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 네가 그 돈을 훔쳤니? 아미르의 시계를 훔쳤니?" 하산이 귀에 거슬리는 희미한 목소리로 한마디로 대답했다.
"예."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몸이 휘청거리고 가슴이 쿵하며 내려않았다. 사실을 털어놓으려다가 그것이 나를 위한 하산의 마지막 희생이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만약 하산이 아니오, 라고대답했다면 바바는 그 말을 믿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 하산이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바가 하산의 말을 믿는다면 내가 혐의를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가 저지른 짓이 드러날 것이다. 바바가 절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산의 행동을 통해 또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하산은 다 알고 있었다. 내가 골목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는 것을. 내가 그곳에 서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어쩌면 마지막으로 나를 구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 어떤 사람보다 그를 더 사랑했다. 그에게 내가 숨은 적이며 호수 속의 괴물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이런 희생을 받을 가치가 없었다. 나는 거짓말쟁이에 사기꾼이며 도둑이었다. 마음 한구석이 기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사실을 다 밝혔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곧 끝난다는 사실이 기뻤다. 바바가 그들을 쫓아낼 것이고 조금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나는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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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돌려보니 하산의 새총이 눈앞에 있었다. 하산이 넓은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고무줄 한가운데에는 호두만한 돌덩이가 장전되어 있었다. 하산은 새총으로 아세프의 얼굴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었다. 힘을 줘서 고무줄을 잡아당기느라 손이 떨리고 구슬 같은 땀방울이 이마에서 솟고 있었다.
"제발 우리를 내버려두세요. 도련님."
하산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아세프를 ‘도련님‘ 이라고불렀다. 상하 계급구조 안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그렇게 뿌리 깊게 의식하면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나는 잠시 동안 생각해보았다.
아세프가 이를 갈았다.
"그거 내려놔라. 어미도 없는 하자라인 주제에."
"제발 그냥 가주세요, 도련님."
- P67

나는 카불의 겨울이 좋았다. 밤에 창문에 떨어지는 눈 소리와 검은 고무장화 아래서 오도독거리는 눈 소리 때문에 겨울이 좋았다. 찬바람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마당과 거리를 획 지나갈때면 따뜻한 난로가 있어서 겨울이 좋았다. 더 중요한 이유는,
겨울이 되어 나무들이 꽁꽁 얼고 거리가 얼음으로 덮이면 바바와 나 사이의 냉랭함이 조금은 녹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와 바바 사이를 조금 호전시켜주는 존재는 연이었다. 바바와 나는 같은 집에 살았지만 다른 존재 영역에서 살았다. 그 영역 사이의 종잇장만큼 얇은 교차점이 바로 연이었다.
- P77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진짜 재미는 연이 잘릴 때 시작되었다. 연이 잘리는 순간 연 쫓는 아이들이 활약했다. 바람에날려간 연 주변을 떠돌던 아이들은 마침내 들판에 나선형으로 떨어지거나 누군가의 마당이나 나무나 지붕에 떨어질 때까지 연을쫓아갔다. 추격전은 상당히 격렬했다. 연을 쫓는 수많은 아이들이 떼 지어 거리로 몰려들어서 언젠가 책에서 읽은 것처럼 황소들을 피해 달려가는 스페인 사람들처럼 서로 밀치며 나아갔다.
어느 해에는 이웃에 사는 한 아이가 연을 잡으러 소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소나무 가지가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러지는 바람에 9미터 아래로 떨어졌다. 등을 다친 그 아이는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아이는 떨어지면서도 절대 연을 놓치지 않고 꼭 쥐고 있었다. 그리고 일단 연을 쫓는 아이가 연을 손에 넣으면 그누구도 그것을 빼앗아갈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규칙이 아니라 관습이었다.
연을 쫓는 아이들이 가장 탐내는 상품은 연날리기 대회에 참가한 것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떨어진 연이었다. 그것은 영광의 트로피였고 손님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벽난로 위에 진열해놓을수 있는 대단한 장식품이었다. 하늘에서 연이 모두 사라지고 마지막 두 연이 남았을 때, 연을 쫓는 아이들은 이 상품을 차지할 채비를 갖췄다. 아이들은 제일 먼저 출발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뛸 채비를 갖추고 근육을 긴장시킨 채, 모두 목을 때고눈을 가느다랗게 뜨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싸움이 시작되고 마지막 연이 잘리는 순간 아수라장이 시작되었다.
여러 해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이 연을 쫓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하산이야말로 지금까지 보아온 연 쫓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 마치 몸속에 나침반 같은 것이라도 갖고 있는 것처럼 항상 연보다 먼저 연이 떨어질 곳으로 가서 연을 기다리는걸 보면 등골이 오싹해졌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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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1975년의 춥고 흐렸던 어느 겨울날, 나는 열두 살 나이에 지금의 내가 되어버렸다. 오래 전 일이었지만 무너져가는 진흙 담장 뒤에 웅크리고 서서 얼어붙은 시냇가의 골목길을 엿보던 그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과거에 대해, 과거를 묻어버릴 방법에 대해 떠들어대는 다른 사람들의 말은 엉터리이다. 아무리 깊이 묻어둬도 과거는 항상 기어나오게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26년 동안 인적 끊긴 그 골목길을 줄곧 엿보고 있었던 것 같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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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이 되자, 그녀는 죽음을 포기하고 다시 먹이를 구하러 나섰다. 그녀는 더이상 트럭 운전사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 역시 자신을 떠나간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녀는 자신을 임신시켜놓고 떠난 사내의 무책임과 자신의 고통을연관지어 생각할 줄 몰랐다. 그녀에게 있어서 고통은 자신의 내부에서일어나는 현상일 뿐,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 P404

그렇다면 왜 그녀는 벽돌을 굽는 일에 그토록 필사적으로 매달렸을까? 그녀는 그 단조로운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무슨 생각을 한걸까? 그 작업 안에 어떤 종교적 희원이 담겨 있었다면 그 바람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감동적이리만치 순정하고 치열했던 그 열정의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진실이란 본시 손안에 쥐는 순간 녹아없어지는 얼음처럼 사라지기 쉬운 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혹, 그 모든설명과 해석을 유예하는 것만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그녀를 단순하고 정태적인 진술 안에 가둬두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만이, 또 그럼으로써 그 옛날 남발안의 계곡을 스쳐가던 바람처럼 가볍게 흩어지도록 놓아주는 것만이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아닐까? 독자 여러분, 이야기는 계속된다.
- P406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 공장을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413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린 사라지는 거야. 영원히.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 네가 나를 기억했듯이 누군가 너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춘희는 뭔가 더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미처 입을 뗄 사이도 없이 둘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져 광대한 성간에는 희미한 목소리만 남게 되었다.
꼬마 아가씨, 안녕.
코끼리, 너도 안녕. - 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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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

춘희는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비극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육체는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의 유니폼처럼단지 고통의 뿌리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 거대한 육체 안에 갇힌 그녀의 영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여줬던 불평등과 무관심, 적대감과 혐오를 그녀는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었을까? 혹, 이런 점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이야기꾼이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만이 세상을 쉽게 설명하려고한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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