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염원했고 그 자신의 생명을 걸고 나타난 회의장에서 이 종교개혁가는 조롱만 당했다. 그가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마다 고함소리와함께 저지당하고 말았다. 1415년 7월 6일, 콘스탄츠 대성당에서 열린 엄숙한 의식에서 후스는 이단으로 유죄선고를 받고 공식적으로 성직을 박탈당했다. 이단으로 판명된 후스의 머리에는 높이가 약 45센티미터에 달하는 원형 종이 왕관이 씌워졌다. 왕관 위에는 영혼을 잡은 채 갈가리찢고 있는 세 마리의 악마가 그려져 있었다. 후스는 머리에 이 왕관을쓰고 몸에는 쇠사슬을 찬 채로 대성당에서 끌려나와 자신이 쓴 책이 화염에 뒤덮여 있는 장작더미 앞을 지나쳐 마찬가지로 화형대 위에서 불태워졌다. 유물이 남지 않도록 형을 집행한 담당자들은 불에 시커멓게 변한 후스의 뼈까지 산산조각 낸 뒤에 라인 강에 뿌렸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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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이제 곧 덫에 달린 용수철이 자신을 덮칠 것임을 알았다. 교황은 콘스탄츠는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더 이상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느끼는 콘스탄츠를 떠나 조금 더 자신에게 유리한 다른 장소로 옮기고 싶어했다. 그러나 황제는 교황의 제의에 반대의견을 표명했고, 콘스탄츠 시의회는 서둘러 교황에게 확실한 안전을 보장했다. 콘스탄츠 시민들은 이렇게 단언했다. "만약 교황 성하께서 보안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신다면, 우리는 기꺼이 성하께 더 강화된 보안 인력을제공할 것이며 온 세상에 대항하여 성하를 지킬 것이옵니다. 설령 그 어떤 끔찍한 운명으로 인해 친자식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고해도 반드시 그럴 것이옵니다." 그러나 후스에게 마찬가지의 과장된 약속을 했던 코사는 이런 말에 결코 안심하지 않았다. 1415년 3월 20일 오후 1시경, 코사는 말을 타고 콘스탄츠에서 달아났다. 그는 회색 두건과 망토로 몸을 휘감아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가린 채 조용히 콘스탄츠 성문을 빠져나갔다. 오직 석궁으로 무장한 병사 1명과 역시 몸을 감싼 다른 2명의 수행원만을 대동했다. 저녁이 되고 밤이 지나자 교황이 거느린 다른 하인, 수행원, 비서들도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비밀리에 도시를 떠났다. 그러나 말은 빠르게 새어나갔다. 요한네스 23세가달아났다.
그 뒤 몇 주일간 코사의 적들은 도망자가 피신해 있던 샤프하우젠까지 쫓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동맹이 소유한 성에 숨어 있었다. 코사의 적들은 샤프하우젠에서 그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했다. 험악한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남아 있던 동맹마저 흩어지기 시작하자, 코사는 다시 한번 변장한 채로 도망쳤다. 교황청 무리는 전보다 더 깊은 혼란에빠져 어쩔 줄을 몰랐다. 아마 그중에는 포조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모든 교황청 사무국 일원들은 황망함 속에서 무작정 교황을 따라갔다." 동시대의 한 기록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뒤쫓는 이가 없는 밤에도 교황은 계속 도주의 발걸음을 재촉했고 이는 나머지 그의 수행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끝내 황제의 거대한 압력 아래 코사를 비호해주던 주요 동맹이이 반갑지 않은 손님을 적의 손에 내주었다. 이제 세상은 교황이 범죄자로 감시를 받는 참으로 유익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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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코사 역시 포조처럼 교황청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동향이라고 할 수있는 나폴리 출신인 보니파키우스 9세의 궁에서 개인 내무비서가 되었다. 코사는 이 자리에서 교회와 관련된 관청들의 조달 사무와 과열되어있던 면죄부 판매의 감독을 지원했다. 또한 거액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성년(年, jubilee) 행사의 조직도 도왔다. 사후에 경험해야 할 끔찍한지옥불의 고통으로부터 면제해준다는 전대사(大)를 받고자 로마의주요 성당들로 순례자들이 몰려들었다. 몰려든 엄청난 인파는 로마의 여용서할관을 가득 채우고, 선술집과 사창가의 돈줄이 되어주며, 도시의 좁은 다리마다 열을 지어 행진했다. 