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갈색 털이 무성한 손이 불쑥 내 코앞까지 뻗어와 멈추었다. 그의손아귀에 펴든 패스포트 속에서 긴 머리의 아가씨가 활짝 웃고 있었다.
"예쁘군요."
그들에게는 좀 허풍스런 찬사를 보내야 하는 법인데 오후의 피곤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나른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내 앞에 선 우람한 GI는 몸집보다는 민감한 듯했다. 금방 씰쭉해지더니 사진을 나꿔채듯 제 눈앞에 가져다가 새삼스럽게 찬찬히 훑어보았다. 이윽고 제품에 안심이 되는지 다시 입을 헤벌렸다.
나도 이때를 놓칠세라 재빨리 직업의식을 발휘했다.
"내가 본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답군요. 당신은 행운아예요. 물론 그녀를 위해 초상화를 그리셔야죠. 어때요? 이 고운 실크 스카프에다 그리면."
나는 우선 한 귀퉁이에 용의 모양을 날염한 번들한 인조 스카프를 권해보았다. 그게 우리 초상화부로서는 제일 수지가 맞는 품목이었다. - P13

그들은 늘 몹시 바빴고, 난 또 얼마나 바빴었을까. 세상에는 재미난 일들이 너무나 많았고 좋아할 것이 연달아 널려 있어서 혁이 오빠도 욱이 오빠도 눈이 돌 지경이었고, 난 또 그것을 덩달아 하느라신이 났었다.
우리집에 무상출입하는 오빠들의 유쾌한 친구들을 좋아했고, 그들이 즐기는 스포츠와 유행 음악에 덩달아 열중했고, 그들이 반한 영화배우에 나도 반했고, 그리고 부드럽고 말랑한 손과 구수한 음식 솜씨를 가진 우리들의 어머니를 또한 얼마나 사랑했던가.
나는 벽면의 난잡한 진열품들을 샅샅이 훑어보고나서 다시 한 번기타줄을 튕기고 자리에 엎드렸다.
가슴 밑 명치께가 요사이 늘 그렇듯이 체증 비슷한 거북함으로 보깨기 시작했다. 나는 엎드린 채 그 밑에 베개를 괴고 지그시 눌렀다. 난 알고 있었다. 그 속에서 사랑하고픈 마음이 얼마나 세차게꿈틀대고 있는지를.
그러나 도대체 누구를 덩달아, 누구를, 무엇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인가? - P23

‘마리아 당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기나 하리까.‘
무언가 뿌듯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마리아, 당신만은 아시리다…….‘
청순한 동경이 언 몸을 깃털처럼 감쌌다.
‘마리아, 당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기나 하오리까……. 마리아,
당신만은 아시리다. 그 다음은 뭐더라….
문득 나는 내가 전에 애송한 시의 구절을 생각해내려고 골몰하고있음을 깨닫는다. 남의 흉내, 빌려온 느낌은 그것을 깨닫자 흥을 잃고 싱거워졌다. 그리고 가식 없는 나의 것만이 남았다. 그것은 무섭다는 생각과 춥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것만이 온전한 나의 것이었고 그 느낌들은 절실하고도 세찼다. 나는 어두운 길을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무섭다‘를 거푸 뇌까리며 ‘무섭다‘ ‘춥다‘에 떠밀리듯이달음질쳤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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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두 체제 동안 1400만 명이 의도적 살육을 당했다. 지금은 이에 대해 우리가 통달은 못할망정 조금이라도 알기 시작할 때다. 과장된 숫자를 반복하며, 유럽인들은 그들의 문화에 수백만 명의 존재하지 않았던 유령을 집어넣고 있다. 불행히도, 그런 유령은 완전히 무력하다. 서로 경쟁적인 순교자 신화에서 나오는 것은 결국 순교자를 내세운 제국주의martyrological imperialism일 뿐이다. 1990년대의 유고내전은 부분적으로 세르비아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자민족의 희생자 수를 실제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인식한 데서 비롯됐다. 역사가 없어지면, 숫자는 부풀려지고 기억은 억눌려지면, 공포스러운 상황이 찾아온다. - P714

