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것을 같게‘ 취급한다는 이런형식적 평등formal equality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기준을 똑같이 적용함으로써 세상이 평등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방법은 평등을 실현하는 데 어느 정도나 효과가 있을까? 가령실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지방 출신이라서 번번이 채용을 거절당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에게 블라인드 채용은 매우 중요한 평등 실현의 방법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방법으로 지방 출신의 채용기회는 얼마나 높아질까? 정말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채용 확률을가지게 될까?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 어려운 때가 많다. 왜냐하면 평등 실현의 선행 조건인 동등한 ‘실력‘을 갖추는 것부터가 이미 지방 출신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질적 평등 substantive equality 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블라인드 채용은 평가자의 편향을 줄이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지만, 개인의 편견 없앤다고 차별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실질적으로 평등을 구현하고자 한다면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불평등의 대물림을 끊는 재분배 정책도 필요하고,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과도 싸워야 하며 개인들의 다양성을 고려한 제도를 만드는 등 다른 조치들이 있어야한다. - P178

그렇기 때문에 보편성과 다양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대안이 필요하다. 다양성 없는 보편성은 허상이며 눈속임이 되기 쉽고 간판만 바꾸어 단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모두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화장실이 되려면, 화장실을 이용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 모습의 화장실은 새로 설계해야 하고 그러려면 연구가 필요하다. 다양성을 모두 포함하는 보편성을 찾아야 한다.
세계적으로 이미 실험은 시작되었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모든 젠더 화장실‘ all-gender restroom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트랜스젠더나 젠더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외양을 가진 사람들, 보호자와피보호자가 서로 다른 성별인 경우 등 다양한 조건에서 화장실의 접근 가능성을 높였다. 그냥 간판만 바꾼 건 아니었다. 새로운 설계들이 등장했다. 화장실 칸을 위아래가 뚫린 칸막이로 구분하는 대신 별도의 방으로 설계하여 사생활을 보호하고, 세면대를 화장실칸 안에도 설치해 개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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