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統攝, consilience)은 통일(統一, unification)의 열쇠이다. 나는 이 용어를 ‘정합整合, coherence)‘ 보다 더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통섭은 정합의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하나만을 뜻할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섭이라는 용어는 그 희귀성 때문에 그 의미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용어는 윌리엄 휴얼이 1840년에 귀납적 과학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설명의 공통 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한 이론을 연결함으로써지식을 "통합" 하는 것을 뜻한다. 그는 "귀납의 통섭은 하나의 사실집합으로부터 얻어진 하나의 귀납이 다른 사실 집합으로부터 얻어진또 하나의 귀납과 부합할 때 일어난다. 이러한 통섭은 귀납이 사용그 이론이 과연 참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시험이다." 라고 말했다. - P40
통섭을 추구하는 일은 산산조각 난 교양 교육을 새롭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사실, 르네상스와 계몽사상이 유산으로 물려준 학문의 통합이라는 이상은 지난 30년 동안 대체로 포기 상태에 있었다. 약간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종합 대학과 단과 대학 들은 학과를 잘게 쪼개고 과정을 세분화하여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각 기관에서 학부생이 수강하는 과목의 평균 숫자는 두 배가 되었지만 일반 교양과정의 필수 과목 비율은 반 이상으로 줄었다. 이 시기에 과학도 격리되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1997 년만 해도 학생들에게 자연과학을 반드시 한 과목 이상씩 수강하도록 한 학교는 전체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추세는 억지로 이것저것 들으라고 강요한다고해서 역전되지 않는다. 진정한 개혁은 과학을 학문적 측면과 교육적측면에서 인문·사회과학과 통섭함으로써 완성될 것이다. 따라서 실패하거나 성공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모든 학부생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과 인문학의 관계는 무엇이고그 관계가 인간 복지에 어떻게 중요한가? - P46
콩도르세와 계몽사상을 지탱해 준 것은 진보의 필연성이라는 개념이었다. 이것은 현재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좋든 나쁘든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개요』의 마지막 장인 「제10단계 미래의 인간정신의 진보」에서 콩도르세는 그러한 전망에 관하여 경솔할 정도로낙관적이었다. 그는 장대한 과정이 진행 중이라고 확신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인간의 진보에 관한 그의 비전은 인간 본성에 부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인류 전체가 고도의 문명을 획득하면 국가들은 서로 평등해질 것이며 그 국가 안의 시민들 역시 평등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이 번성하여 갈 길을 밝힐 것이고 예술은 자유롭게 그 능력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성장할 것이다. 범죄, 빈곤, 인종주의, 성차별은 줄어들 것이다. 과학적인 의술을 통해 인간의 수명이 무제한 연장될 것이다. 콩도르세는 점점 더 짙어지는 공포 정치의 어둠 속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과실, 범죄, 부정이 여전히 지구를 더럽히고 있으며, 종종 철학자들스스로 그것들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과실과 범죄와 부정을 애석해 하는 철학자들에게 인류가 속박에서 해방되고 운명의제국과 진보의 적에게서 풀려나 진리. 덕. 행복의 길을 향해 흔들림 없는 발걸음으로 전진한다는 전망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가! 이 전망은 이성의 진보와 자유를 방어하는 모든 노력을 보상해 줄 것이다. - P59
과학은 계몽 운동의 엔진이었다. 좀 더 과학적인 계몽사상들은 우주가 정확한 법칙들의 지배를 받는 질서 정연한 물질세계라는 점에 동의했다. 우주는 측정될 수 있고 위계와 서열에 따라 정돈될 수 있는존재자들로 쪼개질 수 있다. 예컨대 사회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그 사람의 뇌는 신경 세포들로 구성되며 그 신경 세포는 원자들로 구성된다.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원자들을 모아 신경을 만들고, 신경으로 다시 뇌를, 사람으로 사회를 조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전체는 기제와힘으로 구성된 하나의 체계로서 이해된다. 여전히 신의 간섭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계몽사상가들은 그에게 우주를 신의 기계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을 것이다. 물질세계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만드는 개념적 제약은 모든 부문에서 인간의 발전과 함께 완화될 수 있다. 콩도르세가 "분석의 빛"을 통한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과학의 계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 P62
중국에서는 왜 데카르트나 뉴턴과 같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것들이었다. 중국인들에게는 추상적으로 체계화된 법칙에 대한 혐오감이 있었다. 이것은 진(秦) 왕조(기원전 221~206년) 시기에 봉건제가 군현 제도로 전환될 당시, 엄격한 통치 법률을 제정한 법가(法) 사상가들이 중국 지식인들에게 안겨 준 비참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의 엄격한 법치주의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반사회적이어서 개인의 욕망보다 국가의 안위를우선시하는 법률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사실은 중국 학자들이 세상 만물을 창조한 인격적인 신에 대한 생각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우주에서 자연을 창조한 이성적 존재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꼼꼼하게 기술한 대상들은 보편 원리를 따르지 않으며, 우주적 질서 내의 존재자들이 따르는 특별한 규정 안에서 움직인다. 말하자면 신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 즉 일반 법칙이라는 개념이 꼭 필요하지 않았기때문에 그것들을 탐색하려는 시도 또한 거의 없었다. 서양 과학이 앞서 나갔던 이유는 환원주의와 물리 법칙을 통해 우리의 감각을 넘어서는 시공간에 대한 이해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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