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훑어보기라는 개념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첫 번째경우는 선형(線形)의 훑어보기다. 이 경우 독자는 텍스트의 첫머리에서시작하여 여러 줄 혹은 여러 페이지를 건너뛰며 끝을 향해 나아가는데, 물론 끝에 이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두 번째 경우는 순환형의 훑어보기로서, 독자는 페이지 순에 따라 독서를 하는 게 아니라 작품속을 산책하듯 책을 읽는데, 때로는 맨 끝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이방식이 첫 번째 방식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것도 우리가 책과 맺는 흔한 관계 양식의 하나이며, 그렇게 읽은독자라고 해서 그의 견해를 속단해서는 안 된다.
한데 책을 이런 식으로 파악하는 일은 독서와 비독서의 차이, 혹은 독서에 대한 관념 자체를 상당히 뒤흔들어버린다. 어떤 책에 대해 일정 시간을 보낸 사람들, 말하자면 그 책을 완전히 읽지는 않고 몇 시간정도 뒤적거린 사람을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하는가? 그들이 자신이 접한 책에 대해 말할 때, 과연 우리는 그들이 책을 읽지도 않고 말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무질의 사서처럼 책 주변에만 머무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책을 깊이 탐독하되 그 책의 위치를 정하지 못하는 사람과, 어떤 책 속으로도들어가지 않으면서 모든 책 속을 돌아다니는 사람 중 과연 어느 쪽이더 나은 독자인지 자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앞으로는 점점 더 그렇게 되겠지만, 무엇이 비독서이고 무엇이 독서인지를 명확히 규정하기란 어렵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하나의 주어진 문화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는 책들의 경우, 참으로 그것들을 읽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독서와 비독서의 중간 영역에위치하고 있는 것 같다. - P55

한데 발레리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각각의 책 앞에서도 동일한 태도를 채택하여, 그 책에 대한 전체적 시각-이는 책들 전체에 대한시각과 연관되어 있다을 갖도록 부추긴다. 이러한 관점의 추구는 책의어떤 대목에 빠져 길을 잃지 않고 책과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만 가능하며, 그래야만 책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 P57

 이는 곧 그 책이 아무리 독창적이고 스캔들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고립된 오브제가 아니라 다른 모든 책과 마찬가지로 앞에서 내가 언급한 그 집단도서관 전체에 참여하며 그 속에 통합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호르헤가살인을 결심하는 이유도 바로 그 책이 이 집단도서관에 참여하여 도서관의 기반 자체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그 책은 수도원의 도서관을 위협한다. 왜냐하면 그 책은 점점 더 많은수도사들을 소위 문화로 일컬어지는 발견과 타락의 장(場) 쪽으로 이끌고 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호르헤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제2권이 그런 실재하는 도서관만이 아니라 인간들의도서관 전체를 위험에 빠트린다고 본다. 성경을 비롯하여 이 도서관의다른 모든 책들에 대한 독서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책 때문에 수정될거라는 것, 즉 책들의 무한 연쇄 속에 연결되어 있는 다른 모든 책들의위치를 이동시켜버릴 수 있는 힘이 그 한 권의 책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 P70