각각의 사망 기록은 하나의 독특한 삶에 대해 그 존재를 제시하지만, 내용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죽은 이의 숫자를 셀 뿐 아니라 죽은 이 한명 한 명을 개인으로 취급해야 한다. 대규모 학살에 심층 조사를 실시한 경우는 홀로코스트로, 570만 명의 유대인이 죽었고 그 가운데 540만 명이 독일의 손에 죽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 숫자도 다른 숫자들과 마찬가지로, 다만 추상적인 ‘570만‘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하나의 570만 배‘로 여겨져야 한다. 그것은 뭐랄까, 한 사람의 유대인이 570만 번 죽었다는 식의 의미가 아니다. 셀수 없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하나하나 기억될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도브시아 카간은 코벨 시너고그에 있던 소녀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있던 모든 이들, 코벨에서 죽은, 우크라이나에서 죽은, 동유럽에서 죽은 유럽에서 죽은 모든 유대인은 독특한 삶의 소유자였다.
기억의 문화는 어림수를 쓰기 마련이다. 그러나 죽은 자들에 대한기억은 그 수가 어림수가 아닐 때, 다시 말해서 마지막 단위가 0이아닐 때 쉬워진다. 따라서 홀로코스트의 경우, 트레블린카에 78만863명의 서로 다른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아마 쉬워질 것이다. - P716

나치와 소련 체제는 사람들을 숫자로 바꿔버렸다. 그들 중 일부는단지 추정치가 되어버렸고, 나머지 일부는 우리의 정밀한 추계를 통해 복원될 수 있다. 우리 학자들로서는 이 숫자들을 찾고, 이를 통해 일정한 전망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 인간의 마음을 가진 우리로서는, 그런 숫자들을 사람들로 돌려놓아야 한다. 우리가 그럴 수 없다면,
히틀러와 스탈린은 단지 우리의 세상을 마구 뜯어고쳤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마저 개조했다는 뜻이 되리라. - P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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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그 사람이 소파에 앉아 시리얼을 먹다가 불현듯 어떤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그것에 대해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이를테면 사람들이 이메일 마지막에 겨우 키보드 네 번 더 누르는 수고를 안 하려고 머리글자 하나만으로 서명하는 것이 얼마나 자기를 짜증나게하는지 모른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
혼돈이 그 사람을 집어삼킬 것이다.
혼돈은 부러져 떨어진 나뭇가지나 질주하는 자동차, 총알 하나를 거느리고 밖에서 치고 들어가 그를 으스러뜨릴 수도 있고, 아니면 반란을 일으키는 그 사람의 몸속 세포들과 함께 안에서 박차고 나와 그를 해체해버릴 수도 있다. 혼돈은 당신의 화초를 썩어 물러지게 하고, 당신의 개를 죽이고, 당신의 자전거를 녹슬게 할것이다. 당신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부식시키고, 가장 좋아하는 도시를 무너뜨리고, 당신이 간신히 쌓아올린 모든 성스러운 장소를 폐허로 만들 것이다. - P15

1906년 어느 봄날 아침, 난데없이 닥친 지진으로 그가 수집한 반짝이는 표본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 전까지는.
수백 개의 유리단지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고, 그의 어류 표본들이 깨진 유리와 넘어진 선반들에 의해 절단되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최악의 피해를 입은 건 이름들이었다. 조심스럽게 유리단지에 넣어둔 주석 이름표들이 온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창세기가 거꾸로 펼쳐진 끔찍한 지진 속에서, 그가 꼼꼼하게 이름 붙인 물고기 수천 마리가 다시 수북이 쌓인 미지의존재들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이 콧수염을 기른 과학자는 평생의 노고가 자기 발치에서 내장을 쏟아내는 파괴의 잔해 한가운데서 이상한 짓을 했다.
그는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그 지진이 전하는 명백한 메시지, 즉 혼돈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결국 실패할 운명이라는 메시지에 그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소매를 걷어붙이고 허둥지둥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세상의 하고많은 무기 중에서 바늘 하나를 찾아 들었다.
그는 엄지와 검지로 바늘을 잡고는 바늘귀에 실 한 올을 꿰더니 그 파괴의 잔해에서 그나마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물고기 하나를 겨냥했다. 그러고는 한 번의 유연한 동작으로 바늘을 물고기의 목살에 찔러 넣어 이름표를 꿰매붙였다. 폐허에서 구해낼 수 있는모든 물고기에 이 작은 동작을 반복했다.
이제는 절대 이름표를 유리단지 안에 어정쩡하게 넣어두는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각자의 이름을 바로 그 물고기의 피부에 꿰매 붙였다. 목에, 꼬리에, 눈알에 꿰매 붙인 이름들. 이 작은 혁신은 도전적인 소망을 담고 있었다. 이제 그의 작업은 혼돈의 맹공 앞에서도 안전하게 버호받을 것이라는, 다음번 혼돈의 공격 때는 그의 질서가 흔들힘 없이 우뚝 서 있을 거라는 도전적인 소망. - P17

