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두 문제는 방언과 언어를 엄격히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구분할 때야기되는 전형적인 문제이다. 더 큰 문제는 언어학적인 차이만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좁은 개념의 민족적 차이로도 언어와 방언이 구분된다는점이다. 이런 현상에 언어학자들은 "언어는 육군과 해군의 지원을 받는 방언이다"라고 빈정거릴 정도이다. 예컨대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는 방언이 아니라 별개의 언어로 규정하는 70퍼센트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는 듯하다. 실제로 내 스페인 친구들과 이탈리아 친구들은 서로 상대의말을 대부분 알아듣고, 약간만 공부하면 서로 이해하는데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언어학자가 70퍼센트라는 기준을 적용하며 뭐라고 말하든 간에, 스페인 사람과 이탈리아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나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는 별개의 언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두 언어가 자체의 육군과 해군을 지닌 데다, 거의 1,000년 동안 별개의 정부와 교육체제를 지닌 때문이다. - P548
흔합어를 말하는 주된 단점은 언어의 기본적인 기능, "당신이 누군가에게 말하는 즉시, 당신의 언어는 당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상대에게 지체없이 알려주는 증명서 역할을 한다" 라는 기능과 관계가 있다. 전쟁 중에 간첩은 적군의 제복을 훔쳐 입기는 쉽지만, 적군의 언어와 발음을 그럴듯하게 흉내내기는 상당히 어렵다. 당신의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당신 편이다. 따라서 그들은 당신을 동국인이라 판단하며 당신을 도울 것이고, 적어도 곧바로는 당신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잠재적으로 위험한 이방인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친구와 이방인의 즉각적인 구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예컨대 당신이 우즈베키스탄에 있는데 등뒤에서 누군가 미국식 억양으로 영어로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면 얼마나 안심이 되겠는가. 친구와 이방인의 구분은 과거에 훨씬 더 중요해서 (1장 참조), 종종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문제였다. 어떤 공동체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당신은 ‘우리 편‘으로 생각하는 어떤 집단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의 경계에서 혼합어를 말하면 양쪽 집단 모두가 당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어도 어느 쪽도 당신을 ‘우리 편‘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보호받지도 못한다. 이런 이유에서 언어집단들은 하나의 언어를 말하거나 하나의 방언 연속체를 형성하는 하나의 세계가 되지 않고, 수천 개의 개별언어를 말하는 세계로 분화된 것이 아닐까. - P552
언어 다양성과 상관관계가 있는 생태적 요인으로는 위도, 기후 변화, 생물학적 생산성, 지역별 생태학적 다양성이 주로 언급된다. 첫째, 적도에서 극지로 갈수록 언어 다양성은 감소한다. 다른 모든 조건이 똑같다고 할 때, 동일한 면적에서 고위도 지역보다 열대 지역에 언어가 더 많다. 둘째, 동일한 위도에서는 기후 변화가 계절 변화에 따라 일정하는 해마다 예측할 수 없이 변하든 간에 심한 지역일수록 언어 다양성은 감소한다. 예컨대 계절적으로 변하는 열대 사바나 지역보다 연중 내내 축축한 열대우림에서 언어 다양성이 높다. (위도와 계절적 특성 간의 상관관계를통해서, 계절에 크게 영향을 받는 고위도 지역보다 계절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열대 지역에서 언어 다양성이 높은 이유가 어느 정도는 계절적 특성이란 요인으로설명된다. 셋째, 생산성이 높은 환경일수록 언어 다양성은 증가하는 경향을 띤다. 따라서 사막 지역보다 열대우림 지역의 언어 다양성이 더 높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이런 결과는 사막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비생산적인환경이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일 수 있다. 끝으로, 생태적으로 다양한 지역일수록 언어 다양성은 증가한다. 특히 평평한 지역보다 험준한 산악 지역에서 언어 다양성은 높게 나타난다. 위에서 언급한 생태적 요인들은 상관관계에 불과하지만, 그 자체로는설명이 아니다. 언어 다양성을 근원적으로 설명하는 요인들로는 인구 규모, 이동성, 경제 전략이 주로 제시된다. - P554