그런 담론들 중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과 나누는 담론 역시 가벼이볼 수 없는 지위를 갖는다. 책에 대한 우리 자신의 담론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시키고 그들의 말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독서를 시작하는 즉시, 아니, 그 이전부터 이미 우리는 책들에대해 우리에게 말을 하기 시작하며 먼저 우리의 마음속으로, 뒤이어 다른사람들과 함께, 그런 연후에는 영원히 가정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진짜 책은 저 멀리 치워버리고서 바로 그 담론들과 견해들만 상대하게되는 것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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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시오는 이러한 에피소드에서 전일론적으로 마음을 그려 내며 감정에 2개의 범주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중 하나는 선천적 혹은 본능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감정으로 일차 감정이라고 한다. 일차 감정에는 특정한 기초 자극들에 대한 인식 외에는 의식적 활동이 거의개입되지 않는다. 그것은 동물의 본능 행동을 연구하는 이들이 부르는 일종의 "해발인" 이다. 즉 이미 프로그램된 행동이 "해발" 하는 식으로 작동된다. 예를 들어 성적 유혹, 시끄러운 잡음. 커다란 물체의 갑작스러운 출현, 뱀이나 뱀 같은 모양을 한 기다란 물체의 꾸불거리는 움직임 등은 인간에게 일차 감정을 유발하는 자극들이다. 이 모든 자극이 심장마비와 연관되어 있다. 이런 일차 감정들은 인류의 척추동물 조상 때부터 시작되어 변화를 거의 겪지 않고 보존되어 온 형질들이다. 이것들은 변연계의 회로들을 통해서 활성화되는데 그 회로들 중에서 편도체가 통합 · 중계 중추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이차 감정들은 개인적인 삶의 사건들에서 유발된다. 옛 친구를 만나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진급을 하거나 모욕감에 시달리는 것등은 일차 감정의 변연 회로들을 발화시키기는 하지만 대뇌 피질에서 이뤄지는 최상의 통합 과정들이 개입된 후에라야 비로소 변연 회로들을 건드린다. 우리는 누가 친구인지 혹은 적인지를 알아야 하고왜 그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이런 해석을 받아들이면 황제의 격노와 시인의 환희가 인간 이전의 영장류를 추동한 감정 장치가 문화적으로 세련된 방식으로 작동한 결과일 뿐임을 알게 된다. 다마시오는 "땜장이 자연은 일차 감정과 이차 감정들을 표현하는 기제를 독립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차 감정들은 일차감정들의 감정 통로를 사용한다." 라고 말한다. - P212

우리가 의미意味(meaning)라고 부르는 것은 심상心像(imagery)을 확장하고감정을 개입시키며 확산되는 흥분을 통해서 창조된 신경망들 간의 연관이다. 그렇다면 의사 결정(decision making)은 시나리오들 간의 경쟁적 선택을 지칭할 것이다. 승리한 시나리오는 그에 따른 감정의 종류와 강도를 결정한다. 감정의 일정 형태와 강도가 바로 기분氣分(mood)이다. 창조성(creativity)은 새로운 시나리오들을 생산하고 그중 가장 효과적인 것을 고르는 뇌의 능력이며 현실성과 생존 가치를 결여한 시나리오들을 계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망상妄想(insanity)이다. - P213

그러나 어떤 이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과학적 사실과 예술은 결코 서로 번역될 수 없다고 말이다. 사실 이러한 반응은 전통적인 지혜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틀렸다고 믿는다. 결정적인 연결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과학과 예술의 공통 속성은 정보의 전달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과 예술의 전달 양식이 논리적으로는 동등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실험을 상상해보자. 앞에 이야기한 메리 같은 학자가 주도하는 연구진이 뇌 활동의 시각 패턴으로부터 그림 모양의 언어를 만든다. 그 결과는 한자(漢字) 같은 기호가 늘어서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각각의 기호는 존재자, 과정, 혹은 개념을표상한다. 그리고 "마음 대본"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새로운 기록이다른 언어들로 번역된다. 이것을 유창하게 읽어 낼수록 마음 대본은 뇌 영상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읽혀질 수 있다. - P217

따라서 인간 사고에 대한 단순한 결정론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사고 과정은 명확한 인과 관계를 통해 몸과 분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물리 법칙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이렇게 개인의 마음을 완전히 파악하고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의 자아는 계속해서 자기 자신이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그리나쁘지 않다. 오히려 자유의지에 관한 우리의 확신은 생물학적 측면에서 적응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확신이 없다면 마음은 숙명론에 옥죄어 퇴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기체의 시공간에서, 그리고 인식할 수 있는 자아에 실제로 적용되는 면에서 마음은 자유 의지를 가진다. - P222

