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러가드는 핸들이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잡았다. 그는엔진의 진동을 핸들과 팔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심장은 이제 더이상 요동치지 않았다. 심장 박동은 1분에 70 정도로 떨어졌고, 이정도의 심박수가 그가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치였다. 어떤 사람은 피아노 혹은 기타를 치기 위해 태어났다고들 하지만, 그에게는 차가 악기였고 지금은 차로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몸이 차가워짐을 느꼈다. 냉기는 심장에서 시작해 손끝, 발끝으로 번졌다. 그는 지금보다 더 현재에 집중할 수는 없다고 느꼈다. 그는 그것이 진실임을 느끼는 동시에, 그 사실이 슬프지 않을수 없었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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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개정판서문

‘길 없는 길‘

대학 교수 시절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라는 단행본을 발간한지 약 10년이 흘렀다.
그 책을 발간한 당시 내 심정은 이러했다. 나는 정치인도, 시민운동가도, 철학자도 아니다. 나는 내 자신의 가장 큰 존재가치를공부하는 사람, 학인學人에 둔다. 그래서 책의 서문에 ‘나의 세상은 작은 7평 연구실에서 시작된다‘고 썼던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공부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정치에 깊숙이 참여를 하면서도 7평 연구실에서 법학 관련 논문과 판례를 읽고 꾸준히 논문을쓰는 것은 물론, 전공을 넘어 사람과 세상에 대한 공부를 계속 이어갔다. 그것만이 내 삶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3년 6월 12일 나는 서울대로부터 교수직을 파면당했다. 이제 나는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학인이라는 소임을 내려놓고 하나의 시민으로서 ‘길 없는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쓴다. - P5

이렇게 현실은 험난하지만, 여전히 나는 법의 역할을 믿으려한다. ‘정의의 여신‘ 디케ike는 망나니처럼 무지막지하게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아니라, 늘 균형과 형평을 중시하는 차분한 모습이다. 나는 디케가 형벌권으로 굴종과 복종을 요구하는 신이 아니라공감과 연민의 마음을 갖고 사람을 대하는 신이라고 믿는다. 또한머지않은 시간에 주권자 시민들이 ‘법치法治‘가 ‘검치檢治‘가 아님을확실히 깨닫게 되리라 믿는다. 궁극에는 법을 이용한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의 시간이 오리라 믿는다. - P13

특히 ‘검사동일체‘와 ‘상명하복‘을 조직 운영 원리로 삼고 있던 검찰은 다른 엘리트 집단에 비해 우위에 섰다. 대한민국 검찰은 OECD에 속한 다른 국가의 검찰과 달리 ‘수사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기권‘, ‘영장청구권‘ 등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엘리트 집단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무기‘를 가진검찰은 정치권력과도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권력의 사냥개에 그치지 않고, ‘주인‘인 정치권력이 약해진다 싶으면 ‘주인‘을 물어뜯었다. 이즈음 "정권은 유한하고 검찰은 무한하다"라는 건배사가 검찰내에서 공유되었다.
군부의 총칼이 최고의 무력이었던 시간이 끝나가면서, 수사권 · 기소권 · 영장청구권 등 이른바 ‘검찰권‘이 최고의 무력이 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시대가 끝나가면서, 법이 주먹 같은 역할을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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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동양인과 동양계 미국인, 그리고 유럽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유럽계 미국인들의 경우에는 생활의 통제감이 개인의 정신 건강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반면, 동양인과 동양계 미국인들에게서는 그 정도가 훨씬 덜했다.
흥미롭게도 동양인들은 자신이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자신을 통제해줄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믿을 때 더 행복감을 느꼈다. 서양인들에게는 자신의 직접적인 통제가 중요하지만, 동양인에게는 누군가와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일체감이 중요한 것이다. - P98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사물이란 쉽게 변하지 않으며 설사 변하더라도 일정한 방향과 일정한 속도로 변한다고 믿었다. 현대 서양인들 역시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고대의중국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고를 이어받은 현대의 동양인들은 사물이란 항상 변하는 존재이며 현재 어떤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해서 계속 그 방향으로 변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믿는다. 그들은 일이 어떤 방향으로 계속해서 진행되어 오고 있다면 그것은 곧 정반대 방향으로 바뀔 것임을 암시한다고 믿는다.
‘변화‘에 대한 동서양의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이 차이는 다시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느냐 아니면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전체 맥락보다는 부분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이면 세상은 자연히 단순한 곳으로 지각되고, 따라서 큰 변화를 예측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설사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 변화가 현재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추측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 중국의 철학자들처럼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고어떤 일의 발생 배후에 수많은 변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믿는다면,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지각될 것이다. 어떤 변인 때문에 변화의 속도나 심지어는 변화의 방향까지도 바뀔 수 있다. 그좋은 예가 도교의 순환론적 세계관이다. - P100

