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H 사건을 다룰 때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유신체제의 파탄을 가져온 계기를 제공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일 수 있겠지만,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1970년대 노동운동의 주역은 여성 노동자들이었고, 이들 여성 노동자들이 활약한 사업장은 모두 다 산선이나 노동청년회와 아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기독교는 최근 들어 ‘개독교‘ 라는 모멸적인 소리를 들으면서도 또 한편에서는 여전히 많은 종교 중에서 신뢰도 1위라는 잘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기독교가 일반 대중의 신뢰를 받을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저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의 모습처럼 살고자 했던 산업선교회 덕분일 것이다. 산선이나 가톨릭노동청년회의 기여가 없었더라면 전태일이 죽은 뒤에도 한동안 노동운동의 공백기는 이어졌을 것이다. 제대로 서지 못하는 아이도 보행기를 태워주면 붕붕 날다시피 움직인다. 산업선교회는 어리고 어린 한국 노동운동에서 보행기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1980년대에 들어 산업선교회의 역할이 축소된 것은 꼭 전두환의 탄압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노동운동이 더 이상 보행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13
사람들 사이에 <동아일보> 보는 맛으로 산다는 말이 돌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1974년 12월 16일부터 몇몇 회사가 <동아일보>로부터 광고 동판을 회수해가기 시작했다. 당시 <동아일보>의 광고 효과는 매우컸기 때문에 광고를 한번 실으려면 현금을 주고도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그런 <동아일보>에서 광고주들이 사정은 묻지 말아 달라며 광고를 취소하고 동판을 회수해간 것이다. <동아일보>는 처음에는 예약된 광고를 앞당겨 싣거나 <신동아>, <여성동아> 같은 자매지의 책 광고를 실으며 버텼지만, 광고의 98퍼센트가 해약되자 12월 26일 광고면을백지로 발행했다. 영향력과 발행 부스에서 단연 1위를 자랑하던 신문에서 광고가 사라진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중앙정보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광고탄압으로 자유언론의 목을 죄려 했지만, 정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원로언론인 홍종인이 12월 28일 ‘언론자유와 기업의 자유‘ 라는 제목의 의견광고를 실은 것을 시작으로 독자들의 격려광고가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중앙정보부로서는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었고, <동아일보> 구성원들로서는 "차마 받기에 가슴 아픈, 정말 가슴 아픈 성금과 격려고"에목이 메었다. - P226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무찌르자 북괴군, 이룩하자 유신과업"을 목 놓아 외쳤던 유신군대에서는 군기빠졌다는 민주군대에 비해 열 배도 넘는 젊은이들이 집으로 돌아오지못했다. 군사정권 시절과 민주화 이후를 비교해볼 때 한국군의 병력이나 구조가 크게 변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달라진 것은 민주화에 따라 군이 더 이상 성역이 아니게 되어 민간사회가 군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수 있게 되었고, 군대에서 사람이 죽으면 ‘개 값‘ 만도 못했던 것이 이제이등병의 죽음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 지휘 선상에 있는 지휘관들이 줄줄이 옷을 벗을 수도 있는 상황이 마련된 것이다. 사망사고를 적당히 덮을 수 없게 되자 실효성 있는 구타 및 가혹 행위 근절이나 자살방지프로그램 개발 등에 많은 노력이 경주되었고, 실제로 사망사고 발생 건수는 놀라울 정도로 줄어들었다. - P262
잠시 주춤했던 장발단속은 ‘월남 패망과 더불어 급격히 강화되었다. 문무 양쪽에서 일본식 황민화 교육을 제대로 받은 박정희는 젊은이들의자유분방한 옷차림과 사고방식을 아주 못마땅해했다. 유신시대 국민의 외모와 사상은 당연히 국가의 통제 대상이었다. 유신공주였던 박근혜대통령이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처음 다룬 안건이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이라는 사실‘은 오늘에까지 드리운 유신의 짙은 그림자를 절감하게 한다. 과다노출을 단속하겠다는 것이 꼭 유신시대의 미니스커트 단속의 부활을 의미한다는 뜻이 아니다. 나를 절망케 하는 것은 한반도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어 있고, 국내외에 난제가 산적해 있는데 아주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인 첫 번째 국무회의의 첫 번째 안건이 왜 하필 경범죄처벌법의 노출단속 조항이어야 하는가 하는점이다. 대통령이 되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국민에 대한 통제였을까? 비교하기도 참 민망하지만 김일성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고 처음 다룬 안건은 연필 생산에 관한 정령이었다. 식민지에서 갓 해방된 백성들, 너나없이 못 배운 한에 사무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법을그는 알았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리고 그의 참모들은 첫 번째국무회의의 첫 번째 안건에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할까에 관한 고민이전혀 없었단 말인가? 그 점에 관한 한 정녕 유신의 적통을 이은 정권임에 틀림없다. 주월 한국군이 유신의 십자군 구국의 십자군이 되라는 박정희의 말을 받아 최태민이 구국십자군을 만들었고, 십자군 알바단은 박근혜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니, 십자군 원정은 참 오래 계속되고 있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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