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3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제5항은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여 사회국가 원리를 수용하고 있어, 결국 우리 헌법은 자유 시장 경제 질서를 기본으로하면서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다(헌법재판소2001.2.22.99헌마365 결정, 1998.5.28. 96헌가 결정)."

이처럼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헌법이 지향하는 ‘평등‘
을 ‘실질적 평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질적 평등은 모두를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라는, 즉 차이에 대한 존중이 평등의 본질임을 밝힌다. 차이에 대한 존중이란 인간다운 생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의 삶을 일정 수준 이상이 될 수있도록 보장하고, 신체적 능력 등 기타의 사유로 상대적 기회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 P146

한국 사회는 다른 국가와 달리 유독 타인의 욕망이 개인의 삶을 지배한다. 타인의 욕망이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의 삶은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혹은 "남보다 뒤처지지않은 삶을 살아야 돼"라는 말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기본적으로 내 삶의주체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삶의 중심에 두는 게 아니다. ‘나는 어떻게 저렇게 되지? 나는 어떻게 해야 저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까?‘와 같이 타인의 기준과 욕망에 삶의 조건을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P174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국민에게 규율과 원칙이 힘 있는자들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는 경험을 안겨주었다. 외형적으로 볼 때 한국 사회는 빠른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이 이루어진 듯 보이지만, 그것을 이룬 방식 자체가 원리원칙보다는 국가나 기업, 그리고 이들의 지원을 받는 정치인과 같은 힘 있는 자들에 의해 행해져온 것이다. 그렇기에경제 성장과는 별도로, 국민은 높아진 삶의 질을 누리기보다 결국 ‘힘 있는 자가 되어 성공해야 한다‘라는 생각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고 이는 언제나 불만족스럽고 불안한삶에 자신을 위치시키도록 만들었다. - P181

왜 우리는 이렇게 혐오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누군가를 배제하고 미워하는 것일까. 나는 그이유가 ‘불안‘에 있다고 본다.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살아가면서 사실은 스스로 행복하지 못하고 자유롭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불안한 마음은 비교적 쉽게 비난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비난과 혐오의 마음으로뒤바뀐다.
앞서 한국 사회는 원칙과 책임을 중시하기보다 성장과발전, 결과와 물질이 중심이 된다고 보았다. 가진 자에 대한 지나친 사회적 인정과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강한 멸시가 동시에 존재한다. 또 가진 자를 질투하고 선망하는 태도가 만연하다. 실패에 허덕이는 사람 앞에서 위로하거나 격려하기보다 오히려 그를 격렬하게 비난한다. 이러한 사회적 풍토에서 실패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세상에 대한 분노를 키워갈 수밖에 없다.
살면서 누구나 실패를 경험한다. 실패가 없는 인생은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실패를 어떻게 잘 극복하고 겪어내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해서 관용적이지 않다. 무언가 실패하면 그 사람에게 다른 기회가 주어지기 어렵다. 입시에 실패했다고 해서 혹은 원하는 대학이나 직장에 가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줄 수 있는 사회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P198

어째서 한국 사회는 이토록 질투와 혐오의 문화가 만연한 것일까. 질투와 혐오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집단 간의 차이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무엇이 옳고 우월하다는 관점이 너무나 분명하고 고정적으로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자. 경제적측면에서 더 많은 부가 더 많은 행복과 직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더 높은 지위가 더 큰 성공이라고 바라보지 않는가. 더 좋은 성적이 훌륭한 학생임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 P203

한국 사회에는 좀 더 다양한 삶의 가치가 등장해야 하고, 그에 대한 관용의 문화가 필요하다. 실패의 경험, 다른방식의 삶을 인정하고 그것이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제도적으로는 생애 단계마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을 지지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낙인을 찍는 문화는 결국 분노를 형성하게 되고 이는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로 이어진다. 다른 기회, 실패를 통한 성장 등 우리 사회에 삶에 대한 믿음이 전반적으로 생긴다면 자신의 분노감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폭력적인 태도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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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시손은 단순한 관용구가 아닌, 존재론적슬픔을 함의한 광막한 단어다. 문득 가시손의 반대말이 궁금해진다. 아마도 쓸어 담고 쓰다듬고 치료하는 손이겠지? 다행히 세상엔 가슴팍에 청진기를대고 숨소리를 듣거나 진맥을 짚어 영혼의 상태를 살피는 손도 존재한다. 내가 무수한 나들의 총합이듯이 나의 손안에도 무수한 손들이 자리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가시손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서 한평생 파괴지왕으로만 살아야 하는 건 아닐 터. 연습하는 손은 게으른 손을 이길 것이고 호기심 가득한 손은 나태한 손을 앞설 것이다. 그래서 묻는다. 오늘 당신은 어떤 손을 가졌습니까. 그 손안엔 무엇이 있습니까. 따뜻합니까. - P121