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물론 서양의 지성사에서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개념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플라톤의 공화국(Republic), 청교도주의, 세이커 공동체, 모르몬주의, 미국과프랑스의 혁명 등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성경에등장하는 에덴동산과 새로운 예루살렘의 약속과 같은 경우만 제외하면, 위에 나열된 서양의 유토피아 개념에는 유교 사상이나 고대중국의 사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음과 같은 독특한 특징이있다.
•유토피아를 향한 직선적 진보가 가정되어 있다.
• 일단 도달하면 그 상태는 영원히 지속된다.
운명이나 초인간적인 개입이 아닌 인간의 노력으로 유토피아에 이를 수 있다.
• 유토피아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 그리고 유토피아는 인간 본성에 대한 몇 가지 극단적인 가정에 기초해 있다.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은 동양인의 미래에 대한 생각과는 여러면에서 반대된다. 동양인들은 진보보다는 ‘회귀‘를 추구하고, 극단적인 것들 사이의 ‘중용‘을 추구한다. 그리고 동양의 유토피아는 ‘과거‘에 존재하며, 인간의 소망은 ‘현재 상태에서 과거의 완전한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다. - P104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이해할 때, 다음의 두 가지 오류를 쉽게 범한다.

• 발생한 결과 이외의 다른 결과는 어차피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 발생한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범하는 이러한 인지적 오류는 인지심리학자 바루크 피시호프(Baruch Fischhoff)에 의해 처음 증명되었다. 그는 실험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은 처음부터 어떤 사건의 결과를 예측할 수있었다고 과잉 확신하는 경향‘과 ‘그 때문에 당연히 놀라워해야 할 예외적인 사건의 결과에 대해서도 별로 놀라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증명해냈다. 이를 후견지명 효과, 심리학 용어로는 과잉 확신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한다. - P126

물론 보르헤스 자신이 편의적으로 만든 분류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고대 중국인들이 세상을 분류하고 범주화한 방식이고대 그리스인들의 방식과는 상이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그리스인들은 공통의 속성을 지닌 것들을 같은 범주로 분류했지만, 철학자 도널드 먼로에 따르면 중국인은 그렇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서로 공평(resonance)‘을 통하여 영향을 주고받는 것들을 같은 범주에 속한 것으로 간주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오행설에 따르면 ‘봄, 동쪽, 나무, 바람, 초록‘은 모두 동일한 범주에 속했다. 왜냐하면, 바람의 변화가 나머지 네 가지에 변화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대 중국에서는 범주화라는 지적 작업 자체에어느 정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장자는 "범주화는 지식을 제한하고 더 큰 지식을 분열시키는 짓이다"라고 적고 있다. 도덕경』은 범주화에 의존함에 따라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다섯 가지 색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눈은 멀게 되고
다섯 가지 음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귀도 멀게 되고
다섯 가지 맛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입맛은 짧아질 것이다. - P135