루퍼스가 죽은 이후 데이비드의 일기장은 색채들로 폭발하기 시작했다.24 들꽃, 고사리, 아이비, 나무딸기 등 이 세계에서 뜯어올 수 있는 자연의 모든 파편을 꼼꼼하게 스케치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림의 기교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그 그림들은 문질러 번진 연필 얼룩, 잉크 자국, 지우개 자국, 지나치게 열심히 그리려다 흘린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그 미숙함 속에는 그의 집착과 필사적인 마음, 자신도 모르는 것들의 형상을 붙잡아두기 위해 근육의 온 힘을 동원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 P30

심리학자들은 이처럼 괴로운 시기에 수집이 줄 수 있는 달콤한 위안에 관해 연구해왔다. 수십 년간 강박적인 수집가들과 상담해온 심리학자 워너 뮌스터버거 Werner Muensterberger는 《수집: 다루기 어려운 열정Collecting: An Unruly Passion》에서 수집 습관이 모종의 "박탈 혹은 상실 혹은 취약성"이 발생한 후 급격히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으며, 새롭게 하나를 수집할 때마다 수집가에게는 폭발적인 도취감을 주는 "무한한 힘의 환상"이 흘러넘친다고 말했다. 그라나다대학에서 수년간 수집가들을 연구한 프란시스카 로페스-토레시야스Francisca López-Torrecillas는 스트레스나 불안을 겪는 사람들이 수집에 의지해 고통을 달랜다며 비슷한 현상을 지적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뮌스터버거가 지적하듯, 유일한 위험은 여느 강박과 마찬가지로 수집 습관이 "신나는" 일에서 "파멸적인 일로 바뀌는 어떤 지점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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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에 의존하는 현대적 기업식 농업의 소위 녹색혁명은 전혀 지속가능성이 없다. 코넬대학의 데이비드 피멘텔은 전 세계가 지금의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먹고 농사를 짓는다면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의 모든 화석연료 매장량이 단 7년 만에 고갈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에 따르면, 한 마리의 암소를 키우는 데 1배럴(약 159리터)의 원유가 필요하다. 현대의 농업은 표토를 1년에 2.5센티미터의속도로 훼손시킨다. 자연이 생산성 있는 토양 25센티를 만드는 데는1000년의 시간이 걸린다. 미국 중서부에서는 30리터의 옥수수를 키우기 위해 60리터의 표토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기업식 농업은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 비료와 유독한 화학물질에 의존한다. 지하수를 보충되는 것보다 25퍼센트 빠른 속도로 퍼 올린다. 결국 소규모 유기농 농법으로 재배할 수 있는 것보다 적은 식량이 생산된다. 1991년 영국의학연구회의 연구는 채소의 경우 1940년에 비해 최대 75퍼센트의 영양소를 잃었고 고기는 무기물의 절반을, 과일은 약 2/3를 잃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 P308

이렇게 안정적인 지구가 종말을 고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업들이 자연재해로 이익을 얻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진다. 정부 계약을따내고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면서 자신들의 수익을 늘리는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정부도 기업도 자원 사용에 완전 원가 회계 (full costaccounting)를 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부는 경제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척도로 GDP (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를 사용한다. GDP는 공기와 물의 청결성, 토양의 건전성, 생태계의 생물다양성, 해수 온도와 같이 재화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자연 자원을 뒷받침하고 유지하는 요소들이 아니라, 생산된 재화의 가치로 국가 경제의 건전성을 측정한다. 이 때문에 자연자원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주 유출되는 위험 물질 인근 대수층의 오염, 유독 대기오염 등의 위험에도 불구하고지구에 남은 기름 한방울까지 짜내겠다는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 P311

