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성을 인종적 범주로 인식하지 못하는 백인평론가들과는 달리 나는 백인성이 보인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하얀 공간을 인지하는 내 습관이 다른 즐거움을전부 망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는 중이다. 나는 자명한 것, 또는자명해야 하는 것을 끝없이 지적하는 잔소리꾼이 되고 말았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등장인물들의눈이 멀 때, 시야가 캄캄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눈을 뜬채로 우유의 바다에 빠진 것처럼" 하얗게 변한다. 나는 어디를가든 백색을 본다. 나는 그 백색의 간계를 감지한다. 심지어 내생각마저도 엑스선 찍을 때 쓰는 방사선 불투과성 조영제를 주입한 것마냥 백색으로 얼룩졌다는 것을 안다. 그 얼룩은 나의삶을 남한테 끊임없이 사과하도록 만든다. 나는 더 이상 내 삶을 기대에 못 미치는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전과 반대되는 상황에서도 나는 여전히 내 삶을 백인성과 결부시켜 바라본다. - P121
서투른 영어는 한때 부끄러움의 원천이었지만,
이제 나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서투른 영어는 나의 유산이다.
나는 완벽한 영어에서 일부러 멀어질 것을 외치는 작가들과-영어를 탈취해 도망자의 언어로 비듦으로써 영어를 어지럽히고,
뒤흔들고, 난도질하고, 괴랄하게 만들고, 타자화하는 작가들과ㅡ문학적 계보를 공유한다. 영어를 타자화하는 것은 듣는 사람이 그언어에 박힌 제국주의 권력을 알아차리도록 하는 것이며, 영어를절개하여 그 어두운 역사가 비어져 나오게 하는 것이다.
시인 너새니얼 매키는 에세이 타자 : 명사에서 동사로」에서 타자라는 명사는 사회적 의미를 띠고, 타자화하다라는 동사는 예술적 의미를 띠는 것으로 구분한다.
예술적 타자화는 문화적 건실성과 다양성 증진의 기반인 혁신, 발명, 변화와 관계 있다. 사회적 타자화는 권력,
배제, 특권과 관계 있다. 즉 한 명사를 중심에 놓고 그것을 기준으로 타자성을 측정, 배분, 주변화하는 것이다. 나는 후자에 예속되는 사람들에 의한 전자의 실천에 초점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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