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때,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곳 맨 앞줄에, 살아 있는 모습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환영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기엔 너무나 진짜 같고 현실적인 모습이었다. 특유의 진녹색 숄을 걸치고서 호리호리한 몸을 숙인 채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앉아 있으니 가늘고 연약한 어깨가 한층 우아해 보였다. 그녀는 플라스틱 접이식 의자에 느긋하게 등을 기대며 윤기 흐르는 레게머리를 어깨 너머로 넘겼다.
아테나였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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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테나 리우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그날 밤, 우리는 아테나가 넷플릭스와의 계약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던 중이었다. - P7

사람들은 늘 질투를 아주 날카롭고 기분 나쁘고 불쾌한 감정으로 묘사한다. 쓸데없이 심술궂고 비열한 감정으로, 하지만 알고 보니 질투는, 특히 작가들에게는, 오히려 두려움에 가까웠다. 아테나가 출판 계약을 또 맺었다거나, 수상자 명단에 올랐다거나, 특별판이 출간되었다거나, 해외 판권 계약을맺었다는 성공적인 소식을 트위터로 접할 때면 심장박동수가 급격하게 치솟았다. 질투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아테나와 비교하며 패배감을 느끼게 했고, 충분히 좋은 글을 충분히 빨리 써내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리라는 예감으로 전전긍긍하게 했다. 아테나가 넷플릭스와 거액에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만으로도 며칠간 좌절에 시달리고, 서점 진열대에서 그녀의 책을 볼 때마다 수치심과 자기혐오에빠져 허우적거리게 될 터였다.
내가 아는 작가들은 다들 누군가에 대해 이런 식으로 느꼈다. 글을 쓴다는 건 매우 고독한 작업이다. 자신이 쓰고 있는글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확신할 수도 없고, 극심한 무한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징후가 조금만 보여도 끝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그냥 쓰고 있는 글에 집중하라고, 그들은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작품이 끊임없이 눈앞에서 펄럭거리고 있는 와중에 그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P18

칵테일 때문인지, 작가로서 내가가진 과도한 상상력 때문인지, 뱃속에서 뭔가가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딸기처럼 빨갛게 칠한 아테나의 입안에 손가락을 쑤셔 넣어 얼굴을 뜯어내고 오렌지 껍질 까듯피부를 깨끗이 벗겨내고 그 안에 쏙 들어가 지퍼를 잠그고 싶다는 괴상망측한 충동이었다. - P19

문제는 내가 이 소설에 얼마나 많은 걸 쏟아부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초고를 아테나가 썼다는 사실이 새어나간다면 세상 사람들은 내가 한 작업의 결과물, 내가 써낸그 모든 아름다운 문장을 보면서도 아테나 리우만 생각하게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누가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거짓말을 감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드러내는 것이다.
소설이 출간되기 오래전, 그러니까 소설의 초안이 리뷰어와 책 전문 블로거들에게 공개되기 전에 나는 미리 기초를 다져놓았다. 아테나와의 관계를 절대 비밀로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은근히 감추거나 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나는 아테나가 사망할 당시 곁에 있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관계를 이용했다. 인터뷰 때마다 아테나의 이름을 언급했다. 아테나의 죽음에 대한 나의 슬픔은 원작의 초석이 되었다. 맞다. 세부적인 부분은 조금 과장했다. 분기에 한 번쯤 마시던 술은 한 달에 한 번, 때로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휴대폰에 저장된 우리 둘이 같이 찍은사진은 단 두 장. 아테나 옆에 선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절대 공개하고 싶지 않았지만, 흑백으로 변환한 후 감동적인 헌사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우리는 서로의 작품을 모두 읽고 종종 아이디어를 주고받았으며, 그녀는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이고, 내 초안에 대한 아테나의 의견은 내가 작가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어줬다는 것이 내가 대중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라. 우리 사이가 가까워 보일수록 이 소설이 그녀의 작품과 닮았다는 사실이 덜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이 프로젝트 곳곳에는 아테나의 지문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깨끗이 지워내지 않았다. 그러는 대신에 왜 그런지 설명했다. - P69

