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이제 곧 덫에 달린 용수철이 자신을 덮칠 것임을 알았다. 교황은 콘스탄츠는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더 이상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느끼는 콘스탄츠를 떠나 조금 더 자신에게 유리한 다른 장소로 옮기고 싶어했다. 그러나 황제는 교황의 제의에 반대의견을 표명했고, 콘스탄츠 시의회는 서둘러 교황에게 확실한 안전을 보장했다. 콘스탄츠 시민들은 이렇게 단언했다. "만약 교황 성하께서 보안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신다면, 우리는 기꺼이 성하께 더 강화된 보안 인력을제공할 것이며 온 세상에 대항하여 성하를 지킬 것이옵니다. 설령 그 어떤 끔찍한 운명으로 인해 친자식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고해도 반드시 그럴 것이옵니다." 그러나 후스에게 마찬가지의 과장된 약속을 했던 코사는 이런 말에 결코 안심하지 않았다. 1415년 3월 20일 오후 1시경, 코사는 말을 타고 콘스탄츠에서 달아났다. 그는 회색 두건과 망토로 몸을 휘감아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가린 채 조용히 콘스탄츠 성문을 빠져나갔다. 오직 석궁으로 무장한 병사 1명과 역시 몸을 감싼 다른 2명의 수행원만을 대동했다. 저녁이 되고 밤이 지나자 교황이 거느린 다른 하인, 수행원, 비서들도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비밀리에 도시를 떠났다. 그러나 말은 빠르게 새어나갔다. 요한네스 23세가달아났다.
그 뒤 몇 주일간 코사의 적들은 도망자가 피신해 있던 샤프하우젠까지 쫓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동맹이 소유한 성에 숨어 있었다. 코사의 적들은 샤프하우젠에서 그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했다. 험악한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남아 있던 동맹마저 흩어지기 시작하자, 코사는 다시 한번 변장한 채로 도망쳤다. 교황청 무리는 전보다 더 깊은 혼란에빠져 어쩔 줄을 몰랐다. 아마 그중에는 포조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모든 교황청 사무국 일원들은 황망함 속에서 무작정 교황을 따라갔다." 동시대의 한 기록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뒤쫓는 이가 없는 밤에도 교황은 계속 도주의 발걸음을 재촉했고 이는 나머지 그의 수행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끝내 황제의 거대한 압력 아래 코사를 비호해주던 주요 동맹이이 반갑지 않은 손님을 적의 손에 내주었다. 이제 세상은 교황이 범죄자로 감시를 받는 참으로 유익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