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를 그리려면 흔들리지 않는 중심점이 꼭 있어야 한다. 이모는 내가 어떤 호칭과 관련지어 변함없이 떠올릴 수 있게 된 이세상 단 한 명뿐인 사람이었다. 이모는 내가 풀잎보육원에 처음 오던 날 우연히 그곳에 들렀고 그곳에서 아기들을 돌볼 일손이 필요하다는 말에 자원봉사자로 일하기 시작했다가, 나중엔 작은 월급을받으며 눌러앉았다. 내가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늘 풀잎보육원에 있었고 원장님이 풀잎보육원을 떠난 뒤로는 위탁모가되어 나를 아예 집으로 데리고 왔다.
마른 들풀 같은 이모 우주의 중심으로 삼아 나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TV를 볼 때면 당연하다는듯 이모의 무릎을 베고 누웠고 이모는 참외를 깎아 내 입에 넣어주며 내 볼을 쓰다듬었다. 푸석푸석하고 부숭부숭한 이모의 손바닥이내가 아는 인간의 감촉이었다. 이모가 아니었다면 나는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호칭들 속에 따뜻함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기운이 있다는 사실을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 P84

이 아름다운 레스토랑의 초록 잔디밭에서 뛰놀고 있는 눈처럼 새하얀 강아지는 아코처럼 심란한 표정을 지어본 적이 한 번도 없을것이다. 털은 솜털같이 부드러웠고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솜사탕처럼 잘 관리된 봉긋한 털과 단추처럼 까만 눈과 코를 보면 사람들이감탄하는 게 당연하다고 굳게 믿어서, 자기 미모를 모른 채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앙앙 짖었다. 그릴에서구워진 소시지 한 조각을 얻어먹을 땐 격렬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마음속으로 자꾸 강아지와 아코를 비교하게되었다. 아코를 여기 데려왔으면 그놈은 바보같이 꼬리를 가랑이사이에 말아 넣고 쩔쩔매며 어디든 어두컴컴한 구석을 찾아 헤맸을것이다. 낯선 사람의 손이 다가오면 무서워서 오줌을 질질 쌌을 것이다. 잔디밭에 닿도록 늘어뜨려진 흰 식탁보 밑으로 숨어들어가서사람들의 발목만 지켜보며 파티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아코를 예뻐하지 않았을 것이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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