이들은 성당을 찾아가 기도를 올리고 촛불을밝힌 채 기적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그림이나 조각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부적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기념품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애초에는 100년에 1번꼴로 성년 행사를 가질 계획이었으나 수요가 대단히 많은 데다가 그 수입이 막대하다 보니 점점 주기가 짧아져 처음에는 50년, 33년, 그리고 25년에 1번꼴로 행사가 열리게 되었다. 포조가로마에 도착하기 바로 전인 1400년에는 새로운 세기를 맞아 로마로 몰려온 엄청난 수의 순례자들로 인해서 교황은 불과 10년 전에 마지막 성년 행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대사를 내렸다. 교회가 더 많은수입을 거두기 위해서 동원한 다양한 방법은 어쩌면 코사의 실용적인머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로마로 순례를 옴으로써 얻을수 있는 영적 구원의 혜택 사후에 지옥에서 수천 년간 겪어야 할 고통의 면제을 누리고자 하지만, 알프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험난한 여행은 피하고 싶은 자들을 위해서 독일에 있는 특정한 성지를 방문하면 똑같은 면죄부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다만, 이 경우에는 면죄부를 얻기 위해서 로마까지의 여행에 소요되는 비용만큼을 더지불해야 했다.
코사의 재능은 면죄부 판매전략에서 보이는 명민함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볼로냐 총독으로 지명된 뒤, 그는 자신이 매우 성공적인 지도자,
군 사령관인 동시에 박력 있는 연설가임을 증명했다. 코사는 기민한 지성과 능변, 대담한 행동력, 야망, 육욕, 무한한 에너지 등의 수많은 자질들을 체현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 자질들이 하나로 합쳐지면 그것이곧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인 인간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성직에 기대되는 상과 실제 현실 사이의 차이에 익숙했던 당시에도 볼로냐의 부제(副祭) 추기경으로 불린 코사는 성직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인물로보였다. 포조의 친구 브루니도 인정했듯이 코사가 대단히 재능 있는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재능은 종교적인 사명에 적합한 것이아님이 명백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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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조에게는 가능한 모든 면에서 독립이 필요했다. 도덕적인 관점에서보았을 때, 로마의 교황청 사무국은 위험천만한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당대의 라틴어 경구는 그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표현한다. "교황청 사무국의 좋은 일꾼은 인간으로서는 가장 사악한 자로다(Curialisbonus, homo sceleratissimus). 포조가 교황청 사무국의 중심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시기인 1430년대에 쓰인 한 편의 괴이한 작품은 당시의 교황청 분위기를 매우 생생하게 전해준다.「로마 교황청의 탁월함과 존엄성에 관하여(De curige commodis)』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피렌체 출신의 동시대인으로 젊은 인문주의자 라포 다 카스틸리온키오가 쓴 것으로서, 키케로풍의 대화체 형식의 글이다. 당시의 작가들은 글에 대한 완전한 책임을 피하면서 논쟁적이고 어쩌면 위험하기까지 한 의견을 피력하고 싶을 때 이 형식을 애용했다. 라포의 상상 속 대화의 포문을 여는 안젤로-당연히 이 인물은 결단코 글쓴이인 라포 자신이 아니다라는 인물은 교황청의 도덕적 파탄을 맹렬히 공격하면서 그곳이야말로 "범죄를비롯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잔혹행위, 사기, 각종 속임수가 덕의 이름으로 횡행하고 거기다 높은 평가를 받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 위선에 찬 지저분한 개수대가 신앙을 주장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교황청보다 더 종교와 동떨어진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여기에서 글쓴이인 라포 자신이 등장하여 교황청을 옹호한다. 물론 교황청이 청원자 무리를 끌어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신께서 다수의 군중으로부터 경배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신께서는 값비싼 것으로 치장한 사제들이 연출하는 장엄한 숭배의 광경을 통해서 특별한 섬김을 받아 마땅하다. 