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파병 소대장이었던 중호는 그것이 말이 소개이지 실은 초토작전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소개란 취약지구의 인원과 물자를후방 안전지대로 후송시킴을 뜻하는데, 이건 숫제 마을에 불을 놓아 물자를 모조리 태워버리고, 거기다가 폭도들이 섞여 있을지 모른다고 인원마저 파괴했으니, 초토작전보다 더 가혹한 것이었다.
게릴라란 물고기와 같아서 인민이라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라고 월남에서 배웠지만, 교대로라면, 인민이란 물을 퍼내서 게릴라가 서식처를 잃고 자멸하도록 해야 옳지 않았던가. 누구는 편리하게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전쟁이란 으레 그런 거다, 그게 전쟁의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전쟁이 그렇게 시킨다. 그 사람들이 특히 잔인해서 그런 게 아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전쟁 통에선 어느 때 어디서든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는 일이다. 월남 땅 밀라이 사건을 보라, 하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전쟁 중에 일어난 게 아니었다. 6·25 터지기 두해 전 일, 그러니까 그건 전쟁이아니라 좌익폭동진압이었다. 폭동진압에서 삼만이 죽었다니! - P149

그 악몽의 현장, 그 가위눌림의 세월, 그게 그의 고향이었다. 그러니 고향은 한마디로 잊고 싶고 버리고 싶은 것의 전부였고, 행복이나 출세와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중호는 고향의 모는 것을 미워했다. 측간에서 똥 먹고 사는 도새기(돼지)가 싫고, 한겨울에도 반나체로 잠수질해야 하는 여편네들이 싫고, ‘말은 다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하는 속담이 싫고, 육지 사람이 통 알아들을 수 없는 고향 사투리가 싫고, 석다(石多)도 풍다(風多)도 싫고, 삼십년 전 그 난리로 홀어멍이 많은 여다(女多)도 싫고, 숱한 부락들이 불타 잿더미가 되고 곳곳에 까마귀 파먹은 예송장이 늘비하게 널려 있던 고향 특유의 난리가 싫고, 그불행이 그의 가슴속에 못 파놓은 깊은 우울증이 싫었다. 걸핏하면 버릇처럼 꺼질 듯한 숨을 내쉬는 어머니도 싫었다. 육지 중앙정부가 돌보지 않던 머나먼 벽지, 귀양을 떠난 적객들이 수륙 이천리를 가며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던 유배지, 목민(牧民)에는 뜻이전혀 없고 오로지 국마(國馬)를 살찌우는 목마(牧馬)에만 신경 썼던 역대 육지 목사(牧使)들. 가뭄이 들어 목장의 초지가 마르면 지체 없이 말을 보리밭으로 몰아 백성의 일년 양식을 먹어치우게 하던 마정(馬政), 백성을 위한 행정은 없고 말을 위한 행정만이 있던 천더기의 땅, 저주받은 땅, 천형의 땅을 버리고 싶었다. 찌든 가난과 심한 우울증밖에는 가르쳐준 것이 없는 고향, 그것은 비상하려는 그의 두 발을 잡아끌어당기는 깊은 함정이었다. 그 섬사람이 아니고 싶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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