문화는 공동의 마음에 의해 창조되지만 이때 개별 마음은 유전적으로 조성된인간 두뇌의 산물이다. 따라서 유전자와 문화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연결은 유동적이다. 얼마나 그런지는 불명확하지만 말이다. 또한 이 연결은 편향되어 있다. 즉 유전자는 인지 발달의 신경 회로와 규칙적인 후성 규칙(後成規則,
epigenetic rules)을 만들어 내고 개별 마음은 그 규칙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조직한다. 마음은 태어나서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성장한다. 물론 자기 주변의 문화를흡수하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그런 성장은 개체의 두뇌를 통해 유전된 후성 규칙들의 안내를 받아 이뤄진다. - P232

어떤 이들은 주변 문화와 환경에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하도록 해 주는 후성 규척들을 대물림한다. 그리고 그런 규칙을 전혀 갖지 않은 사람이나 있어도 약한 규칙을 가진 이들은 생존과 번식에서 밀려난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좀 더 성공적인 후성 규칙들은 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그 규칙들을 규정하는 유전자들과 함께 개체군 내에서 널리 퍼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간 두뇌의 해부 생리적 구조가 진화해 왔듯이 행동도 자연선택에 의해 유전적으로 진화해 왔다.
뱀은 인류 진화의 전 기간을 통해 거의 모든 사회에서 죽음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몽사와 뱀의 상징들은 인류로 하여금 뱀에 더 큰주의를 기울이도록 만들었는데 이 모든 것들은 명백히 생존의 기회를 향상시키는 것들이다.
유전적 속박의 본성과 문화의 역할은 이제 다음과 같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어떤 문화 규범은 경합하는 다른 규범들보다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한다. 이 때문에 문화는 유전적 진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화하지만 그 속도는 일반적으로 훨씬 더 빠르다. 문화적 진화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유전자와 문화 사이의 연결은더 느슨해진다. 하지만 그런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는 법은 없다. 문화는 정확한 유전적 처방 없이 고안되고 전달되는 정교한 적응들을 통해 환경 변화에 빠르게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 P233

각 세대마다 부모의 염색체와 유전자는 한데 섞여 새로운 혼합체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런 재배열이 그 자체로 진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진화에도 일관된 원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자연선택이 바로 그런 힘이다. 특정한 해부학적 구조, 생리, 행동을 규정하는 유전자들 때문에 그 개체가 생존과 번식을 더 잘하게 된다면 그 유전자들은 다음 세대에서 점점 많아질 것이다. 반면 그렇지못한 유전자들은 사라질 것이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생존과 번식을 더 잘하는 개체군도 경쟁하는 다른 개체군들에 비해 더 번성한다.
심지어 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비인격적인 힘이 현재의 우리를 만들었다. - P235

