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명한 것을 본성이라 하고,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고 한다.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보지 않는 것에도 경계하여 삼가며, 그 듣지 않는 것에도 무서워하고 또 두려워한다. 숨어 있는 것만큼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미미한 것만큼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삼간다. 회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을 중이라 하고, 그것들이 발해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고 하니, 중이란 천하의 큰 근본이고, 화란 천하의 이루어야 할 도다. 중과 화에 이른다는 것은 하늘과 땅이 제자리를 지키고, 만물이 잘 길러지는 것과 같다. 중용 (제1장) - P110
분노와 원망, 무서움과 두려움, 좋음과 기쁨, 근심과 적정, 이 네 가지는 희로애락이 발현된 것이니 마음의 쓰임이다. 따라서 사람에게는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며 희로애락을 미워하면서 그 바름을 얻지 못하겠다고 하는가? 무롯 화를 내야 하면 화를 내되 그 화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말아야 하고, 두려우면 두려워하되 지나치게 겁을 내어서는 안 되며, 좋으면 좋아하되 지나친 욕심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근심할 만하면 근심하되 마음이 상할 정도로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해야 마음의 본체와 그 쓰임이 바르게 되는 것이다. 기뻐하고 화내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없어서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경지가 되는것도 진실로 마음의 올바른 본체가 아니고, 기뻐하고 화내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서 무언가에 붙들려 잡히는 잘못도 마음의 올바른 쓰임이 아니다. 오로지 일이 이르게 되면 그에 맞게 응하고 떠나가면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 이것이 바름이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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