첫째, 동사는 영어와 기타 유럽 언어에서보다도 동양의 언어에서지각적으로 더 두드러진다. 중국어나 일어, 한국어에서는 동사가문장의 처음이나 맨 마지막에 오는 경향이 있는데 그 위치들은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곳들이다. 반면에 영어에서는 동사가 대개 문장의 중간에 등장하기 때문에 지각적으로 그리 주목받지 못한다. - P146

넷째, 영어나 다른 유럽 언어에서 ‘속명 (generic nouns, 어떤 범주자체에 대한 이름)‘은 문장 구조상 확연히 구분된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a duck‘, ‘the duck‘, ‘the ducks‘, ‘ducks‘라는 표현을 쓸수 있는데, 이 중 마지막 표현은 속명에 해당한다. 즉, 오리 일반을지칭하는 말이다. 영어에서는 이처럼 ‘특정 오리 한 마리‘, ‘특정오리 집단‘, ‘오리 일반‘ 등을 분명히 구분지어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어를 비롯한 동양의 경우는 이러한 구분이 쉽지 않으며, 오로지 맥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발달심리학자인 수잔 겔먼(Susan Gelman)과 트와일라 타디프(Twila Tardif)가 영어를 사용하는 어머니와 중국어를 사용하는 어머니를 비교 연구한 결과, 영어권 어머니들이 속명을 사용하는 빈도가 2배 높았다고 한다. - P147

‘모순에 대한 선호‘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는 매우뿌리 깊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변증법적 사고라부를 만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장 큰 특징은 모순이 되는 주장들을 타협을 통해 수용하는 것이었다. 모순되는 두 주장 모두에서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그 사고 방식의 핵심이다. 고대 중국인들의 이러한 변증법적 사고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변화의 원리(The principle of change) 동양의 사고에서 우주는정적인 곳이 아닌 역동적이고 변화 가능한 곳이다. 어떤 사건이 현재 특정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은 그 상태가 곧 변화할 것이라는징후로 간주된다. 현실은 끊임없이 변동하기 때문에 현실을 반영하는 개념들 역시 고정적이고 객관적이기보다는 유동적이고 주관적이어야 한다.
2) 모순의 원리(The principle of contradiction)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대립(oppositions), 역설(paradoxes), 변칙(anomalies)이 늘 발생하며, 신/구 선/악, 강/약이 모든 사물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대립은 사실상 서로를 완성시키고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도교에서는 모순 관계에 있는 두 주장들이 역동적인 조화의 상태로 존재하며, 서로 대립적인 동시에 서로 연결되어 상호 통제한다고 생각한다. 도는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된다.
도교의 창설자인 노자는 "사람들이 미를 미로서 인정할 때에야비로소 추함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선을선으로서 인정해야 마침내 사악함에 대한 인식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존재와 부재는 상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자신을 정치가 군인, 철학자, 시인으로 명명했던 중국의 독재자 마오쩌둥도 "대립은 서로 맞서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 연결, 상호침투, 상호 관통, 상호 의존을 뜻한다"라고 기술하였다.
3) 연관성 혹은 종합론의 원리(The principle of relationship, or Holism) 변화와 대립에 대한 그러한 견해는 자연스레 어떤 사물도다른 것들과 고립된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다른 무수한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어느 하나를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연관되어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물론 변증법적 사고의 이 세 가지 원리는 서로 관련되어 있 - P165

어쩌면 서양인들의 눈에도 이와 같은 동양적인 사고들이 낯설어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칸트, 피히테, 헤겔의 시대 이래로이런 종류의 변증법 전통은 서양 사상의 흐름에서도 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헤겔 혹은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은 모순을 수용하거나 초월하기보다는 모순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동양의 변증법적 사고보다 더 공격적이다. 서양인들이 동양인의 변증법적 사고가 전적으로 동양적인 것이 아니라 서양에도 존재한다고 쉽게 착각하는 이유는 그들의 사고 전통 안에 동양적 변증주의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논리적 원리들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양 사고의 기본원리 중 하나인 ‘동일률‘은 상황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일관성을 강조한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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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다 마셔버리지 뭐 수당 입금이 다음 주에 되니까." 레지가 말했다.
로니는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가난하게 자라면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다. 복지 수당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교회에서 구호물품을 나눠 줄 때까지 줄을 서서 기다린다. 교구 주민이 동정이 서린 얼굴로 자신을 바라봐줄 때까지 기다린다. 형이 자신이 신고 있던 상표 없는 신발을 물려줄 때까지, 그 신발의 해진 부분에 대충 접착제를 바르고 신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빚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죽음을 기다린다. 로니는 그기다림에 진절머리가 났다. - P98