그렇다면 토양 건강의 회복이 기후변화를 되돌리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어떨까? 이 형제들은 의도치 않게 이 주장도 증명해 주었다. 전형적인 방식으로 관리된 토지가 공기 중으로 더 많은 탄소를 내보내서 기후변화를 악화시키고, 토양 내의 탄소를 다시 회복시키는 자연의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잊지 말라. 되살림 유기농 농법을 사용한 토지의 토양을 분석한 과학자들은 탄소 함량이 매년 토지 1헥타르당 톤씩 늘어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공기 중의 탄소가 해마다 1헥타르당 9톤씩 토지로 되돌아간 것이다. 기후변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농부와 목장주들은 산출량을 늘리고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사실 되살림 유기농 농법을 사용하는 농지는 풀을 먹는 가축에 대한 ‘수용력‘이, 전형적인 농법을 사용하는 농지보다 2배 이상 높다.
우리로서는 영양적 가치가 더 높은 식품을 먹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지구에 45억 헥타르의 초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우리 모두가 현명한 아들의 되살림 유기농 농법을 따른다면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토지로 끌어들여서 식량과 비옥함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 우리는 수십억 톤의 산소를 토지로 끌어들여 기후변화를 역전시킬 수 있다. 오늘날 세계가 이용할 수 있는 대단히 귀중한 기회이며, 파타고니아가 수용하려고 애쓰는 기회이다.
-래리 코팔드 - P313

1990년대 중반 네 명의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수원림의 웅장한 고대삼나무 숲을 벌목으로부터 보호하자는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들은 파타고니아 인턴들이었다. 우리 회사의 인턴 과정을 거치는 직원들은 최대 2개월까지 회사를 떠나 환경단체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파타고니아는 그들에게 봉급과 직원 복지를 계속 제공했다. 특정한 상황에서는 회사가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하거나 환경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사람들을 위해 보석금을 내준다. 우리는 정부가 법을 어기고 집행을 거부하려 하면 시민불복종이 마땅한 행동 방침이라고 믿는다. - P339

정기적으로 미국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 미국 내 인권 및 가족계획 운동 단체)을 지원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우리 제품을 절대 사지않을 것이라는 수천통의 편지를 받았다. 표적이 된 모든 기업(모두가파타고니아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은 통일된 대응을 하기로 했다. CAC가우리 매장에서 집단 피켓 시위를 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우리는 플레지어피켓(Pledge-a-Picket, 직역하면 피켓 하나씩에 대한 약속 - 옮긴이)이라는 전략을 사용했다. 피켓 시위자 한 명당 그 사람의 이름으로 가족계획연맹에 10달러씩을 기부하겠다고 맞선 것이다. 그들은 시위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보이콧은 무산되었다. <뉴욕타임스>는 우리를 ‘용감‘하다고 묘사했다. 이후 우리는 가족계획연맹 지지자들로부터 수천통의 편지를 받았다. 1993년 우리는 산림보호 단체에 대한 지원을 막으려는 비슷한 보이콧 시도 역시 막아냈다. - P355

나는 모든 일에서 달인이 되는 길은 단순함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기술 대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많이 알수록 필요한 것은 적어진다.
나 자신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려는 미미한 시도들을 통해 나는 보다 단순하게 살아야, 혹은 그렇게 살기로 선택해야 정말 중요한 모든 면에서 빈곤하고 결핍된 삶이 아닌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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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스만 소설의 등장인물 하나가 부르짖듯이, 국가사회주의와 스탈린주의의 핵심적인 공통점은 일정 집단의 사람들에게서 사람으로 여겨질 권리를 빼앗는 그들의 능력에 있었다. 따라서 유일한 답은 그것이 말도 안 된다고 외치는 일, 외치고 또 외치는 일뿐이었다. 유대인과 부농은 "사람이다. 그들도 사람인 것이다. 나는 이제 우리 모두가 사람임을 알았다." 이것은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허구적 세계‘라고 불렀던 것에 저항하는 문학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떼지어 죽어간 까닭은 스탈린이나 히틀러 같은 지도자들이 부농이나 유대인이 없는 세상을 꿈꾸고, 실제의 세계를 자신들의 꿈에 맞춰 뜯어고치기로(완벽할 수는 없다 해도) 했던 데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일이그 도덕적 무게를 잃었다. 그 일이 비밀로 행해졌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런 죽음은 마땅하다는 이야기에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도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진보라는 연극의 배우로 강제 동원되었고, 그 연극이 이념적 적의 저항을 받을 때도 아니 어쩌면 그런 때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로스만은 이 세기의 시끄러운 소음에서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가려냈고, 끝없는 정치 논쟁 가운데 그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했다. - P681