매일 진다. 지는 기분이 든다. 피곤해서도 지고 귀찮아서도 지고 허무해서도 지고 우울해서도 진다.
그날따라 입고 나온 옷이 마음에 안 들어서도 지고,
하필 우산을 두고 온 날 소나기가 내려서도 지고, 편의점에 들러 만 원이나 하는 우산을 샀는데 비가 홀랑 그쳐 씩씩거리며 또 진다. 텀블러 뚜껑이 제대로안 닫혀 가방 안이 홍수가 되어서도 지고, 눈앞에서 버스를 놓쳐서도 지고, 주차장 구석에서 들려오는고양이 울음소리가 구슬퍼서도 진다. 변해서 슬픈이유는 다름 아닌 그것이다. 응전할 힘이, 무기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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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력벽은 건물의 하중을 부담하는 구조체를 말한다.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에도 내력벽은 함부로 구조 변경을 하거나 허물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철거할 수 없는 벽이라는 뜻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집이라면 그 집을 짓기 위해 설계된 내력벽이 있을것이다. 우리가 공평히 나누어 가진 부재의 기억 같은. 신의 입장에선 당연한 설계일지 몰라도 인간의관점에선 피하고 싶은 불운이다.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해보면 내력벽이라는 건 모든 걸 부숴도 부서지지 않는 최후의 보루, 영혼의 핵심인 셈이니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것이겠다.
팔을 들어 슬픔을 받치고 선 모양. 나란한 두 개의 기둥.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다. 그러니 팔이 아프면 조금 꾀를 부려도 좋아. 오늘은 나의 친구들에게 그렇게 시작하는 편지를 써야겠다. 당분간은 내가 받치고 있을게. 손으로 안 되면 발로라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그러니까 다녀와.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숲길도 걷다 와, 기다릴게.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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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의 문화는 가족 내 역할을 분명히 정해주고 구성원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똘똘 뭉치게 만듦으로써 가족이 곧 운명공동체라는 생각을 강화한다. 반면 가족의 집단이익이 강조되다 보니 개인의 희생과 노력이 가려지기 쉽다.
이는 국민의 희생과 노력을 통해 단기간 빠른 성장을 이룬 한국 사회의 모습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단적인 예가 IMF 시기의 금 모으기 운동이다. 국민모두가 집에 있던 금을 내놓아 국가를 살리고자 한 사례는 전 세계를 통틀어 전무후무하다. 이를 긍정적 측면에서 볼수도 있겠지만, 국가가 어떤 문제나 위기에 봉착했을 때 개인들이 국가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개인의 희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식은 가족주의가 확대된 것으로 하나의 국가관이라고 할 수 있다. - P90

따라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경제적으로 가장급성장하는 시기에 국민을 돌보는 문제는 모두 국가가 아닌 개별 가족이 떠맡았다고 할 수 있다. 국가는 저임금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도시로이주하도록 독려했는데, 이주한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도 그들의 안전이나 기본적 복지를 보장받을 수가 없었다. 이촌향도로 도시에 온 사람들은 같은 지역 출신의 친척을 통해서나, 줄줄이 잇따라 올라온 형제자매들과 서로 돕고 돌볼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한국에 개신교가 급성장한 것도 당시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했던 것과 연결된다. 외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가족에게조차 의존하지 못할 때,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은 종교 공동체밖에 없었던것이다. - P93

한국의 가족주의는 국가가 제공하지 못하는 안전망을개인에게 주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부작용을 생성해왔다. 한국 사회에서 권력 다툼, 즉 먹거리를 놓고 누가 가져갈 것인지 다투는 양상은 가족주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현대 한국 사회를 들여다 보면, ‘밥그릇 싸움‘에서 혈연, 학벌, 동향 등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왔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를테면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속해있는지 과시하기를 좋아한다. 어디 성 씨라든지, 어느 동향이라든지, 조상 중에 어떤 직위를 누리신 어르신이 있다든지, 어느 학교 출신이라든지 하는 점들을 지나치게 강조하곤 한다. 이것은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지위와 가치를 높임으로써 권력 다툼에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즉, 혈연, 학벌, 동향 등 확대된 가족주의는 패거리주의를만들어왔다.
이 같은 패거리주의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노동, 정치권, 시민운동계는 연고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패거리를 만든다. 교회와 재벌가에서는 가족을 중심으로 세습이 이루어진다. 같은 패거리끼리 중요 사항을논의하고 결정하며, 패거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그 문제에 참여하고자 하면 철저하게 배척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내부 집단 간의 결속을 강화하고, 외부 사람들을 배제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것이다. 주요 결정들이 가족이나 연고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은 전쟁직후의 불확실한 현실과 급성장 시기에 위기를 헤쳐나가는 방편일지언정 오늘날 한국이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 P94

