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는 이미 출산휴가가 전혀 없는 여자들이 있다. 임신 노동자지침에 여성 정치인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 국회의원은 출산휴가를 쓸 수 있지만 국회에 직접 출석하지 않고도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 없다. 일종의 편법으로 페어링 pairing이라는 방법이 있는데 페어링이란 한 하원의원이 자신과 반대표를 던질 의원과 짝을 이루어 둘다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2018년 7월 우리는 이 방법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봤다. 당시 출산휴가 중이던 자유민주당의 조스윈슨Jo Swinson과 짝인 보수당 의원 브랜던 루이스Brandon Lewis가 알수없는 이유로 자신이 페어링 중이라는 사실을 깜빡하고 출석하여 브렉시트 법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이날 정부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기 때문에 2표 차이가 중요했다. - P113

미국에서 청구 가능한 노동비용을 결정하는 곳은 국세청이다. "대체로 사적인, 일상생활과 관계된 가족 관련 비용은 공제받을 수 없다"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사적인 비용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사람이 돈 보바스Dawn Bovas다. 보바소는 미국 광고계에 몇 안 되는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또한 싱글 맘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디렉터들을 위한 만찬을 연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 보바소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과연 이 만찬에 탁아비와 교통비로 사용될 200달러(한화 약 23만 4000원)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보바소의 남성 동료들은 대부분 그런 계산을 할 필요가 없었다.물론 남자도 싱글 대디일 수 있지만 대단히 드물다. 영국 싱글 부모의 90%는 여자다. 미국은 80% 이상이다. 보바소의 남성 동료들은 그냥 스케줄을 확인하고 초대를 수락하거나 거절하면 됐다. 대부분은 수락했다. 사실은 수락만한 게 아니라 마음 놓고 술 마시려고 식당 옆 호텔을 예약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비용은 보바소의 탁아비와 달리 회사에 청구가 가능했다.
여기에 숨은 전제는 명백하다. 직원에게는 집에서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는 아내가 있다는 것이다. 이 노동은 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여자의 일이고 여자는 이에 대한 급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보바소는말한다. "야근을 하면 (아내가 회사에 와서 저녁을 요리해줄 수 없기 때문에) 배달 음식비 30달러(한화 약 3만 5100원)를 회사에 청구할 수 있다.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싶으면 위스키 값 30달러를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탁아비 30달러는 안 된다. 아이는 무급 노동자인 아내가 보기 때문이다." 결국 보바소는 탁아비를 회사로부터 받아낼 수 있었지만 "나의 요청은 예외적인 일이었다"라고 지적한다. 즉 모든 여자는 항상 디폴트가 아니라 예외다. - P125

총명 편견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라면 이런 가르침을 중단하기란당연히 쉬울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여학생들은 교과서에 여자학자 사진이 나오기만 해도 과학 과목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낸다. "따라서 여학생들에게 여자가 총명하지 않다고 가르치는 것을 멈추려면 대표성을 제대로 반영하기만 하면 된다. 그만큼 쉽다.
이미 배운 총명 편견을 고치는 쪽이 훨씬 더 어렵다. 게다가 총명 편견을 배운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에 진출하면 스스로 그것을 재생산하기 쉽다. 총명 편견은 사람이 직접 채용 결정을 할 때도 충분히 악영향을 끼치는데 알고리즘 기반 채용이 상용화되면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우리의 결정을 대행하는 인공지능에도 부지불식간에 총명 편견이 입력되어 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 P140

블라인드 심사는 채용 과정에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승진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는 더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여기에도 해결책이 있다. 근거 제시와 투명성이다. 한 기술업체는 팀장들이 임금 인상 결정을 할 때 그에 대한 실질적인 근거를 제시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결정과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해서 위원회가 감사하게 한 것이다. 이 방식을 채택하고 5년이 지나자 남녀 임금격차가 거의 사라졌다. - P150

 2016년 프로스펙트노조Prospect Union가 구급대원에서부터 건설노동자, 에너지업계 종사자에 이르는 다양한 부문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조사했더니 겨우 29%만이 여성용 PPE(personal protect equipment)를 착용했고, 2016년 TUC 보고서에 따르면 "에너지 부문에서 일하는 여자의10% 미만, 건설업에서 일하는 여자의 17%만이 현재 여성용 PPE를 착용하고 있다.  한 철도업계 종사자가 한마디로 요약했다. "스몰 사이즈는 거의 없고 있다 해도 남성용밖에 없다."
PPE에 대한 이 "남녀 공식 접근법은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TUC는 경고한다. 가슴, 엉덩이, 넓적다리 둘레의 차이는 하니스끈이 딱 맞게 조이는지와 상관이 있다. "표준" 미국 남자 얼굴형에 맞는 방진 마스크나 방독면을 사용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여자 얼굴에 그리고 흑인을 비롯한 소수인종 남자들에게도 안 맞는다는 뜻이다. 안전화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한 여자 경찰관은 여자 현장감식반용 신발을 구하려했던 이야기를 TUC에 했다. "경찰에서 지급하는 PPE 신발은 남성용과같다. 여자가 신기에는 불편하다. 너무 무거워서 아킬레스건에 부담을준다. 그러나 제복 지급처는 대화를 거부했다."
이는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몸에 안 맞는 PPE는 업무에 방해가 되고 그 자체가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 P166

