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년 전에 생명체가 원시 대양에서 나온 이후 다른 분자를사용하여 자신을 복제하는 분자의 수는 증가했다. 그러다 그 몇몇분자들은 협동과 분화의 이점을 알게 되었고, 염색체라는 그룹을 만들었으며 세포라는 기계를 작동하여 효과적으로 염색체를 복제할수 있었다. 마치 작은 농부 집단이 목수와 대장장이를 만나 촌락이라는 작은 협동 조직을 형성하듯이. 그리고 촌락 부족을 이룬 것처럼.
염색체는 몇몇 세포를 합쳐서 초세포Super cell를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세포는 이렇게 여러 종류의 박테리아가 모여서 형성되었다. 부족에서 국가로, 그리고 제국이 되어가듯이, 세포들은 뭉쳐서 유전자 집합체의 거대한 집합체인 동식물과 균류를 만들었다.
인간 사회에서 이러한 과정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에 앞서사회적 이익을 강요하는 법이 시행되지 않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전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후세들이 유전자를 평가하는데는 한 가지 기준만이 있다. 바로 다른 유전자들의 조상이 되는가이다. 대체로 다른 유전자의 희생을 통해서만 이것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부를 축적할 때 합법적이건 불법적이건 타인을 설득해 그의 부를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전자가 독립하면 그때는다른 모든 유전자는 적이 되어 모두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게 된다.
만약 유전자가 연합체의 일부라면 경쟁 연합을 패배시키는 데 똑같은 관심을 보일 것이다. 마치 보잉사의 직원들이 에어버스사의 희생속에서 성공하는 데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 P150

바도개개의 유전자 차원에서 보면 유전자는 성을 통해 수직적으로뿐아니라 수평적으로도 퍼져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유전자가 자신이 거주하는 전달체에 성을 갖도록 했다면, 설령 개체에게불이익이 가더라도 유전자의 이익을 위해 뭔가를 하도록 만들 수도있었을 것이다(가능하다면 후손을 남길 수 있는 쪽으로). 광견병 바이러스가 다른 개로 퍼지기 위해 개를 조종하여 무엇이든 물게 하듯이, 유전자는 다른 가계를 이룰 수 있도록 자신의 숙주가 성교하도록 만든다.
히키와 로즈는 특히 한 염색체에서 자신을 분리시켜 다른 염색체로 옮겨가는 전이인자 transposon 혹은 도약 유전자라는 유전자에 흥미를 느꼈다. 1980년 같은 시기에 두 그룹의 과학자들은 전이인자가 다른 유전자의 희생을 통해서 자신의 복제만을 퍼뜨리는 ‘이기적인 기생 DNA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과거의 과학자들처럼전이인자가 개체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이유를 찾기보다는 전이인자가 개체에게는 나쁘지만 전이인자 자신에게는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강도와 무법자는 사회에 이익을 주기보다는 손해를 끼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아마도 전이인자는 ‘무법자 유전자‘ 이리라. 또한 히키는 전이인자가 근친교배나 무성교배하는 생물보다는 이계교배하는 유성생식 생물에서 더 흔하게 발견되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는수학적 모델을 이용하여 기생적인 유전자가 숙주에 악영향을 주더라도 잘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였다. 그리고 히키는 유성생식 종에서는 빠르게 퍼지지만 무성생식 종에서는 느리게 퍼지는 효모의 기생성 유전자를 찾았다. 그러한 유전자는 ‘플라스미드plasmid‘ 혹은독립된 작은 DNA 고리에 위치하며, 박테리아에서는 이런 플라스미드가 유전자들이 퍼지는 수단인 접합을 유도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들은 개들이 서로를 물어뜯게 하는 광견병 바이러스와 같다. 나쁜유전자와 전염성 바이러스의 경계선은 모호하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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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를 그리려면 흔들리지 않는 중심점이 꼭 있어야 한다. 이모는 내가 어떤 호칭과 관련지어 변함없이 떠올릴 수 있게 된 이세상 단 한 명뿐인 사람이었다. 이모는 내가 풀잎보육원에 처음 오던 날 우연히 그곳에 들렀고 그곳에서 아기들을 돌볼 일손이 필요하다는 말에 자원봉사자로 일하기 시작했다가, 나중엔 작은 월급을받으며 눌러앉았다. 내가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늘 풀잎보육원에 있었고 원장님이 풀잎보육원을 떠난 뒤로는 위탁모가되어 나를 아예 집으로 데리고 왔다.
마른 들풀 같은 이모 우주의 중심으로 삼아 나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TV를 볼 때면 당연하다는듯 이모의 무릎을 베고 누웠고 이모는 참외를 깎아 내 입에 넣어주며 내 볼을 쓰다듬었다. 푸석푸석하고 부숭부숭한 이모의 손바닥이내가 아는 인간의 감촉이었다. 이모가 아니었다면 나는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호칭들 속에 따뜻함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기운이 있다는 사실을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 P84

