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한 가구들은 종종 퇴거의 힘겨운 후유증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기준 이하의 주거를 받아들이곤 한다. 비자발적인 이사를 경험한밀워키의 세입자들은 다른 저소득 세입자들보다 장기적인 주거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25퍼센트 정도 더 높았다.‘ 도린은 자신이 셰리나의 아파트에 살게 된 것은 워낙 자포자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린 여기서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어요." 퇴거는 흔히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의 이사로 이어졌다. 첫번째 이사는 퇴거 직후 살던 집을 나와 더 열악한, 때로는 위험한 주거 환경으로 떠밀리듯 이루어지고, 두 번째 이사는 이 집을 벗어나기 위해 세입자의 의도 아래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두 번째 이사는 한동안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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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건 환각이었을 뿐 비는 끝내 오지 않았다. 시냇물도 흐르지 않았다. 산불도 꺼지지 않았다. 한밤중 불붙은 그 산에서 산폭도들이 산불을 옮겨왔다. 마을은 불타고 그 이튿날 학교 운동장에 불에 탄 공비의 시체 하나가 전시되었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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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일 뿐인 어머니에 대한 이 가당찮은 반감은, 실은 마땅히가해자한테로 향해야 할 분노가 차단된데서 생긴 엉뚱한 부작용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응당 가해자의 멱살을 붙잡고 떳떳이분노를 터뜨려야 하는데,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피해자인 섬사람들은 삼만이 죽은 그 엄청난 비극을 이렇게 천재지변으로 치부해버린다.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것, 자신이 반복해서, 아무래도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당했거니 하고 체념해버린다. 허울 좋은 이념 때문에 폭동을 일으켜 살인, 방화를 일삼던 장본인들의 죽음이야 자업자득이라 하겠지만, 어째서 양민의 숱한 죽음들마저 자업자득이란 말인가. 그것을 자기 박복한 탓으로, 전생에 무슨 죄가있는 탓으로 돌리다니.
어머니의 자격지심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당신 탓으로만 여겼다. 천재지변과 같이 막강한 가해자들, 그들에게 분노나 증오를 품는다는 것은 마치 천둥벼락에 적개심을 품는 것과 다를바 없이 허망한 노릇이었다. 고향 섬 해변을 수시로 침범하여 섬여자를 약탈, 겁간, 살인을 자행하던 왜구들이 전설 속에서는 해룡(海龍)으로 묘사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가 아니었을까?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인 해룡, 해룡에게 먹히는 사람들은 다 팔자소관일 뿐, 해룡에 대한 적개심은 털끝만큼도 없다. 오직 덜덜 떨리게 두려울 따름이다. 피 묻은 흰 저고리와 시푸른 군복이문득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숨이 가빠지는 것은, 그러니까 분노도 증오도 아닌 바로 겁이었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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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의례의 기능은 중앙의 정보원으로부터 어떤 의미 meaning를 각각의 수용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각각의 수용자가 다른 수용자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인지하도록 만든다.
이런 논의는 그간 학계에서 서로 무관한 것으로 간주해 온 맥락과 연구 전통들 간에 가교를 놓음으로써 광범한 사회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공식 행사가 어떻게 통치자의 권위를 강화시켜 주는가에 대한 설명 가운데 하나는, 행사의 ‘내용‘content 이 신적 영역과 의미BR있는 연계를 창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식 행사의 ‘공지‘
publicity‘에 주목한다면 - 다시 말해 어떻게 공유 지식이 형성되는지 밝혀낸다면 - 우리는 왕실 행치royal progress", 혁명 페스티벌, 그리고프랑스혁명 이후 새로운 도량형의 수립과 같은 의례적 실천ntual practice을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다. 공식 행사는 감정을 고양시켜 행동하게 만든다고 간주되어 왔다. 반면, 우리의 논의는 ‘차가운‘ cold 합리성에 기반하고 있다. - P17

‘조정 문제‘라고 불리는 상황에서 각 개인은 다른 이들도 참여할 경우에만 집합행동에 참여하려 한다. 이 문제를 조정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단순하게 "모두 함께합시다"와 같은 메시지로 소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각 개인은 다른 사람들도 참여할 때에만 참여할 것이므로, 메시지 전달이 성공적이려면 각 개인이 그런 사실을 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그렇게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각 개인은 다른 사람들이 서로간에 그렇게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연쇄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메시지는 공유 지식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 P23

