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번역자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큰 틀에서 글쓰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한 은유 또한 자연스레 번역에서 얻게 된다.
모든 의사소통 행위는 번역이라는 기적이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서, 내 신경 세포 속의 변화하는 활동 전위들은 특정한 배열과 유형과 사유로 분출한다. 그들은 내 척수를타고 흘러내려 내 팔과 손가락으로 갈라져 들어가고, 결국에는 근유들이 움찔거리면서 사유가 동작으로 번역된다. 키보드의 조그마한 지렛대들이 눌리고, 전자들의 배열이 바뀌고, 종이 위에 기호들이 찍힌다.
다른 시간대의 다른 장소에서 그 기호들에 부딪혀 반사된 빛은,
자연이 수십억 년에 걸친 무작위적 변이 끝에 빚어낸 초정밀 광학기관 한 쌍으로 들어간다. 거꾸로 뒤집힌 영상이 광감지 세포 수백만 개로 이루어진 막 한 쌍에 맺히고, 이 막을 통해 전기적 파장으로 번역된 빛은 시각 신경을 거슬러 올라가 시각 교차를 지나 시각로를 따라 시각 겉질로 들어가며, 이곳에서 파장은 다시 조립되어 글자, 구두점, 단어, 문장, 보조관념, 원관념, 사유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위태롭고 불합리하고 SF처럼 보인다.
- P8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울고 있는 내 모습에서 시작한다. 기억속의 나는 엄마와 아빠가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아빠는 달래기를 포기하고 방에서 나가 버렸지만, 엄마는 나를 안고 부엌으로 가서 식탁 앞에 앉혔다.
"칸, 칸 (자, 보렴.)"
- P13

"내가 사랑(love)‘이라고 말할 때, 난 그 말을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켰다. "하지만 ‘아이 [愛]‘라고 말하면,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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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서는 축제‘에 협력을 아끼지 않았던 닭들은 아다마의손에 의해 폐광 후의 탄광촌 산에 방사되었고, 한번은 지방 신문에 기사로 실린 적이 있다.
"건강합니다. 야성화한 닭 10미터 점프!"
- P251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싸움이다. 나는 그 싸움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지겨운 사람들에게 나의 웃음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싸움을, 나는 죽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무라카미 류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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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키, 설마 네놈은 아니겠지, 응? 네가 한 짓은 아니겠지?
북고생이 북고를 더럽히는 짓은 하지 않겠지? 야자키, 대답해,
대답해! 아니라고 대답하란 말이야."
차가운 걸레가 목에 닿아 기분이 나빴다. 두들겨 패주고 싶었지만 소동을 일으키면 남의 이목을 끌 것 같아 참으면서, 이 손놔! 하고 노한 음성으로 외치며 학생회장을 노려보았다. 왜 내가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안경을 끼고, 키가 작고, 뻐드렁니가 난 데다 열일곱 고등학생 주제에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학생회장. 네놈은 모교 현관에 빨간 페인트로 글이 적혀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울먹인단 말이냐? 이 학교 건물이 너의 신전이라도 된단 말이냐? 그러나 이런 유의 인간이 정말 무서운 것이다. 무엇이든 한번 믿으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학살과 고문과 강간을 일삼은 것도 이런 인간들이다. 이런 인간은 한낱 낙서 때문에 울지만, 중학교 동창 여학생이 졸업과 동시에 흑인 병사의 자지를 핥는 것에 대해서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 P105

내가 울면서 용서를 빌기를 바라는 놈들이다. 그놈들의 증오심 가득한 눈길을 의식하면서, 나는 끝도 없이 떠들어댔다. 퇴학을 당해도 좋다고 그놈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비록 퇴학당하는 일이 있어도 나는 네놈들에게 지지 않아. 평생, 나의 즐거운 웃음소리를 들려줄테다… . - P127