소가족이 가족의 표준적 모델로 승인되고 제도화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라고 본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족이 오늘날과 같이 성과 사랑이 중심이 되는 친밀한 사적 영역으로 개념화된 것은 근대 산업사회에 이르러서이다. 경제, 규범, 교육 등의 기능이 이제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사회적 차원의 법이라든지 학교라든지 자본주의 체제로 분화되어버린 산업사회에서 가족은 애정이나 친밀함과 같은 정서적 기능을 핵심 기능으로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공적 영역인 가정 밖에서의 역할과 사적영역인 가정에서의 역할이 분리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남성은 바깥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집 안에서 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가족의 정서를 다루는 역할이 중요하게 되었다. 이 변화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근대 핵가족의 이념과 남녀 성 역할의 분화가 발생했다고할 수 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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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가 아니라면 씨앗이 품고 있는 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 안의 가장 여린 마음에까지 독이 스며 있다는 사실을. 그때의 독은 악이 아니다. 안간힘이고 사랑이다. 인간이 제아무리 약하다 해도 인간은 저절로 강한 면이 있다. 씨앗이 품은독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리라. 무력한 인간을 번번이 일으키는 일. 주저앉아도 일으키고 주저앉아도또다시 일으키는 일.
우리는 모두 찢기기 쉬운 피막을 가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이의 피막에 함부로 막대기를 꽂아휘저을 수 없다. 대단한 무엇이 파괴되어서가 아니다. 한 인간을 둘러싼 피막이 손상될 때 인간은 죽는다. 아주 작은 찢김으로도 상한다. 그러니 겪고 뒤척이면서 두터워지는 수밖엔 없다. 이 여름, 이 겨울을지나면 또 한 겹의 피막이 생겨나겠지. 이 사랑, 이터널을 빠져나가도 또 한 겹의 피막이 생겨나 있을것이다. 그 시간을 믿으며 가야겠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 P78

썩게 하는 힘. 감정이든 사람이든 시간이든 썩을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어떤 마음들은바로 그 순간에만 말이 된다. 오늘은 비가 왔어. 낮에도 어둑해서 불을 켜야 했지. 너는 대답이 없구나. 오늘은 날이 맑았어. 버지니아 울프가 연필 한 자루를 사러 런던 거리를 헤매는 이야기를 읽고 나도 용기내어 외출을 해보았어. 시장에 봄나물을 사러 다녀왔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제철이라 맛있을 거라며 한움큼을 더 담아주신 거 있지. 덜렁덜렁 검은 비닐봉지 흔들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좋았어. 너는 대답이 없구나.
그런 혼잣말들로, 눈물로, 한밤의 달리기와 그네타기로, 시와 음악으로 우리는 모루에 대항한다. 연필 한 자루가 산책의 근사한 핑계일 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연필은 이미 충분하니까. 애초에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그가 신발 끈을 고쳐묶고 문을 열었다면 슬픔에서 위안으로 가는 협곡을뛰어넘는 중이라고 여겨주기를. 썩고 난 뒤에야 묻을 수 있다. 땅이 아닌 가슴에 묻는 것이더라도, 너는여전히 대답이 없구나. 그는 그다음 말을 향해 온 마음으로 가는 중일 것이다. - P89

나에겐 팥죽만 보면 목이 메고 울고 싶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순전히 팥죽의 색깔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못난 마음을 한 솥 가득 넣고끓이면 꼭 그런 색과 모양이 될 것 같아서다. 휘저을수록 검어지고 퍽퍽해지는 것까지 영 손쓸 도리 없는 풍경이다. - P92

이 글은 그 시간을 통과해 온 엄마를 위해 쓴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하루가 있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눈물이 있을지라도 우리 삶의 구체성으로 말미암아이 페이지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페이지가 될 거라고. 귀퉁이를 접어 두고두고 펼쳐보며 엄마의 아팠던 시간, 그림자의 그림자까지 끌어안겠다고.
사과의 갈변은 사과가 운 흔적일까? 유루증流淚症은 생각할수록 슬픈 병이다. 적갈색이 생각할수록 슬픈색인 것처럼.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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