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 있으면 항상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이 단순히 찾아왔다가는 곧 사라져 버리는 그런 덧없는 환상이 아니라, 우리가 동일한 언어로 말하고 또살고 있으며, 그리고 글쓰기의 본질에 관해 동일한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바로 첫 번째 그리스 여행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를 찾아온다는 것은 곧 제1원리로의 회귀와 다르지 않았다.
- P385

어느 날 오후 캠퍼스를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을 때, 나는그가 거친 터치 풋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그는패스를 가로채기 위해 젊은 이카로스처럼 높이 뛰어올랐다.
그 순간 나는 나의 소설에 결여된 활력을 그의 소설이 지닌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혈기왕성한 젊은이였고 반면에 그보다 두 배의 나이인 나는 단지 연약한 중년 남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테니스 클럽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그의 플레이는 너무 우아했다. 그는 아폴론이고 나는 포도나 짓밟는 시골뜨기라는 생각이 들자 본의 아니게 시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선생으로서 그와의 관계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가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날갯짓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를 보내 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를 잃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쓰려왔다. - P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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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몇 년 뒤, 장내 미생물인 B-프라그의 항염 효과를 발견한 동료 매즈매니언과 점심을 먹던 중 패터슨은 그동안 간과했던 점을 알게 되었다. 매즈매니언은 장내 미생물이 면역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패터슨은 면역계가 발육 중인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두 사람이 그간 자신들이 동일한 문제의 양면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들은 패터슨이 실험에 사용한 생쥐가 자폐증에걸린 어린이와 똑같은 소화관 문제를 겪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실험쥐와 자폐아는 설사나 기타 소화관 장애를 앓는 경우가 많았는데, 양쪽모두 장내 미생물의 구성이 비정상적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렇게 추론했다. "아마도 장내 미생물이 실험 쥐와 자폐아의 행동 증상에 영향을미친 것 같은데, 소화관 장애를 치료하면 행동도 변화하지 않을까?"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기 위해 패터슨의 실험 쥐에게 B-프라그를 먹인 결과, 그들은 괄목할 성과를 얻었다. 생쥐는 모험심이 강해졌고 잘 놀라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반복 행동이 감소했으며 의사소통은 증가했다. 여전히 다른 생쥐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꺼렸지만, 그 점만 제외하면 B-프라그를 투여함으로써 실험 쥐의 행동 장애 (어미의 면역계가 새끼에게 초래했던 증상)를 모두 역전시킬 수 있었다. - P113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패터슨과 매즈매니언은 장내 미생물 조작이나 4EPS 주입을 통해 생쥐의 행동을 바꿀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나는지금까지 미생물이 소화관, 골격, 혈관, T세포의 발육에 영향을 미친 사례를 제시했으며, 조금 전에는 미생물이 뇌에 영향을 미친 사례까지 소개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이 기여하는 장기인 뇌가 미생물의 영향을 받는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기분이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매우 가치 있게 여기므로 ‘보이지 않는 세력 때문에 독립성을 상실했다‘는 생각은 사회 전체를 깊은 공포로 몰아넣을지 모른다. 조지 오웰식 디스토피아, 어둠의 무리, 마음을 조종하는 악당들로 가득 찬 최악의 상황이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우리는 이미 마리오네트 인형이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몸속에 살고 있는 뇌도 없고 현미경으로나볼 수 있는 단세포생물들이 지금껏 줄곧 줄을 잡아당겨왔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 P115

 그들은 프로바이오틱스(그들은 사이코바이오틱스psychobiotics 라고 부른다)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는지 여부를 테스트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로서 우울증 환자를 위한 클리닉을 운영하는 다낭은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나는동물에게 미생물을 먹여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에 회의를 품어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미생물의 효능을 확신합니다." 그는 이어 다음과 같이생각을 밝혔다. "프로바이오틱스 칵테일을 이용하여 심각한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경미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얼마든지가능하다고 봐요. 항우울제나 고가의 치료법을 원하지 않는 환자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효과적인 프로바이오틱스를 권할 수 있다면 정신 건강 의학이 진일보할 수 있을 거예요." - P121

