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리디아의 슬픔은 굉장했다! 단 한 사람의 죽음이 이십 대 때 그녀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무서울 정도다. 그런데 이제 열여섯 명이 더해졌다.
그 일을 생각하면 자신이 레이스 쪼가리처럼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보다 어떤 형태의 구멍이 뚫렸는지로 정의되는 듯하다. 이 열여섯 명의 죽음이 루카라는 사람을 어떤 형태로 만들지 상상조차 할수 없다. 신변이 안전해지는 대로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 루카에게는 의식이 필요하다. 자신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로 만들 방법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지만, 리디아는 다시 주문을 외운다. 생각하지 마, 생각하지 마, 생각하지 마. 그러고는 도서관의 규모를 가늠하고 있는 아들을 바라본다. 뒤로 살짝 젖힌 고개, 모든 물건의 표면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눈, 어쩌다 떠오르는 미소를 쫓아내는 노력.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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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기업의 임원경제학자들이 비용과 이익을 정확하게 계산할 줄 모른다고 비난한다. 이타주의자들은그들이 비용과 이익에 대해 너무 까다롭게 군다고 나무란다. 한편, 정치가들에게 경제학자들은 단 한 사람의 희생도 없이 모두가 공동 번영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공약에 찬물을 끼얹는 머저리에 바보천치들이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와 스코틀랜드의 수필가이자 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 Thomas Carlyle 등을 포함해 여러재치 있는 문필가들도 그들을 모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실제로 칼라일이 경제학을 ‘우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고 비판한 이래 경제학자들은 정말 저주라도 받은 듯이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이런 비난에 억울함을 호소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경제라는 기상에 그늘을 드리우는 나쁜 뉴스를 만드는 장본인들이 아니라 있는 사실을 알리는 단순한 전달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간단하다. 그들은 항상 인류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우리는 더 이상 에덴동산에 살지 않는다. 세계는 젖과 꿀이 넘쳐 나는 곳이 아니다. 더 맑은 공기와 더 빠른 자동차, 더 큰 주택과 더 넓은 주차장, 더 많은 노동 시간과 더 많은 여가 시간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나쁘고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그것을 한번에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단지 그들은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이해시켜 줄 뿐이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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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화된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의 과잉은 인류 전체의 저항력을 떨어뜨릴 위험으로 작용한다." 같은 것이 지배하는시스템 속에서 저항력이라는 용어는 오직 비유적인 의미로만 쓰일 수 있을 뿐이다. 면역학적 저항은 언제나 강조적 의미에서 낯설다고 할 수 있는 상대, 이질적인 상대를 향해 일어난다. 같은 것은 항체의 형성을 초래하지 않는다. 같은 것에 지배되는 시스템 속에서 저항력을 강화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우리는 면역학적 배척과 그렇지 않은 배척을 구별해야 한다. 비면역학적 배척은 같은 것의 과다, 긍정성의 과잉과 관련이 있다. 여기에는 부정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또한 면역학적 내부 공간을 전제하는 배제도 아니다. 반면 면역학적 배척은 양적인 문제와 무관하게 일어난다. 그것은 타자의 부정성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내부를 지닌 면역학적 주체는 아주 적은 양이라 하더라도 이질적인 것에 저항하고 그것을 밖으로 밀어낸다. - P18

보드리야르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네트워크와 가상세계의 폭력은 바이러스성 폭력이다. 이러한 폭력은 정면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전염, 연쇄 반응, 모든 면역성의 제거 등과 같은 수단을 통해 작동한다는 점에서 바이러스적이다. 또한 전통적인 부정적 폭력과 반대로 긍정성의 과잉을 통해 작동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끝없는 증식과 비대화, 변이를 통해 몸을 잠식해 들어오는 암세포처럼.
가상성virtualité과 바이러스성viralité 사이에는 은밀한 친족성이 있다. " - P19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소진증후군과 같은 신경성 질환은 바이러스성 폭력과 같이 여전히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의 면역학적 도식을 따르며, 시스템에 적대적인 특이한 개별자나 이질성을 전제하는 개념으로는 정확히 기술할 수 없다. 신경성 폭력은 시스템에 이질적인 부정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시스템적인 폭력, 시스템에 내재하는 폭력이다. 우울증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나 소진증후군도 긍정성 과잉의 징후이다. 소진증후군은 자아가 동질적인 것의 과다에 따른 과열로 타버리는 것이다. 활동과잉Hyperaktivität에서 과잉hyper은 면역학적 범주가 아니며, 다만 긍정적인 것의 대량화를 의미할 뿐이다. - P22

