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은 문학은 항상 인생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생그 자체보다는 제한되고 단순하지만 인생의 단편을 강력한 상상력으로 풍부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문학이라 여겼다. <셰익스피어의 서문>에서 그는 희극과 비극은 결코 섞여선 안 된다는 볼테르의 주장에 반박하여 정곡을 찌르는 말로 응수했다. 볼테르의 주장이 옳다면 그런 규칙을 따르지 않았던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당연히 열등한 작품일 수밖에없었다. 존슨은 "세익스피어의 희곡은 엄밀히 따지면 비극이나 희극이아니다. 그의 희곡 자체가 독특한 장르다. 그의 희곡은 선과 악, 기쁨과 슬픔이 혼재되어 있으며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는 이 세상의 순리도 보여준다. 술에 취한 그는 잔에 담긴 와인을 벌컥 들이켰고, 슬픔에 잠긴 그는 자신의 친구를 땅에 묻었다"라고 적었다. - P436
조지 3세는 1760년에 22살의 나이로 즉위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1761년 조지 3세는 샬럿(Charlotte) 왕비를 위해 세인트제임스 궁전 인근의 버킹엄 하우스를 구입했다. 그녀의 사저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버킹엄 하우스는 ‘왕비의 집‘으로 알려졌다.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한 뒤, 버킹엄 하우스는 버킹엄 궁전이 됐고 군주의 관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조지 3세는 책을 많이 읽었고 학문을 권장하는 왕으로 알려지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씌어진 고전문학, 시, 지리학, 역사, 수학, 법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여 방대한 양의 책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서는 더 많은 책을 수집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일했다. 그리고 왕비의 집에 추가로 방을 만들어서 수많은 책을 보관했다. 학자와 문필가들은 원하면 언제든지 조지3세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었다. - P449
1744년 발표한 《리처드 새비지의 인생》에서 존슨은 저항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미개한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사악함과 자원이 풍부하다고 해서 타국을 침범하는 악의를 맹렬히 비난했다. 이런 입장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변하지 않았다. 1759년 《디아이들러》에 실은 에세이에서 존슨은 영국 군대가 영토를 짓밟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느 인디언 추장이 되어 그의 심경을 글로 옮겼다. "저 침략자들은 분노하여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이들을 도륙하고, 항복하는 사람들을 재미삼아 죽이며 이 대륙을 돌아다녔구나. 살아남은자들 중에서 일부는 커다란 동굴에 들어가 주인을 위해 광물을 캐고, 다른 일부는 토지를 경작하는 일을 하게 되겠지. 외국 폭군들이 목숨걸고 캐낸 광물과 힘들여 얻어낸 수확물을 집어삼켜버릴 것이다. 원주민들이 그들의 검과 광산에서 목숨을 잃을 때, 그들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본국으로 끌고 갔다. 먼 타국으로 끌려간 그 사람들은 노역과 고문으로 죽어갈 것이다." - P467
당대 지식인들 역시 식민지화에 대하여 새뮤얼 존슨과 유사한 태도를 보였다. 애덤 스미스는 더 온화하고 차분한 어조로 《국부론》에서 존슨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어리석음과 부당함이 식민지 건설의 주된 원칙인 듯하다. 금광과 은광을 쫓는 어리석음과 초기 모험가들을 친절하고 따뜻하게 맞이한 악의 없는 원주민들의 땅에서 자원을 탐하는 부당함 말이다." - P468
그리고 존슨은 가치있는 것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척박한 영토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것은 영국에 이로울 것이 전혀 없다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쳤다(그러나 역사가 반복되듯이, 1982년엔 이 군도를 둘러싸고 전쟁이 벌어졌다. 이어서 전쟁의 실상에 대해서 낱낱이 열거했다. 그가 전쟁의 실상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전문을 읽어보자.