그런데 만약 만리장성의 방어가 불충분하면, 이를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 놀라지 마시라, 그럴 때는 바이러스가 동원된다. 바이러스라고 하면언뜻 에볼라 바이러스나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 또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를 떠올릴지 모른다. 이들은 우리를 병들게 하는 악당 삼총사로유명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바이러스들은 미생물을 감염시켜 죽이며, 이들을 박테리오파지 bacteriophage, 즉 살균 바이러스라고한다. 박테리오란 ‘세균‘, 파지 phage는 ‘먹는 자‘를 뜻하므로 문자 그대로 ‘박테리아를 먹는 바이러스‘를 말하며, 간단히 줄여 ‘파지‘라고도 부른다.
파지는 하나같이 동그란 머리와 가느다란 다리를 갖고 있어 닐 암스트롱을 달에 데려다준 달 착륙선을 연상시킨다. 미생물의 몸에 착륙한 파지는 DNA를 주입하여 미생물을 ‘파지 생산 공장‘으로 개조하고, 대량생산 되어 공장을 가득 메운 파지들은 궁극적으로 공장을 파괴하며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파지는 동물을 감염시키지 않으며, 동물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들을 수적으로 크게 능가한다. - P146

지금까지의 통념은 ‘미생물은 우리를 병들게하겠다고 위협하며, 면역계는 미생물을 파괴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위키피디아를 검색해보니, 면역계는 "생물 안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구조 및 과정으로서, 질병을 방어하는 시스템"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 정의대로라면 면역계는 병원균을 감지할 때만 활성화되어 병원균의 위협을거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은 면역계가 병원균을 물리치는 것은 단지 보너스 트릭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면역계의 주요 기능은 숙주와 상주 미생물 간의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며, 그 핵심은
‘현명한 관리와 균형‘이지 ‘방어와 파괴‘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우리와 같은 척추동물의 경우 특히 복잡한 면역계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특정 위협에 대해 장기적인 맞춤형 방어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가 백신을 접종받은 뒤 홍역과 같은 소아기 감염병에 대한 면역력을 유지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면역계를 진화시킨 이유는 다른 동물들보다 감염에 더 취약해서가 아니었다. 오징어 연구 전문가인 맥폴-응아이에 의하면 "우리가 정교한 면역계를 진화시킨 이유는 복잡한 미생물을 통제하기 위해서였으며, 그 결과 척추동물들은 공생 세균을 정확히 선별하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들과의 관계를 미세하게 조정할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의 면역계는 미생물을 제한하기 위해 진화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진화한 셈이다. - P149

모유의 성분 중에는 올리고당이라는 복합 당류가 포함되어 있는데, 모든 포유동물들이 올리고당을 만들지만 어쩐 까닭인지 유독 인간 엄마들만 이례적인 다양성을 보인다. 그리하여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200가지가 넘는 인간 모유 올리고당human milk oligosuccharides (HMOs)을 관찰해왔다." HMOS는 젖당과 지방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모유 성분으로, 성장하는 아기들을 위한 풍부한 에너지 공급원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식 아기들은 HMOs를 소화시킬 수 없다. 이게 대체 무슨 꿍꿍이속인가?
HMOs에 대해 처음 알았을 때, 저먼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만약HMOs가 소화되지 않아 아기에게 무용지물이라면, 어머니가 그 복잡한화합물들을 만드느라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이유가 뭘까? 자연선택이 그토록 낭비적 관행을 밀어붙이는 이유가 뭘까? 해결의 실마리는여기에 있다. "HMO라는 당분은 위장과 소장을 온전히 통과한 다음 대장에 안착하는데, 대장은 대부분의 미생물이 서식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HMOS는 아기들이 아니라 혹시 미생물을 위한 식량인 것은 아닐까?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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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동안 여기저기 썼던 기록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다보니 한 가지 욕심이 생겼다.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신 펜실베이니아의 독일계 농부를 부모로 둔 호리호리하고 붉은 머리의 한 메노파 교도의 시골 소년이 어떻게 해서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또 미국 문학비평가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서 문예창작 학교의 학장이 되고 옥스퍼드 대학의 객원교수가 되었는지, 그동안의 삶의 여정을 설명해 보자는 것이었다. 내 삶이 평탄치 않았던 만큼 그것을 정리해서 말한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닐것이다. - P281

1989년 2월 어느 화요일, 가을 학기가 끝나고 겨울 학기에내 강의에 들어온 학생들과 첫 번째 모임을 가졌을 때, 나는문학의 본질적 성격에 관한 이론적인 강의를 시작하였다. 문학이 주로 인간의 감정과 정열을 다루는 것임을 강조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여러분이 각 인물들이 어떠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지 상상도 못하고 또 그런 감정들과 자신의 감정을 일치시켜 어떤 공감도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대단히 가증스럽건, 고귀하건, 자기 희생적이건 혹은 대단히 속되건 간에, 여러분은 스스로를 고무하여 그 인물들의 상황 속에 자신을 위치시켜야 하며, 또 그 인물들의 가슴속에 파고들어야 하는겁니다." - P288

