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란드가 연구한 20가구는 그들이 기아를 벗어나기 위해서 경작해야 한다고 계산된 밭의 수보다 평균적으로 두세 곳을 더 경작했다. 물론, 밭이 분산된 까닭에 그들은 농기구를 운반하고 밭들을 오가는 동안 더 많은 칼로리를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골란드의 계산에따르면, 그로 인해 추가로 필요한 칼로리는 농작물에서 얻는 총칼로리의 7퍼센트에 불과했다. 기아를 피할 수 있다면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할 만했다.
요컨대 통계학이나 수학적 분석을 사용하지 않고도 오랜 경험을 통해서 안데스의 농부들은 수확량이 지역별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들쑥날쑥한 까닭에 기아의 위험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밭을 분산하는 게 최선이라는 걸 알아냈다. 농부들의 전략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모두 담지 말라"는 격언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중세 영국 농부들이밭을 분산한 이유도 비슷하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농업 개발 전문가들이 지독히 비효율적이라며 분개하면서까지 비난했던 티티카카 호수의 농부들이 실제로는 똑똑했고, 농지 교환을 제안했던 전문가들의 판단이 실제로는 잘못된 것이었다는 이유도 이 격언으로 설명된다. 내 뉴기니 친구가 원래의 밭에서 수킬로미터나 떨어진 외딴 곳에 다시 밭을마련한 행동에 나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뉴기니 사람들은 밭을 분산하는 이유로 다섯 가지를 언급했다. 폭풍우, 병충해, 돼지, 쥐에 의해서 모든 밭이 한꺼번에 황폐화되는 위험을 줄이고, 기후권이 다른 세 곳의 고지를 경작해서 다양한 작물을 얻기 위함이었다. - P453

잉여식품을 저장하는 마지막 방법으로는 잉여식품을 비식품으로 전환해두고 힘든 시기가 닥치면 식품으로 다시 전환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있다. 요즘과 같은 현금경제에서 농부들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농부들이 수확하거나 도축할 때 수확물을 팔아 받은 돈을 은행에 묻어두고, 나중에 그 돈을 인출하여 슈퍼마켓에서 다른 식품을 구매하는 경우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뉴기니 고원지대에서 행하는 돼지 사육은 푸드뱅킹, 즉식량을 저장하는 한 방법이다. 고원지대 사람들의 주식인 고구마는 수개월밖에 저장되지 않는다. 하지만 돼지에게 고구마를 먹이고 수년 후에 돼지를 도살해서 식량으로 삼는다면, 고원지대 사람들은 고구마를 돼지의 몸에 저축해두었다가 돼지고기로 전환하는 셈이다. 고구마를 수개월보다 훨씬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저장하는 방법이 아닐 수 없다. - P463

다섯째, 보수적인 다른 사회보다 위험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회가있다. 이런 차이는 제1세계 국가들에서도 확인되며,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뉴기니 부족들 사이에서도 관찰된다. 하나의 예만 들어보자. 최근에이라크에서 군사작전을 시행하는 동안 미군이 프랑스군이나 독일군보다위험 앞에서 무모하게 행동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객관적인 증거는 없지만 그 차이를 나름대로 추측해보면, 프랑스와 독일은 두 번의 세계 전쟁을 통해서 어리석을 정도로 위험한 군사작전 때문에 거의 700만의 애꽃은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는 교훈을 배운 반면에, 현대 미국을 건국한 이민자들은 위험을 회피하는 고향 사람들과 고향을 떠나서 낯설고 새로운땅으로 이주하는 위험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차이에서 비롯된 듯하다.
요컨대 모든 인간 사회는 위험에 부딪치지만, 지역에 따라, 또 생활방식에 따라서 사회가 직면하는 위험은 다르다. 나는 자동차와 접이식 사다리를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뉴기니 저지대 사람들은 악어와 사이클론과 적대적인 부족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쿵족은 사자와 가뭄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회마다 위험하다고 인지하는 것이 다르기때문에 위험을 경감하기 위한 대책들도 다르다. 그러나 WEIRD(서구의 문명화되고 산업화된 부유한 민주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위험을 항상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DNA를 기반으로 한 기술과 스프레이 통에 쏟는 강박관념을 떨쳐내고, 흡연이나 헬멧을 쓰지 않은 채자전거를 타는 습관적인 행위에 내재된 위험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나을것이다. 전통 사회가 우리처럼 자신의 삶에 내재한 위험을 잘못 평가하고 있느냐 않느냐는 앞으로의 연구 과제이다. WEIRD 한 현대인들은 대부분의 정보를 텔레비전, 즉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지만 무척 드문 사건과 사망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미디어를 통해 대부분의 정보를 간접적으로 얻기 때문에 위험을 잘못 평가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전통 사회 사람들은 직접 경험을 통해서, 혹은 친척과 이웃에게 모든 정보를 얻기 때문에 위험을 우리보다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해야 우리는 위험을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까? - P472

 종교는 흔히 다섯 가지의 속성을 지녀야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1)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 2) 사회운동이라 생각하며 그 운동에 동참하는 회원들, 3) 비용이 많이 드는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줘야하는 헌신, 4) 행동을 실질적으로 규제하는 규칙들(즉 ‘도덕률‘), 5) 초자연적인 존재와 힘을 현실의 삶에 개입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믿음(즉기도)이다. 하지만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종교를 이 다섯 가지 속성의총체적인 결합으로 정의하고, 하나라도 빠진 현상은 종교가 아니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 합당하지 않다. 그렇게 한다면 많은 사람이 종교라고 인정하는 현상까지 배제되기 때문이다. - P483

내가 종교를 정의하며 범한 가장 큰 잘못은 종교의 두 번째 속성-종교란 믿음을 굳게 공유하는 사람들의 사회운동을 완전히 배제했다는점이다. 신을 믿지만 자신이 구상한 교리를 믿는 사람들, 또 안식일이면 방에 혼자 앉아 신에게 기도하며 자신이 직접 썼지만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책을 읽는 사람은 종교 행위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혼자 살면서 기도에 열중하는 은둔자이다. 그러나 그 은둔자도 궁극적으로는 어떤 신앙 공동체의 출신이어서 그 공동체에서 믿음을 얻은 사람이고, 더구나 공동체원들이 은둔자를 꾸준히 찾아가고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또 내가 알기에, 백지상태에서 자신의 종교를 창안해내고 사막에 들어가 혼자 살면서 식량의 제공을 거부하고 방문자를 거부했던 은둔자는한 명도 없었다. 설령 그런 은둔자가 있었다면, 그래서 많은 학자가 그를사교성은 없지만 전형적인 종교적 은둔자라 생각하더라도 나는 그를 비종교적인 은둔자, 즉 인간을 싫어한 사람이라 정의할 것이다. - P485

 두 번째와 세 번째 속성, 즉 사회운동과 희생은 어떤 행위가 종교로 여겨지기 위한 필요조건인 듯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어떤 믿음을 깊이 공유하며 지지자들에게 값비싼 희생을 요구하는 비종교적인 사회운동은 얼마든지 있다. 애국심이 대표적인 예이다. - P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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