스케줄 문제는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알고리즘에 의해 악화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회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적시 조달just in time"
소프트웨어는 판매 패턴 등의 데이터를 가지고 어느 시점에 직원이 몇명 필요할지를 예측한다. 또한 실시간 판매 분석에도 반응하여 고객이줄어들면 점장에게 직원을 집에 보내라고 말해준다. "마치 마법 같다"라고 이 소프트웨어를 미국의 여러 체인점에 납품하는 크로노스주식회사 Kronos Incorporated의 사업 개발 부사장은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사업에 따르는 위험을 크로노스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노동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수익을 늘리는 회사들에게는 정말 마법 같을지도 모른다. 또 말단 인력의 수급이 고효율화될수록 그 수가 늘어가는 관리직 사원들도 아마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말단 노동자들, 특히 돌봄의무가 있는 이들의 기분은 그리 좋지 못하다. - P1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제1장

새벽 네 시, 조시가 또 울었다. 나는 몇 주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조시 때문에 깬 건 아니었다. 조시가 칭얼대기 몇 시간 전부터 나는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제대로 쉬지 못해 그로기 상태였고, 침대에서 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조시는 세상에 나온 지 석 달밖에 안된 목을 또 심하게 써댔다. 나는 아이 울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멍하니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조시가 계속 보채자 아내 베스가 잠에서 깼다. 베스는 잠이 덜 깬 채 팔꿈치로 나를 쿡 찌르며 말했다. 이틀 만에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애 좀 달래봐."
아내는 그 말을 마치고 엎드리더니 베개로 머리를 가렸다.
나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내키지 않는 듯 기계적인 동작이었다. 비로소 하루가 시작됐다. 그러나 하루가 끝난 적도 없었다. - P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엄마는 아직도 쫓기고 있었다. 엄마는 좌익 조직으로부터 헛되게 도망을 다녔듯이 이번엔 전향한 후환으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전전긍긍하는 것을 전혀 터무니없는 일종의 신경 불안 증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이사야말로 가장 성공적인 치료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새롭게 전개될 생활에 대한 예감에 충만한 특별히 아름다운 5월이었다. 그러나 하필 1950년의 5월이었다. 남달리 명철한 엄마도 환멸을 예비하지 않고 마냥 마음을 부풀린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해 6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 P265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 조금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줌, 보리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이어집니다. - P3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설계자가 젠더를 고려하지 않을 때 공공장소는 남성 디폴트가 된다. 그런데 현실은 세계 인구의 절반이 여성의 신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인구의 절반은 매일같이 그 신체에 가해지는 성적 위협과 싸워야한다. 세계 인구 전체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데 현재 그 돌봄노동은 주로여자들이 무급으로 한다. 이것들은 특수한 관심사가 아니라 보편적 관심사다. 그리고 공공장소가 정말로 모두를 위한 곳이 되려면 지금부터라도 세계 인구의 나머지 절반을 배려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제껏 살펴본 것처럼 이는 정의의 문제만이 아니다. 간단한 경제문제이기도 하다. - P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간절히 희망하는 것이 있기에 절망한다. 절망의 고비는 희망을 품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고비를 넘지 못하고 체념으로 곤두박질쳐 무생물체가 되기로, 심장을 돌덩어리로 만들기로 작정하면 슬픈 일이다. 이 순간에 필요한 것은 ‘축복‘, 밖에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어떻게든 나를 끈기 있게 축복하는 것이다. 아직 끝장은 오지 않았으니 그토록 열망하던 것을 함부로 폐기처분하지 말자. 일단은 푹쉬면서 내가 나를 축복할 수 있는 힘을 충전하자. - P212

자신감을 가지기엔 아직 물리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최선을 다해 도움을 청해야 한다. 자신을 낮춰 도움을 청하는 것까지가 노력이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데 시도해보지 않고 혼자 애쓴다면 노력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 P251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짧은 순간의 깨달음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 <여인숙>,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잘랄라딘 모하마드 루미 - P2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