이 아름다운 레스토랑의 초록 잔디밭에서 뛰놀고 있는 눈처럼 새하얀 강아지는 아코처럼 심란한 표정을 지어본 적이 한 번도 없을것이다. 털은 솜털같이 부드러웠고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솜사탕처럼 잘 관리된 봉긋한 털과 단추처럼 까만 눈과 코를 보면 사람들이감탄하는 게 당연하다고 굳게 믿어서, 자기 미모를 모른 채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앙앙 짖었다. 그릴에서구워진 소시지 한 조각을 얻어먹을 땐 격렬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마음속으로 자꾸 강아지와 아코를 비교하게되었다. 아코를 여기 데려왔으면 그놈은 바보같이 꼬리를 가랑이사이에 말아 넣고 쩔쩔매며 어디든 어두컴컴한 구석을 찾아 헤맸을것이다. 낯선 사람의 손이 다가오면 무서워서 오줌을 질질 쌌을 것이다. 잔디밭에 닿도록 늘어뜨려진 흰 식탁보 밑으로 숨어들어가서사람들의 발목만 지켜보며 파티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아코를 예뻐하지 않았을 것이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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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가 흘러나온다. 숲속에는 빨간집 초록집 알록달록한 집이 있고 그 안에는 세모가족 네모 가족 동글이 가족이 산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넓은 방을 돌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힘껏 달리기도 하고, 깡충깡충 뛰기도 하고, 몸을 기우뚱하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한다.
- P7

나도 모르게 등뼈가 뒤틀리며 진땀이 났다. 터져 나오지 못하는신음이 가슴속을 맴돌다가 뜨겁고 쓴 물이 되어 목 안에서 솟구쳤다. 입가로 흘러넘친 쓴 물에 베개가 뜨끈하게 젖어 들었다. 갑작스럽게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질척하고 퀴퀴한 것들을 베고누워 차라리 죽어서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좋아!"
문을 열고 방을 들여다본 이모가 탄식했다. 나는 너무 창피해서눈을 감고 의식이 없는 척했다. 이모가 달려들자 이모 냄새가 풍겼다. 이모는 늙으니 부끄럽게 노린내가 난다고 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언제나 시큼했다. 이모는 급한 나머지 손으로 내 입가를 닦아주려다가 내 손발을 만져보고는 더욱 허둥거렸다.
"어떡해. 설아, 추워? 어쩌면 좋아."
이모가 이불을 들치자 무서운 추위가 몰려왔다. 그리고 한층 부끄러운 가랑이의 축축함. 이모가 다급히 달려 나가자 잠시 나는 세상에서 아득하게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모는 곧 돌아왔다. 더운물에 적신 낡은 수건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주었다.따뜻함, 깨끗해짐, 돌봄, 함께 있음•••. 이모는 내 얼굴의 토한 것을닦아낸 후 가랑이와 엉덩이도 꼼꼼하게 닦아주었다. 나는 발버둥치려는 노력을 멈추었다. 아픔과 부끄러움에 몸을 맡기고 그냥 숨을 쉬기로 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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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기 애착이 강한 사람들이 더 힘든가요?
선생님-치료의 필요성을 못느끼죠. 본인의 즐거움과 자신감을 떨어뜨리니까 다른 사람 말을 듣기도 힘들고요.
본인이 괜찮다는 인정을 받으려고 여기 오는 경우도있어요. 사람들이 자신을 질투한다고 느끼는 거죠.
나-그런 사람들은 좋아지기가 힘들 것 같아요. 모든 걸질투로 받아들여 버리니까요.
선생님-낮은 자존감을 극복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새로운나를 만들거나, 나의 보기 싫은 면을 가둬놓고 반대의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어요. 자존심이 센 척하지만 그만큼 상처를 쉽게 받죠.
나-그렇군요.
선생님-과대망상까지 갔을 때 자주 나타나는 증상은 조증이에요. 아주 극심한 우울 상태를 이겨내기 위해 생기죠. 어제는 멀쩡하다가 오늘 갑자기 ‘이 사람 미쳤다‘는 느낌이 든다면 대부분 조증이에요. 정신분열이 천천히 진행된다면 조증은 갑자기 나타나요. 더 극단적으로 가면 ‘내가 예수다, 부처다‘ 하는 거죠. 누군가 자신을 해치려고 한다면서 숨기도 하고요. - P135

