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왜 그랬을까요?" 그가 물었다. 그가 앗아간 목숨들과 그가 죽음으로 내몬 어린 의용군들이 치른 희생에 대해 그는 언제나 통일된 아일랜드가 출현하면 궁극적으로 정당화될 거라고 이해했다고 했다. 그런데 대신, 아담스는 부유한 정치인, 평화 중재자가 되어 있었으며, 충돌 이후의 북아일랜드서 독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로 스스로 자리매김했다. 지지자들 눈에 아담스는 역사적 인물이었고, 선지자였으며, 마땅히 노벨상 후보였다. 그러나 휴즈의 눈에는 제리 아담스가 자신의 야망에 속아넘어갔거나 아니면 더 나쁘게는 영국에 조종당하는 인물로 비쳐졌다. 감옥에서 급진파가 전략에 대한 교육 실습을 진행할 때 기본적인 수업 하나가 바로 영국의 대반란 계획 접근 방식의 핵심이 "그들이 다룰 수 있는 지도부를 만들어내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휴즈는 평화협정의 여파로 아담스 본인이 부지불식간에 바로 그런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허용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 P315

1981년 여름, 보비 샌즈 외 세명의 다른 단식투쟁가들이 죽고 난 후, 오라는 감옥 내에서 협상을 이끄는 것을 돕고 있었다. 오라에 따르면, 수감자들은 마거릿 대처로부터 그들의 요구를 거의 모두 승인하겠다는 비밀 제안을 받았다. 완전한 항복은 아니었지만-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였던- 사복을 입을 수 있게 하는 것 외에도 다른 핵심적인 양보들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오라와 또 한 명의 협상가는 감옥 바깥의 급진파 지도부에게 영국의 제안을받아들여 단식을 끝낼 용의가 있다고 적힌 전갈을 몰래 보냈다. 그러나 바깥에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리 아담스에게서 온 답장은 대처가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단식투쟁가들이 계속 버텨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식투쟁을 끝내기 전에 여섯 명이 더 죽었다. 대중들에게는 늘 단식투쟁을 끈질기게 고집한 것은 수감자들 본인들이었다는 주장이 알려져 있었으며, 오라는 그러한 역사의 해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그 극적인 사건을 둘러싸고 결속을 강화하는 "세심하게 짜여진 신화"라고 생각하게 된 것을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사적으로는 당시 더욱 강력하게 들고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막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아담스와 측근들이 왜 내부자들이 수용할 태세가 되어 있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단식을 지속시켰을까 내내 의아했었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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