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사회가 고단한 이유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도록 부당하게 종용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책임을, 차별을 당하는 개인에게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 불안하다. 아프거나 실패하거나 어떤 이유로건 소수자의 위치에 놓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 원치 않게 소수자의 위치에 놓였을 때 그 사실을 부정하며 고통을 감내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사회가 하나의 기준을 정하고 개인을 그 기준에 맞추는 이 동화주의 경향은 자유에 대한 근본적 침탈이 된다. 존 스튜어트 밀은1859년에 발표한 『자유론』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 삶이 획일적인 하나의 형태로 거의 굳어진 뒤에야 그것을 뒤집으려 하면, 그때는 불경이니 비도덕적이니, 심지어 자연에 반하는 괴물과도 같다는 등 온갖 비난과 공격을 감수해야한다. 사람들은 잠시만 다양성과 벽을 쌓고 살아도 순식간에 그중요성을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원문의 강조는 생략) - P187

헌법 제11조의 평등과 차별금지에 관한 권리도 마찬가지다. 제1항의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말만으로 저절로 모든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헌법과 국제인권법의원칙이 실현되도록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법률로써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은 크게 두가지접근을 취한다. 하나는 국가가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국가인권위원회등 국가기관이 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정책을 세우고 법령과 제도를 개선하게 만든다.
다른 하나는 차별을 하는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는 접근이다. 차별을 받지 않으려면 차별을 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차별을 하는사람에게 그 차별행위를 중단하도록 요구해야 하는데 이를 ‘시정조치‘라고 한다. 현행법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권고‘밖에 못하므로 차별을 하지 말라고 해도 행위자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따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차별금지법은 권고가 아니라 시정하라고 명령하는 조치를 내리고, 만약 행위자가 악의적으로 차별을 해서 손해가 발생했다면 배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그렇게 하여 실질적인 구제를 보장하며, 그런 조치가 있기 전에 사람들이 애초에 차별행위를 하지 않으려 노력할 동기도 만들어낸다. - P193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불평등한 조건과 다양성이 고려되는 적극적 조치 affimative action 가 있어야 한다. 적극적 조치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경우에따라 불이익을 받는 집단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할 때가 있음을 의미한다.
적극적 조치는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무언가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적극적 조치는특정 집단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무언가를 한다는 점에서 종종 ‘우대‘ 조치로 불리며 오해를 사곤 한다. 그 조치가 없다면 불평등한상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우대라고 할 수 없는데도말이다.
예컨대 장애인의 평등한 선거권 보장을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할 것도 있지만 ‘해야 할 것도 있다. 기표소를 계단을 올라야 하는 장소에 배치하지 않아야 하는 건 ‘하지 말아야 할 것‘에 해당한다. ‘해야 할 것‘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 공보물을 만드는 것, 청각장애인을 위해 선거 관련 방송에 자막을 내보내거나 수어통역자를 두는 것, 지적장애인을 위해 이해하기 쉬운 선거 공보물을 만드는 것 등이다. 이를 위해 예산이 필요하지만 이는 우대가 아니라 평등을 위한 조치다. - P201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싸움을 끝내고, 이제 어떻게 이 땅에 평등을 실현할 것인지 이야기하자.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우리가 함께 모여 결의할 때 평등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평등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평등은 인간 조직이 정의의 원칙에 의해 지배를 받는 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호 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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