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에는 좌파형 변종과 우파형 변종이 있고, 양쪽 모두 제로섬 경쟁 같은 경제학의 통속 이론을 믿는다. 좌파의 경우에는 경제적 계급 간에 제로섬 경쟁이 발생하고, 우파의 경우에는 국가나 민족 간에 제로섬 경쟁이 발생한다고 본다. 이들에게 문제는 무정한 우주에서 우리가 불가피하게 마주하게 되는 도전 과제가 아니라 사악한 엘리트, 소수자, 혹은 외국인의 악질적인 계획으로 보인다. 진보에 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포퓰리즘은 미국이 동질적인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던 시대, 문화와 종교의 전통적 가치가 득세하던 시대, 농업과 제조업이 경제를 이끌면서 국내 소비와 수출을 위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하던 시대를 그리워한다. - P510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Nate Silver, 1978년)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통계 분석은 몹시 까다로워서, 때로는 결과가 페이지 밖으로 뛰어내리고는 한다" 그의 분석 결과는 지면에서 튀어나와 헤드라인이 되었다. "소득이 아니라 교육이, 누가 트럼프에게 투표할지 예측했다. 왜 교육이 중요할까? 두 가지 따분한 설명은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 주로 리버럴한 정치 집단에 가세하고, 현재 소득보다는 교육이 경제적 안정성을 더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인자라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설명은 교육이 성년 초기의 사람들을 다른 인종과 문화에 노출시켜 그들을 악마화하기 어렵게한다는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교육이 제 역할을 잘 수행할 때, 사람들은 예방주사를 맞은 것처럼 검증된 사실과 근거 있는 주장을 존중하고, 마치 항체가 생긴 듯 일화와 감정적 선동에 기초한 음모론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 P518
계몽 운동이 시작되고 과학이 발명된 이후로 우리는 해마다 파괴한 것보다조금 더 많은 것을 창조해 왔다. 하지만 그 몇 퍼센트의 긍정적 차액이 몇십(진보)는 자신을 감추는 행년에 걸쳐 이른바 인간의 문명을 구축했다. 위라서 돌이켜볼 때만 눈에 보인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나의 커다란 낙관은 역사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단기적인 후퇴를 장기적인 진전과 조화시키고 역사의 흐름을 인간의 행위와 조화시키는 건설적인 의제를 귀에 쏙 들어오는 이름으로 표현하는 데 서툴다. ‘낙관주의‘는 별로 옳지 않다. 사정이 언제나 나아지리라는 믿음은 사정이 언제나 나빠지리라는 믿음보다 더 합리적일 게 없다. 켈리는 progress(진보)와 process(과정)의 앞글자 pro-를 가져와 "프로토피아(protopia)"라는 이름을 제안한다. 다른 이들은 "비관주의적 희망(pessimistic hopefulness)", "낙관적 현실주의", "급진적 점진주의(radicalincrementalism)"를 제안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름은 낙관주의자인지를 묻는 질문에 한스 로슬링이 내놓은 답에 있다. "나는 낙관주의자가 아닙니다. 나는 아주 진지한 가능주의자 (possibilist)입니다." - P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