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반해 종 내의 처절하고 불쾌한 순간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가족 내의 불쾌한 순간은 거의 금기시되었다. 자연선택이 주로 개체군 전체나 종 전체의 수준에서 작용한다면 유아살해와 형제살해는 작약꽃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잡초를 뽑는 것처럼 적자를 보존하기 위해 유전자군에서 불리한 형질을 제거하는 가지치기 과정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이런 논리의 문제점은 초자연적인 정원사 또는잡초가 없는 완벽한 정원이라는 목표를 완성해나가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이다. 자연의 섭리에만 모든 걸 맡겨두면 (우리의 주제는 인공이 아닌 자연선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잡초가 작약을 모조리 몰아내고 말 것이다.
- P89

세 번째 오류의 핵심은 근접 기제 proximate mechanisms 와 진화기제ultimate functions를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근접 기제는 특정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환경과 생리 기능의 현재 배열을 말한다. 여기에는 반응을 유발하는 생리 자극, 그 자극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감각신경계, 반응방식을 ‘결정‘ 하는 중앙신경계, 행동을 일으키는 근골계 등이 포함된다. 간단히 말해, 근접 기제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즉 마이크로초 신경 활동)에서 몇 개월 사춘기 같은 호르몬변화에 이르는 시간 동안 ‘어떤 행동이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로 압축된다. 이와 달리 ‘진화 기제‘는 근접 기제가 진화하게 된 ‘근본 원인(왜)‘과 관련이 있다. 놀라운 속도로 달리거나 엄청나게 높이 도약하는 세계적인 운동선수를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하지만 조금만 더생각해보면 달리고 뛰는 행동 패턴 자체는 먹이를 쫓고 (다른 인간을포함한) 포식자를 피해야 하는 필요성에 의해 거의 인간 역사 전체에걸쳐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행동을 비롯한 여러 형질을 논할 때는 근접 기제와 진화 기제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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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이로군. 아아, 두근두근하는걸."
긴박감 넘치는 발사통제소에서 동료 미카미 다카시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쓰쿠다 고헤이는 모니터에 비치는 발사대를 힐끗 보고 화면 오른쪽 가장자리에 떠 있는 풍속을 확인했다. 여전히 초속 15 미터의 강풍이 불고 있었다.
"발사 8분 전입니다.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현 시각부로 자동 카운트다운 과정으로 이행합니다."
- P11

"쓰쿠다가 강력한 라이벌인 이유는 바로 기술력 때문이야. 침몰시키기에는 아까운 보물이지. 그래서 포격을 가하다 죽기 직전에 손을 내미는 거야."
"화해안이로군요."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니시모리는 대뜸 답했다.
"그래. 배상금 대신 보유 주식의 절반 이상을 내놓도록 하는 거야. 그럼 쓰쿠다제작소는 나카시마공업 아래로 들어와. 어때, 이계획?"
"하지만 사장이 그런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니시모리가 갑자기 의문을 제기했다. "전화를 받아보니 아주 세게 나오던걸요."
"돈은 사람을 바꾸는 법이지."
미타는 자신의 신념을 입에 담았다. "내일 먹을 양식을 사고 종업원들에게 월급도 줘야 하는데 돈이 간당간당해. 매입대금 지급일은 점점 딕쳐오고 금융기관에서도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지. 이대로 가다가는 가족과 종업원들이 길바닥에 나앉을 지경이야. 그럴 때 우리가 화해안을 내밀면 지옥에서 부처님이 내려준 동아줄을 본 기분일걸, 거기 매달리지 않는 경영자가 있다면 멍청한 놈이지."
- P73

"아닙니다. 특허를 따낸 연구개발 능력과 기술 자체는 훌륭해.
요. 하지만 그거랑 특허의 좋고 나쁨은 다른 문제입니다."
예상도 못 했던 이야기였다.
"알기 쉽게 설명 드리죠. 가령 제가 컵을 발명했다고 칩시다."
가미야는 커피가 든 플라스틱 컵을 집어서 앞에 놓았다. "자,
이걸 어떻게 표현할까요? 특허란 지금까지 없었던 발명품에 부여하는 거니까 그 발명품을 어떻게 설명하고 정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속이 텅 빈 원기둥 모양 물체로, 바닥이 있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라고 써서 특허를 출원했다고 칩시다. 자, 그러면될까요?"
"올바른 설명 같은데, 그럼 안 되는 겁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좋은 특허라고 하기는 힘들죠." 가미야가 말했다. "그 특허가 승인된 후에, 예를 들어 플라스틱 말고 유리로 된 컵을 만든 사람이 나오면 어떨까요? 혹은 원기둥 모양이 아니라 각진 컵을 만든 사람이 나오면요? 이 두 가지는 특허침해일까요?"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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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레즈니크 DavidReznick 등의 학자들은 새로운 위협이 나타났을 때 개체군이 어떻게반응하는지 살피고자 트리니다드 섬에서 작고 화려한 민물고기 구피를 대상으로 장기적인 현장실험을 수행했다. 실험 결과, 구피는 모든생활사 형질이 상황에 맞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레즈니크등은 아리포 강에서 성체 구피를 노리는 포식자 시크리드에 길들여져 있던 구피 200마리를 다른 지역의 지류로 옮겼다. 그 지류에는 구피가 많지 않은 대신 어린 구피를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포식자 킬리피시가 있었다. 11년 동안 끊임없이 방문하여 30~60세대를 연속 관찰한 결과, 실험 개체군에서 강력한 진화적 반응이 포착되었다. 아리포 강의 시크리드가 성체 구피를 좋아해서 그런지, 그지역의 구피들은 계속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매번 많은 수의 작은 새끼를 생산했다. 반면에 지류의 구피들은 성적 성숙을 뒤로 미루는 대신 소수의 덩치 큰 자손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행동의 변화가 이런변화(어린 구피들의 민첩성 강화 등)를 이끌어냈으리라 예상되나 확인된바는 없다.
- P60