마쓰나가 선생은 매일 보충수업을 한 다음, 높은 언덕에 있는 우리 집과 아다마가 사는 탄광촌을 버스를 타고 오갔던 것이다.
내 방에서는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버스 정류장에 내린 다음에 영원처럼 펼쳐진 좁다란 언덕길과 계단을 올라야 한다. 언제나 마쓰나가 선생은 그 언덕길을 걸어 우리 집으로 왔다. 도중에몇 번이나 멈추어 서서 휴식을 취하면서, 폐병 경력을 가진 선생이, 그것도 설교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통 땀으로 젖은 얼굴로 들어서서는, 잘 지내고 있니?라는 단 한마디를 하기 위해이렇게 높은 우리 집까지 찾아온다…….. 내 마음속에서 마쓰나가 선생에 대한 경멸감이 사라져갔다.
"야자키는 아직 이런 말을 이해 못할지 모르겠지만, 난 사범학교 시절에 큰 수술을 여섯 번이나 받았지. 내 가슴은 상처투성이라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야. 의식불명이 되기도 했어.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인간은 무슨 일에든 익숙해지게 마련이야. 수술에도, 마취에도, 의식불명에도 익숙해진 거야. 그래서 나는 무슨일에든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지. 이를테면 여름에는 해바라기와 칸나가 아름답게 피지 않니, 난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괜찮다고 모든 것을 체념할 수 있게 되었어."
- P145

초등학교 때 감기에 걸려 사흘간 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친구들과 교실이 그리웠다. 119일 동안이나 결석을 했음에도 이 교실에 대해 아무런 감회가 없는 것은, 이곳이 선별과 경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개나 소, 돼지도 어릴 때는 그냥 놀면서 지낸다. 북경요리의 돼지새끼 통구이용 돼지새끼만 빼고. 동물이건 사람이건, 어른이 되기 일보 직전에 선별이 행해지고, 등급이 나눠진다. 고등학생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는 가축이 되는 첫걸음인 것이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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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질문은 모형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역량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통계 전문가처럼 말하면, 모형을 확장시킬 수 있을까? 괴짜 수학자의 괜한 트집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확장성은 WMD들을 지엽적인 골칫거리에서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는 지진 해일로, 즉 우리의 삶을 정의하고 한계를 부여하는 거대한 힘으로 변화시키는 요소다. 차차 알아보겠지만 노동, 건강, 금융 분야에서 사용되는 WMD들은 우리에게 법률에 버금가는 힘을 발휘하는 광범위한 규범을 신속하게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은행의 대출심사모형이 당신에 대해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다고 판단하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지독한 오해에 불과할지라도 온 세상이 당신에게 ‘예비 채무불이행자‘라는 똑같은 꼬리표를 붙일 것이다. 꼬리표 정도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 꼬리표는 당신이 아파트나 일자리를 구할 때는 물론이고 자동차를 렌트할 때조차 기준이 되어 당신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이 WMD의 확장성이다.
- P58

세 번째 요소인 피해와 관련해서도, WMD가 모든 사람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WMD 모형 덕분에, 어떤 학생은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하고, 누군가는 저금리 대출을 받거나 좋은 직장을 구하고, 일부 운이 좋은 범죄자는 가벼운 양형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핵심은, WMD 모형으로 혜택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고통 받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되는 모형은 수백만 명의 면전에서 기회의 문을 닫아버리고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더욱이 가끔은 지극히 하찮은 이유로 그렇게 한다. 그러니 WMD 모형이 불공정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알고리즘과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알고리즘은 하나의 분야에서 전혀 다른 분야로 이동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은 빈번하게 있어왔다. 가령, 전염병에 관한 역학 연구는 영화흥행을 예측하는 데 활용된다. 스팸 필터링 기법을 응용해 에이즈 바이러스를 식별할 수도 있다. WMD도 마찬가지다. 수학 모형들이 교도소에서 본연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즉 수감자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관리한다면, 그 모형들은 다양한 영역으로 응용되고 확산되면서 우리에게 부수적 피해를 안겨줄 수 있다. - P61