내가 아는 평범한 누군가가 갑자기 유명인이 되는 모습, 세련되고 가식적인 외모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잘 아는 인물로 바뀌어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고등학교 때 친구가 음악가로 큰 성공을 거둔다든가, 섭식장애를 앓는 금발 여자애였던 대학 신입생 때 친구가 스타 배우가 된다든가 말이다. 대중화의 메커니즘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있는가? 어떻게 그는, 당신이 알고 있는 그 현실의 인물이 아닌 마케팅과 대중화의 요소가 되어 팬들에 의해 소비되고 칭송받는 인물이 되는 걸까? 팬들은 그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팬들은 그 또한 이해하며 상관없이 그를 찬양한다. - P96

이게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는 신호일까? 나는 궁금했다.
아마도 맞는 것 같았다. 내 책이 출판사에 얼마나 중요한지왜 아무도 즉시 말해주지 않았을까? 『플라타너스 너머』가 출간되기 전에는, 내가 홍보에 땀을 쏟으면 쏟을수록 출판사가 그만한 보상을 해주길 바라며 블로그 인터뷰와 팟캐스트에 필사적으로 매달렸었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작가의 노력은 책의 성공과 아무 관련이 없다. 베스트셀러는 선택되는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과정에서 주어지는 혜택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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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우리는 산다는 것과 경제가 격리되어 있는듯한, 거대한 허구의 세계 시스템에 우리를 맞추며 살아가는 것 같다. ‘현대스러움‘과 근원적인 경제의 논리가 인류사적으로 교차하고 있다.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미래 인류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색하는 이들, 공유• 연결• 특이점singularity • 기본 소득basic income에 관심을 두는 모든 이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들은 ‘아무도 신용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는 세계에서 누구에게나 열린 호수성互酬性을 기반으로 한 사업 모델과 생활 보장 구조를 동시에 구축하고 있다. 일본은 인연이나 자유에 대한 강조, 타자에 대한 배려, 타자와 맺는 관계의 번거로움 등과 같은 다양한 국면에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고 말았다. 이 책에서 홍콩에서 살아가는 탄자니아인의 삶의 모습과 그들이 형성하는 경제 구조를 독해하여 우리 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힌트를 제공할 수 있다면 좋겠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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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탄자니아의 행상인, 노점상, 길거리 장사꾼을 ‘위장 실업자‘, ‘불안정 취업 계층‘으로 자리매김하는 비공식 경제의 시각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참여 관찰을 위해 길거리 장사꾼에게 장사를 배우러 간나에게 영세 상인들은 아무리 변변치 못하고 빈곤하다 해도, 직원이 없다 해도, 개성적인 발상과 지혜, 경영 철학과 사상, 수완을 가진 ‘창업가‘였다. 실제로 내 스승들은 "너는 우잔자ujanja 하지 못해 (요령이 부족해)"라며 때때로 혀를 차면서도 "잘 속이는 것뿐만 아니라 잘 속아주는 것도 동료들 사이에서 돈을 버는 데 중요해", "네가 속이는 방식에는 균형이 없어"라며 장사의 철칙을 일러주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지혜와 실천을 통해 ‘속고 속이며 서로 돕는‘ 사회적 세계를 창출하는 다양한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홍콩과 중국에 온 탄자니아인을 설령 난민, 망명자, 불법 노동자, 유랑 상인이 대부분이라 할지라도 개발도상국에서 몰려든 ‘이민자‘로 바라보기보다는 중국 시장에 도전하는 ‘창업가‘로 보는 측면에 더 관심을 가졌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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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보스‘와의 만남

홍콩의 10월은 여름이다. 반소매 티셔츠 한 장만 입어도무덥다. ‘장난감 상자를 엎어놓은 것 같다‘고도 묘사되는홍콩은, 갖가지 색깔의 간판을 내걸고 밤 늦게까지 영업하는 가게 사이를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오가는, 에너지 넘치는 곳이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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