 침팬지의 발명은 어떤 관점에서 봐도 문화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여전히 증거가부족한 형편이다. 침팬지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침팬지들이 도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볼 때 좀 더 빨리 도구를 사용하게 된다는 연구 보고는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도구 사용에 필요한 정확한 동작을 좀처럼 흉내 내지 못하기도 하고 그런 행동의 목표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같지도 않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침팬지가 도구 사용 맥락에서른 동료들의 행위를 지켜보는 것은 좀 더 대단한 활동에 동참하는 행동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적 촉진 행동(social facilitation)‘이라고 불리는 이런 종류의 반응은 사실 개미, 새 그리고 포유동물 등과 같은여러 종류의 사회성 동물들에서 흔히 나타난다. 그들의 주장처럼 주변에 널려 있는 재료들을 시행착오적으로 조작해 보는 침팬지의 행동이 이 사회적 촉진 행동과 맞물려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아프리카 개체군 내에서 침팬지의 도구 사용 행위를 이끌어 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증거는 부족하다.
반면 인간의 아기는 속도와 정확도 면에서 모방의 귀재이다. 그들은 태어난 지 40분 만에 혀를 불쑥 내밀며 어른의 움직임을 따라 머리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인다. 12일이 지나면 그들은 복잡한 얼굴 표정과 손동작을 흉내 낸다. 두 살이 되면 말로 하는 설명을 알아들으며 단순한 도구를 사용한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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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코니랑 다투기도 하니?"
"엄마, 그 얘기는 안 할래요.
"내가 묻고 싶은 한 가지가 왜 그건지 궁금하겠지. 아주 조금이라도 궁금하지 않아?"
"아뇨."
"다퉈야 하는 거야. 다투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거라고."
"아, 그럼 엄마랑 아빠는 잘못된 게 하나도 없는 거네요."
"하하하! 아주 재미있구나, 조이."
"왜 다퉈야 해요? 사람들이 다투는 건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해서 그러는건데."
" 아니지. 사람들이 다투는 이유는 서로 사랑하지만 각자 독립적으로 개성을 가지고 있고 현실 세계에서 살기 때문이야. 물론 지나치게 많이 다투는건 좋지 않지만."
"그렇죠 딱 적당할 정도로 싸워야죠. 알아들었어요."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면 왜 그런지 너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것뿐이야.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하고 말이야."
"아니, 엄마, 미안하지만 그 얘긴 그만하죠"
"아니면 상대방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건 아닌가 스스로 물어봐야 해.
무슨 말인지 알겠니?" - P512

그러던 어느 날 CNN을 시청하던 조이는 팔루자에서 미국의 트럭 및 대가 망가져 기습 공격을 받고 계약직 운전사들이 폭도들에게 난자당했다는보도를 보았다. CNN 화면에서 A10은 보이지 않았지만, 조이는 너무 불안해서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들지 못했다. 조이는 몇 시간 후 말짱한 정신으로 말 그대로 아기처럼 단잠을 자는-세상 물정 모르고 평안하고 달게 자는-아내 옆에서 잠이 깼고, 아침에 아빠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조이는 아빠에게 전화를 하는 지금만큼 두려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자기에게 어떻게 하라고, 고발을 하고 대가를 치를 것인지, 아니면 입 다물고 돈이나 챙길 것인지 조언을 해줄 사람은 아빠 말고는 아무도 없으며, 그 누구도 자신을 구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코니는 조이를 너무 무조건적으로 사랑했고, 엄마는 객관적이지 못했으며, 조너선은 가족이 아니었다. 자초지종을 털어놓아야 할 대상은 엄격하고 원칙론자인 그의 아빠뿐이다. 조이는 평생 아빠에게 대항해왔지만, 이제 자기가 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가 온 것이다. - P578

침대에 누워 소음이 주는 고통을 견뎌냈다. 왜 이 사람들은 조용히 하지못하는 걸까? 조용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 세상을 왜 소리로 공격해야 할까? 소음은 계속됐다. 그 소음은 열병을 야기했는데 월터 말고는 모두면역이 돼 있는 열병인 것이 분명했다. 자기 연민의 소외감이라는 열병. 그날 밤은 월터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그는 대중의 고함소리를 혐오하게 됐고, 이상하게 야외 활동도 피하게 됐다. 월터는 마음을 열고 자연으로 돌아왔지만, 엄마의 나약함이 그를 실망시켰듯이 자연 또한 그를 실망시켰다. 자연은 시끄러운 멍청이들에게 너무 쉽게 굴복했다. 월터는 자연을 사랑했지만 단지 추상적으로 좋아했고, 훌륭한 소설이나 외국 영화를사랑하는 것 이상은 아니었으며, 나중에 패티와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보다못한 사랑이었다. 그래서 월터는 그 후 20년 동안 도시인이 됐다. 쓰리엠사를 그만두고 자연보존협회에서 일할 때도, 청솔산 신탁기금에서 일할 때도 월터의 주된 관심사는 자연을 미치처럼 버릇없는 사람들로부터 보호하는일이었다. 월터가 자기가 보존하고자 하는 서식지에 사는 동물에게 애정을가진 건 자신의 감정이 투영된 행동이다. 시끄러운 인간들에게 방해받지않고 살고 싶다는 점에서 그 동물에게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 P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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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입장의 지혜로움은 진정한 교양은 완전성을 지향해야 하며 국소적인 지식의 축적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전체라는 관념에중요성을 부여한다는 데 있다. 더욱이 그러한 전체성의 추구는 개개의책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한다. 책의 개별성을 넘어 그 책이 다른 책들과맺는 관계들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독자라면 바로 그 관계들을 파악하고자 해야 한다는 것을무질의 사서는 잘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많은 동료들처럼 책들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책들에 관한 책들에 관심을 갖는다. - P29