또한 일반 대중에게 교황청이야말로 사려 깊게 생각하는 미덕을 깨우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그도 그럴것이 교황청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이한 옷차림과 독특한 수염, 다양한 발음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관습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귀중한 수업이된다. 또한 교황청은 인문주의를 배우는 데에도 최적의 장소이다. "교황의 내적 사무를 처리하는 비서인" (따라서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인 ‘피렌체 출신의 포조라는 자는 최고 수준의 학식을 갖춘 인물이자 달변가로서, 훌륭한 기지와 세련미를 갖춘 특별한 중요 인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라포도 뇌물과 각종 비리로 교황청의 심장부가 오염되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이 신성한 장소의 명성을 더럽히는 소수의 끔찍한 도둑과 성도착자 때문으로, 교황이 이런 추문을 알아차리면 분명 자신의 집을 청소하고 일신할 것이다. 그러니 결국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가 아니라 의도가 무엇이었는가이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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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내밀한 히스테리에 대해 미리부터 창피함을 느꼈다. 일기 쓰기에서 가장 맥 빠지는 면은 언젠가 내가 어딘가에 앉아 이 일기를 다시 읽으리라는 걸 의식하는 거야. 어떤 과거를 되살리려 애쓰면서, 그로 인해 상기된 감정 때문이 아니라, 내가 무지 깊이있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신경 쓰느라 발목이 잡히게 돼. - P220

켄이 사망한 날 밤과 관련된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모든 상황이 순전히 무작위적이고 사실 같지 않게 여겨졌다. 켄의 살해범들은 확실한 단서를 흘리며 범행을 저질렀는데 그런 식의 전반적 부주의함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켄을 잃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면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증오할 만한 그런 주모자의 손에서 범행이 일어나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 P236

우리는 편지를 끝맺을 때 진실하자, 라는 말을 쓰지. 이 말을 탄생시킨 농담은 시간에게 졌지만 나는 그 농담에 뒤따랐던 복잡한 악수는 아직기억해. "게임에 진실하자"를 나중에 "진실하자"로 줄여 말했지. 자신에게 진실하자. 훗날 될 수도 있는 사람에게 진실하자. - P277

진실된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침울하기보다 큰 기쁨을 주게 될테고 기쁨에 굴복하는 게 내가 너를 버린다는 뜻은 아닐 거야. 단지 분노와 증오의 이야기가 아닌 사랑과 의무의 이야기가 되고, 꿈, 한때 미래를 기대했던 기억, 다시 꿈꾸고픈 갈망이 가득할 거야. 지루할지도 몰라. 네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테니까. 그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라 시가 될 거야.
이제 상담이 거의 다 끝나 갔다. 나는 상담사에게 많은 도움이되었다고 말했다. 정말로 평범한 사무실에서 나 자신이 이런 문제를 소리 내서 말하는 걸 들어 보니 내가 완전히 바보같이 느껴졌다. 나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언제나 문제의 첫 징조를 향해 돌진해, 내가 뭘 할 수 있었을지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상담사의 도움 덕분에 내 머릿속을 어느 정도 재배치하게 되었다. 이제 뭘 해야 할지 알겠다고, 상담사에게 말했다. 이제는 플란넬 천 옷에 배어 있는 담배 연기 냄새, 과음한 다음날 생딸기를 얹어 슈거파우더를 뿌린 팬케이크의 맛, 황금빛 도는 갈색의 독특한 석양, 이제는 날 비탄에 빠뜨리는 노래에 대해 한때 느꼈던 아주 상반되는 감정, 새 부츠가 닳기 시작한 순간, 기말시험 주간에 끝까지 돌아간 믹스 테이프가 쌕쌕거리는 소리를 어떻게 묘사하면 좋을지 구상해 봐야 했다. 어떤 비유가 쓸 만하고 어떤 비유가 별로인지, 어떤 부분을 밝히고 어떤 부분을 비밀로 묻어둘지를 가려내면서. 누군가 너를 알아볼 때의 표정도 묘사해야 해.
언젠가 이 모든 것을 글로 쓸 거라고, 내가 말하자 상담사가 미소 띤 얼굴로 바라봤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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