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기 애착이 강한 사람들이 더 힘든가요? 선생님-치료의 필요성을 못느끼죠. 본인의 즐거움과 자신감을 떨어뜨리니까 다른 사람 말을 듣기도 힘들고요. 본인이 괜찮다는 인정을 받으려고 여기 오는 경우도있어요. 사람들이 자신을 질투한다고 느끼는 거죠. 나-그런 사람들은 좋아지기가 힘들 것 같아요. 모든 걸질투로 받아들여 버리니까요. 선생님-낮은 자존감을 극복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새로운나를 만들거나, 나의 보기 싫은 면을 가둬놓고 반대의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어요. 자존심이 센 척하지만 그만큼 상처를 쉽게 받죠. 나-그렇군요. 선생님-과대망상까지 갔을 때 자주 나타나는 증상은 조증이에요. 아주 극심한 우울 상태를 이겨내기 위해 생기죠. 어제는 멀쩡하다가 오늘 갑자기 ‘이 사람 미쳤다‘는 느낌이 든다면 대부분 조증이에요. 정신분열이 천천히 진행된다면 조증은 갑자기 나타나요. 더 극단적으로 가면 ‘내가 예수다, 부처다‘ 하는 거죠. 누군가 자신을 해치려고 한다면서 숨기도 하고요. - P135
자유 죽음
"너는 그 정도로 힘들지 않은데 유난 떠는 거야" 이렇게 자책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억울해서 내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홍승희 작가의 자살 일기 중 자유 죽음에 대한 글을 읽었다. 폐경이 아니라 완경으로 단어를 바꾸는 것처럼 자살을 자유 죽음으로 바꾸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 어감, 인상이 매우부정적인 단어가 많이 있지. 낙태, 폐경, 자살 등등.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선택하는 건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남은 자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삶이 죽음보다 고통스럽다면 기꺼이 그 삶을 끝낼 자유도 존중해주어야 하는거 아닐까. 우리에게는 애도가 너무 부족하다. 죽은 자에 대한 존중도 자유죽음을 택한 이들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사람들, 실패했거나 포기한 낙오자로 여기는 사람들. 정말 끝까지 살아내는 게 이기는 걸까? 애초에 삶에 이기고 지는 게 어디 있을까. 이미 다리 조아지는 게 - P147
역시 문제는 자존감. 내가 나를 너무 낮게 바라보기때문에 타인의 눈으로 만족을 얻는 거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나 자신이 내게 느끼는 만족이 아니니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고 곧 지겨워진다. 그러니 또 다른 사람을 찾고, 결국 누군가나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절망, 누군가 나를 깊이 사랑해줘도 절망, 이러나저러나 다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결국 내가 나를 계속 갉아먹는다. 내가 상대를 가혹하게 대하는 것도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나를 사랑해주는 상대를 이해할 수 없어서 자꾸 강도 높은 실험을 하는거라고, 이래도 날 사랑해? 이래도? 이래도? 상대가 받아준대도 이해할 수 없게 되고 상대가 포기하고 떠나면 역시나 나를다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괴로워하며 위안한다. - P155
언제부턴가 힘내라는 말,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 위축되지 말라는 말에 진절머리를 내는 나를 발견했다. 내향적이고 쉽게 위축되는 성격 탓에 학교생활과 직장생활을 할 때마다 장애물에 부딪혔다. 조별 수업과 발표수업이, 회의와 미팅이 나를 지긋지긋하게 만들었다. 경험이 쌓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번 새로운 벽이 줄지어 세워졌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일, 새로운 주제, 새로운 장소. 아무리 깨뜨려도 쌓이지 않고끝나지 않는 게임처럼. 우습게도 가장 힘이 된 위로는 이거였다. "왜 안 떨려고 그래? 왜 자신 있게 하려고 해? 그냥 떨어. 힘내지 마!" - P164
내가 아닌 모습을 나처럼 위장하면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난 어설픈 포장이 아닌 척하는 모습이 정말 싫다. 대담하지 않은 사람이 대담한 척하는 것만큼(물론 대담해지고자노력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어설픈 건 없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 자신감 넘치는 척하는 것만큼, 위축되는 사람이 위축되지않는 척하는 것만큼 말도 안 되고 나쁜 해답이 어디 있을까. 힘이 안 나는 사람이 억지로 힘 나는 척하는 것만큼 애잔하고슬픈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래서 대학생 때는 발표 전 이말을 꺼내고 시작했다. "저는 발표할 때 너무 떨어서 얼굴이 빨개집니다. 고등학교 때 별명은 레드 인간이었어요. 발표를 들으시다가 제 얼굴을 봤는데 너무 빨갛더라도 놀라지 마시고 들어주세요" 사람들이 웃었다. 놀랍게도 얼굴이 빨개지지 않은 채로 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 - P165
나는 지금 애매하고 좋지 않은 상태다. 내 천성은 우울하고 찌질하다. 생각이 깊거나 통찰력이 있지도 않다. 잘하는 건 반성과 자학인데, 이것도 순간에 그칠 뿐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쉽게 습득한 지식이 쉽게 온몸으로 번지고 체화될리없다. 페미니즘을 응원하고 인종차별 반대를 외치면서도 중국인들을 보면 몸을 움츠린다거나, 예쁘지 않은 레즈비언을 보면 불편하다는 ‘몸의 반응‘을 일으키는 내 모습. 아주 찌질하고 모순적인.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을 자학하고 혐오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안다. 나는 이렇게 모자란 인간이라는 걸그냥 받아들이고, 매 순간 다가오는 반성과 성찰의 기회, 몰랐던 걸 알게 되었을 때의 부끄러움과 희열을 느끼며 1밀리미터의 변화에 기대하는 수밖에. 결국 난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 곁으로 단숨에 다가갈 수 없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내가 멋져지는 길은 오직 지금 나로부터 아주 조금씩 지지부진하게 나아가는 것뿐이다. 판단을 유보하고 느끼되 강요하지 않으면서, 내가 느끼는 수많은 판단과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 자책한다고 한순간에 똑똑해지는 것도 아니니까. - P170
리베카 솔닛은 [멀고도 가까운]에서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내 안에 없는 씨앗은 절대 자라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타인과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안에 없는 걸 만들어낼 방법은 상상과 공부다. 감정이입 역시 공부하고 상상해야 할 때가 있다. 감정이입은 저절로 되는 거라고 여기며 나를 움직이지 않는 많은 것에 마음을 닫고 살아왔다. 하지만 내 안에 없던 걸 만들어내고 연대하는 순간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하나의길일 것이다. 우리는 많은 이들과 멀고도 가깝다. 그리고 가족일수록 가깝지만 아득히 멀고, 저 멀리 있다가도 금세 옆에 앉힐 수 있을 만큼 가깝다. 내가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이입할 수 없는 감정을 배우고 상상하는 것. 그게 타인을 향한 애정이며 내 씨앗과 상대의 씨앗을 말려 죽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끈을 놓지 않는 마음.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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