규율사회는 부정성의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를 규정하는것은 금지의 부정성이다. ‘~해서는 안 된다‘가 여기서는 지배적인 조동사가 된다. ‘~해야 한다‘에도 어떤 부정성, 강제의 부정성이 깃들어 있다. 성과사회는 점점 더 부정성에서 벗어난다. 점증하는 탈규제의 경향이 부정성을 폐기하고 있다.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 "예스위 캔"이라는 복수형 긍정은 이러한 사회의 긍정적 성격을 정확하게 드러내준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대신한다. 규율사회에서는 여전히 ‘No‘가 지배적이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 P24

 물론 타자의 강요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강조적의미의 자아 개념은 여전히 면역학적 범주다. 그러나 우울증은 모든 면역학적 도식 바깥에 있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schaffens- und Könnensmüdigkeit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이상 할 수 있을 수없다 Nicht-Mehr-Können-Können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
우울증 환자는 이러한 내면화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 P28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한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주의는 과잉 주의 hyperattention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가고 있다. 다양한 과업, 정보 원천과 처리 과정 사이에서 빠르게 초점을 이동하는 것이 이러한 산만한 주의의 특징이다. 그것은 심심한 것에 대해 거의 참을성이 없는 까닭에 창조적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있는 저 깊은 심심함도 허용하지 못한다.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부른 바 있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다.
벤야민은 꿈의 새가 깃드는 이완과 시간의 둥지가 현대에 와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그런 것을 "짜지도, 잣지도 않는다. 심심함이란 "속에 가장 열정적이고 화려한 안감을 댄 따뜻한 잿빛 수건이다." 그리고 "우리는 꿈꿀 때 이 수건으로 몸을 감싼다." 우리는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 속에서 안식한다." 이완의 소멸과 더불어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이 소실되고 "귀 기울여 듣는 자의 공동체" 도 사라진다. 이 공동체의 정반대편에 있는것이 우리의 활동 공동체이다.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은 깊은 사색적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에 바탕을 둔다. 지나치게 활동적인 자아에게 그런 능력은 주어지지 않는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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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것 자체가 상당히 거대한 기계와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이런 ‘기계‘를 작동시키는 사람들이 큰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민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기 위해서 국가는 국민의 삶에 간섭하고 감시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생산과 소비와 관련된 정보를 얻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모르는데, 국가가 어떻게 나의 필요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거대한 기계가 또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기술철학자 루이스 멈퍼드가 ‘메가머신 megamachine‘이라고 불렀던 힘을 가진 관료집단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정보가 수집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실제로 20세기 러시아혁명 이후 설립된 소련에서 시도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 국가의 경제를 계획해서 실행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게 판명되었다. - P153

비밀에 가려져 있는 NSA(National Security Agency)에서 프리즘prism이라는 해외 정보 수집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는것을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 Edward Snowden 이라는 내부고발자가 샅샅이 폭로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가져온 일이있다. 그 프리즘이란 것은 쉽게 말해 모든 미국인의 이메일을 다 열어보고 모든 전화를 감청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컴퓨터가 하는 일이지만 이를 통해 이상한 문구나 단어 등을발견하면 자동적으로 요주의 인물로 판단해서 주목한 사람을 계속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다.
미국 NSA는 미국인을 넘어서 전 세계 사람들로 그 감시망을 확대했다. 물론 NSA가 직접 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회사와 계약을 맺어 돈을 주면 그 회사가 정보를 제공하는식이다. 처음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계약했고, 2008년에야후, 2009년에 구글, 페이스북, 페이톡, 유튜브, 스카이프, AOL, 그리고 2014년에 애플 등과 모두 계약해서 이 회사들을 통해 주고받은 개인정보들을 전부 감청하거나 도청해왔다. 이런 감시 시스템이 이미 오래전부터 운영되어 왔다는 것을 스노든이 폭로한 것이다.
- P156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이러한 벤담의 판옵티콘에 주목했다. 우선 이 판옵티콘이 사람들로하여금 규율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기능에 주목했는데, 푸코는 동시에 이러한 시스템이 당시 감옥만이 아니라 병원이라든지 학교, 공장 등으로 실제 확산되었다는 주장을 했다. 근대 사회가 발전하면서 모든 공공기관 및 사설기관에서 효과적인 감시 시스템으로 이러한 판옵티콘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판옵티콘화되었다는 것으로, 푸코의 이런 주장은 당시 상당히 큰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었다. - P164