전쟁에 대해 대부분의 인류가 냉랭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니 실로 놀랍다. 멀리서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거나 책에서 전쟁에 대해 읽었지만실제로 전쟁의 악폐를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쟁을 재미있는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선전포고, 군대, 전투 그리고 승리로 구성된 게임 말이다. 허나 실제로 누군가는 승리의 전장에서 죽어간다. 그들은 영예라는 침대에 누워 숨을 거둔다. 잉글랜드의 영광으로 가득한 정복의 기쁨에 취해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떠난다. 영웅소설은 현대 군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전쟁은 대포와 검보다 더 무시무시한 파괴의 수단들로 가득하다. 최근 벌어진 프랑스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수천, 수만 명의 군인들 중에서 적의 검과 대포에 의해 죽어간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군인들이 축축하고 부패한 막사와 배에서 시들어갔다. 그들은 창백하고 무기력하고 활기 없고 무력했다. 그들은 헐떡였고 신음했다. 오래 지속된 희망 없는 비참함으로 인해 완고해진 이들은 동정을 받지 못했다. 예고도, 추모도 없이 그들은 구덩이에 파묻히거나 바다로 던져졌다. 용기는 쓸모 없고 진취성은 실현 불가능한 불편한 야영지와 건강에 나쁜 주둔지에서 병력이 조용히 줄어들고 군대는 무기력하게 사라졌다. - P469
보즈웰은 "이것은 솔직하고 기분 좋은 고백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버크는 미국에 대한 연설로 웅변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773년 노스 행정부는 차 조례를 통과시켰다. 차 조례로 파산 국면에 빠진동인도회사는 독점적으로 면세 차를 미국에 수출할 수 있었다. 이것은인도에서 들여온 차가 미국에서 사실상 더 싸게 판매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타운센드법에 따라 1파운드당 3펜스의 세금이 차와 다른 5개 물품에 부과됐다. 5개 품목에 대한 세금은 이미 할인됐고, 조세 수입을 위해서가 아니라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서 차에 부과되는 세금만남아 있었다. 보즈웰은 그 원칙은 효력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미국에선 차 조례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고 보스턴 차 사건이 발발했다. 보스턴 차 사건은 영국과 미국 식민지들의 정면충돌이 머지않았다는불길한 징후였다. - P478
요즘은 으레 미국 독립 혁명을 프랑스 혁명과 같은 의미의 혁명으로간주하지 않는다. 이는 사실이다. 신생국가에서의 삶은 혁명 전과 후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혁명 전에 권력을 쥔 자들이 혁명 이후에도 단단하게 권력을 움켜쥐고 있었다.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에는 공식 헌법이 있었다. 버크는 미국 독립 혁명을 두고 이렇게 썼다. "위대한 혁명이 일어났다. 기존 국가에서 이전 권력자들의 목을 자르고 새로운 자들이 권력을 잡는 형태의 혁명이 아니다. 이 지구상에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다. 이것은 힘의 관계, 균형 그리고 중심의 변화였다. 태양계에 새로운 행성이 등장한 일과 맞먹는 것이었다." - P480
《국부론》의 제1장은 ‘분업‘이다. 애덤스미스는 핀 공장에서 핀 하나를 생산하는 과정이 18개의 단위 작업으로 이뤄져 있음을 발견했다. 핀 공장에서 본 내용을 바탕으로 애덤 스미스는 한 명의 노동자가 전체 작업을 수행하는 대신 한두 개의작업을 수행하고, 다른 노동자가 이어서 나머지 작업을 수행하면 생산성이 엄청나게 높아진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한 사람은 철선을 늘이고 다음 사람은 바르게 펴고, 셋째 사람은 자르고, 넷째 사람은 뾰족하게 만들고, 다섯째 사람은 핀 머리를 붙이기 위하여 끝을 간다. 핀 머리를 만드는 데도 두셋의 공정이 필요하며, 그것을 붙이는 것이 특별한 작업이라면 핀을 휘게 만드는 것도 또 다른 작업이며, 핀을 종이에 포장하는 것까지도 하나의 작업인 것이다(그들은 판매를 위해 핀을 종이에 포장했다. 이리하여 핀 제조라는 중요한 일은 약 열여덟 종류의 작업으로 나뉘고, 어떤 공장에서는 이 작업들을 여러 직공들이 나눠서 하게 된다. 나는 이런 종류의 작은 공장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겨우 열 명이 일하고 있었고, 그중 몇 사람은 두세 가지의 다른 작업을 겸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에 약 12파운드의 핀을 제조할 수 있었다. 1파운드의 핀은 중침으로 4,000개 이상이 되므로, 10명의 직공은 하루 4만8,000개 이상의 핀을 제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숙련공이라도 혼자서 하루에 20개 이상의 핀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국부론>은 19세기 공장 시스템을 예견했다. 이것은 독창적이었다. - P491
로마에서 번뜩이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 기번은 그 도시의 역사에 관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로마의 역사를 책으로쓰기 시작한 시점에 미국 식민지들은 영국에서 독립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국들과 그들의 몰락은 아주 시사적인 주제였다. ‘위대한 제국의 ‘쇠망‘이란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되짚는다는 생각은 분명 영국 독자들을 매혹시킬 것이었다. 기번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 권에서 그는 널리 흩어진 영토를 유지하기 위해 로마가 극복해야 했던 장애물을 다뤘다.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극복해야 했던 장애물은 그가 살던 영국이 직면한 장애물이기도 했다.
먼 지역과 외국을 그들의 의향과 흥미에 반하여 복종시키는 것만큼 인간의 본성과 이성에 반하는 것은 없다. 방대한 제국이 유지되려면 정책과 억압이란 정제된 체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중앙에 절대권력이 집중되어야 하고, 행동은 날래고, 자원은 풍부해야 한다. 그리고 중앙에서 가장 먼 지역과의 의사소통이 신속하고 쉬워야 하고, 반란의 씨앗을 제거할 방어 시설과 중앙의 뜻을따르는 자를 보호하고 거스르는 자를 벌하는 행정기관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불만과 절망을 유발하지 않고 공포를 조장할 잘 훈련된 군대가 필요하다. - P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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