"남은 인생 동안 여러분은 문학의 수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형태의 검열에도 홀연히 맞설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오클라호마의 한침례파 여신도 단체에서 어떤 책이나 연극에서 사악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항의해 온다면, 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문학이라고 알려져 왔던 몇몇 작품들, 우리를 깜짝 놀라게했던 그 이야기들이 바로 우리가 다루어 온 이 사악한 악당들의 행위에 기초해 있음을 상기시키고 싶은 심정입니다.」그러면서 나는 벽에 그려진 계보도를 가리켰다. 살인, 모친살해, 근친상간, 배신, 부친 살해 ...」 잠시 극적인 효과를내기 위해 말을 멈췄던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고로 누가 여러분들에게 무엇이 고상한 문학이고 무엇이 금지된 문학이라 말한다 하더라도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누군가와 맞서 싸울 힘을 필요로 할 땐 이 계보도와 또영감을 얻기 위해 이 계보도의 인물들에게 의지하였던 위대한 작가들의 이름을 기억하십시오. 호메로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그들은 우리들에게 길을 열어준 작가들입니다." - P291

「아닐세, 있네. 무서운 콜레라가 모든 서구 사회에 창궐해있지 신문과 전파를 통해 토하듯 쏟아지는 대중문화라는 콜레라 말이네. 그것이 모든 것을 죽이고, 또 모든 것을 싸구려로 만들고 있다네. 언젠가는 우리 목까지 그 오물 같은 콜레라가 차올라 우릴 질식시키고 말 걸세.」데블런 교수님은 떨쳐 버릴 수 없는 문명의 미래에 대한두려움을 조심스럽게 설명하시더니 그 불행한 통속성으로의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서 창조적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하셨다. 가장 큰 적은 대중들의 수용에 있네. 왜냐하면 대중들이 인정해야 어떤 예술가가 대중 욕구의 최소 공통분모 정도는 만족시켰다는 점이 입증되기 때문일세. 하지만 예술가의 임무는 그런 것이 아니네. 예술가는 연구와 통찰을통해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수준으로 올라서야 하는것이고, 그다음 동료들과 소통하고, 또 그들을 찾아내고, 그들과 사상을 교환해야 하네. 그러고 난 다음 그들이 관심을쏟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밝혀 내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것일세. 진정한 예술이란 고양된 수준에서 동등한 사람들끼리 의사 소통하는 것이지. 그 밖의다른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야.」 - P327

 그 작품들은 분명 오랫동안이 지역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작품들이 될 겁니다.」「다른 지역에서는요?」 약삭빠른 교수는 내가 공격적인 발언을 하거나 아니면 요더 씨가 방어적인 발언을 하도록 우리두 사람 사이를 자꾸 자극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는 어긋나고 말았다. 내가 답변하기도 전에 요더 씨가 먼저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전 이렇게 믿습니다. 한 권의 책에는 그 자체의 수준과 길이가 있다고 말입니다. 저는 제 책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는 게 싫고, 스트라이버트 교수는테스트받는 것이 싫을 겁니다.」 그는 나를 향해 살짝 윙크를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화제나 주제에 대해 어떤 예측을 하는 데는 대학 교수들이라 해서 작가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50년이란 세월을 줘 보십시오. 그러면 정말 옳은 판단을 내립니다. 그러나 그 5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비평가들이 나타나 그 모든 평가들을 수정하고 나설 겁니다. 제가 죽기 전에 분명 디킨스 선풍이 불 겁니다. 진정 위대한 작가 중의 하나였다고 사람들이 인정하게 될 겁니다. 스트라이버트 교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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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업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서 저는 오늘 날짜로 법원의 허락을 받아 제 이름을 미스 셜리 마멜스타인에서 미즈 이본 마멜로 바꾸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이제 막 시작된 저의 새로운 삶 vita nuova에 부디 많은 행운을 빌어 주세요.
<하권에 계속>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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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소설이 대단한 현실 감각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주위 친구들이 토니라고 부르지만 그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안토니아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우리 또래의 감정과 감수성을 지닌 생기발랄한 소녀였으며, 그녀가 여름 동안 같이 지내게된 친척들은 내 가족만큼이나 실제 존재하는 인물들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가깝게 와 닿는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경험이어서 책을 반납하며 나는 사서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모두가 실제로 일어난 얘긴가요?" 사서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럼, 일어났었고말고. 그런데 작가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이야. 물론 네 마음속에서도 일어난 거지. 그게 바로 소설이란다. 서로의 꿈을 교환하는 것......." - P178