보러가드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더스터에서 나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약점을 다 내보이는 것과 같았다. 그들은 상처가 벌어져 진물이 녹아내리는 그곳을 정확히 알았다. 우리가 마음을 열어 보이면 그들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어떤 지점이 약한지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폭발할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다. 방금처럼 전화를 먼저 끊는 것과 같이. 그는 사자처럼 입을 떡 벌렸다가 다시 닫고는 머리를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었다. 이 기분을 떨쳐버려야 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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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도교, 불교 모두 ‘조화‘, ‘부분보다는 전체‘, ‘사물들의 상호 관련성‘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세 철학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종합주의 (holism)‘는 우주의 모든 요소들이 서로관련되어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종합주의라는 개념은 공명 (resonance) 현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악기의 한줄을 건드리면 공명에 의해 다른 줄이 울게 되듯이 인간, 하늘, 땅은 서로에게 이런 공명을 일으킨다. 만일 땅에서 군주가 나쁜 일을하면 우주의 상태 역시 나빠진다는 믿음이 바로 이러한 종합적 사고의 한 예이다.
반면 고대 그리스 철학의 중요한 특징인 ‘추상화(abstraction)에대한 관심‘은 고대 중국 철학에서 그리 쉽게 찾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중국어에는 영어의 ‘ness‘에 해당하는 접미사가 없기 때문에 영어의 ‘whiteness‘ 같은 추상적인 의미를 사용할 수 없다. 백조의 흰색이나 눈의 흰색처럼 오직 특정 대상과 관련된 형태로만 쓰인다.
중국인들의 기본적인 우주관은 우주가 상호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사물들의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거대한 물질이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가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 문화에서는 우주의구성 단위가 원자(atom)인지 아니면 파장(wave) 인지가 중요한 논쟁거리여였지만, 중국인들이 보기에 루주란 두말할 아위 없이 연속적인 파장르로 구성된 것이었다. - P43

그리스인들이 자연계‘의 개념을 발견하면서 과학이라는 것이생겨났다. 중국인들이 과학을 일찍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호기심의 부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인간계와는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자연계‘라는 개념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별 사물과 그것의 속성에 집착한 탓에 그리스인들은 아주 기본적인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데 실패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돌이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그 돌‘이 ‘중력‘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무 조각이 물 위에뜨는 것은 그 ‘나무 조각‘이 ‘부력‘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경우 모두 주 초점은 오로지 대상 자체이며, 그 대상을 둘러싼 외부의 힘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와는 달리, 중국인들은 우주를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장陽)으로 보았기 때문에, 인과 관계를 설명할 때에도 장 전체의 복잡성에 주목했다. 그들은 어떤 일이든지 수많은 힘들이 상호 작용하는 장 안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들 사이에서도 힘이 작용한다(action at a distance)‘라는 사실을 갈릴레오 훨씬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석과 공명의 원리뿐만 아니라, 갈릴레오조차 깨닫지 못했던, 달의 운동과 조류 사이의 연관성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P46