소련과 나치 독일 모두에서, 유토피아는 비전으로 제시되고, 현실과 타협되고, 대량학살로 실행되었다. 1932년에는 스탈린이, 1941년에는 히틀러가 그렇게 했다. 스탈린의 유토피아는 9주에서 12주 동안 소련을 집단화하는 것이었다. 히틀러의 것은 그와 같은 시간에 소련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두 가지 모두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가지 다 큰 거짓말의 힘을 빌려 실행에 옮겨졌다. 심지어 실패가 명확해졌을 때조차 멈춰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체는 정책의 견실함에 대한 증거물로 제시되었다. 따라서 히틀러와 스탈린은 둘 다 특정 형태의 폭군정치를 했다. 그들은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자신들의 선택을 두고 적들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며, 수백만 명의 목숨을 빼앗고는 자신들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또는 바람직하다고 입증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다. 두 사람 다 유토피아를 뒤바꾼 형태를 제시했다. 다시 말해서, 원래의 유토피아가 실현 불가능하다고 판명되었을 때, 대량학살 정책을 ‘실질적인 승리‘로 대신 내세웠다.
집단화도 ‘마지막 해결책‘도, 무오류의 존재라고 내세워진 지도자를 지키기 위해 막대한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한 것이라는 점에서 똑같았다.  - P683

지역민 착취 도구가 비슷해 보이고 어떤 때는 아예 똑같기도 했지만, 두 체제는 서로 다른 미래 비전에 이들 도구가 복무하도록 했다. 국가사회주의 비전에서는 집단들 사이의 불평등이 본질적이고 바람직했다. 세상에 불평등은 당연히 존재한다. 부유한 독일과 가난한 소련이 그 예다. 그것은 더 늘어나야 한다. 한편 소련 시스템이 확장될때 다른 사람들도 소련식 평등을 얻도록 할 것이다. 그보다 더 극적인 계획이란 없고, 이미 충분히 극적이었다. 소련 시스템이 유목민을 만나면, 그들이 정착하도록 강제할 것이다. 농민을 만나면, 국가에 식량을 대도록 강제할 것이다. 여러 민족을 만나면, 그들 가운데 상층 계급을 제거할 것이다(흡수, 강제이주, 살육 등으로). 자족하고 있는 사회를 만나면, 소련 시스템을 모든 가능한 세상 중 최상으로 추구하게끔 강요할 것이다. 그 특별한 의미로 ‘내포적‘ 사회가 되도록, 독일이 그제국의 다수의 주민에게서 평등한 자격을 박탈했던 반면, 소련은 거의 모든 사람을 소련식 평등으로 끌어안았다. - P687

스탈린의 대계획에서, 농업 집단화는 소련을 공업국가로 바꾼다는의미가 있었다. 적어도 당시의 국경선 안에서 말이다. 집단화는 기근을 불러왔으며, 스탈린은 의도적으로 그것이 우크라이나에 집중되도록 했다. 이는 대공포에도 영향을 주었다. 대공포란 처음에는 외침 세력에 협조할 가능성이 있는 소외된 농민들을 대상으로 했던 것이다.
히틀러의 대계획은 다분히 정반대였다. 그는 국외 테러에서 시작했으며, 먼저 그가 소련 지도부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부터 치고, 그리하여 그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부터 하려 했다. 그리고 그는 집단농장을 활용해 독일에 잉여 농산물을 보급하려 했다. 장기적으로, 그는 독일인이 다스리고, 유대인은 없으며, 노예 상태가 된 슬라브인이 드문드문 있는 방대한 변방 제국을 건설하려 했다. 히틀러는 언제나 유대인 없는 유럽을 꿈꿨다. 그러나 그가 군사력으로 동방 식민 제국을 세우려는 꿈을 유지하는 이상 결코 수백만 명의 폴란드와 소련과 발트 삼국의 유대인들을 전멸시키지도, 통치하지도 못했다. - P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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