타임스 스퀘어가 있고 또 이 도시의 유명한 의류 산업 구역의 북단을 형성하고 있는 남쪽으로 향했다. 얼마 후 지하철에서 나와 7번가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던 나는 아버지와비슷한 연세의 노인들이 의류를 담은 수레를 이리저리 - 행인들과 부딪히고, 차량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 운반하는것을 보았다. 얼마나 불안정한 삶인가. 나는 인파 한가운데멈춰 서서 중얼거렸다. 내가 이런 식의 삶에 묻혀 버릴 순 없어, 책의 세계, 사상의 세계가 있잖아. 난 싸워서라도 그 세계로 가고 말테야. - P181

주다 삼촌에겐 그 말이 또 다른 차원의 의미로 와 닿았던모양이었다. "이 세상에는 네 돈으로 네가 뭘 해야 하는지 쉽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단다. 충고가 돈 드는 일은아니니까. 그렇지만 네게 뭘 해달라고 하면서 <그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좀 다른 얘기란다." - P194

그는 특히 당시 유행하던 전쟁 소설들을 경멸하였다. 「이젠 더 이상, 가령 전형적인 전쟁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혹인 사병 하나, 브루클린 출신 사병 하나, 예민한 성격의 사병하나, 그리고 의지가 박약한 소위와 비정한 성격의 중사 등으로 구성된 한 소대가 보 제스트라는 요새를 죽기 살기로공격한다는 식의 이야기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외인부대라는 것도 이젠 존재하지 않잖아요?」그러면 어떤 식의 이야기가 필요합니까?」뉴저지에 있는대학에서 왔다는 한 젊은 교수의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대답을 하였고 나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루에 다음의 여섯 가지 일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수없이 난도질을 당하는 그런 인물들을 다룬 소설입니다. 첫째는 가령 고향인 미네소타로 돌아가는 죽은 병사의 관 위에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는 가톨릭 군목의 기도를듣는 일. 둘째는 정글에 있는 적의 진지로 공격을 떠나는 대부분이 흑인 사병들로 구성된 부대원들에게 남부 출신의 한대령이 훈시를 하는 동안 차려 자세로 듣고 서 있는 일. 셋째는 미국 병사를 저격했다고 해서 열한 살짜리 동양인 소년을 나무에서 끌어내려 쏘아 죽이는 일. 넷째는 공산군 편을 드는 농부들을 굶겨 죽이려는 방편으로 논 위에 휘발유를 뿌려 불지르는 일. 다섯째는 공군기들이 한 마을에 네이팜탄을 퍼붓는 동안 그 마을 둘레에서 포진하고 있다가 도망치는 주민들에게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구 총알세례를 퍼붓는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밤에 군 막사에서 고국 고향에 있는 친지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 소설에선 이 모든 유형의 인물들을1968년에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로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나무 위의 소년, 대령, 불길을 피해 도망가는 늙은 아낙네, 네이팜탄을 떨어뜨리는 젊은 조종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화자로 해서 말입니다.」 - P216

편집자로서 나는 루카스 요더 씨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즐거우면서도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 동시에 나는 베며 그의 두 번째 소설 「농장』을 세련되게 마무리하기 시작하노 래트너와 그의 베트남 전쟁 원고를 놓고 씨름을 하였다. 그러나 그 일은 정말 비생산적인 일이었다. 독일인 요더 씨는 인내심이 강하고 꾸준히 작업을 하는 작가로, 일단 목표가 설정되면 어떤 유혹이나 방해에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반면에 베트남 참전 용사인 베노 래트너는 너무 변덕스럽고 감정의 변화가 죽 끓듯 하는 사람으로 빛을 발하는 어떤 한지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모든 영역에서 빛나는 북극의 오로라를 따라가듯 자기 방향을 잡지 못하였다. 그리고 요더 씨는 내가 한마디만 해도 제대로 방향을 잡고 그힘든 수정 작업을 공들여 하는 데 반해, 래트너는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비평적인 언사가 섞이기만 해도 한 일주일 동안은 활기를 잃고 타자기를 피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 독일인 농부는 매달 목표 의식을 갖고 소설의 완성을 위해 꾸준히 매진하였지만, 베트남 참전 용사는 동남아시아의 정글에서 길을 잃고 이리저리 손을 뻗쳐 누가 구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글쓰기에 대한 두 가지 접근 방법 사이의 이러한 대조 -오랜 훈련에서 터득한 직업적인 전문성과 이에 대조되는, 즉 한순간 번쩍이는 통찰에 의존하는 아마추어적 즉흥성 -를 래트너가 특히 더 고통스럽게 의식하는 것 같았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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