교양을 쌓은 사람들은 안다. 불행하게도 교양을 쌓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나, 교양인들은 교양이란 무엇보다 우선 ‘오리엔테이션‘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교양을 쌓았다는 것은 이런 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 즉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내부는 외부보다 덜 중요하다. 혹은, 책의 내부는 바로 책의 외부요, 각각의 책에서 중요한 것은 나란히 있는 책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31

이런 식으로 해서 어떤 책은 우리 인식의 장으로 들어오는 즉시 낮선 책이 아니게 되며, 그 책의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해도 그 책을꿈꾸거나 그것에 대한 토론을 하는 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호기심과 교양을 갖춘 사람은 책을 펼쳐보기도 전에, 책의 제목이나 표지를 한 번 흘깃 보는 것만으로도 일련의 이미지와 인상들을 떠올리게되며, 이 이미지와 인상들은 일반 교양이 책들 전체에 부여하는 표상의 도움을 받아 곧 최초의 견해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책을그런 식으로 극히 일과적으로 만났을 뿐 영원히 그 책을 펼쳐보지 않는다 할지라도 비독서자에게 그 만남은 진정으로 그 책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단초가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볼 때 처음 만나는 순간 곧바로 낯선책이라는 지위를 잃게 되지 않는 책은 없는 것이라 할수 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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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복잡성 이론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패러다임 중 하나인 ‘혼돈의 가장자리 (edge of chaos)‘에 대해 생각해 보자. 자연 세계에는 크리스털 결정과 같이 완벽한 내적 질서를 함유하고 있어서 더 이상의 변화가 생겨날 수 없는 체계들이 존재한다. 반면 끓고 있는 물과같이 질서를 찾아보기 힘든 혼돈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가장 빠르게 진화할 체계는 양극단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게 되는데 정확히말하면 혼돈의 가장자리에 위치하게 된다. 혼돈의 가장자리에 놓인이 체계는 질서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작은 집단 속에서나 단독으로 쉽게 변화될 수 있도록 느슨하게 연결된 부분들을 그 속에 포함하고 있다. - P171

그때가 되면(나는 그때가 오리라 믿는다.) 우리는 생물학에 관해 참된 이론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론은 현대 생물학에 넘쳐나는 상세한 묘사들과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그 원리들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 그리고 생태계를 탐구하는 데 가속 페달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그중 생태계는 개체들로 구성된 가장 복잡한 체계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을 꽤나 괴롭힐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분자와 원자를 일일이 시뮬레이션해 보지 않고도 살아 있는 개체를 완벽하게 재편할수 있는 일반적 조직 원리가 존재하는가? 둘째, 이 동일한 원리가 마음과 행동 그리고 생태계에도 적용될 것인가? 셋째, 물리학과 수학의 관계처럼 생물학의 자연 언어로 기능할 만한 수학이 존재하는가? 넷째, 올바른 원리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원하는 모델에 그 원리를 적용하려면 얼마나 상세한 사실 정보가 필요한가? 이 모든 문제들에대해서 오늘날 우리는 마치 어둠 속에서 안경을 끼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성경적 예언이 성취되는 ‘그날‘이 오면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직접 대면하게 될 것이고 아마도 이 난제들에 대한 해답을 분명히보게 될 것이다. 어쨌든 대답을 찾기 위한 이런 시도는 인간 지력(知力)의 한계에 대한 일종의 시험이다. - P180