첫째, 언어집단의 생존 능력은 인구수에 비례한다. 50명난 사용하는 언어은 5,000명이 사용하는 언어보다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그언어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물학적 생산성이 낮은 지역은 사람도 많이 살 수 없어 언어 다양성이 떨어지고, 각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 예컨대극지방이나 사막 지역의 경우, 한 집단이 자족하며 생존하려면 수만 평방마일의 면적이 필요하지만, 생산성이 높은 지역에서는 수백 평방마일이면 충분하다. 둘째, 계절에 상관없이 해마다 환경이 일정하면 언어집단은 주기적으로 이동하거나 다른 집단과 빈번하게 거래하지 않고 한 곳에 거주하며 자급자족할 수 있다. 끝으로, 생태적으로 다양한 지역에는 많은 언어집단이 모여 살 수 있지만, 각 집단은 생존을 위해 해당 지역의 생태계에 맞추어 고유한 경제 전략을 구사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고도에따라 생태계의 환경이 다르다면, 산악지역에는 산악 목축인과 농경인, 저지대의 강변에는 어민, 저지대의 사바나에는 목축인이 살 수 있다. - P555
무리사회에서 국가로 발전할수록 정치는 복잡해지며 언어집단의 인구와 면적이 증가하면 언어 다양성은 줄어든다. 예컨대 오늘날 미국은 동쪽해안부터 서쪽 해안까지 영어 하나만을 사용하는 국가이지만, 인구수는전 세계가 수천 개의 언어를 사용하며 수렵채집에 의존하는 무리사회와부족사회로만 이루어졌던 때의 인구보다 약 30배나 많다. 현재 미국 영토인 땅에 원주민 무리사회와 부족사회와 군장사회가 지배하던 때에는수백 개의 언어가 사용됐지만, 이제는 영어가 그 많은 언어들을 거의 대체해버렸다. 이런 변화의 근본 원인은 프롤로그에서도 말했듯이 인구가 증가하면서 정치가 덩달아 복잡해진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수십 명으로 구성된 사회는 지도자가 없어도 집단 회의에서 대부분의 결정을 내릴수 있지만, 수백만 명으로 구성된 사회를 끌어가려면 지도자와 관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정복하고 합병한 집단의 언어를 억압하고 자국의 언어를 강요한다. 관리의 편의성과 국가 통합을 위한 정책 때문에만 지배 언어가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정복당하고 합병된 사람들이 새로운 국가에서 경제사회적인 기회를 얻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지배 언어를 받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언어 다양성이 줄어드는 결과는 역사적 요인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세계 곳곳은 역사적으로 ‘언어 압살(language steamroller)‘에 의해 몸살을 앓았다. 인구수, 식량, 테크놀로지 등에서 유리한 집단이 그런 이점을 활용해서 이웃한 집단을 침략해서 그 지역에자신들의 언어를 강요하며 그곳의 토착 언어를 대체하거나, 그곳 사람들을 몰아내고 죽이거나 전향자들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가장 흔했던 언어 압살은 강대국이 국가가 없던 종족의 땅을 침략한 때에 있었다. - P557
실제로 1960년대 미국과 아일랜드와 웨일스에서 시행된 연구들에 따르면, 단일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에 비해서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이 언어적으로 현격하게 뒤떨어졌고, 언어의 구사 능력을 무척 느리게습득했으며, 각 언어의 어휘력도 크게 부족했다. 그러나 이 연구들에서는 이중인어와 인과관계가 없는 변수들을 무시한 것으로 밝혀져 이런 결론은 잘못된 것이었다. 다른 나라보다 미국에서 이중언어는 특히 빈곤과 관계가 있다. 미국에서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과 영어만을 사용하는 아이들을 비교하면, 후자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의 출신이어서 더나은 학교를 다니고, 부모가 제대로 교육을 받고 부유해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고 어휘력도 풍부하다. 따라서 이런 상관관계에 있는 변수들만 고려해서는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의 언어능력을 올바로평가할 수 없다. - P567
둘째, 언어는 인간 정신이 창조해낸 가장 복잡한 작품이다. 언어마다소리와 구조가 다르고 사고의 패턴이 다르다. 따라서 한 언어가 사라지면 언어 자체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문학과 문화 및 많은 지식이 언어로 표현된다. 언어를 상실하면 그 언어로 표현된 문학과 문화와 지식도 대부분 상실한다. 언어마다 숫자체계, 기억장치, 공간의 방위체계도다르다. 예컨대 숫자는 영어보다 웨일스어나 만다린으로 세는 게 더 쉽다. 전통 사회는 주변에서 자생하는 수많은 식물과 동물의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 사회의 언어가 사라지면 민족생물학적 정보가담긴 백과사전이 사라지는 셈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만다린으로번역될 수야 있겠지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햄릿의 유명한 대사가 번역된 만다린으로만 읽힌다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영어의 소멸을 인류의 손해라고 생각할 것이다. 부족사회 사람들도 자체의 고유한 구전문학을 지니고 있다. 그런 문학의 상실도 인류에게는 손해이다. - P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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