인류학자린 레드워드 홀(Edward Hall)은 이러한 차리를 ‘저맥락(low context)‘ 사회와 ‘고맥락(high context)‘ 사회의 구분을 통해 설명하였다. 저맥락 사회인 서양에서는 사람을 맥락에서 떼어내어서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개인은 맥락에 속박되지 않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행위자로서 이 집단에서 저 집단으로, 이 상황에서 저 상황으로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다. 그러나 고맥락 사회인 동양에서 인간이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유동적인 존재로서 주변 맥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철학자 도널드 먼로의 표현을 빌자면 동양인들은 인간을 "가족이나 사회 혹은 도의 원리와 같은 전체와의 관련성 속에서 파악한다." 인간은 ‘인간관계 속에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하게 독립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리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동양인에게 있어서 행위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 조정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관계에서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 생활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
동양인들은 자신들이 속한 내집단에 대해서는 강한 애정을 보이지만, 외집단이나 그저 아는 사이인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거리를둔다. 그들은 자신이 내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매우 유사하다고느끼고, 그들을 외집단 구성원보다 훨씬 더 신뢰한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자신과 내집단 사이에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어하며, 내집단원이나 외집단원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보편주의적 행동 원리를 따른다. - P55

물론 동양인들이 자신의 특성을 일부러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아니다. 그보다 동양인들에게는 자신이 ‘특별하다‘, ‘남들보다 탁월하다‘라고 믿게 하는 문화적 압력이 없다.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사회에서 개인의 과제는 ‘남들보다 더 뛰어나다‘ 혹은 ‘더 독특하다‘라는 평가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화목을 유지하고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기비판(self-criticism)이 필수적이다.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다른 구성원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집단의 과제 달성을 방해하는 개인의 단점이나 특성을 반드시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양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남들과 마찰 없이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지만, 서양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느끼도록 가르친다.
일본의 학생들은 인간 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자신의 능력을 더 개발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하도록 교육받는다. 동양인들에게는 우스워 보이겠지만, 얼마 전 내 고향에서는 교육의 목표로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과 ‘자존감(self-esteem)을 심어주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에 관한 논쟁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동양인들에게 있어서 자존감을 심어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된다는것은 어쩌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 P58

이처럼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사회와 상호의존적인 사회의 특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다르며, 이러한 차이들은 크게 다음의 네 가지 사항으로 요약된다.

• 개인적 행위에 대한 자유 선호 대 집합적 행위에 대한 선호.
• 개인의 독특성 추구 대집단과의 조화로운 어울림 추구
• 평등과 성취 지위의 추구 대 위계 질서와 귀속 지위의 수용 • 보편적 행위 규범(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행동 원리)에 대한 선호 대 특수적 행위 규범(유형과 종류와 상황에 따른 융통성 있는 행동 원리)에 대한 선호

위의 네 가지 사항은 서로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미미하다. 따라서 어떤 사회가 어느 사항에서 독립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다른 사항에서도 독립적인 것은 아니다. - P65

동양인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상호의존적 단서들을 통해 끊임없이 상호의존적인 사람이 되도록 유도(점화)되고 있고, 서양인들은 독립적 단서들을 통해 독립적인 사람이 되도록 늘 점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지 독립적인 사회에서 살면 독립적 단서에 노출되기 때문에 독립적인 방법으로 사고하게 되고, 상호의존적인 사회에서 지내게 되면 상호의존적 단서에 점화(Priming)되어 상호의존적인 방법으로 사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 P71

일본도 물론 체면을 중시하지만 조직과 관련된 체면을 더 중시한다는 점에서 가족의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과는 다르다. 사회학자인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 철학자인 하지메 나카무라, 심리학자인 도라 디엔(Dora Dien), 사회철학자인 린위탕 등은 중국과일본의 또 다른 차이들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사회적 규제 면에서, 중국의 경우는 그 규제가 상사 혹은 윗사람 등 대개 권위자로부터 비롯되지만 일본의 경우는 대개 동료로부터 비롯된다. 학교내에서의 통제력도, 중국에서는 주로 교사로부터 나오지만 일본에서는 동료 학생으로부터 나온다.
도라 디엔은 "중국인들은 오륜으로 대표되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각 개인의 개성을 유지하는 데 반해, 일본에서는 집단 속으로의 개인의 완전한 융합을 강조한다"라고 적고 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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