자유 죽음

"너는 그 정도로 힘들지 않은데 유난 떠는 거야"
이렇게 자책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억울해서 내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홍승희 작가의 자살 일기 중 자유 죽음에 대한 글을 읽었다. 폐경이 아니라 완경으로 단어를 바꾸는 것처럼 자살을 자유 죽음으로 바꾸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 어감, 인상이 매우부정적인 단어가 많이 있지. 낙태, 폐경, 자살 등등.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선택하는 건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남은 자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삶이 죽음보다 고통스럽다면 기꺼이 그 삶을 끝낼 자유도 존중해주어야 하는거 아닐까. 우리에게는 애도가 너무 부족하다. 죽은 자에 대한 존중도 자유죽음을 택한 이들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사람들, 실패했거나 포기한 낙오자로 여기는 사람들. 정말 끝까지 살아내는 게 이기는 걸까? 애초에 삶에 이기고 지는 게 어디 있을까.
이미 다리 조아지는 게 - P147

역시 문제는 자존감. 내가 나를 너무 낮게 바라보기때문에 타인의 눈으로 만족을 얻는 거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나 자신이 내게 느끼는 만족이 아니니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고 곧 지겨워진다. 그러니 또 다른 사람을 찾고, 결국 누군가나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절망, 누군가 나를 깊이 사랑해줘도 절망, 이러나저러나 다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결국 내가 나를 계속 갉아먹는다.
내가 상대를 가혹하게 대하는 것도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나를 사랑해주는 상대를 이해할 수 없어서 자꾸 강도 높은 실험을 하는거라고, 이래도 날 사랑해? 이래도? 이래도? 상대가 받아준대도 이해할 수 없게 되고 상대가 포기하고 떠나면 역시나 나를다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괴로워하며 위안한다. - P155

언제부턴가 힘내라는 말,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 위축되지 말라는 말에 진절머리를 내는 나를 발견했다. 내향적이고 쉽게 위축되는 성격 탓에 학교생활과 직장생활을 할 때마다 장애물에 부딪혔다. 조별 수업과 발표수업이, 회의와 미팅이 나를 지긋지긋하게 만들었다. 경험이 쌓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번 새로운 벽이 줄지어 세워졌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일, 새로운 주제, 새로운 장소. 아무리 깨뜨려도 쌓이지 않고끝나지 않는 게임처럼.
우습게도 가장 힘이 된 위로는 이거였다. "왜 안 떨려고 그래? 왜 자신 있게 하려고 해? 그냥 떨어. 힘내지 마!" - P164

