 장엄한 변증법이라기보다는 사건의 가능성을 점증시키거나 점감시키는 무수히 많은 작은 힘들이다. 수많은 지식인들과 모든 정치 이데올로그들에게는 애석하게도 이것은 그들에게 익숙한 사고가 아니겠지만, 우리는 테틀록의 방식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것이다. 공개 강의 자리에서 예측의 본질이 뭐냐는 질문이 나오자 테틀록은 이렇게 대답했다. "2515년의 청중이 2015년의 청중을 돌아볼 때 우리가 정치적 논쟁을 판단하는 방식을 보고 그들이 느끼는 경멸의 수준은 우리가 1692년 세일럼의 마녀 재판을 접했을 때 느끼는 경멸의 수준과 대략 비슷할 겁니다. 이렇게 테틀록은 자신의 변덕스러운 예측에 확률을 매기는 대신에 안전하게 긴 시한을 부여했다. 예측이 가능한 5년 이내에 정치적 논쟁의질이 얼마나 개선될지를 예측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오늘날 공론장에서 이성의 주된 적은 무지, 수맹, 인지 편향이 아니라 정치화(politicization)인데, 그것은 지금 확산일로에 있다. - P560

오늘날 이성의 활동을 방해하고 있는 두 가지 정치화 중 대학의 정치화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이 정치적 양극화인데, 그 이유는 명백하다. 학문적 논쟁은 걸려 있는 것이 적기 때문이다. (이 인기 있는 경구는 처음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반대로 정치적인 논쟁에 걸린 이해관계는 지구의 미래를 포함해 무진장하다. 교수들과달리 정치인들은 권력이라는 지레를 사용한다. - P565

요즘 많은 방송 기자들이 팩트체크의 횃불을 들었고 이제 생방송 인터뷰 도중에 정확성을 주제로 후보자들을 심문한다. 유권자들은 사실에 기초한 듯 보이는 진술이 정확한지 어떤지를 따지는 것이 편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해 초에 미국 언론 재단이 발표한 조사에서는 미국인 10명 중8명 이상이 정치적 팩트체크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실 기자들에게 종종 듣는 말에 따르면, 토론이나 이목을 끄는 뉴스가나간 뒤에 아주 많은 사람이 팩트체크를 클릭하기 때문에 언론사들이 팩트체크를 강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많은 독자가 팩트체크도 전통적인 뉴스의 일부로 자리잡기를 원하고 뉴스가 사실이 의심스러운 주장을 되풀이하면 옴부즈맨과 독자 대표에게 소리 내어 불평한다.

유언비어가 수시로 소수 민족 학살, 린치, 전쟁에 불을 붙이던 시대에(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 1964년 베트남 전쟁, 2003년 이라크 침공, 그밖의 수많은 전쟁)이런 윤리가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2016년에는 트럼프의 승리를 막을 만큼 엄밀히 적용되지 않았지만, 이후로 그와 그의 대변인들의 사소한 거짓말들은 언론과 대중 문화의 무자비한 조롱을 피하지못했다. 진실을 옹호하는 장치가 비록 항상 승리하지는 못해도 늘 가동되고 있다는 뜻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성의 여러 제도는 믿음 공유지의 비극을 누그러뜨리고 진리를 승리로 이끈다.  - P567