지식의 통일성 - 미로의 실재에 대한 믿음은 궁극적으로 모든 정신 과정이 물리적 기초를 가지고 있으며 그 과정이 자연과학에 잘 부합한다는 가설에 근거해 있다. 마음(mind)은 우리가 알고 있으며 알수 있는 모든 것들이 창조된 장소이다. 이런 기본적이면서도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심오한 사실 때문에 마음은 통섭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 P183

‘진화적 진보‘를 언급하는 일은 작금의 학계에서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 되었다. 나도 인정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잉크를 허비하게 한 딜레마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의미 구분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진보를 미리 정해진 목표를향해 전진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면 그런 목표가 없이 진행되는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하지만 복잡성과 개체와 사회에 관한 통제력이 적어도 몇몇 계통들에서 점점 증가하는 것을 두고진보라고 한다면 퇴보의 가능성을 인정하더라도 진화는 엄연히 진보일 수 있다.  - P186

만일 인간이 신생아일 때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뇌를 가졌더라면 산도를 통해 나와야 하기 때문에 산모와 신생아 모두에게 무척 위험한 것이었을 게다. 심지어 어른 뇌 크기조차도 공학적으로 보았을 때 위험하다. 왜냐하면 머리는 깨지기 쉽고 그 내부에는 뼈와 살이 복잡 미묘한 방식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게다가 그 사이에 액체가 차 있기때문이다. 따라서 그 속에 있는 뇌는 손상되기 쉬울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인간은 쉽게 정신을 잃기도 하고 뇌와 관련된 장애로 고통받기도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물리적으로 폭력적인 접촉을 피하려고 한다. 우리 조상이 야만적인 힘과 지성을 맞바꾸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송곳니로 무장한 적을 붙잡고 때려눕힐 필요가 없다.
뇌의 용량이 이렇게 본래부터 제한되어 있다면 의식적 사고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고차원의 통합 체계와 기억 은행을 두개골 속을 집어넣으려면 묘수가 있어야 한다. 실현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뇌의 표면적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넓은 종이에 세포들을 뿌려 놓고 그것을 구겨서 공 모양으로 만들어 보자. 인간의 대뇌 피질은 표면적이1,000제곱인치 정도의 종이와도 같다. 그 대뇌 피질은 1제곱인치당수백만 개의 세포체로 쌓여 있고 종이접기와 같이 꾸불꾸불하게 접히고 뭉쳐져서 1리터 정도의 두개골 공동 속에 쏙 들어간다. - P198

부분들뇌 안에서 누가 혹은 무엇이 이 모든 활동들을 감시하는가? 어떤이도, 어떤 것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뇌의 어떤 영역도 그 시나리오를 볼 수는 없다. 그것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의식은 이 시나리오들로 구성된 가상 세계이다.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의 용어를 빌리자면 "데카르트의 극장과 같은 것은 없다." 다시 말하면 뇌에는 그시나리오들이 정합적인 형태로 출연하는 뇌 부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 그것은 하나도 아니다. 대신에 전뇌의 구석구석 대뇌 피질에서부터 시상, 편도체 그리고 해마와 같은 특수화된 인지 중추에 이르기까지에서 벌어지는 신경 활동의 얽힘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나의 집행 자아가 모든 정보를 수집 · 통제하는 것 같은 단일한 의식의 흐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적 사고에 순간적으로 기여했다가 사라져 버리는 뇌 활동의 다중 흐름이 존재한다. 의식은 정신 활동에 참여하는 회로가 대량으로 연결되어 있는 집합체이다. 마음은 스스로 조직하는 시나리오들의 공화국이며 이 시나리오들은 개별적으로 생겨나고 자라고 진화하며 사라진다. 그리고 때로는 새로운 사고와 물리적 행동을 지연시키기도 한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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