수학 모형은 본질적으로 과거와 기존 패턴들이 반복될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 P73

어느 순간, 나는 데이터과학 분야에서도 예전에 금융계에서 목격했던 것과 똑같은 패턴이 나타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안전하다는 착각에 사로잡혀불완전한 모형을 광범하게 사용하고, 성공을 자기중심적으로 정의하며, 차별적 피드백 루프가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었다. 이런 흐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향수에 젖은 러다이트 Luddite 라고 매도됐다.
나는 빅데이터 분야와 관련, 금융계의 신용위기와 유사한 개념이무엇일지 궁금했다. 나는 파산이라는 말 대신에, 불평등이 증가함에따라 많이 회자되고 있는 디스토피아 dystopia 라는 말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알고리즘은 패배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계속 패배자로 남도록 만든다. 반면 운이 좋은 소수는 빅데이터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갈수록 확장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자신은 모든 특혜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확신한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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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트럭 운전석에 앉아 오고가는 쇼핑객들을 바라본다. 모두가 바삐 움직인다. 다들 무슨 할 일이 그렇게 많고, 무슨 생각들이 그리 많은지. 나도 바삐 움직여야지. 집에 가서 글렌다와 둘이 먹을 저녁을 지어야겠다. 내일은 북쪽의 농장으로 출근해 온종일 라이딩해야지. 계속 바삐 움직일 테다. 하던 대로 해나갈 것이다. 내가 바꿀수 없는 일들에 집착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십오 분을 더 주차장에서 뭉그적거린다. 도무지 시동을 걸지 못하겠다.
- P259

말을 타는 건 파도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고 늘 생각해왔다. 파도는 우리를 감으면서 지나간다. 우리는 파도를 발로 차거나 때리지 않고, 파도를 컨트롤하는 건 꿈도 꾸지 않는다. 모든 파도는 특색이 있다. 어떤 파도는 순식간에 높은 벽을 만들었다가 금방 꺼진다. 어떤 .파도는 얇게 밀려와 천천히 일어선다. 그런 파도는 표면에 부서진 자국 하나 없이 매끄러운 터널을 만든다. 파도가 다가오는 게 보이면서프보드를 비스듬히 놓는다. 그리고 손으로 물 저을 준비를 한다. 그러나 일단 파도가 감아오기 시작해 우리를 덥석 물면, 그다음엔 마치 연인에게 하듯 그저 표면을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수밖에 없다.
- P338

"열린 그릇이 되려고 해봐." 스승 중 한 분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더 많이 열려 있을수록 말들도 제 마음을 더 전하려고 할 거야." 그분은 말 타는 얘기를 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파도타기를 생각하고있었다.
- P340

이제 머지않아, 언제고 토니와 일라이자와 랜디는 이 목장을 떠날 것이다. 형기를 마치자마자 우리의 세계로 다시 들어올 것이다.
조이와 올리비아도 결국에는 다른 데로 갈 것이다. 나는 루나 그리고 루나의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남겨질 것이다. 어쩌면 가축전담반에 재소자들이 더 들어올지 모르고, 지금보다 훨씬 많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나의 두려움, 외로움, 다 버리고 도망치고픈 욕구들을 떠나보내야 한다. 변화는 어느 날 느닷없이 발현될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생명을 구하고 있어요." 몇 달 전 일라이자가 교도소에서 목장으로 이소하려고 면접 보러 온 여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한 번에 하나씩요."
- P360

토니는 양쪽 발을 다 땅에 내려놓고 있다. 돌아서서 나를 보며 허락을 기다린다.
"이제 기승해도 돼요?" 토니가 묻는다.
"루나가 준비된 것 같으면요." 하지만 나는 마음속 깊이 알고 있다. 루나가 준비됐다는 것을. -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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