내가 아닌 모습을 나처럼 위장하면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난 어설픈 포장이 아닌 척하는 모습이 정말 싫다.
대담하지 않은 사람이 대담한 척하는 것만큼(물론 대담해지고자노력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어설픈 건 없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 자신감 넘치는 척하는 것만큼, 위축되는 사람이 위축되지않는 척하는 것만큼 말도 안 되고 나쁜 해답이 어디 있을까. 힘이 안 나는 사람이 억지로 힘 나는 척하는 것만큼 애잔하고슬픈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래서 대학생 때는 발표 전 이말을 꺼내고 시작했다. "저는 발표할 때 너무 떨어서 얼굴이 빨개집니다. 고등학교 때 별명은 레드 인간이었어요. 발표를 들으시다가 제 얼굴을 봤는데 너무 빨갛더라도 놀라지 마시고 들어주세요" 사람들이 웃었다. 놀랍게도 얼굴이 빨개지지 않은 채로 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 - P165

나는 지금 애매하고 좋지 않은 상태다. 내 천성은 우울하고 찌질하다. 생각이 깊거나 통찰력이 있지도 않다. 잘하는 건 반성과 자학인데, 이것도 순간에 그칠 뿐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쉽게 습득한 지식이 쉽게 온몸으로 번지고 체화될리없다. 페미니즘을 응원하고 인종차별 반대를 외치면서도 중국인들을 보면 몸을 움츠린다거나, 예쁘지 않은 레즈비언을 보면 불편하다는 ‘몸의 반응‘을 일으키는 내 모습. 아주 찌질하고 모순적인.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을 자학하고 혐오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안다. 나는 이렇게 모자란 인간이라는 걸그냥 받아들이고, 매 순간 다가오는 반성과 성찰의 기회, 몰랐던 걸 알게 되었을 때의 부끄러움과 희열을 느끼며 1밀리미터의 변화에 기대하는 수밖에.
결국 난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 곁으로 단숨에 다가갈 수 없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내가 멋져지는 길은 오직 지금 나로부터 아주 조금씩 지지부진하게 나아가는 것뿐이다.
판단을 유보하고 느끼되 강요하지 않으면서, 내가 느끼는 수많은 판단과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 자책한다고 한순간에 똑똑해지는 것도 아니니까. - P170

리베카 솔닛은 [멀고도 가까운]에서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내 안에 없는 씨앗은 절대 자라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타인과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안에 없는 걸 만들어낼 방법은 상상과 공부다. 감정이입 역시 공부하고 상상해야 할 때가 있다.
감정이입은 저절로 되는 거라고 여기며 나를 움직이지 않는 많은 것에 마음을 닫고 살아왔다. 하지만 내 안에 없던 걸 만들어내고 연대하는 순간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하나의길일 것이다. 우리는 많은 이들과 멀고도 가깝다. 그리고 가족일수록 가깝지만 아득히 멀고, 저 멀리 있다가도 금세 옆에 앉힐 수 있을 만큼 가깝다.
내가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이입할 수 없는 감정을 배우고 상상하는 것. 그게 타인을 향한 애정이며 내 씨앗과 상대의 씨앗을 말려 죽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끈을 놓지 않는 마음.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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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포감은 무언가에 대해 ‘나만 알고 있을 때‘
더 커지거든요. 혼자 고통받을 때보다 지금처럼 꺼내는 게 훨씬 좋을 수도 있어요."

통통하든 못생기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고 싶다. 하지만 사회는 외모나 몸매로 우월과 열등을 가르고, 아빠도 언니도 내가 살을 빼면 그전과 비교하면서 칭찬하고는 한다. 그게 별로 건강해 보이지도 않고 기분도나쁜데, 한편으로는 날씬한 내가 더 자신감 있다는 걸 느낀다.
날씬하면 건강해지니까 좋은 걸까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위축되니까 싫은 거다. 옷도 마음대로 못 입고, 못생겨진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자꾸 살에 집착하게 된다. 사회적 시선은 너무 크고 나는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데도 벗어나고 싶다. 그렇다고 뚱뚱해지는 건 싫고왜 열등한 취급을 받으며 개인이 자신을 사회적 기준에 맞추어야 하는지모르겠다. 무시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건데 대다수가 그렇고 나 자신도 그렇기에 모순적이고 답답하다.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나보다 우월한 사람을 만나면 기죽고 나보다 열등한 사람을 만나면 당당하고 편안해지는 내가 너무 싫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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