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간 진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방향성 변동도 자연선택도 아니다. 그것은 이주 (immigration)와 이질 교배(interbreeding)를 통한 균질화(homogenization)이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개체군들은 서로 섞여왔다. 부족과 국가는 경쟁 부족과 국가와의 싸움에서 합병되기도 하고 가끔씩 완전히 멸망하기도 했다. 5,000년 동안의 유럽과 아시아의 역사를 책장마다 연대기적으로 표시해 보면 그것은 인종 경계의 변동사가 된다. 이 역사책의 한 쪽을 넘길 때마다 부족과 국가가 새롭게 생겨나고 배고픈 2차원 아메바처럼 팽창하다가 라이벌의 침입으로 소멸한다.
이런 혼합 과정은 유럽이 신대륙을 정복하고 아프리카 노예들을 해안으로 데려왔을 때 급격하게 빨라졌다. 그리고 유럽이 오스트레일리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했던 19세기에 이런 균질화가 그 다음으로 빨리 진행되었다. 최근에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팽창을 통해 다시 균질화가 빨라지고 있다. 근대화의 중심적인 특징인 산업화와 민주화는 사람들을 바삐 움직이도록 만들고 세계의 국경들에는 구멍들이 생겼다. 대부분의 인간 개체군은 지리적 차이 때문에 서로 구분되어 있으며 몇몇 인종 고립지는 틀림없이 몇 세기 더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의 경향은 너무도 강력하다. 또한 비가역적이기도 하다. - P468

균질화는 전 지구적인 규모에서는 별로 역동적이지 않다. 그것은지역 개체군들을 신속히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그것 자체가 인간 종전체의 진화 방향을 추동할 수는 없다. 균질화는 이전의 인종 차이(전체 개체군들을 구별짓는 유전 형질의 통계적 차이)를 점진적으로 없애는 결과만을 낳는다. 또한 그것은 개체군 내부와 전체 종을 통틀어 존재하는 개체들의 변이 범위를 넓힌다.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 피부색, 얼굴 특징 그리고 재능 등에서 과거보다 더 많은 조합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지구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마 안되던 평균적인 차이마저 점점 좁혀지고 있다. - P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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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초월론과 과학적 경험론 중 어떤 세계관이 우세한지는 인류가 미래를 어떤 식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사실들을 깨닫게 된다면 모종의 화해에 이를 수도 있다. 즉 한편으로는 윤리와 종교가 여전히 너무 복잡하여 오늘날의 과학만으로는 깊이 있게 설명될 수 없다는 점과 다른 한편으로는윤리와 종교는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율적인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과학은 윤리와 종교 속에서 가장흥미롭고 아마도 자신을 겸허하게 만드는 도전에 직면할 것이며, 반면 종교는 자신의 신빙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과학의 발견들을 한데 통합시키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 종교는 경험적 지식에 모순되지 않는 인류 최고의 가치들을 불후의 시적 형식 속에 집어넣을 수 있을 때 그만큼의 힘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바로 강력한 도덕적 리더십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맹목적신앙은 제아무리 열정적으로 표출된다 할지라도 충분하지 못하다. 과학은 자신의 자리에서 인간의 조건에 대한 모든 가정들을 가차 없이 시험대 위에 올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다 때가 되면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감정들의 기반이 발견될 것이다.
두 가지 세계관의 경합이 가져다줄 최종 결과는 인간 서사시의 세속화와 종교 자체의 세속화가 될 것이다. 그 과정이 아무리 지난하더라도 그것을 위해서는 상호 존중의 분위기 속에서 공개 토론을 계속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흔들리지 않는 지적 엄격함을 견지해야 한다. - P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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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만 장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연코 그렇지 않았다. 미즈 마멜 역시 책이 무엇인가 하는 점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책은 전국 아니 전 세계 서점의 서가에 꽂혀 독자들이 뽑아 주기를 기다리는 미적 목적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종종 작가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어떤 책이 가치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책의 장점을 발견해서 책을 구입하고 또 나중에 가서는 <이 작가가 다음번에는 무슨 책을 낼지 궁금한데>라고 말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게 바로 글쓰기고 또 출판이에요. 우리는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통찰력, 재능, 언어에 대한 사랑, 이야기에 대한정열, 그리고 좋은 책을 만들려는 노력 등을 나누며 서로에게 감화를 주는 짝이었다. 우리에게는 또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그렌즐러 시리즈를 멋지게 매듭짓겠다는 신념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차이를 보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소설의 개념에 대한 시각이었다. 그녀는 인물과 플롯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지난 일곱 권의 내 소설에서 잘 드러나듯 토지와 물리적 환경에 주로 관심을기울였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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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놓고 그저 좋아만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왜냐면 우리 두 사람은 언제든지 위험과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말하자면 산전수전 다 겪은 역전의 용사들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작가의 명성이란 마지막 작품에서 판가름 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터였고, 그녀는 한때 대단한 성공을 거둔 편집자들도 현재는 아무것도 일궈 내지 못하는 작가들과 손을 잡고 있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두 사람은돌담」이라는 운명의 배에 함께 타고있는 꼴이었고, 또 그런 사실을 서로 잘 알고 있는 처지였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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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보듯 우리는 책 얘기를 할 때 결코 어떤 한 권의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법이 없다. 언제나 어떤 구체적인 책을 통해 대화 속으로 끼어드는 일련의 책들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되는데, 이때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책은 어떤 하나의 문화 개념 전체를 참조케 하면서 잠시그 문화의 상징 노릇을 할 뿐이다. 다른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때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가 우리 내부에 구축한 도서관, 우리의 은밀한 책들이 쌓여 있는 그 내면 도서관은 다른 사람들의 도서관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알력이나 갈등을 야기할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사실 우리는 그 도서관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조금씩 우리를 만들어온 그래서 이제는 고통 없이는 우리와 분리될 수도 없게 된 축적된 그 책들의 앙상블은 바로 우리라는 존재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마틴스가 자신의 우상이 쓴 소설들에 대한 비판을 참기힘들어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간직한 내면 도서관의 책들을 험담하는 말들, 우리 정체성의 일부가 된 것들을 비난하는 말들은 때때로 우리의 존재 깊은 곳까지 상처를 준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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