게임이론은 그 이름도 유명한 최적성 이론optimality theory 의 한분야인데, 이 이론은 일반적인 엔지니어링 문제에 대한 상식적인 해결법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비행기의 날개를 설계할때 받음각과 날개의 전체 모양(면적, 길이 대 너비 등)은 비행기의 용도에 따라 결정된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비행기는 특별히 기동성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속도 신기록을 갱신해야 하는 비행기나 작은 섬의 활주로에 착륙해야 하는 비행기와는 날개의 형태가 매우 다르다.
어떤 경우든 날개를 설계하는 최적의 해법은 전적으로 물리학과 야금술 원칙에 의해 결정되며, 이 해법에 어떤 이의도 있을 수 없다.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서 중력의 법칙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이처럼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여 이런 해법 찾기 방식을 흔히 ‘단순 최적성 모델‘ 이라고 한다(솔직히 내게 수학이란 그리 단순한 게 아니지만 말이다).
- P66

단순 최적성 모델과 달리 게임이론은 살아 있는 그래서 진화하는 상대방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응 전략을 계산에 포함시킨다.예컨대 체스 게임에는 최초 열 번의 완벽한 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나를 깨뜨리기 위해 다양한 수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동일한 첫 수를 두면 상대방은 그런 현실에 적응하여 나를패배시킬 것이다. 모든 형태의 생명체가 다양한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긴밀히 상호작용하고 모든 생명체가 자연선택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연 속에는 각양각색의 게임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육식동물들은 사냥감의 고깃덩어리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그런가 하면 기생충은 끊임없이 방어력을 강화해가는 숙주에게 맞추어 진화를 계속한다. 한 종 내의 수컷은 암컷을 놓고 다른 수컷과 경쟁하며, 수컷과 암컷 사이의 상호작용에는 또 다른 종류의 게임이 개입한다. 둘 이상의 생명체가 상충하는 이런 배경 속에서는 게임이론이 가장 적합한 도구다. - P67

부모가 자손들이 원하는 만큼 무한히 투자할 수 있다면 자원 부족으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란 문제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풍요로운상황에서도 이기적으로 굴 자손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부모가 단 하나의 새끼만 낳아 그 한 마리의 만족과 성공을 위해 여생을 쏟아붓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느린 번식 속도를 유도하는 대립유전자는 생식력을 높이고 각 새끼에게 유한한 자원을 신중하게 분배하는 유전자로 이내 대체되게 마련이다. 자연선택의 통제하에서는 평생 새끼 한 마리를 낳는 전략이 진화할 수 없다. 이 논리를 더 확장해보면, 부모는 ‘너무 많은‘, 그러니까 모두에게 충분한 투자를 제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자손을 낳는실수를 범해야 한다. 이런 전략을 유도하는 대립유전자는 평생 번식성공도를 극대화하며, 그럴 경우 형제 경쟁으로 인한 모든 손해를 벌충하고도 이익이 남기 때문이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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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식에는 각국의 왕과 수상, 영웅 그리고 각 분야의 명사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1963년 8월 28일 워싱턴에 모인 사람들의 규모와 위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엄청난 것이었다. 그날 워싱턴에 도착한25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 중에는 고위 성직자와 명사들도 많았다. 하지만 가슴 뭉클한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은 자기 세대에 민주주의를 달성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서 당당한 태도로 참여한 평범한서민들의 모습이었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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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생 갈라파고스물개가 따뜻하게 데워진 검은 화성암 위를 기어 어미 곁으로 다가와 햇볕을 쥔다. 어미 옆에는 갓 태어난 새끼 물개가 새근새근 자고 있다. 참으로 평화스러운 정경이다.
그런데 갑자기 1년생 손위 물개가 사납게 덤벼들더니 새끼 물개의 목을 물어뜯는다. 갓난 새끼를 가운데 두고 어미와 자식 간에 숨가쁜 각축전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새끼 물개가 여러 번 내동댕이쳐진 후에야 어미는 겨우 새끼의 뒷지느러미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형과 어미가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통에 새끼 물개는 이내 숨을 거두고 만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솔로몬이 아기를 반으로 쪼개라고 한 데에는 깊은 뜻이 있었지만 자연에서 벌어지는 이런 사건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P23

이유야 어쨌든 과잉 생산과 불안정한 환경이라는 두 요인이 어우러져 수많은 동식물이 형제자매와 생태적으로 경쟁하고 때로 서로를 죽이기까지 하는 시스템이 탄생했다. 진화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생태환경이 열악할 때는 자연선택의 저울추가 이기적 형질을 발현시키는 대립유전자의 생존 쪽으로 기운다는 의미다. 상황이 특히 안 좋을 때는 심지어 가까운 혈족의 유전자 사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개체 자신의 생존을 돕는 유전자가 퍼질 수 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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