단순히 메시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의사소통이 성공할 수는 없다.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 메시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메시지에 대한 자신의 인지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안다는 데 대한 앎, 즉 ‘메타지식"metaknowledge 을 필요로 한다.
창밖의 동료가 소리칠 때, 나는 고개를 들어 나를 찾는 당신을 보았지만 당신이 나를 보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자. 나는 바깥의 신호를 보았고 당신이 밖을 내다보는 것을 확인했으므로, 당신 또한동료의 제안을 알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버스에 머물기로결정한다. 왜냐하면 내가 안다는 것은 당신이 아는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지 한 ‘단계의 메타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정에 성공하려면 모든 단계마다 메타지식이 필수적이다. 나는 고함소리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당신은 내가 고함소리를 들었음을 알아야하며, 나는 당신이 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당신도 내가 안다는 것을알아야 하며, 내가 알고 있음을 당신이 안다는 것을 내가 알아야 하는 등의 메타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말하자면 바깥의 고함이 ‘공유 지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유 지식‘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 P25

체제에 대한 저항운동은 조정 문제이다. 봉기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구속될 가능성은 낮아야 하므로, 각 개인은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할 때에 자신도 참여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국은 대중 집회, 출판물, 깃발, 심지어 낙서까지 포함해 공적 의사소통에 대해 검열을 하려든다. 그런 수단들을 통해 사람들은 메시지를 전달받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Sluka 1992: Diehl1992), 30여 년간 이집트에서 빵 한 덩어리의 값은 변하지 않았다. 1977년 사다트 대통령이 빵 값을 올리려 하자 커다란 저항이 일어났다. 그 뒤로 정부는 빵의 크기를 차츰 작게 만들고, 밀가루에다 값싼 옥수수 가루를 섞었다(Jehl 1996). 이런 전략은 개인들에 대한 기만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다. 개인들은 빵이 작아지고 맛이 달라지는 것을 인지했지만, 다른사람들도 그렇게 느끼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크기와 맛의 차이는 가격인상과 같은 공개적인 사건public event 이 아니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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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파병 소대장이었던 중호는 그것이 말이 소개이지 실은 초토작전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소개란 취약지구의 인원과 물자를후방 안전지대로 후송시킴을 뜻하는데, 이건 숫제 마을에 불을 놓아 물자를 모조리 태워버리고, 거기다가 폭도들이 섞여 있을지 모른다고 인원마저 파괴했으니, 초토작전보다 더 가혹한 것이었다.
게릴라란 물고기와 같아서 인민이라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라고 월남에서 배웠지만, 교대로라면, 인민이란 물을 퍼내서 게릴라가 서식처를 잃고 자멸하도록 해야 옳지 않았던가. 누구는 편리하게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전쟁이란 으레 그런 거다, 그게 전쟁의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전쟁이 그렇게 시킨다. 그 사람들이 특히 잔인해서 그런 게 아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전쟁 통에선 어느 때 어디서든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는 일이다. 월남 땅 밀라이 사건을 보라, 하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전쟁 중에 일어난 게 아니었다. 6·25 터지기 두해 전 일, 그러니까 그건 전쟁이아니라 좌익폭동진압이었다. 폭동진압에서 삼만이 죽었다니! - P149

그 악몽의 현장, 그 가위눌림의 세월, 그게 그의 고향이었다. 그러니 고향은 한마디로 잊고 싶고 버리고 싶은 것의 전부였고, 행복이나 출세와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중호는 고향의 모는 것을 미워했다. 측간에서 똥 먹고 사는 도새기(돼지)가 싫고, 한겨울에도 반나체로 잠수질해야 하는 여편네들이 싫고, ‘말은 다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하는 속담이 싫고, 육지 사람이 통 알아들을 수 없는 고향 사투리가 싫고, 석다(石多)도 풍다(風多)도 싫고, 삼십년 전 그 난리로 홀어멍이 많은 여다(女多)도 싫고, 숱한 부락들이 불타 잿더미가 되고 곳곳에 까마귀 파먹은 예송장이 늘비하게 널려 있던 고향 특유의 난리가 싫고, 그불행이 그의 가슴속에 못 파놓은 깊은 우울증이 싫었다. 걸핏하면 버릇처럼 꺼질 듯한 숨을 내쉬는 어머니도 싫었다. 육지 중앙정부가 돌보지 않던 머나먼 벽지, 귀양을 떠난 적객들이 수륙 이천리를 가며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던 유배지, 목민(牧民)에는 뜻이전혀 없고 오로지 국마(國馬)를 살찌우는 목마(牧馬)에만 신경 썼던 역대 육지 목사(牧使)들. 가뭄이 들어 목장의 초지가 마르면 지체 없이 말을 보리밭으로 몰아 백성의 일년 양식을 먹어치우게 하던 마정(馬政), 백성을 위한 행정은 없고 말을 위한 행정만이 있던 천더기의 땅, 저주받은 땅, 천형의 땅을 버리고 싶었다. 찌든 가난과 심한 우울증밖에는 가르쳐준 것이 없는 고향, 그것은 비상하려는 그의 두 발을 잡아끌어당기는 깊은 함정이었다. 그 섬사람이 아니고 싶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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