 믿음을 지닌 사람들은정체성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더 완고해지고, 도전에 응수하고자 더많은 탄약을 그러모은다. 하지만 우리 마음의 다른 부분은 개인과 실재를 계속 접촉시키기 때문에, 반증이 쌓이는 만큼 부조화가 증가하고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균형을 잃고 생각이 바뀌는데, 이 현상을 정서적 전환점(affective tipping point)이라고 부른다. 그 전환점은 견해를 포기하면 당사자의 평판이 얼마나 떨어질지와 반증이 일반 상식처럼 뻔하고 공공연한지(‘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모두가 알고 있는 문제인지)의 균형에 달려 있다.
- P5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포퓰리즘에는 좌파형 변종과 우파형 변종이 있고, 양쪽 모두 제로섬 경쟁 같은 경제학의 통속 이론을 믿는다. 좌파의 경우에는 경제적 계급 간에 제로섬 경쟁이 발생하고, 우파의 경우에는 국가나 민족 간에 제로섬 경쟁이 발생한다고 본다. 이들에게 문제는 무정한 우주에서 우리가 불가피하게 마주하게 되는 도전 과제가 아니라 사악한 엘리트, 소수자, 혹은 외국인의 악질적인 계획으로 보인다. 진보에 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포퓰리즘은 미국이 동질적인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던 시대, 문화와 종교의 전통적 가치가 득세하던 시대, 농업과 제조업이 경제를 이끌면서 국내 소비와 수출을 위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하던 시대를 그리워한다. - P510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Nate Silver, 1978년)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통계 분석은 몹시 까다로워서, 때로는 결과가 페이지 밖으로 뛰어내리고는 한다" 그의 분석 결과는 지면에서 튀어나와 헤드라인이 되었다. "소득이 아니라 교육이, 누가 트럼프에게 투표할지 예측했다. 왜 교육이 중요할까? 두 가지 따분한 설명은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 주로 리버럴한 정치 집단에 가세하고, 현재 소득보다는 교육이 경제적 안정성을 더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인자라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설명은 교육이 성년 초기의  사람들을 다른 인종과 문화에 노출시켜 그들을 악마화하기 어렵게한다는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교육이 제 역할을 잘 수행할 때, 사람들은 예방주사를 맞은 것처럼 검증된 사실과 근거 있는 주장을 존중하고, 마치 항체가 생긴 듯 일화와 감정적 선동에 기초한 음모론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 P518

계몽 운동이 시작되고 과학이 발명된 이후로 우리는 해마다 파괴한 것보다조금 더 많은 것을 창조해 왔다. 하지만 그 몇 퍼센트의 긍정적 차액이 몇십(진보)는 자신을 감추는 행년에 걸쳐 이른바 인간의 문명을 구축했다.
위라서 돌이켜볼 때만 눈에 보인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나의 커다란 낙관은 역사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단기적인 후퇴를 장기적인 진전과 조화시키고 역사의 흐름을 인간의 행위와 조화시키는 건설적인 의제를 귀에 쏙 들어오는 이름으로 표현하는 데 서툴다. ‘낙관주의‘는 별로 옳지 않다. 사정이 언제나 나아지리라는 믿음은 사정이 언제나 나빠지리라는 믿음보다 더 합리적일 게 없다. 켈리는 progress(진보)와 process(과정)의 앞글자 pro-를 가져와 "프로토피아(protopia)"라는 이름을 제안한다. 다른 이들은 "비관주의적 희망(pessimistic hopefulness)", "낙관적 현실주의", "급진적 점진주의(radicalincrementalism)"를 제안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름은 낙관주의자인지를 묻는 질문에 한스 로슬링이 내놓은 답에 있다. "나는 낙관주의자가 아닙니다. 나는 아주 진지한 가능주의자 (possibilist)입니다." - P5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약국

헨리 키터리지는 오랫동안 이웃 마을에서 약사로 일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여름날 약국으로 이어지는 큰길로 들어서기전 마지막 구간의 가시덤불에서 야생 라즈베리가 송알송알알이맺힐 때나,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약국으로 차를 몰았다.
은퇴한 지금도 그는 여전히 일찍 일어나 예전에 그런 아침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떠올렸다. 마치 세상이 혼자만의 비밀인 듯이. - P9

아직 사춘기의 신체적 특징이 나타나진 않았지만 아들이 별안간 눈에 띄게 퉁명스러워진 참이어서 아들의 기분이 독기운처럼 공기 중에 퍼지고, 올리브도 크리스토퍼만큼이나 변하고 또 변덕스러워 보이던 때였다. 모자는 순식간에 격렬히 싸우다가도 그 분노는 이내 무언의 친밀감처럼 둘을 감싸버려 영문을 알 길 없는 헨리만 멍하니 따돌림을 받는 기분이 되었다. - P13

 그러나 헨리는 온건파가 우세하다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언젠가 남편과 진정한 가정을 꾸리는 것만을 꿈꾸는 여자와 매일 약국에서 일했다. "저는 여성 해방 따윈 관심없어요." 데니즈가 헨리에게 말했다. "저는 집을 갖고, 침대를 정돈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렇지만 헨리 키터리지에게 딸이 있다면 (그는 딸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생각했다) 그는 이런 생각에 대해 주의를 주었을 것이다.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좋아, 침대를 정돈하렴. 하지만 머리를 쓸 방법을 찾아야지. 하지만 데니즈는 그의 딸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가사를 돌보는 것도 고귀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피붙이가 아닌 사람을 보살필 때 느끼는 자유로움이 어떤것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 P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