『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책을 쓴 브루스 슈나이어 Bruce Schneier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어떤 서비스가 무료라면 당신은 고객이 아니다." 고객이 아니라면 무얼까? 그는 단언한다. "당신은 제품에 불과하다."
우리 주변에는 무료가 많다. 페이스북도 무료, 지메일도 구글도 무료이다. 또한 인터넷신문, 쇼핑사이트, 할인사이트도 모두 이용이 무료이다. 슈나이어는 그곳에서 우리의 정보가 기업에 팔리고 있기 때문에 고객 자신이 상품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 P171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몇 년 전 자신의 입으로 프라이버시는 죽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생각하듯 페이스북에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노출됨으로써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즉 빅브라더로서의 페이스북 기능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다. 저커버그는 프라이버시가 죽은 더 큰 이유를 ‘자발적인 공유sharing‘라고했다.
실로 지금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시대이다. 페이스북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온갖 사생활을 일일이 보고하고 기록하고 저장한다.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났는지부터 어디에 갔고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음식이 맛있고 어느 장소가 예쁜지 등을 시시콜콜 공개한다. 아주 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노출하려고 애를 쓴다. 어떤 이는 자신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기도 한다. 자기를 감추기보다 알리려고 애를 쓰는 것, 저커버그는 이를 두고 프라이버시는 죽었다고 말한 것이다.
- P173

요즘에는 행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욕망을 더 충족하는가‘로 정의되는 것 같다.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일단 여유가 있어야 할 테니 돈이 많은 사람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고,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교생 중에 10억을 벌 수 있다면 감옥행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답을 한 학생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이런 사회가 수백 년 동안 계속 발전한다면, 그 논리적 귀결은 결국 헉슬리가 묘사한 역설적으로 ‘멋진 신세계‘가 되지 않을까? - P183

이런 세상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프라이버시에 민감해져야 한다. 그 이유는 개인정보가 사람을 평가하고, 더 극단적으로는 사람을 차별하는 데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 출신인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가정환경은 어떤지,
질병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등에 대한 정보가 그것을 오용하는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면 나로부터 내가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가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 P189

유전자가위 기술이 발전하게 된계기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연구에 있다. 바이러스는 사람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박테리아도 공격한다. 그런데 박테리아들은 바이러스에 공격을 당하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이를 이겨낸다. 과학자들이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지 연구해보니, 박테리아들은 처음 공격한 바이러스의 DNA 조각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똑같은게 공격하면 그 바이러스의 DNA 조각을 잘라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학자들이 이를 이용해서 원하는 DNA 조각들을 잘라내는 기술적 방안을 생각해낸 것이다. - P194

그런데 유전자가위 기술은 유전자 조작 식품과는 다르다고 한다. 유전자가위는 유전자를 자를 뿐, 다른 생명체의 유전자를 섞는 행위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유전자가위가 유전자 조작 기술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두려움을 피해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체 유전자를 잘라내 비활성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98

인간과 초지능의 중요한 차이는, 초지능은 인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 예를 들어 사랑, 명예, 우정, 행복 등을 조금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것이다. 이러한 가치들은 인간이 진화하면서 획득한 것이다. 인간이라는 좋은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하면서 타인과의 협력이 중요하고 공감이 중요하며, 공감을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고, 살아남으려면 자식을 낳아야 하며, 자식을 낳으려면 짝을 찾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이런 일들은 생존에 필수적이므로 현대인들도이러한 가치에 동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지능은 이런 식으로 진화를 통해 발전한 기게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가치들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않는다. 다시 말해 인간이 ‘내가 저 인공지능을 만들었으니, 저 기계는 우리 사정을 봐주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큰 오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을 다 죽이는일이 우리 인간에게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비도덕적인일일 수 있지만, 기계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 P269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 보스트롬에 따르면 우선적으로 지금부터 초지능이 도래할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대비를 위해 먼저 초지능을 인간에게 친화적인friendly것으로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첫 초지능 기계가 인간에게 적대감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면 그 기계는 모두 인간에게 위협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닉 보스트롬은 특히 초지능을 인간 친화적으로 만들기위해서는 지능에 어떤 코드를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무조건 기억하라고 하기보다 스스로 그 형태의 가치를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을 함부로 죽이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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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과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실험이라는 생각이당연하다고 간주된다. 현재 과학자의 90퍼센트가 실험과학자이다. 그런데 베이컨 시대만 해도 과학자가 실험을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굉장히 낯선 것이었다. 당시 철학자들은 실험을 하면 자연을 교란시키고 망치기 때문에 자연에 대해서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연을 건드리지 않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만이 올바른 방법이라 여겼다.
그런데 베이컨은 이런 기존의 철학적 입장을 논박했다. 그는 사람의 본심도 평상시보다는 자극을 받았을 때 훨씬 더 잘 드러나듯이, 자연도 그대로 놔두었을 때보다 인간이 기술로 조작을 가했을 때 그 정체가 훨씬 더 잘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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